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공부에는 80% 이상의 비중으로 유전자가 중요하다고 말한 강사가 화제가 되었다.
이래저래 욕을 많이 먹은 모양이긴 한데, 나는 이 분이 관계 책들을 찾아보고 말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사실 강사도 '내 경험에 의하면'이라 전제했다). 그랬다면 80%라 말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쳐도, 유전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여기서도 몇 번에 걸쳐 나왔지만, 행동을 나타내는 여러 요소들에 유전이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는 객관적/과학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최소 대략 10년 정도 전까지 유효했음을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정설을 소개하면[1], 소위 '행동 유전학(behavioural genetics)의 세 가지 법칙'이다.[2]
Rule I. 인간의 모든 행동 특성은 유전적이다.
Rule II. 한 가족 내의 양육에 의한 효과는 유전자의 영향보다 작다.
Rule III. 복잡한 행동 특성들의 편차 중 상당 부분은 유전자나 가족의 영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느 인간의 '행동 특성'을 무엇으로 측정하는가? 이것이 바로 '성격 검사'가 하는 일이다.MBTI 따위 사이비 말고 제대로 된 검사는 다섯 가지 특성에 근거한 '성격 5차원' 이론(neo-pi-r)인데[3], 여기에 지능까지 합한 6차원 이론으로 말하기도 한다[4]. 결론만 말하자면 이 여섯 특성은 모두 유전률이 높다[5]. 이것이 '인간의 모든 행동 특성이 유전적'이라 하는 이유다.
인간은 이 여섯 가지 특성이 유전인가 환경인가 같은 연구를 하기에 상당히 적합한 편인데, 인간 정도로 큰 동물 중에는 쌍동이가 드문데도 사람은 생각보다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쌍동이가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성격과 지능 등 여러 특성에 양육과 유전 중 어느 편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검사해 볼 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식에 속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일란성 쌍동이는 유전자를 100% 공유하지만 이란성 쌍동이는 보통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평균적으로 50%만 공유한다. 이들이 출생 후 얼마 뒤에 따로 갈라져 자랐다면, 유전과 양육의 영향을 분별할 좋은 시험대가 된다. '유전 100%, 환경 0% 공유(입양으로 헤어짐)'과 '유전 100%, 환경 100% 공유'를 비교하거나, 단순히 형제가 헤어져 자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유전 50%), 전혀 남남이 입양으로 같은 환경에서 자란 경우(유전 0, 환경 100%)를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얻은 성격에 대한 결론은 형제가 같이 갖는 공유 환경의 영향(물론 가정 교육 포함)은 매우 작아서 유전자의 1/10 또는 그 이하다. 한 마디로 양육은 성격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6]
그러면 양육과 유전자의 영향 비율은 각각 얼마인가? 전자는 대략 0~10%, 후자가 40~50% 정도고, 나머지 반은 이유를 정확하게 모른다. Judith Rich Harris가 주장한 것은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또래 집단'이란 것이다[7]. 하지만 연령의 효과를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데, '반'은 성년이 된 즈음인 20대 초반의 얘기고, 나이가 올라갈수록 유전률은 점차 올라가 후에는 80%까지 찍기도 한다.
지금은 '성적' 얘기니까, 그에 관해서 좀 더 수치가 나와 있는지 확인하면
1) http://m.nocutnews.co.kr/news/4100993 ; "(총합적으로) 개인에 따라 학업성적의 차이를 유발하는 원인의 62%가 유전적 요소. 지능보다 성격의 영향이 더 큼"
물론 지능도 성격도 유전된다. 그리고 부모가 공부를 더 좋아해서 환경도 그리 꾸며 놓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거 다 합해서 유전적 요소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학업 성적 분산의 62%를 차지했다고 보면 된다.[8]
2) 어릴 때의 경제사회적 지위(socio-economic status; SES)가 IQ에 주는 영향
미국 기준으로 연수입이 4만 $[9] 이상에서는 별 차이 없다. (이 포스팅) 그리고 SES가 높을수록 유전의 영향이 커짐에 유의하라. 비타민 많이 먹는다고 건강이 특히 좋아지지 않는 것처럼[10], 어느 정도 부족이 없으면 개인의 발달을 지시하는 것은 유전자가 대세다.
3) IQ의 전체적 유전율
행동 유전학자 Matt McGue는 태아기의 영향을 감안해 유전률 추정치를 최대한 축소하려는 한 수학적 모델에 대해 "현재의 지능 지수 논쟁의 초점은 지능 지수의 50%가 유전인가 70%가 유전인가에 맞추어져 있는데, 이것은 본성-양육 논쟁이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흘러 왔는가를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이다"라 말했다[11].
저 강사님이 80%라 찍은 건 수치가 좀 너무 높을 뿐이지, 만약 60%라 했다면 크게 흠잡을 데가 없었을 것이다.
漁夫
[1] 2015년 현재 바뀌었다는 증거를 아직 본 적이 없다.
[2] '빈 서판(The blank slate)', Steven Pinker, 김한영 역, 사이언스북스 刊, p.652
[3] 지적 개방성, 성실성, 외향-내향성, 적대-친화성, 정서적 안정성이다. 특성은 이 포스팅 참고.
[4] 보통 IQ라 하는 지능 지수, 그리고 더 포괄적인 일반 지능 g 모두 유전률이 높다.
[5] 유전률(hereditability)은 좀 설명이 필요하다. 행동 특성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점이 당연히 있기 때문에 - 가령 인간이라면 새들과는 달리 절벽에서 아무 안전 장치 없이 뛰어내리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다 - '유전률이 50%'란 것은 인간 행동 범위 내에서 갖는 차이 중 50%가 유전된다는 의미다.
[6] Judith Rich Harris의 기념비적인 1995년 논문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있다 해도 결과가 안정적으로 재현되지 못한다.
[7] 또래 집단의 압력(peer pressure)은 구성원을 최소한 어느 정도 동질적으로 만들지만, 그 안에서는 여러 위치가 있고 여기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위치를 찾아 갈라진다. 여기에는 구성원 사이의 관계가 같이 작용한다. 자세히는 이 책 참고.
[8] 왜 '분산'이라 했는지는 이 포스팅의 4번 항목 참고.
[9] 미국 기준으로 결코 잘 산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10] 어느 정도 생활이 되는 환경에서는 비타민이 모자라 문제 될 일이 없다는 소리. 진짜 결핍증 안 된다면. 비타민제 선물해 봐야 대개 쓸모없다.
[11] '빈 서판', p.659
이래저래 욕을 많이 먹은 모양이긴 한데, 나는 이 분이 관계 책들을 찾아보고 말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사실 강사도 '내 경험에 의하면'이라 전제했다). 그랬다면 80%라 말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쳐도, 유전자가 매우 중요하다는 데는 변함이 없다.
여기서도 몇 번에 걸쳐 나왔지만, 행동을 나타내는 여러 요소들에 유전이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는 객관적/과학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최소 대략 10년 정도 전까지 유효했음을 내가 확인할 수 있는 정설을 소개하면[1], 소위 '행동 유전학(behavioural genetics)의 세 가지 법칙'이다.[2]
Rule I. 인간의 모든 행동 특성은 유전적이다.
Rule II. 한 가족 내의 양육에 의한 효과는 유전자의 영향보다 작다.
Rule III. 복잡한 행동 특성들의 편차 중 상당 부분은 유전자나 가족의 영향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느 인간의 '행동 특성'을 무엇으로 측정하는가? 이것이 바로 '성격 검사'가 하는 일이다.
인간은 이 여섯 가지 특성이 유전인가 환경인가 같은 연구를 하기에 상당히 적합한 편인데, 인간 정도로 큰 동물 중에는 쌍동이가 드문데도 사람은 생각보다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쌍동이가 중요한 이유는, 사람의 성격과 지능 등 여러 특성에 양육과 유전 중 어느 편이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검사해 볼 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상식에 속하지만 간단히 말하면, 일란성 쌍동이는 유전자를 100% 공유하지만 이란성 쌍동이는 보통의 형제와 마찬가지로 평균적으로 50%만 공유한다. 이들이 출생 후 얼마 뒤에 따로 갈라져 자랐다면, 유전과 양육의 영향을 분별할 좋은 시험대가 된다. '유전 100%, 환경 0% 공유(입양으로 헤어짐)'과 '유전 100%, 환경 100% 공유'를 비교하거나, 단순히 형제가 헤어져 자란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유전 50%), 전혀 남남이 입양으로 같은 환경에서 자란 경우(유전 0, 환경 100%)를 비교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얻은 성격에 대한 결론은 형제가 같이 갖는 공유 환경의 영향(물론 가정 교육 포함)은 매우 작아서 유전자의 1/10 또는 그 이하다. 한 마디로 양육은 성격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6]
그러면 양육과 유전자의 영향 비율은 각각 얼마인가? 전자는 대략 0~10%, 후자가 40~50% 정도고, 나머지 반은 이유를 정확하게 모른다. Judith Rich Harris가 주장한 것은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또래 집단'이란 것이다[7]. 하지만 연령의 효과를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데, '반'은 성년이 된 즈음인 20대 초반의 얘기고, 나이가 올라갈수록 유전률은 점차 올라가 후에는 80%까지 찍기도 한다.
지금은 '성적' 얘기니까, 그에 관해서 좀 더 수치가 나와 있는지 확인하면
1) http://m.nocutnews.co.kr/news/4100993 ; "(총합적으로) 개인에 따라 학업성적의 차이를 유발하는 원인의 62%가 유전적 요소. 지능보다 성격의 영향이 더 큼"
물론 지능도 성격도 유전된다. 그리고 부모가 공부를 더 좋아해서 환경도 그리 꾸며 놓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거 다 합해서 유전적 요소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학업 성적 분산의 62%를 차지했다고 보면 된다.[8]
2) 어릴 때의 경제사회적 지위(socio-economic status; SES)가 IQ에 주는 영향
미국 기준으로 연수입이 4만 $[9] 이상에서는 별 차이 없다. (이 포스팅) 그리고 SES가 높을수록 유전의 영향이 커짐에 유의하라. 비타민 많이 먹는다고 건강이 특히 좋아지지 않는 것처럼[10], 어느 정도 부족이 없으면 개인의 발달을 지시하는 것은 유전자가 대세다.
3) IQ의 전체적 유전율
행동 유전학자 Matt McGue는 태아기의 영향을 감안해 유전률 추정치를 최대한 축소하려는 한 수학적 모델에 대해 "현재의 지능 지수 논쟁의 초점은 지능 지수의 50%가 유전인가 70%가 유전인가에 맞추어져 있는데, 이것은 본성-양육 논쟁이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흘러 왔는가를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이다"라 말했다[11].
저 강사님이 80%라 찍은 건 수치가 좀 너무 높을 뿐이지, 만약 60%라 했다면 크게 흠잡을 데가 없었을 것이다.
漁夫
[1] 2015년 현재 바뀌었다는 증거를 아직 본 적이 없다.
[2] '빈 서판(The blank slate)', Steven Pinker, 김한영 역, 사이언스북스 刊, p.652
[3] 지적 개방성, 성실성, 외향-내향성, 적대-친화성, 정서적 안정성이다. 특성은 이 포스팅 참고.
[4] 보통 IQ라 하는 지능 지수, 그리고 더 포괄적인 일반 지능 g 모두 유전률이 높다.
[5] 유전률(hereditability)은 좀 설명이 필요하다. 행동 특성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점이 당연히 있기 때문에 - 가령 인간이라면 새들과는 달리 절벽에서 아무 안전 장치 없이 뛰어내리는 행동을 절대 하지 않는다 - '유전률이 50%'란 것은 인간 행동 범위 내에서 갖는 차이 중 50%가 유전된다는 의미다.
[6] Judith Rich Harris의 기념비적인 1995년 논문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있다 해도 결과가 안정적으로 재현되지 못한다.
[7] 또래 집단의 압력(peer pressure)은 구성원을 최소한 어느 정도 동질적으로 만들지만, 그 안에서는 여러 위치가 있고 여기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적합한 위치를 찾아 갈라진다. 여기에는 구성원 사이의 관계가 같이 작용한다. 자세히는 이 책 참고.
[8] 왜 '분산'이라 했는지는 이 포스팅의 4번 항목 참고.
[9] 미국 기준으로 결코 잘 산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10] 어느 정도 생활이 되는 환경에서는 비타민이 모자라 문제 될 일이 없다는 소리. 진짜 결핍증 안 된다면. 비타민제 선물해 봐야 대개 쓸모없다.
[11] '빈 서판', p.659
덧글
이는 인간 EEA가 언어 분화가 일어날 만큼 충분히 넓은 지역이었다는 얘기죠. 단 당시에는 이동 가능한 거리가 현재보다 매우 좁았다는 것을 감안하고요.
다른 이야기지만 사람 성격도 개인 편차가 있어도 결국 민족이나 가문 특성 무시 못합니다.
성격 검사의 맹점이 다른 사회간 비교 연구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국가 별로 성격 차가 분명히 있음은 확인됐지만요.
예를 들어 라식 수술을 할 때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는데 이는 아벨리노 각막 이상증이라는 각막 질환 때문인데 이는 유전병이라고 하며 아시아인, 특히 한국인에게 이런 유전자 소유자가 많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다행히 한국인은 이런 심각한 유전 질환이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페닐케톤뇨증 같이 전세계적으로 퍼진 것은 공유하고 있다고 압니다만...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인이 SES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특히 여자 쪽에서 그런 경향이 더 큽니다. 낮은 쪽 상대를 남자보다 더 심하게 기피하죠) 사회가 안정되면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집니다. 현재 OECD 국가들에서는 평균적으로 여성 수입이 매우 향상되었기 때문에, 부가 세대를 거듭해도 존속하는 성향이 더 커졌다고 압니다.
단 또래 집단은 어느 정도 선택이 가능한데 '맹모삼천지교'가 그것이지요. 그런데 미국에서 얻은 결과로 보면 그리 신통한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괴짜경제학 맨 마지막 장).
문득 Richard Dawkins 옹의 Youtube에 올라와있던 수많은 말쌈박질 중 (기억에 따른 인용이라 정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While as a scientist I trust the results of the evolutionary science, I believe it will be a sad world if we let the evolutionary logic dictate how our society functions. That's why we are humans, as we can do things humanely, and look after each other"라고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마 유신론자와 토론 중에 '하나님의 법칙이 없다면 당신의 진화론에 따른 약육강식에 몸을 맡긴채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에 대한 대답이었을 거에요.
네, 도킨스나 윌리엄스 등 진화론자들이 늘 하는 소리네요. "진화의 산물을 우리가 [모두] 칭찬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 책의 맨 마지막에는 Bruce Sacerdote의 결론을 인용했는데, "입양된 사람들의 운명은 이전 사회적 환경에서 예상했던 바보다 훨씬 나았다" 이랬었나요. [ 그런데 괴짜경제학에서 Sacerdote의 결론을 인용한 방식이거나 논문 결론 자체가 좀 문제가 있습니다. 이게 입양 부모의 영향인지 입양되면서 또래 집단을 옮겨서인지 구분을 안 해 놨거든요 ]
마찬가지로 쌍둥이들에 대한 연구로 입양된 쪽과 입양되지 않은 쪽의 아이큐 차이를 비교 했는데
입양된 쪽이 높았다는거죠.이건 입양가정의 부모가 일반적으로 경제력이나 학력이 더 높았기 때문인데요.]
반대로 입양가정의 부모가 생부모보다 학력등이 낮은 경우 입양된 쌍둥이의 아이큐가 낮게 나왔습니다.
만약 환경에 대해 IQ가 차이가 생긴다는 논문이 방법론을 제대로 선택했다면, 저라면 다음 사항을 검토하겠습니다.
1) 효과의 크기; 너무 작거나, 반복 연구에서 재현이 잘 되지 않는가.
2) 영속성; 그 강력한 또래 집단의 효과마저도 연령이 오르면 점차 줄어듭니다.
제가 전에 TV가 폭력성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포스팅을 했었는데, 거기서도 '장기적으로 볼 때 영향이 없다'가 주요 논지였습니다. 일시적으로 보면 영향이 있을 수 있지요.
이건 말이 되는 것이, 번식 시작 시점에서는 대개 같은 세대에서 짝을 고르기 때문에 주변에 어느 정도 맞춰 줘야 성공 확률이 올라가거든요.
존올콕의 저서에도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던데,환경 결정론자도 유전자 결정론자 만큼이나 극단인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