2022/12/24 12:57

[ Polybius ] 역사(Historia), 제 3권 - Hannibal crossed Alps (2) 책-역사

[ Polybius ] 역사(Historia), 제 3권 - Hannibal crossed Alps (1)

  제 2편, 50~57절입니다. 유의 사항은 앞 1편을 보시길.

 < 번역 >

50 ] 이세르 강둑을 따라 800 스타디아(≒148km) 거리를 열흘 동안 행군한 후, 한니발은 알프스의 등반을 시작했고, 매우 큰 어려움에 처했음을 알았다. 그들이 평지에 있는 동안, 여러 알로브로게스 족장들은 기병과 그들을 호위하는 야만인들을 두려워하며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호위 야만인들이 귀환하기 시작하고 한니발의 군대가 어려운 지역으로 진군하기 시작하자, 알로브로게스 족장들이 상당한 병력을 모으고, 카르타고군이 어쩔 수 없이 지나야만 하는 경로 상의 유리한 위치를 점령했다. 그들이 계획을 비밀로 유지했다면, 카르타고군을 완전히 전멸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계획은 그대로 카르타고군에게 노출되었고, 그들이 한니발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입은 손해가 더 컸다. 카르타고 장군은 야만인들이 이러한 중요한 위치를 장악한 것을 알고 나서 고개 기슭에 진을 치고, 그곳에 남아 적의 계획과 전체 상황을 정찰하고 보고하기 위해 그의 갈리아족 정찰대원 몇을 미리 보냈기 때문이다. 그의 명령대로 수행한 정찰대원들은 적이 있음을 알려왔는데, 적은 낮에는 가장 엄격하게 그들이 점령한 자리에 머물렀지만, 밤에는 이웃 마을로 물러났다. 한니발은 여기에 계책을 내 다음처럼 움직였다. 전군을 이끌고 공공연히 전진했고, 적으로부터 멀지 않은 [통과가] 어려운 지점에 다다르자 진영을 쳤다. 밤이 되자마자 그는 불을 지르라고 명령했고, 군사 대부분을 그곳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군대 치중을 가볍게 한 병사들을 이끌어 도로의 좁은 부분을 지나, 마을로 평소처럼 물러난 적이 버린 진지들을 점령했다.

51 ] 대낮에 적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리고 처음에는 계획을 포기했지만, 다음에 수송용 동물들과 기수들이 좁은 길을 따라 길게 대오를 지어 천천히 오르는 것을 보고, 행군을 괴롭히려는 생각이 간절했다. 그들이 여러 다른 지점에서 공격하면서, 카르타고인들을 공격했다. 주로 말과 수송용 노새를 많이 손실했는데, 야만인들의 공격이 아니라 지형 때문이었다. 고개를 오르는 길은 좁고 고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파르기 때문에, 가장 조금만 움직이거나 방해만 해도 많은 동물들을 짐과 함께 벼랑 위로 밀어냈다. 상처를 입자마자 혼란을 야기하고 그 중 일부가 고통에 놀라 돌아서 다른 동물들에게 달려가며, 좁은 길에서 자기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밀어붙여 큰 혼란을 야기한 것은 주로 말이었다. 한니발은 이것을 보고, 수송대가 큰 손실을 입으면 전투에서 벗어난 군인들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밤에 높은 곳을 점령한 대열의 선두에 도움을 주려 자신이 선두로 갔다. 그는 높은 지대에서 공격하여 알로브로게스족에게 큰 손실을 입혔지만, 행군 대열이 참가자들의 함성과 전투로 인해 양편에서 한꺼번에 더 큰 혼란에 빠졌기 때문에, 카르타고군에게도 똑같이 손실이 컸다. 위험한 곳에서 크게 어려움을 겪어 가며 말과 수송대의 나머지를 진정시킨 것은 겨우 알로브로게스족 대부분을 칼로 몰아붙이고 나머지를 강제로 그들의 근거지로 도망치게 했을 때였다. 한니발 자신이 전투 후에 가능한 한 많은 군대를 집결시켜 공격했고, 적들이 공격을 하기 위해 출발한 마을을 발견하였다. 그는 모든 주민들이 약탈하려 나왔기 때문에 거의 인적이 없음을 알고 탈취했다. 이것은 당장의 수요뿐 아니라 뒤에도 그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많은 수송 동물들과 말 및 같이 생포된 사람들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2~3일 동안 충분한 곡물과 소를 공급받았고, 더군다나 오르막 근처에 있으며 카르타고를 공격하려 했던 다음 부족들이 아무도 그를 건드릴 생각을 못 하도록 공포심을 주었다.

52 ] 한니발은 여기서 잠시 숙영하기로 결정하고, 하루를 머무른 후에 행군을 재개하였다. 그 다음에는 어느 지점까지 군대를 안전하게 지휘하였으나, 나흘째에 다시 큰 위험에 처하였다. 고개 근처의 선주민들은 공모하여 배신할 뜻을 품고, 우리 그리스인들이 전령의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처럼 거의 모든 야만인들이 우정의 증표로 사용하는 올리브 가지와 화환을 들고 맞으러 나왔다. 한니발은 그런 동맹 제안에 대해 약간 의심스러웠기 때문에, 그들의 계획과 일반적인 동기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그들이 한니발에게 잘못을 저지르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의 도시의 점령과 파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이 이유로 전투나 부상을 유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왔다고 확언했고, 인질을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는 그들의 말을 불신하며 오랫동안 망설였다. 그러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아마도 부족들이 [카르타고군을] 공격하려면 더 신중하고 더 평화를 선호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거절한다면 분명히 공개적인 적이 될 것임을 고려하여 그는 마침내 그들의 제안에 동의했고, 우정을 받아들이는 척했다. 야만인들이 그 때 인질들을 인도하고 그에게 소를 많이 제공하며, 자신의 처분을 한니발에게 기꺼이 맡기자, 그는 그들을 다음 어려운 길의 안내자로 삼을 정도로 그들을 신뢰했다. 그러나 이틀 간의 행군 후에 이 야만인들은 카르타고군의 뒤를 따라 그들이 어렵고 가파른 협곡을 횡단하고 있을 때 그들을 공격했다.

53 ] 한니발이 여전히 주의하여 그런 긴급 상황을 고려해 수송대와 기병을 대열의 선두에 배치하고 중무장 보병을 후방에 배치하지 않았다면, 카르타고 전 군은 완전히 궤멸되었을 것이다. 보병이 그 때 공격의 정면에서 엄호해 주었기 때문에 재앙은 덜 심각했다. 그러나 이에도 불구하고 매우 많은 사람들, 수송 동물들과 말들을 잃었다. 언덕을 따라 고지에서 있던 적은 바위를 굴리거나 손에서 돌을 던져 카르타고인들을 극도의 위험과 혼란에 빠뜨려서, 한니발이 기병과 수송대의 전진을 엄호하기 원했음에도, 노출된 바위로 방어막을 삼고 병사들이 밤새 노력한 결과 간신히 구출해 낸 기병과 수송대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다음 날, 적들이 떠난 후, 그는 기병대와 수송 동물들과 합류하여 고개 정상으로 갔다. 이제 더 이상 야만인들의 대규모 병력과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일부는 지형을 이용하여 후방이나 전방에서 그를 공격하고 무리를 이룬 동물들 중 일부를 탈취했다. 이 상황에서 코끼리들은 그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적은 코끼리들이 있는 대열 부분에 처음 보는 모습의 이상함에 겁을 먹어 감히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흐레 동안 산을 오른 후에 한니발은 정상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이틀 동안 생존자들에게 휴식을 주고 낙오자를 기다려 야영했다. 이 기간 동안 공포에 질려 도망친 많은 말들과 무리를 벗어난 많은 수송용 동물들이 행군 자취를 따라 야영지로 놀랄 만큼 많이 돌아왔다.

54 ] 때가 플레이아데스 성단에 가까웠기 때문에 정상에 이미 눈이 쌓여 있었고, 한니발은 병사들이 지금까지 고통받았고 고통받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에 기분이 침체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원기를 북돋우려, 그는 병사들을 집합시켜 산맥 아래에 실제 가까운 이탈리아의 광경을 보게 했다. 알프스 산과 이탈리아를 함께 볼 때, 성채가 도시에 접해 있듯이 알프스가 이탈리아 전체에 면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포 평원을 보여주고 거주하는 갈리아인들의 우호적인 감정 및 로마의 상황을 지적하면서, 그는 병사들의 의지를 어느 정도 회복시켰다. 다음날 그는 야영지를 철거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몇몇 은밀한 약탈자들을 제외하고는 적들과 마주치지 않았으나, 지형의 어려움과 눈 때문에 손실이 거의 오르막에 필적했다. 내리막길이 매우 좁고 가파르며, 사람과 짐승 모두 눈 때문에 무엇을 밟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길을 잘못 밟거나 구르기만 하면 모두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병사들은 이 시기에 그러한 고통에 익숙했기 때문에 참았지만, 마침내 그들은 길이 극도로 좁아 코끼리나 무리의 동물들이 지나갈 수 없는 곳에 도달했다. 이전의 산사태가 산 표면 약 1.5 스타디아(약 280m)를 쓸어냈고, 최근에 다시 산사태가 나자 군인들은 다시 한번 낙담하고 용기를 잃었다. 카르타고 장군은 처음에 우회로로 어려운 부분을 피하려 생각했지만, 새로 내린 눈으로 전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생각을 포기해야만 했다.

* ‘on the setting of the Pleiades’; https://www.persee.fr/doc/rbph_0035-0818_1984_num_62_1_3447 에서 보듯이, ‘겨울이 되어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황소자리의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겨울에 보인다.

55 ] 상황은 완전히 특이하고 통상을 벗어났다. 이전 겨울부터 남아 있던 오래된 눈 위에 내린 새로운 눈은 부드럽고 신선했으며, 아직 깊지 않았다. 하지만 새 눈 위를 밟으면 아래에 있는 얼어붙은 눈을 만나 더 빠지지 않고 두 발로 미끄러졌다. 비슷한 일이 진흙을 뒤집어쓰고 땅 위를 걷는 사람들에게 일어난다. 그러나 그 다음이 훨씬 더 힘들었다. 사람들이 딱딱한 아래 층을 밟아 넘어진 후 무릎과 손으로 일어서려 할 때, 아래 층 위에서 가파른 비탈을 타고 훨씬 더 빨리 미끄러졌다. 그러나 동물들은 넘어졌을 때 아래 층을 깼기 때문에, 올라가려 할 때 그들의 짐이 마치 그 안에 얼어붙은 것처럼 그대로 있었다.
[그 경로로 갈] 계획을 포기하고, 한니발은 산등성이에 진을 치고, 눈을 치우고, 다음에는 병사들에게 절벽을 따라 길을 만들기 위해 매우 힘든 일을 시켰다. 하루 동안 수송대와 말들이 통과하는 데 충분히 넓은 길을 만들었다. 그는 즉시 통과하여 눈이 없는 땅에 진을 치고, 그들을 목초지로 보냈으며, 다음에 누미디아 인들을 교대시켜 길을 건설했다. 그래서 큰 어려움을 겪고 그는 3일 만에 코끼리들을 통과시킬 수는 있었으나, [코끼리들은] 굶주림 때문에 비참한 상태였다. 알프스의 정상과 고개 꼭대기 근처의 모든 부분은 겨울과 여름 모두 계속되는 눈 때문에 나무가 없고 헐벗었지만, 양쪽 절반의 사면은 풀이 무성하고 숲이 우거져 전체적으로 사람이 거주할 수 있다.

56 ] 한니발은 이제 모든 병력을 모아 계속 하산했고, 방금 설명한 절벽에서 3일간의 행군으로 평지에 도달했다. 그는 도하 때와 평상의 행군에서 적의 손에 의해 많은 병사를 잃었고, 알프스의 절벽과 어려움은 많은 병사뿐 아니라 훨씬 많은 수의 말과 수송용 동물들을 희생시켰다. 그는 뉴 카르타고에서 [알프스 기슭까지] 행군하는 데 5개월이 걸렸고, 알프스를 넘는 데 보름이 걸렸으며 , 그래서 그가 대담하게 포 평원과 인수브레스족의 영토로 내려갔을 때, 그 자신이 [나중에] 라키니움(Lacinium)의 기둥에 병력에 대해 새겼듯이, 그의 생존 병력은 아프리카 병사 12,000에 스페인 병사 8,000, 최대 6,000의 기병이었다.
  위에서 말했듯이, 비슷한 시기에 푸블리우스 스키피오는 형 그나이우스에게 스페인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하스드루발과 적극적으로 전투하라는 명령을 건네주고, 몇몇 수행원들과 함께 해로로 피사(Pisa)에 도착했다. 에트루리아를 지나 보이족과 교전 중인 법무관의 최전방 군단을 인수한 그는 포 평원에 도착했고, 진영을 건설하며, 적을 기다리며 전투를 고대하고 있었다.

* 한니발은 BC 206년 이탈리아를 떠나면서 이탈리아 남단 콜론나 곶(capo Colonna)의 헤라 신전 기둥에 자신의 행적을 청동판에 새겨 박았다. 병력 묘사도 전부 여기 적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전해진다.

57 ] 이제 내 이야기, 전쟁, 그리고 두 장군을 이탈리아로 가져왔으니,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이 책에서 내 방법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몇 마디 하고 싶다. 내가 말한 대부분이 아프리카와 스페인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일부 독자들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에 있는 지중해 입구, 또는 외해(outer sea)와 그 특성들, 아니면 영국 제도와 [거기서] 주석을 얻는 방법, 스페인에 있는 금광과 은광 등, 작가들이 길게 논쟁해 온 문제들을 전혀 말하지 않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나는 내 주제와 이질적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방해하고 독자들을 실제 주제에서 산만하게 하고 싶지 않았으며, 다음으로 그런 문제에 산발적으로 암시만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진실한 설명을 주기 위해 특별히 대우해 적절한 장소와 시간을 할당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내가 내 역사의 과정에서 그러한 지역에 도달했을 때, 내가 여기서 그 이유로 어떤 설명도 제시하지 않으면, 아무도 놀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언급할 수 있는 각 장소에 대한 그러한 설명을 고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아마도 모든 것을 맛보는 저녁 파티에 참석한 미식가가 그런 경우에 많이 해당됨을 모르는 것이다. 식탁에 현재 오른 어떤 음식도 진정으로 즐기거나 미래에 유익한 영양분을 얻을 만큼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독서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즐거움이나 미래의 이익을 제대로 얻지 못한다.

*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현재의 지브롤터 해협이며, 이보다 서쪽 대서양은 바다 괴물 얘기가 나오는 등 신비하게 여겼다. 당시에도 영국은 섬이라 알려져 있었으며, 청동에 필요한 주석은 거기서 채굴해 거래되었다. 스페인의 광산은 카르타고가 지배하면서 큰 수입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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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mic71 2022/12/24 13:31 # 답글

    추운 날 읽으니 더 생생하게 다가오네요
  • 漁夫 2022/12/26 10:29 #

    하하 요즘 춥긴 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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