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19 14:06

채색 방법 - 염료와 안료 Views by Engineer

   이 블로그에서 좀 뜬금 없는 주제긴 하다 ㅎㅎ
    
  사람이 그림을 그린 역사는 유구하다.  아마 적어도 사람이 현재의 사람이 된 시점부터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텐데[1], 초기의 유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무래도 알타미라나 라스코 등 동굴 벽화 아닐까.
 
▲ 프랑스 라스코(Lascaux) 동굴 벽화(source; Wikipedia)

  이 때는 현대처럼 다양한 물감을 사용했을 리가 없다.  다 천연물인데, 벽화를 그린 재료는 색이 있는 광물들이다.  지각에서 가장 흔한 금속은 알루미늄인데, 일반적으로 알루미늄의 화합물은 색이 없다.  따라서 흰색을 빼고는 특정 색을 내는 데는 그 다음으로 흔한 철의 산화물이나 구리 등 다른 전이 금속(transition metals)의 화합물이 흔히 쓰인다[2].  물에 녹는 화합물이라면 당연히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보통 물감으로는 물에 거의 녹지 않는 것을 사용한다.  이런 것들을 안료(pigment)라 부른다.  여기에는 금속 화합물 외에 물에 녹지 않는 탄소도 - 옛날에는 숯검댕을 썼을 가능성이 높다 - 들어간다.

  반면에 물에 녹는 재료라고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들은 모통 염료(dye)라 부른다.
  색을 보이면서 물에 녹는 재료들은 많은 경우 옷을 물들이려, 즉 염색 목적으로 사용해 왔다.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닌 漁夫가 염색의 세부를 왈가왈부할 실력이 없으니[3] 이런 재료들의 공통적인 특성만 지적하자.  유기 화합물인 천에 항구적으로 붙어야 하므로, 염료 자체가 천을 이루는 분자의 일부에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오래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드는 방법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앞에서 말한 단순한 금속 화합물만으로는 거의 가능하지 않다[4].  이 이유 때문에 염료는 거의 구조가 꽤 복잡한 유기 화합물이다[5].
  유기 화합물의 주요 구성 원소는 탄소와 수소며, 거기에 산소와 질소가 다음을 차지한다.  이들은 전이 금속이 아니라, 간단한 화합물들은 색을 내지 않는다.  유기 화합물이 (금속의 도움 없이) 색을 내는 경우는 거의 2중 결합 때문이라 볼 수 있는데, 특히 탄소 원자가 길게 연결되었을 때 하나 걸러 하나씩 2중 결합이 있는 경우(conjugated double bonds)가 중요하다.  아래 유기 화합물들은 색을 내는데, 공통적인 요인은 2중 결합이 결합 하나 걸러 있는 상태가 길게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 토마토, 달걀 노른자, 당근의 색을 내는 화합물들(source)

  이 상태(conjugated double bonds)가 중요한 이유는, 결합을 구성하는 전자가 이 2중 결합을 타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으로 보면(source)...


  C-C가 단일 결합이면 가운데 sigma bond(파란색)로만 연결되나, 2중 결합에서는 위아래 pi bond(녹색)이 추가되며, 전자 구름의 분포가 보여 주듯이 두 원자 주변에 퍼진다.  이것만으로는 pi bond의 전자는 단지 두 원자 주변에 머물 뿐이지만, 2중 결합이 탄소 원자 하나 건너 하나씩 있을 경우 묘한 일이 생긴다.  바로 공명(resonance)이다.  잘 알려진 벤젠 분자에서는 아래처럼 pi 결합 전자가 분자 전체에 퍼진다(source; Wikipedia 'aromacity').

  이렇게 되는 근본적 이유는 전자가 넓게 퍼지면 에너지 상태가 낮아지기 때문이다[6].
  단일 결합을 이룬 탄소 원자들의 전자 상태는 가시광선만으로는 바뀌지 않지만(대개 에너지가 좀 높은 자외선 UV이 필요하다), 2중 결합이 이 모양으로 길게 늘어설수록 전자를 더 높은 에너지 상태로 올려보내는 데 필요한 에너지가 줄어들며, 위 그림처럼 10개 부근이 되면 가시광선 영역에 들어온다[6].  이러면 사람 눈으로도 색이 보이게 된다[7].  이런 화합물들 중에 물(또는 유기 용매)에 녹는 것은 염료로 취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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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목적에 염료나 안료 중 어느 한 편을 사용하는 것은 채색 면이 처할 상황에 따라 다르다.  가령 외부에서 햇빛(아래 설명하겠다)이나 비바람에 노출된다면 염료를 사용하기가 불편하다.  비에 녹아나가는 문제 외에, 햇빛의 자외선은 위에서 말한 conjugated double bond를 잘 부수기 때문이다.  전에 햇빛에 의한 DNA 손상에서 사용한 그림을 가져오겠다.
 

  붉게 표시한 부분은 저렇게 연결되기 전에는 공간적으로 인접한 2중 결합 2개였다[8].  상당히 강한 에너지의 빛(일상 환경에서는 일광 자외선)이 conjugation을 깨서 색을 없애버리는 셈이다.   그리고 conjugation을 깨는 다른 방법은 공기 중의 산소나 기타 래디칼(radical)이 2중 결합을 공격하여 끼어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색이 바랜다'고 말하는 현상이다.  반면 무기물을 사용하는 안료는 이런 문제가 비교적 덜해서, 야외에서도 장시간 색을 유지할 수 있다. 

  현재는 염료보다 안료를 사용하는 경향이 큰데, 첫째 염료는 옛날에도 그랬지만 점점 비싸지고[9], 둘째 안료의 분산 기술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잉크젯 프린터용 검은 잉크는 놀랍게도 (거칠게 말해) 물에 carbon black(숯검댕하고 좀 유사)을 중량 기준 30% 가까이 타서 분산시켰다.  이런 물질이 몇 달 이상 상점에 진열돼 있어도 검댕이 가라앉지 않는데,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쉬워 보여도 결코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  이런 몇 요인이 점차 안료를 더 쓰게 하는 이유로 작용한다.
  
  漁夫

[1] 네안데르탈 인도 그랬을 가망성이 없지 않다.  인류와 네안데르탈 인은 확실히 다른 종 취급받는다.
[2] 전이 금속의 화합물은 그 전자 구조 특징 때문에 여러 다채로운 색이 난다(황산구리의 청색을 생각해 보자.  여기에 진한 소금물을 타면 녹색으로 색이 바뀐다.  이는 구리 이온에 배위하는 이온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흔한 녹슨 철은 붉은색이나, 철 표면을 공기 중에서 강하게 가열하면 표면에 검은색 녹이 생긴다).  반면 알루미늄이나 나트륨 등의 화합물은 금속 전자가 가시광선 파장 정도로는 들뜬 상태(excited state)로 가지 못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색이 나오지 않는다. 
[3] 색을 띤 물질이 천에 달라붙는 '정착'만 해도 꽤 복잡하다.  한 번 빨았더니 색이 물에 녹아 몽창 빠진대서야 써먹을 수가 없을 테니.  천에 염료를 붙이는 방법은 염료 종류만큼이나 다양하다.
[4] 물에 녹는다는 것은 이온(ion)으로 갈라진다는 뜻인데, 이 상태로 천에 정착할 수 있을까?  흡수시켜도, 물에 다시 넣으면 녹아 나갈 것이다.
[5] 유기 화합물이라도 금속을 포함할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헤모글로빈(붉은색)이나 엽록소.
[6] 근사적으로 '전자를 1차원 좁은 방에 밀어 넣는' 문제다(particle-in-a-box problem).  방의 길이가 길면 에너지 준위(level) 사이의 간격이 점차 줄어든다.  따라서 2중 결합이 이어진 길이가 길수록 흡수 파장이 점차 길어진다.  결과만 보자면, 전자가 갇힌 방의 길이를 L이라면 전자의 에너지는(source)
  물론 m은 전자의 질량, h는 플랑크 상수, n은 주양자수다.  위 출처에는 양자수에 따른 파동 함수 모양도 그려 놓았다.
  이 간단한 계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 전자의 바닥 상태(n=1) 에너지는 h2/8mL2다.  L이 크면 
    점차 낮아지며, 공명을 일으켜 전자가 더 퍼지는 이유를 설
    명해 준다.
  * 전자가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아 들뜬 상태로 갈 때 최소 에
    너지는 n=1에서 2로 갈 때의 에너지 차며, 그 값은
    3h2/8mL2다.  역시 L이 크면 감소한다.
  * 탄소 원자 몇 개가 conjugated bond가 되어야 사람 눈에
    보일 정도로 색이 나타나겠는가?  위의 '최소 에너지'가 가
    시광선 파장에 대응하면 된다.
    - 가시광선; 400~800nm.  에너지를 E==hc/λ로 계산
     하면, 범위는 2.5~5×10-19 J.
    - 2중 결합 길이; 에틸렌에서는 133pm 정도라는데, 
     conjugated에서는 약간 길 테니 편의상 단일 결합의 154
     pm과 133pm의 평균인 144pm을 사용하자.
      그러면 전자 질량 9.11×10-31 kg을 사용하여 계산이 된다.

     2.5×10-19 ≤ 1.81×10-37/(144pm×n)≤ 5.0×10-19 

     여기서는 4.18≤n≤5.91을 얻는다.  따라서 적어도 탄소 원
    자가 여섯 개, 즉 2중 결합이 세 개는 있어야 한다.

  물론 이 계산은 매우 단순화했으므로, 실제와 꼭 맞지는 않는다.  가령 벤젠은 이 조건을 만족하나 가시광선 영역에서 색이 없다.  하지만 실제 화합물에서 나타나는 경향을 정성적으로는 잘 예측해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실제와 또 한 가지 차이라면, conjugated bonds에 있는 탄소 원자에 -OR이나 -NR2처럼 비공유 전자쌍을 갖고 있는 functional group이 붙으면 이 계산 기본 가정에 미묘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7] 실제 가시광선 파장 중 일부를 화합물이 흡수하면, 그 보색이 사람 눈에 두드러지게 보인다.  즉 어느 화합물이 파랑색을 흡수하면, 그 화합물의 색은 파랑의 보색인 노랑으로 보인다.
[8] 저렇게 4각형 고리를 만드는 것은 빛으로 일어나는 '광화학 반응'의 특성이다.
[9] 염료는 사람이 복잡한 공정으로 합성하거나 천연물에서 추출하는 수밖에 없다(코치닐 얘기를 보라).  로마 황제의 옷 색이 보라색이었는데, 그 색 천연 염료의 값이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개 수천 마리가 필요했다나...
 

덧글

  • 한우 2017/08/19 16:53 # 답글

    벤젠같이 고리형은 저 모델이 아니라 Particle on a Ring을 씁니다. 결과적으로 얻는 식의 모양이 약간 다르죠. 음음 그리고 벤젠처럼 고리에 방향성 물질은 휘켈 규칙도 따라야 하니깐 조건이 더 복잡해질겁니다... 그나저나 염료를 새로 만드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이지요. (만든 염료가 실제로 써먹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거는 더더더 어려운 일이고요)
  • 漁夫 2017/08/20 00:49 #

    아 문제 푼지 오래돼 맛이 갔군요. 가장자리에서 node뿐 아니라 maximum도 가능한데..

    염료를 합성하면서 크게 산업이 일어났지만, 지금은 딱히 각광받진 못합니다. 의료용 정도가 아니면 비싸게 팔기 어려우니까요.
  • 채널 2nd™ 2017/08/20 00:15 # 답글

    왠지 안료는 -- 특히 공장에서 찍어 냈다면 -- 몸에 해롭지 않을까 하는 그런 ... 염려 아닌 염려가.

    염료는 "천연"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어서, 제주도의 감물로 염색한 옷이라든가 (흠...)

    (한때 그림쟁이들은 특이한 색상을 얻기 위해서, 이집트에서만 나는 미이라를 뽀개서, 그걸 가루로 만들어서 ....... 물감을 만들었다지요 --)
  • 漁夫 2017/08/20 00:52 #

    공장에서 찍어 내건 아니건 딱히 더 해롭거나 하지 않습니다. ㅎㅎ 코치닐 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연 염료건 아니건 인간의 손을 거쳐야 하긴 마찬가지죠.
  • 오뎅제왕 2017/08/20 20:56 # 삭제 답글

    천연염료도 생각보다 탈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본문에서 언급하신 코치닐 염료(연지벌레 염료) 의 경우 간혹 알레르기 / 아토피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사실 천연이나 합성이나 그게 그거죠
  • 漁夫 2017/08/21 21:53 #

    네 천연이건 합성이건 똑같은 안전 시험을 거쳐야 제대로 쓸 수 있죠.
  • 무식이 2017/08/23 02:07 # 삭제 답글

    어부님 여쭤보고 싶은게 있는데요 모델링 뜻이 뭔가요?? 어떤 방정식을 만드는 것인가요? 검색해보니 "어떤 물리현상을 특정한 목적에 맞추어 이용하기 쉬운 형식으로 표현하는 일" 이렇게 이해하면 되나요? 제가 공부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ㅠ
  • 漁夫 2017/08/28 00:58 #

    간단히 말하면, 어떤 현상이 우선 무슨 이유에 의한다고 간단하게 가정한 후 그에 따라 식을 세워 정리하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모든 물리 식들이 다 모델링입니다. F=ma도 그렇지요. 단 이들은 매우 잘 맞기 때문에 이런 것도 모델링이라 하진 않습니다. 매우 쉬운 사례를 들자면, 특정 전염병이 전파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1) 이미 그 병이 있는 사람은 어느 이상 접근하는 모든 사람에게 1/10의 확률로 병을 퍼뜨린다.
    2) 하루에 사람들은 대체로 200명쯤 그 거리 이상 접근하게 된다.

    이러면 처음 한 명이다가 다음 날에는 20명, 그 다음에는 400명.... 이런 식으로 병이 전염될 것입니다. 즉 N=20^x (x는 경과 일수) 가 되죠.
    하지만 이게 정확히 성립하지는 않는데

    1) 사람이 무한히 많지 않다.
    2) 만나는 사람 중 겹치는 사람이 꼭 나온다.
    3) 시간이 지나면 병이 낫기도 하며, 병이 심해지면 추가로 만나는 사람은 줄어든다.

    이런 조건까지 감안해서 원 식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모델링이라 할 수 있죠.

    모델링 과정에서는 원래의 가정이 적절한지, 그리고 결과를 실제 현상의 결과와 비교하여 비교 검증하는 단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적절한지 설명이 없이는 모델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좋은 사례는 http://sonnet.egloos.com/3706871 를 읽어 보시지요.
  • 무식이 2017/08/30 02:46 # 삭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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