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2 22:08

현대 사회 인간의 심리; 석기 시대에 비해 변했을까 Evolutionary theory

  진화심리학 posting 모음 글에 '석기시대'님께서 남긴 리플입니다.
  
  "인간의 심리는 석기시대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이 주장에 반대되는 예가 몇 가지 보여서 여쭙습니다.
  1. 여우에서 개를 만드는 실험이 있었지요. 겨우 몇 세대 만에 완전히 다른 성격이 되었습니다.
  2. 미국 북부 흑인 피부색이 겨우 몇 세대 만에 꽤나 밝아졌습니다. 노예에서 풀려나고도 계속 남부에 있던 흑인들. 1920년대부터 북부로 몰려갔습니다. 한 100년, 3~4세대 정도 되었네요. 그런데 미국 북부 흑인은 남부 흑인에 비해, 바로 봐도 알 정도로 피부색이 밝습니다. 북부 흑인은 "흑인이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만 검은데, 남부 흑인은 완전히 검습니다.
  3. 산업혁명 전/후 인류는 유전자가 다르다는 주장이 있더군요. 산혁 전 사람 일부만이 산혁 뒤 바뀐 환경에 살아남고 후손을 남겼답니다.
  1,2는 몇 세대 만에 성격이나 피부색이 크게 달라진다는 결과고요. 3은 석기시대 유전자풀 가운데 일부만이 지금 남아 있다는 주장입니다. 둘 다, "인간의 심리는 석기시대에서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주장과 충돌하는 듯 합니다.
  
  네, 좋은 질문이고, 이미 진화심리학계에서는 잘 알려져 있는 얘기입니다.

  벨라예프의 은여우 실험은 도킨스가 책에서 소개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인위 선택(artificial selection)의 막강한 위력을 알려 주는 좋은 예제입니다.  물론 이 실험이 중요하고 자체로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만[1], 이 실험을 사람의 성격에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됩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빨리 결과가 나타났던 가장 큰 이유는 특정 형질(여기서는 '사람에게 경계심이 덜하다'죠)에 대한 선택 계수가 극히 컸기 때문입니다.  벨라예프의 실험 설계는 '특정 세대에서 사람에게 경계를 가장 덜 하는 개체들을 고른다.  이들을 번식시킨 다음 대에서도 똑같이 반복한다....'였기 때문에, 이 형질이 몇 세대 안에서 바로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령 한 세대에서 특정 형질이 두드러지는 개체를 1/4을 추려 계속 번식시킨다면 다섯 세대 후엔 그 형질이 (1/4)5=1/1024의 비율로 극히 높게 선택된 셈입니다[2].  빨리 바뀌지 않을 수가 없죠.
  하지만 자연에서는 진화가 이렇게 빨리 진행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인위 선택에서 보듯이 생물은 조건만 맞으면 대단히 빨리 진화할 수 있으나, 실제 자연계에서는 그렇지 않죠.  이 포스팅에서 George Williams의 말을 재인용하죠.
  
... 하지만 요즘 와서는 오히려 무엇이 그렇게 진화를 느리게 만드는가 하는 의문이 유행이다.  현존하는 생물체 중에는 수억 년도 더 전에 존재하던 그들의 조상과 거의 유사한 것들이 있다.  아이오와 대학의 저명한 유전학자인 로저 밀크먼(Roger Milkman)의 표현대로 "일상에서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자연선택의 효과는 표현형을 안정시키고 현상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진화라는 거대한 파노라마는 극소수의 색다른 개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현대의 정통 진화이론이다.
  
- '진화의 미스터리(Pony fish's glow)', George C. Williams, 이명희 역, 두산동아 刊, p.57
  
  이 이유 중 하나는 선택의 주체인 환경이 매우 변덕스럽기 때문입니다.  예 하나만 들자면, 기온을 봅시다.  그린란드 빙하에서 채취한 얼음 시료에서 얻은 최근 만 년 동안의 기온 변화 기록입니다(source). [3]


추세가 잘 보이십니까?  

  만 년이면 어떤 동물이건 진화가 눈에 띄기엔 충분한 시간이지만, 선택 계수도 낮은데다 환경의 추세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이런 거 씹어 버릴 수 있죠  인위 선택의 막강한 속도를 보고 자연계에서도 그렇게 될 거라 그대로 연장하면 안 됩니다.  그럴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4]
  
  다음 문제는 말씀하신 '피부색' 같은 눈에 띄는 변화를 좌우한 요소들이 심리에 영향을 미쳤는지입니다.  미국 북부 흑인의 피부색이 엷어진 것은 소위 혼혈의 영향을 빼도 북쪽이 광량이 적으니 어차피 [약간은] 일어났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심리에 영향을 주었을지죠.
  제가 포스팅을 여럿 했습니다만, 현재의 인간의 심리를 주로 구축한 요소들은

  1) 포유류의 일반 유산
    * 수컷에 비해 암컷이 압도적으로 자식들에게 많이 투자
    * 수컷은 성관계 상대를 암컷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경향이 있음
  2) 인간의 생리적 조건; 직립 보행으로 인해 자궁 밖에서 많이 성장 - 아이는 성숙 전 양육을 매우 많이 요구
  3) 수렵 채집 환경의 부족 사회
    * 일상적으로 많이 접하는 사람들은 평균적 100~200명 부근, 대다수는 친족
    * 대략 5만년 가량 전 일부 집단이 아프리카에서 나가기 전은 주로 사바나 환경을 중심으로 분포
    * 만성적 전쟁; 준 국가 사회가 나타나기 전엔 남성이 여성보다 사망률이 매우 높았음
    * 매우 많은 운동량; '운동 부족'은 거의 100% 현대의 현상
    * 남성과 여성의 '분업'; 주로 사냥은 남성, 채집은 여성이 담당

  제가 알기로는 이런 조건에 변화를 조금이라도 가져온 현상은 사바나 밖으로 나간 인간의 이주를 제외하면 농업과 국가의 등장밖에 없습니다.  전자는 아직도 전세계를 다 지배하지는 못했을 정도죠.[5]  특정 조건이 인간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다고, 꼭 심리에까지 작용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당연히, 인간의 삶에 가장 심대한 변화를 가져온 농업과 국가의 영향은 어떨까요?  아마도 중석기 시대에 그랬으리라 추측하는 사람들이 말하듯이 '스스로를 길들여' 폭력성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을 수 있습니다[6].  이는 현대까지 이어지는 변화고, 현대에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훨씬 오래 살게 되었으므로 '미래를 할인'하는 경향이 훨씬 줄어들 거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7]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의 높은 지능이 중세에 주로 숫자를 다루는 직업에 종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8], 어쨌건 선택은 꾸준히 진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천 년 동안 - 농업의 등장은 대략 10000년 전 중동이었죠 - 위에서 열거한 현대 인간의 심리를 만들어낸 요인들이 그렇게 영향을 많이 받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아마 아니라고 하겠지요?

  漁夫

[1] 여우인데도 세대가 거듭함에 따라 개처럼 귀가 늘어지고 꼬리를 흔들게 됐다든가, 털색 변화 등.
[2] 원래는 여기서 설명한 Price equation을 써야 합니다만 귀찮아서... ㅎㅎ 그냥 넘어갑시다..
[3] 그림에도 나와 있듯이 기준이 1950년이라 최근의 추세는 빠졌습니다.
[4] 이 문제를 감안하지 않으면 도킨스 공처럼 오해를 부를 수 있습니다(link).  도킨스 정도면 일반인 상대 설명에 도가 텄다 말할 수 있는데도, 해당 분야 전문가들에게 비판을 받았죠.
[5] 극지나 아마존의 밀림 등 집약적 농경을 하면서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지역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6] 당시 인간의 뇌 용량이 의미 있을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들인 가축들에게 대개 나타나는 변화죠.
[7] 성인이 된 후에도 평균적으로 40대 초반 정도까지밖에 못 사는 (즉 손주 세대가 성인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던) 석기 시대와, 평균 80대 가까이 될 수 있는 현대인의 시간 감각이 같을 수가 없죠.
[8] 아슈케나지 유태인들은 노벨상 수상자의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하죠.  인구 비례로 봐도 비정상적입니다.

덧글

  • 소드피시 2020/11/13 14:52 # 삭제 답글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 같이 출산율이 급격하게 감소한 지역들이 있는데,
    이런 추세가 다소 지속된다면 이것도 자연선택과 같은 효과를 보여줄까요? :)
  • 漁夫 2020/11/14 11:42 #

    범위를 얼마나 넓게 보는지에 따라 달라.
    유전적의 변화를 계산하는 기본 방정식이라 할 만한 프라이스 방정식 http://fischer.egloos.com/4813712 을 보면

    w/w ; 개체들이 여럿 있는 집단에서, '해당 개체가 갖는 자식 수 / (같은 세대의) 개체 평균 자식 수'

    로 정의했음(위에서 분모의 w는 bold체). 분모가 '같은 세대의 개체 평균 자식 수'지 '절대 자식 수'가 아님에 유의해야 해. 이것은 개체군(population)에서 해당 개체의 유전자가 다음 세대에서 빈도가 얼마나 될지는 절대수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야.
    가령 현재 한국인이 자식이 둘이라면 다음 세대에 유전자 빈도는 증가하겠지만(지금 한국인 평균 평생 출산 아이 수는 올해 확실히 1이 안 됨) 국민 평균 출산 수가 3이 넘는 나이지리아라면 확실히 다음 세대에 유전자 빈도가 줄겠지.

    단 그렇게 줄어들더라도 국민 전체에서 고르게 줄진 않으니까, 나름 선택 효과는 있겠지. 영국에서 산업혁명기를 전후해 국민 문해율이 갑자기 증가했는데, 이건 당시 글을 자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귀족들이 평민들보다 자식 수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라 해석하는 수가 있어. 당연히 귀족의 유전자가 더 많이 전해졌겠지.
  • 소드피시 2020/11/17 18:02 # 삭제

    답글 감사드립니다. 최근에 위생, 의학 등의 발전에 따라 인류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자연선택이 진행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좋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 漁夫 2020/11/18 18:51 #

    현대 사회는 지금까지 인간이 전혀 직면하지 못했던 환경이라서, 당연히 선택 방향도 많이 다르지.
  • shaind 2020/11/13 15:37 # 답글

    인간의 진화 속도가 품종개량의 속도처럼 표현형의 변화가 빠를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인간에 있어서 자연 선택과 인위 선택 사이의 구분은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죠. 특히 성 선택의 영역에서는...
  • 漁夫 2020/11/14 11:49 #

    어떤 목표를 갖고 의도적으로 꾸준히 밀어붙이지 않기 때문에 속도가 그렇게 빠를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뇌 용량 팽창과 지능의 꾸준한 향상을 성선택 때문이라 말하는 학자들이 꽤 있습니다. Homo ergaster('호모 에렉투스'로 잘 알려진) 이후 현대 인류에 이르기까지 뇌 용량은 적어도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만, 거기 필요한 시간은 대략 150만 년 이상....

    ps. 본문에 적지는 않았지만 농업 사회 이후의 심리적 진화를 왜 무시하냐고 진화심리학을 비판하는 얘기도 제법 보았는데, 이게 사실 비판자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지역마다 사람들의 심리적 차이가 있겠군?"이란 결론으로 갈 수도 있는지라.
  • 일화 2020/11/15 16:45 # 답글

    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 漁夫 2020/11/18 18:49 #

    요즘 책을 잘 못 읽어서(그럴 만한 사정이 좀...) 재탕밖에 안 되네요 -.-
  • ㅇㅇ 2020/12/04 15:12 # 삭제 답글

    유튜브에서 human domestication으로 검색해보면 인간의 자기가축화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오더군요. 과학자들이 강연하는 내용도 많습니다. 느리긴 하지만 폭력성이 감소해온건 맞는것 같네요.
  • 漁夫 2021/02/06 18:52 #

    특히 최근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진짜 얼마나 변할지는 앞이 더 중요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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