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선택이 어떤 식으로, 무엇에 대해 작동하는가는 아직도 논쟁의 대상이다. 현재 주류는 윌리엄 해밀턴, 조지 윌리엄즈, 대중적으로는 리처드 도킨스 등이 대표하는 '유전자 선택설'이나[1], 에드워드 윌슨 등이 대표하는 (신) 집단 선택설[2] 등이 나오는 것을 보면, 지구과학의 판구조론 수준으로 만장일치로 정리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러면 '유전자 선택설'의 기반이 되는, 자연 선택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유전자 및 그 돌연변이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윌리엄즈는 '적응과 자연선택'의 2장에서 아래처럼 논한다.
- '적응과 자연선택', 번역 전중환, 48페이지.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돌연변이가 많아서 잘 바뀌는 유전자는 오래 존속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변하는 돌연변이 속도를 낮게 만드는 유전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잘 퍼질 것이다[5]. 윌리엄즈는 "무슨 식으로건 돌연변이 속도를 낮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 생물은 발견된 일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현재 우리는 특정 환경에서 그 환경에 잘 적응한 생물이 나타날 것이라 기대한다(소위 '적응주의'). 이 가정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환경이 바뀌는 속도보다 가능한 진화의 속도가 꽤 빨라야 한다. 쉽게 말해 '(진화의) 골대'가 상당 시간 바뀌지 않아서, 생물들이 해당 골대 쪽으로 충분히 움직일 시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안정된 적응 양상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조금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생물과 환경이 '평형을 이룬다는 가정'이다. 윌리엄즈가 훨씬 뒤의 책 "Pony fish's glow"에서 한 말은
유성생식을 하는 수천 이상의 개체가 있는 집단에서는 유전적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그런 상황은 진화생물학자들에게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2장에서 설명한 자연선택 이론은, 왜 한 생물이 현재 갖고 있는 형태 대신 다른 가능한 형태를 갖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진화생물학자들은 .... 어떤 경우이든지 장기적으로는 자연선택에 의해 같은 상황에 도달할 것이며 그 장기간이 실제로 존재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적 변화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과정에 의해 형성된 진화적 평형 상태를 연구 대상으로 한다. (p.72~73)
- '진화의 미스터리(Pony fish's glow)', George C. Williams, 이명희 역, 두산동아 刊
진화적으로 보아 평균적으로 의미가 있을 정도로 안정적으로 길게 유지된 환경이 존재한다는 것은 개체군 유전학(population genetics)과 진화생물학자들의 작업 방식에서 필수적이다.
1) (현재의) 유전자는 돌연변이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개체의 수명보다 상당히 오래 안정적으로 존재한다.
2) 특정 환경에서 표현형(phenotype)으로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 유전자들이 여럿 있을 때, 자연선택은 이들
을 매우 효과적으로 골라낸다. 돌연변이로 유전자가 바뀌는 것보다 자연선택은 적어도 몇 배 이상 빠르다.
3) '특정 환경'은 자연선택으로 인해 생물이 거기 '잘 적응'하는 데 충분할 정도로 오래 지속된다.
따라서 우리는 '선택은 개체에 작용하나, 실제 개체가 담고 있는 유전자가 선택된다고 간주해야 선택 과정이 진전되는 모습을 제대로 묘사하게 된다'는 것이 유전자 선택론자들의 주장이다. '개체' 자체가 선택의 단위라고 간주하려면 개체가 변하지 않고 그대로 다음 대로 전달되어야 할 텐데,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우리에게 친숙한 (꽤 큰) 생물들은 거의 그렇게 번식하지 않는다. 유성 생식 과정은 DNA 수준에서 유전자를 재조합하며 기존 조합을 파괴하기 때문에, 개체의 유전자 조합은 결코 그대로 다음 대로 넘어가지 못한다. 따라서 현재의 수준에서는 유전자 선택설이 논리적으로도 가장 옳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매트 리들리가 '이타적 유전자'에서 한 말처럼 "개체의 이익과 개체가 담고 있는 유전자의 이익은 대체로 일치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차이를 - 전형적으로 노화, 가족, 독성의 진화 등 - 관찰한 생물학 이론가들이 유전자 선택 쪽이 현실을 더 잘 설명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 이 이론은 개체가 일차적 선택 대상이나, 실제 선택되는 것은 개체가 운반하는 유전자라 주장한다.
[2]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나, E. 윌슨이나 그 협력자 L.노박 등이 주장하는 '신' 집단선택론은 수학적으로는 기존의 개체 선택론(심층적으로는 유전자 선택)과 동등하다. 자세한 설명은 Price equation을 참고.
[3] 사람의 경우 대략 10-6 정도로 추정한다고 기억한다.
[4] 원서의 번역자 전중환 교수는 각주를 달아 놓았다. 해당 유전자를 하나만 갖고 있어도 죽으니까, 이 유전자가 없는 정상 개체와 자손을 볼 경우 자손의 1/2에 해당 유전자가 나타나고 따라서 '1/2이 제거된다'는 의미. 그런데 약간 의아한 점이, 번식 전에 치사 효과가 나타나면 해당 유전자가 존속할 수가 없고(당연히 무조건 없어진다) 번식 후라면 여기 설명처럼 1/2이 제거될 수가 없다(Huntington disease 참고).
[5] 현재 DNA의 오류 수리 기전이 얼마나 정교한지 한 번 보자(DNA 손상과 수리). 물론 어느 정도 개체가 잘 굴러가는 상황에서 돌연변이가 뜨면 대체로 개체에게 해롭기 때문에 돌연변이를 낮추게 되었으나, 같은 정도 기능을 하는 유전자 중에서도 돌연변이 확률이 작은 것이 더 많이 퍼지는 것은 당연하다.
[6] 소위 '살아 있는 화석'.
덧글
"간단한 예로 열성 치사유전자가 a이고 그 우성 대립유전자가 A라고 가정하자. 열성 치사유전자가 개체군 내에 매우 드물어서 그 치사유전자를 이형접합으로 가진 개체(Aa)가 거의 항상 AA 개체와 짝짓기 한다고 하자. 이 경우 Aa 개체가 낳는 자손들의 절반은 AA로 생존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Aa로 죽게 된다는 뜻이다."
이 각주는 제가 적은 것처럼 명백히 "해당 유전자를 하나만 갖고 있어도 죽는다"란 의미죠.
변형과 변이, 뭐 혹은 변신..
진화의 메커니즘에서 그 핵을 이루는 것은
개체의 변화가 아니라
세대간의 차이 입니다.
즉
개체 그 자체가 아무런 변화가 없더라도..
부모와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진화의 일부입니다만..
개체 자체가 변신해서 "신"이 되더라도.
그건 진화가 아닙니다.
말했다시피 변신, 변화, 변이 일 뿐이죠.
이 상황에서, 돌연변이가 나타나면 자연이 '검사'합니다. 대개 해롭기 때문에 사라지지만, 일부 이로운 것은 '정상 개체'에 비해 번식 이점을 갖습니다. 그러면 이 돌연 변이가 퍼져 나가는데, 이 이점을 갖는 돌연변이가 나타나는 속도보다 자연이 골라 내는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일단 이점을 갖는 돌연변이라면 개체군 내에서 비율이 안정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얘기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는 중요한데, 사실 사람이 인위적으로 선택할 경우 생물은 자연계에서 보이는 속도보다 훨씬 빨리 진화할 수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현재의 돌연변이율을 기반으로 눈의 가장 원시적 형태 중 하나인 안점에서 출발하여 '한 번에 한 가지씩만 바꾸더라도' 척추동물의 눈을 진화시키는 데는 40만 년이면 충분하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문화의 진화에 있어, 한 집단에서 지배적인 문화적 요소는 집단 내 다른 문화적 요소를 배제하기 때문에 상당히 오래 안정적으로 존재하며, 이는 집단 간의 자연선택을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튼 지식이 굴드vs도킨스 키배 뜰때 논쟁에 멈춰있다보니, 요즘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대충 들리기로는 유전자 선택설에 모순되지 않는 (신) 집단 선택이론이 나왔고, 집단 선택으로만 설명 가능한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여기에 대해 유전자 선택설 지지자들은 이들도 유전자 선택으로 환원해 설명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분위기인 듯 하던데...
1편] http://fischer.egloos.com/4784797
2편 ] http://fischer.egloos.com/4789999
저는 집단이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인데, 집단들 사이의 선택이 가능성이 매우 낮거나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링크해주신 글의 요점 중 하나는 유전적 특질과 문화적 특질을 확실히 구분하라는건데, 문화 진화론 쪽은 이 구분을 흐리고 연관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가고 있으니...
물론 문화적 변화는 선택의 요인이 됩니다. 가령 옛날 같으면 힘으로 상대 부족의 남자를 많이 죽인 사람이 자식을 많이 볼 확률이 높겠지만, 지금은 그런 성향은 도태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이 압력은 거기 순응하는 '개체'의 '유전자'를 골라낼 수는 있어도, '여러 세대에 걸친 집단' 중에서 맞는 것을 골라내진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