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25 00:38

해상 사고의 일반적인 유형; '정상 사고' Views by Engineer

  '트랜스휴론'호 침몰 사건(sonnet 님)을 트랙백.

  이 포스팅의 소스인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Normal Accidents' by Charles Perrow; 초판 1984.  번역 김태훈, RHK, 2013 간행)'는 상당히 유명하다.  sonnet님의 인용인 '트랜스휴론' 침몰 사고는 6장 '해상 사고'에서 가져왔는데, 일반적인 해상 사고의 특성에 대해 언급해 놓았다.  개별 사고의 특성을 보는 것도 당연히 의미가 크지만, 사고를 유발하는 일반적 이유를 고찰하는 의미도 크다 생각하여 여기 옮긴다.

   
... 이처럼 해상 사고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
  큰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더 나은 검사, 훈련, 설비, 인력, 감독 같은 일반적인 해결책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문제는 시스템의 유형에 있다.  내가 보기에 해상운송 시스템은 실수를 유발하는 측면이 있다.  해상운송 시스템의 많은 요소가 구성된 방식은 실수를 줄이려는 시도를 무력화시킨다.  그래서 하나의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다른 문제로 인해 좌절된다.  결국 전반적인 재구성만이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항공운송 시스템의 경우 특정한 부품이나 장치에 문제가 있어도 다른 요소들이 안전성을 강화한다.  그래서 의도한다고 해도 실수에 취약한 시스템으로 재구성하기 어렵다.  조종사 노조, 비행기를 자주 이용하는 의원들, 쉽게 파악되는 피해자와 가해자, 소송의 편의성, 수요의 탄력성, 감독 기관의 존재, 국제적 운용 경험, 자발적 보고 제도 같은 요소들은 모두 안전성 향상에 기여한다.  그래서 규제를 철폐해도 안전성이 크게 하락하지 않는다.
  해상운송 시스템은 대부분 항공운송 시스템과 정반대다.  피해자는 주로 사회적 신분이 낮고, 선원들의 조직력은 약하며, 오염의 영향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  고위급 인사들이 화물선을 탈 일은 없다.  해난심판소는 법적 책임을 가리고 물적 피해에 대한 배상을 중재할 뿐 사고 원인을 밝히거나 인적 피해를 보상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해운사들은 설령 위험하다고 해도 가능한 한 비용이 적게 들고 편리한 항로를 선택하며, 사고가 났다고 해서 운송을 중단할 수 없다.  미국의 경우 정부가 해운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약하며 주로 지원금을 제공하는 선에서 그친다.  또한 미국의 항만을 이용하는 선박들에 대한 기준도 그다지 엄격하지 않다.  실제로 미국은 선반(sic.) 안전도 면에서 세계 14위를 기록하고 있다.  끝으로 선박 안전과 관련된 유일한 국제 조직은 각국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서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만 한다.

- p.255~56

  운송 수단의 특성상 사고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렇다면 원인은 항공 사고처럼 정확히 추적이 되나?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게다가 해상운송 시스템은 안전성 향상을 위한 조치를 집행하기 어렵다.  선장의 행동은 감시받지 않고, 운항 일지는 잘못 기록될 수 있으며, 블랙박스와 비슷한 장치의 도입을 모두가 반대한다.  폭풍의 위험성도 선장이 독자적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선주들은 추가 운항 시간을 요구하는 선장의 보고를 신뢰하지 않으며, 지시에 반발하면 벌금을 매긴다.  이러한 실태는 수많은 독립적 척도로 기상 상태와 공항의 혼잡도, 그리고 기계적 문제를 판단하는 항공운송 시스템과 상반된다.  항공사는 기장을 '신뢰'할 수 있다.  아니, 굳이 신뢰할 필요가 없다.  독립적으로 지연 사유를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육상운송도 해상운송보다 더 나은 정보 시스템과 감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부실한 시스템 때문에 선주들은 선장이 회사의 이익을 고려하기보다 편하게 운항하기 때문에 도착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쉽다. ... 다시 말해서 선장이 생산 목표를 달성하는 한 큰 위험을 감수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설령 사고가 나도 선장에게 책임을 돌리고 벌금을 물리거나 해고하면 된다.

- p.277

  여기까지 거명한 원인들 중 세월호 사례와 얼마나 많이 일치하는지 정말 신기할 지경이다.  

  1)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선장
  2) 이익을 올리기 위한 행동
    (1) 평형수를 줄임
    (2) 증축에 의한 무게중심 상승
    (3) 맹골 수도는 원래 운항 조건이 좋지 못함
  3) 승객 중 '사회 명사'급은 한 명도 없었음
  4) 청해진 해운은 원 선장이 항의하여 휴가를 내 버리자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운행.

  물론 이런 일반적 원인만으로는 100% 사고가 나게 만들지는 못한다.  세월호라는 특정 사건에서 결국 방아쇠를 당긴 요인을 확인하려면 개별 조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이 겹쳐질수록 사고로 갈 확률이 증가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漁夫

  ps. 다른 포스팅(사고에 대한 관념, 사고의 진행)에서 말했듯이 '시스템 갈아엎기'를 할 수 있는지는 별개 문제임.

덧글

  • RuBisCO 2015/05/25 00:46 # 답글

    사실 다 쓸어버리고 시스템을 아예 새로 세우는 수준의 대처가 필요한데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자본주의 국가라서 역설적으로 그게 안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 漁夫 2015/05/26 08:48 #

    MB의 버스 혁신 등 뭔가 작심하고 해치우지 않으면 안되죠...
  • 로리 2015/05/25 01:13 # 답글

    참 읽는데 안타깝습니다..
  • 漁夫 2015/05/26 08:48 #

    이게 현실입죠.
  • 착선 2015/05/25 08:43 # 답글

    최근에 술먹고 항해하다가 적발됬는데 오히려 큰소리치던 선장분 TV에 나오시던데..
  • 漁夫 2015/05/26 08:50 #

    21세기가 아니라 18,19세기까지 넓혀 보면 술 먹고 배 말아먹은 선장은 상당히 많습니다.
  • 채널 2nd™ 2015/05/25 08:49 # 답글

    희한하지만 항공 사고는 단일 요인에 의한 사고가 대부분 -- 핀이 부러졌다든가, 안전 핀을 빼지 않았다든가 -- 인데 반해서

    선박 사고는 '복합적'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해운 분야가 그만큼 후진적이라거나 아니면 오히려 -- 운항 횟수에 비해서 -- 안전하다든가..........

    (닥치고 앞으로는 선박에도 '블랙 박스'를 달도록 합시다!!! 센서로 덕지 덕지..) ;;;
  • 漁夫 2015/05/26 08:52 #

    항공 사고도 관제 미스까지 뜯어보면 시스템 요인이 분명히 있습니다(이 책이 9.11 테러 훨씬 이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단 본문에서 설명한 것처럼 해운 사고처럼 에러가 날 가능성은 좀 덜하단 말이지요.
  • 키르난 2015/05/25 11:54 # 답글

    소스를 찾아 읽어봐야겠네요. 어찌되었든 시스템을 재구성하는 것도 절대 쉽지 않을 거라..=ㅅ=
  • 漁夫 2015/05/26 08:52 #

    대개변 식으로 뜯어고치기 전엔 어렵죠.
  • 붕어 2015/05/28 16:46 # 삭제 답글

    하긴 울나라 해운사업을 볼때 사고가 반복되는 걸 잘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주요 관계자들이 왜 철저한 체계를 싫어하는지도 감이 오네요. 그냥 시간이 해결해줄 거니. 세월호 같이 일이 흘러가주면 이상적이라 하겠군요 ㅋㅋ
  • 漁夫 2015/05/28 20:10 #

    다 아시다시피 '체계'는 '믿음'만으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Trust but verify'가 통해야 이해 관계자들이 진지하게 '나는 믿을 만하다'를 알리려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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