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3 10:55

노화의 진화 이론(25) ; 현대 의학의 공로 ㄴ노화(老化)의 진화 이론

  이상하게 요즘은 과학 분야 포스팅을 쓰지 않고, 한동안 책도 잘 보지 않았습니다.  습관 같은 것이라 한 번 약간 멀어져도 다시 하기가 어렵네요.

  아주 오랜만에 노화의 진화 이론 얘기.

  의학이 인간의 평균 수명을 혁혁하게 올려 온 성공이야 너무 눈부셔서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 12편에서 볼 수 있는, 노화 속도의 척도라 볼 수 있는 MDT(mortality doubling time)에는 아직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이 시리즈를 봐 오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인류의 유전자 풀(pool)을 꽤 큰 폭으로 건드리기 전에는 노화 속도 자체를 바꾸기가 불가능하죠.  평균 수명 증가의 가장 큰 단일 요소는 유아 사망률을 거의 zero로 낮춘 점이며, 다음에는 모성 사망률 저하 및 전염병을 몰아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유전자적 변화하곤 거의 상관이 없죠.
  물론 의술 덕에 옛날이면 세상을 떠야 했던 병도 지금은 거뜬히 살아남습니다.  하지만 유아 사망률을 이전의 수십 분의 1 정도로 낮춘 데 비해, 60세의 사망률은 1/2 정도밖에 변하지 않았습니다.  50%면 물론 상당히 인상적일 만하나, 노화학자 S. Austad는 아래처럼 평합니다.

  이제 그런 변화조차 멈출지도 모른다.  오늘날 주요한 두 가지 사망 원인인 암과 심장병을 생각해보자.  만일 모든 암이 내일 없어진다 해도 인간의 수명은 2년 정도밖에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심장병을 없앤다 해도 3년이나 4년 정도만 더 살 수 있을 뿐이다.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반 이상은 암과 심장병으로 죽는다.  우리가 이 두 병을 없애도 6년밖에 수명을 늘릴 수 없다면 정상적인 의학의 진보가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 '인간은 왜 늙는가(Why we age)', Steven Austad, 최재천, 김태원 역, 궁리 刊, p.42


  이 시리즈 7편에서 '노화는 전체적인 쇠퇴지 특정 기관에 의존하지 않는다'라 설명했습니다.  좀 더 들어가서 암과 심장병을 다 없애도, 다음 과제는 또 나타날 겁니다.  가령 신경 계통의 문제(운동 기능)나 소화계(위장)나 배설계(신장).. 끝이 없겠지요.  이 셋을 다 해결한다 해도 추가 수명은 10년이 될지?

  노화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면, 누차 강조하듯이 이거 갖고 '약 파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설명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뭐, 개인적으로는 누가 거기 넘어간다 해도 전 그냥 '그러시군요' 하고 말겠지만요.  대개 말해서 들을 것도 아니고

  漁夫

참고] 시리즈의 앞 글은

*
노화의 진화 이론(1) ; 기계와 생물
* 노화의 진화 이론(2) ; 성숙, 생식률, 사망률
* 노화의 진화 이론(3) ; 생식률과 수명의 관계
* 노화의 진화 이론(4) ; 거장들의 공헌
* 노화의 진화 이론(5) ; 거장들의 공헌 - 직관적인 이해
* 노화의 진화 이론(6) ; 잡다한 것들
*
노화의 진화 이론(7) ; 이론의 예측
* 노화의 진화 이론(8) ; 이론의 예측과 실제 I - 사람
* 노화의 진화 이론(9) ; 불로 집단의 안정성 - simulation
* 노화의 진화 이론(10) ; 'undervaluation of the future' I
* 노화의 진화 이론(11) ; 'undervaluation of the future' II
* 노화의 진화 이론(12) ; Gompertz curve - 생물의 사망률 곡선
* 노화의 진화 이론(13) ; 이론의 예측과 실제 II
* 노화의 진화 이론(14) ; All the lazy guys over the world, unite!
* 노화의 진화 이론(15) ; 웹페이지 살펴보기
* 노화의 진화 이론(16) ; 노화 지연의 확실한 방법 I
*
노화의 진화 이론(17) ; 6000억 원의 내기
* 노화의 진화 이론(18) ; 나이 갖고 놀기
* 노화의 진화 이론(19) ; 억세게 재수없는 사나이
* 노화의 진화 이론(20) ; Gompertz 곡선이 적용 안 되는 구간
* 노화의 진화 이론(21) ; 극도로 느린 노화 사례 [1]
* 노화의 진화 이론(22) ; 小食과 건강, 노화
* 노화의 진화 이론(23) ; 극도로 느린 노화 사례 [2]
*
[원문/번역] 다면 발현, 자연 선택, 그리고 노화의 진화 - G.C.Williams
* 노화의 진화 이론(24) ; 노화 지연의 확실한 방법 II


덧글

  • 위장효과 2015/02/03 11:12 # 답글

    아침에 텔레비젼 틀어놓으면 공중파 3사가 다같이 약파느라 정신없는 꼬락서니를 아주 잘 감상할 수 있지요...
  • 漁夫 2015/02/03 21:22 #

    케이블이나 공중파나 말 안 되는 얘기 방송하는 정도는 다 비슷해서....
  • KittyHawk 2015/02/03 11:12 # 답글

    속도가 느리지만 노화를 지체시키거나 혹은 생물실험 단계에서 고무적인 결과를 얻는 경우는 지금도 꾸준히 나오는 것 같긴 합니다. 문제는 그게 인간에게 적용할만한 단계로까지 발전하지 않아 보인다는게 문제랄까... 이전부터 미래 학자들은 수명은 어렵더라도 노화 자체는 거의 멈출 수 있는 단계가 올 수 있다는 예측을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게 정확히 언제일것이냐는 것인데...(동서양 모두 나이를 먹지 않은 게 도리어 불행이 되어버렸다는 소년 소녀 전설 같은 것이 있는 걸로 아는데 노화가 멈춰 버린 인간이란 건 어느 문화에서나 강한 흥미를 끄는 주제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 漁夫 2015/02/03 21:27 #

    '수명은 어렵더라도 노화 자체는 거의 멈출 수 있는 단계'

    이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사망률이 가장 낮은 시점은 11~12세 정도인데, 현재의 OECD 국가 기준으로 여기서 사망률이 더 증가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평균 수명은 1200세 가까울 겁니다. 이 정도로 수명이 증가한다면 아마 더 이상 '인간'이란 종으로 분류할 수 없을 듯 ;-)
  • KittyHawk 2015/02/03 22:01 #

    물론 저도 그리 낙관은 않습니다만 라이트 형제의 비행이 성공하기 전만 해도 못해도 인간이 제대로 하늘을 나는데 수백년이 더 걸리지 않겠냐는 예상을 뉴욕타임즈와 같은 권위 있는 언론도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그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시점에서 노화 연구 관련으로 깜짝 놀랄 발견이나 개발 등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페니실린 발견만 해도 플레밍이 뭘 하겠다는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거의 우연이었다고 하니 말이지요.
  • 漁夫 2015/02/03 22:11 #

    http://fischer.egloos.com/4525954 를 보면 6000억원짜리 내기 얘기가 있습니다. ;-)

    사실 Steven Austad 교수는 이 포스팅 본문처럼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노화 극복 가능성에 대해서 이 편의 전문 학자로서는 낙관적이죠. 반면 올샨스키 교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전 후자에 가깝지요 ^^;;
  • 일화 2015/02/03 11:13 # 답글

    6년이라, 뭐 짧은 시간은 아닙니다만 의학의 진보가 한계에 도달한 것은 틀림없는 듯 싶네요.
  • 漁夫 2015/02/03 21:29 #

    '완전히 제거'가 안 되니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는 불가능하죠.

    평균 수명이 그래도 계속 늘긴 할 텐데, 진단 기술이 진보하여 일찍 죽는 사람이 줄기는 할 겁니다. 그래도 최고 수명을 증가시키기는 매우 어렵다고 봐야.
  • 동굴아저씨 2015/02/03 12:38 # 답글

    세포분열을 건들지 않는 이상에야 노화억제는 힘들 것 같은데요.
  • 漁夫 2015/02/03 21:33 #

    세포 분열은 '신체 자체의 노화'와는 좀 수준(level)이 다른 얘깁니다. 근본적으로 노화는 신체가 자신의 고장 수리 및 유지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원 투자를 하지 않으면서 발생합니다. 노화를 줄이려면, 개체가 번식을 시작한 후에도 자기 신체 수리에 '돈을 더 투자'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평시에 거의 휴지된 것처럼 보이는 조직에서도, 상처를 내면 주변의 멀쩡한 세포들이 다시 분열하여 아뭅니다. 분열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노화의 문제는 '세포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죠.
  • 동굴아저씨 2015/02/04 18:11 #

    그렇군요.
    지금까지 세포분열에 한계가 있는 줄 알고 있었네요.
  • 漁夫 2015/02/06 12:57 #

    세포 분열에는 분명히 한도가 있습니다(Hayflick limit). 그러나 노화학자들의 대다수는 이것이 '흥미롭긴 하나 노화의 주 요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간주합니다.
  • 유빛 2015/02/03 14:37 # 삭제 답글

    어부님의 이 포스트를 모르고 있다가 한 번에 다 봤습니다. 흥미진진해서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유익하기도 했구요. 감사합니다.
  • 漁夫 2015/02/03 21:33 #

    (_ _)
  • 긁적 2015/02/03 15:58 # 답글

    6년이면 뭐...;;; 나쁘지야 않겠죠...;;; 다만 말씀대로 의학으로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한듯.
  • 漁夫 2015/02/03 21:34 #

    6년을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 이런 식으로는 지금처럼 평균 수명을 늘리던 pace는 한참 줄어들 듯.

    평균 수명이 그래도 계속 늘긴 할 텐데, 진단 기술이 진보하여 일찍 죽는 사람이 줄기는 할 겁니다. 그래도 최고 수명을 증가시키기는 매우 어렵다고 봐야. [2]
  • 산마로 2015/02/03 21:16 # 삭제 답글

    글쎄요. 암과 심장병을 해결할 수 있으면 다른 기관의 이상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인데요? 왜 암과 심장병만 해결할 수 있고 다른 기관의 질병은 해결 안된다고 가정하나요? 제대로 된 가정은 암과 심장병의 정복과 함께 다른 질병도 정복할 수 있게 된다는 거죠. 그럼 6년보다는 훨씬 더 수명연장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세계 의학계에서는 유전자 치료도 이미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우리 부모님이 살아 있을 동안 의학의 혁명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지만 몇십년 이후의 의학에 혁명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볼 이유는 별로 없는 듯 합니다. 차라리 의료 비용의 대폭 증가가 더 문제가 될 거라고 봅니다.
  • 漁夫 2015/02/03 21:43 #

    위 Steven Austad의 설명은 '기존 방법으로는 평균 수명 연장은 더 이상 지금과 같이 대폭으로는 안 일어날 것이다'를 보이기 위한 예시로, 제일 큰 사망 요인 두 개를 든 것에 불과하죠. 그걸 설사 '완전히' 없앨 수 있다 해도, 그 다음 '중요 요인'이 끝없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화의 진화 이론을 정립한 G.Williams의 예측, '모든 기능(기관)이 총체적으로 기능이 쇠퇴한다'는 의학적으로도 실증되었습니다. 실제 순환계, 배설계, 소화계, 신경계 등 여러 체계의 기능을 조사하자 놀랄 만큼 비슷한 속도로 저하했다는 것은 제 이전 포스팅에서도 적은 바가 있습니다. 그 중 일부인 암(세포 분열 조절의 실패), 심장병(순환계 일부의 기능저하)을 전부 격파한다 해도 다음의 목록이 끝이 없죠.

    낙관론이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시간 되신다면) 이 시리즈 지난 글들을 찬찬히 보시면 어떨까요.
    전 노화와 수명 연장 쪽에서는 그다지 낙관적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만 해 두겠습니다.
  • 산마로 2015/02/04 00:26 # 삭제

    우선 님의 시리즈는 오래 전부터 애독자임을 밝혀 둡니다. 끝이 없는 목록이라고 볼 수 있나요? 사람 몸은 무한한 수의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암과 심장병을 정복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신체 기관 노화의 메카니즘 파악과 통제에 상당한 성과를 거둔다는 건데 이것이 사람 몸의 다른 기관과 기능 연구와 치료에 도움을 주지 않는 완전 별개의 성과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단시간 내에 이루어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지만 제가 적었듯이 유전자 치료도 이미 세계 의학의 주된 연구 대상이죠. 10년 후에 노화 정복에 획기적 성과가 나올 거란 식의 낙관적 의견이라면 저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만, 암과 심장병을 정복할만큼 사람 몸에 대한 통제 기술이 발달하는 시대가 된다면 암과 심장병만 정복하고 다른 노화로 인한 질환은 정복 못하는 일은 있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신체 기관이 총체적으로 쇠퇴한다면 의학도 총체적으로 발전한다는 겁니다. 신체 기관이 어느 하나만 쇠퇴해서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닌 것처럼 신체 기관에 대한 이해도 어느 하나만 발전해서 그 기관만 치료할 수 있게 된다고 보기는 힘든 거죠.
  • 모모 2015/02/03 23:36 # 답글

    그래서 그런지 어쩐지는 몰라도, 노화 연구는 대개 System level에서 이루어지지요. 피를 통째로 젊은 피로 갈아치운다든가(...)
  • 漁夫 2015/02/06 12:58 #

    오늘 포스팅에서도 적었지만 그런 방식이 아주 유용하게 쓰이는 게 '골수이식'이라서요. 호호. ;-)
  • Minowski 2015/02/04 11:22 # 삭제 답글

    이런 이야기 읽으면 삶이라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실감이 난달까요.

    p.s) 저도 요즘 독서량이 팍 줄어서.... 이러다 미개인이 되는 것 아닌지....
  • 漁夫 2015/02/06 12:59 #

    네. 우리가 무성 생식한다면 모르겠는데, 신체가 '일회용 소모품'인 한에서는 노화를 어떻게 해 보기가 매우 어렵지요.

    ps. 도서 시장이 불황인 이유가......... ^^;;
  • ㅇㅇ 2019/07/17 17:57 # 삭제 답글

    요새는 유전자 검사로 어떤 질병이나 암에 잘 걸리는지 알 수있다고 하던데요. 신빙성이 높은 방법이라고 보나요?
  • 漁夫 2019/07/18 22:54 #

    이런 방식은 오래 전부터 거듭 확인된 유전자여야 신빙성이 높죠. 아마 가장 높은 것은 Hungtington disease의 유발유전자일 텐데, 양성으로 나오면 사실상 100% 발병한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막상 발견됐다 뉴스 뜬 뒤에도 나중에 해당 질환과 연관성이 약하다고 정정 나오는 경우도 제법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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