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02 01:44

한 회중 시계 Evolutionary theory

  다음 비유를 보자.
 
  당신은 지금 사람들이 많이 다닌 길을 따라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다.  좀 오래된 듯한 오솔길에 무언가가 이른 아침의 햇살에 반짝이며 놓여 있다.  그 빛을 따라가 그것을 집어들고 먼지를 털어보니 금으로 된 구식 회중 시계였다.  아마도 그것은 사람들이 지난 두 세기 동안 일상적으로 보아왔던 것과 같은 시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계를 볼 때 사람들은 몇 가지 세부적인 것들을 간과해 왔다.
  시계의 완벽성은 여전히 경이를 자아낸다.  케이스의 이음새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유리 덮개는 대칭을 유지하며 빛나고 있다.  시계줄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소형 금고리로 되어 있다.  표면에는 '평생 시계 회사'라는 회사 이름 주위로 숫자들이 세밀하게 음각되어 있다.  시계공의 기술에 감탄하고 있는데, 빛 때문에 몇 가지 불완전한 부위들이 드러났다.  유리 덮개는 미세하게 뒤틀려 있다.  시계줄은 아름답고 유연하기는 하지만 가늘고 끊어져 있다.  마치 이 시계가 주머니에 들어 있지 않고 여기 떨어져 있는 이유를 말해 주는 듯 말이다.  이음새의 틈은 압정 하나가 들어갈 만큼 벌어져 있고, 먼지나 물이 들어가기에 넉넉할 정도로 넓었다.  좀 의아스러운 결함들이다.  뒤쪽의 뚜껑을 열자 정교한 기계들의 움직임에 다시 한번 경이로움을 느낀다.  실제로 만든 것은 고사하고라도 이처럼 완벽하게 깎은 녹슬지 않는 수많은 놋쇠 톱니바퀴들, 머리카락같이 가는 쇠로 만든 용수철, 작디작은 보석들에 매달린 평형바퀴를 어느 누가 설계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시간을 맞추려고 할 때 비로소 당신은 태엽이 너무 작아 쥐기 어렵고 열두 번을 돌려야 바늘이 겨우 한 시간 정도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 시계를 흔들어보았더니 5초 정도 가다가 금속 용수철의 녹 때문에 멈추고 말았다.  무슨 기계가 이 모양인가?  여러가지 면에서 그렇게도 완벽한데, 다른 면으로는 이 따위라니.  어떻게 달인의 경지에 있는 시계공이 그렇게 많은 오류들을 만들어 놓았는가?  케이스의 안쪽을 보니 작은 글씨로 무언가가 새겨져 있다.  돋보기를 꺼내 읽어보니 다음과 같았다.

- 'Why we get sick(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 Randolph Nesse & George Williams, 최재천 역, 사이언스북스 간, p.327~28


  이런 시계가 있다면 '최대한으로 쓰면 85년'이란 것을 믿고 사시겠는가?  ;-)
  물론 어느 정도 문제점이 대개 저절로 고쳐진다는 것은 매력적이지만, 안 고쳐지는 약점도 많다.  

  ============

  눈치채셨듯이, 이것은 사람의 신체를 비유한 것이다.
  비유가 대개 그렇듯이 시계하고 생물을 비유할 때 1:1로 다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가장 큰 차이라면 시계는 주변에서 에너지를 자신이 섭취하여 움직이지도 않고 자신과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같은 시계나 그 설계 지침을 번식시키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여기 나온 비유의 상당수는 적당하다.[2]  

  * 제조시에 발생했거나 ; 사람의 눈[1]처럼 발생 기원과 진화적으로 생긴 계통적 결함들
  * 새로운 환경; 인간이 석기 시대가 아닌 현대 환경에서 살기 때문에 생기는 수없는 문제들
  * 설계상의 절충에 의한 결함; 인간의 골반은 사실 직립 보행에 그리 적합하지 않다.  4족 보행을 하는 기타 포유류들의 구조를 직립 보행에 그나마 좀 낫도록 허겁지겁 개조한 것이기 때문이다.[3]
  * 이상적인 환경에서; 기계도 사용 평균 환경을 가정하고 만들기 마련이다.  사람은 석기 시대 아프리카 사바나 환경에서 진화한 동물이다.  이 환경에서 그러하다는 말.

  漁夫

[1] 내 첫 포스팅문어의 눈 얘기, 그리고 심지어 인간이 만든 카메라도 계통발생적 결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2]  물론 시계와 생물의 차이인, 번식을 해야 한다는 문제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존재한다. 바로 노화다. 결함을 '스스로 고칠' 수는 있어도, 왜 그 고치는 능력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감소하는지 말이다.
[3] 골반과 출산, 직립보행 포스팅(http://fischer.egloos.com/4433752
 


덧글

  • kuks 2015/08/02 01:49 # 답글

    문득 어부님이 쓰신 예전의 어느 글에서 남성 생식기의 진화과정을 다룬 글을 본 기억이 나는군요.
    뭐 진화라고 해서 정방향으로만 가란 법은 없으니...
  • 漁夫 2015/08/02 02:01 #

    http://fischer.egloos.com/4338382

    이게 정관의 진화 내용이었습니다. 벌써 5년이나 됐군요.

    진화로 이뤄진 생물체 신체 기능을 이해하려 할 때 어려운 점이, 상당히 자주 '해당 기관이나 행동이 하는 역할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팔의 운동이야 목적이 뭔지 너무나 뻔하지만, 가령 불안감(anxiety) 같은 것은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으면 어디에 필요한지가 정말 이해하기 어렵지요.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면 유용성 판단도 어렵고, 진화적 이점을 알기가 어려우니까요.
  • rumic71 2015/08/02 18:50 #

    불안감은 호러영화 제작자들을 위하여...(재미 없어!)
  • 漁夫 2015/08/03 14:05 #

    rumic71 님 / ㅎㅎㅎ
  • RuBisCO 2015/08/02 05:06 # 답글

    하이드라나 랍스터처럼 어찌되었단 전신의 조직에서 텔로미어를 계속 수복하면서 버텨내는 생물도 있기는 한데 인간의 육체는 그렇지 못한게 안타깝죠.
  • 漁夫 2015/08/03 14:04 #

    포유류에서 그랬다간 아마 암이....
  • RuBisCO 2015/08/03 15:58 #

    그렇긴 해도 종양억제유전자의 발현을 강화시킨 쥐에서는 텔로머레이즈의 활성을 강화하면 수명이 길어진다고 하더군요. 종양을 어떻게든 억제만 할 수 있다면 도움이 많이 되긴 하나봅니다.
  • 漁夫 2015/08/10 22:43 #

    그나마 쥐면 좀...

    그래도 인간 수명에 비함 아직 넘사벽인 넘이라.
  • 키르난 2015/08/02 06:30 # 답글

    평균 수명이 85년이면 최대로 쓰면 85년이라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지 않나요..? 지금 봐서는 최대로 아끼고 잘 관리하면 100년까지 쓸 수도 있지만 그건 다른 '부모'시계의 수명이 어땠는지도 확인해야하긔.... 그러고 보면 150년까지 쓸 수 있다는 내기까지 걸렸지요?
  • 漁夫 2015/08/03 14:05 #

    네 제 실수입니다. 85년은 귀엽게 봐주세용~

    150년은 솔직히 말도 안 된다고 봐요. 지금 벌써 2015년인데 말입니다.
  • 일화 2015/08/02 08:01 # 답글

    잘 봤습니다~
  • 漁夫 2015/08/03 14:05 #

    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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