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14 21:05

베르사유 조약 책-역사


베르사유 조약이 실패한 이유는 많은 이들이 주장하듯

지나치게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 '제 1차 세계대전', Peter Simkins, Geoffrey Jukes, Michael Hickey 저, 강민수 역, 플래닛미디어 간, 660p

  아마 이것도 잘못 알려진 사실이 그냥 '대중의 고정 관념'으로 자리잡아 버린 경우 아닌가 싶다[1].  독일은 히틀러 등장 전 국내 총생산의 대략 3%만을 배상금으로 지불했으며, 화폐 정책으로 독일 마르크의 값어치를 떨어뜨려 지불해야 할 양도 줄였다.  최종적으로 히틀러가 배상을 중단했을 때는 지불 결정 총액의 절반도 지불 안 했다고 한다.
  그러면 왜 베르사유 조약이 실패했는가?  그에 대해서는 얘기가 많다.  단 Donald Kagan의
주장처럼 영국과 프랑스가 '의지가 결여되었다'는 지적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 상징처럼 된 것이 바로 뮌헨 회담.

  漁夫

[1] 이 포스팅에서 Judith Harris가 지적하는 바를 참고.

ps. 아마도 독일 국민이 '우리가 졌다'는 것을 진정으로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히틀러가 부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차라리 1차 대전 끝났을 때 연합군이 2차 대전 때처럼 독일 국내에 깊숙히 진주해 어느 정도 군정을 실시했다면 나았을까...

덧글

  • BigTrain 2014/06/15 03:19 # 답글

    오히려 반대로 독일군이나 국민들이 확실하게 '졌다'는 걸 인정하지 못해서 리턴매치를 꿈꾸게 만들었던 게 실패원인에 가깝지 않을까요.
  • 漁夫 2014/06/15 22:00 #

    리턴 매치를 꿈꾸지도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쉽지 않죠.

    일본은 확실히 그렇게 됐습니다만 걔네는 피해자 코스프레 하고 있다는 게....... 사실 1차 대전 후 2차 대전 전까지 독일이 한 짓이 그거하고 비슷하거든요.
  • rumic71 2014/06/15 15:51 # 답글

    그랬다간 '저새끼들 빨리 쫓아내자' 분위기가 되었을지도...
  • 漁夫 2014/06/15 22:01 #

    독일에게 피해자 의식을 확실히 불어넣기가 쉽지 않은 게, 말기에 궁핍하긴 했어도 독일 국내에서 군대가 치고받고는 안했으니까요.
  • 일화 2014/06/15 15:53 # 답글

    글쎄요, 저는 최근의 저런 견해가 많은 것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요. 일단 저 짧은 글에서부터 오류가 있는데, 조약상의 배상금은 금으로 교환가능한 화폐를 기준으로 정했기 때문에 독일 마르크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해도 배상금으로 지불해야 할 양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오히려 독일 마르크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실제로 지불해야 할 배상금이 늘어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독일에게 더욱 고통스러운 결과가 되죠.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이 경제학적으로 재정정책과 화폐정책의 효과가 정립된 것이 아니다보니, 바이마르 정부에서 배상금 지불을 위해 취했던 화폐정책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게 되고, 이로 인한 독일경제의 파탄이 히틀러의 등장에 약간이나마 기여하죠.
    물론 히틀러 집권 후의 독일의 재무장을 허용한 것은 베르사유 조약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조약을 엄격하게 집행하지 아니한 것 때문이라는 점에는 저도 찬성합니다만, 애시당초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이유 중의 하나는 배상금 조항이 지나치게 가혹해서 (케인즈 -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 - 의 견해에 의하면 자가당착의 모순을 가지고 있어서) 집행이 불가능했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漁夫 2014/06/15 22:18 #

    제가 배상금 기준을 잘못 적었을 수는 있는데, D. Kagan의 책 http://fischer.egloos.com/2889133 을 보면

    ".... 1922년 여름, 독일이 지불하지 않을 거라는 조짐은 명백해졌다. 보상비 지불기일이 예정되었을 때마다 강한 인플레가 마르크화를 평가절하시켰다.... 1920년대 초기에 영국과 프랑스 전문가들은 독일의 의도적인 마르크화 붕괴가 부분적으로 예산과 통화개혁을 피하기 위한 것이고, 기본적으로 보상비 지불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후에 나온 독일의 공문서는 이런 의혹이 정당한 것임을 밝혀 주었다."

    그리고 추가로 Kagan은 보상비를 지불하던 시기에는 별로 인플레가 없었으나, 오히려 지불 못하던 때 인플레가 크게 일어났다고 지적합니다. 보상비 지불에는 어떤 트릭을 써서 인플레로 독일이 '조작'을 했는지는 언급이 없지만, 독일 부채의 많은 부분을 인플레로 줄여 버리고 수출로 받는 이익은 산업계에서 엄청났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국민들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산업계에 이익이었다는 말은 William Shirer의 '제 3제국의 흥망'에서도 나오는 얘기죠.
  • 일화 2014/06/15 22:44 #

    http://net.lib.byu.edu/~rdh7/wwi/versa/versa7.html 조약원문 링크입니다. 235조에 골드 마르크라고 명시하고 있죠.
    그리고 저의 조악한 경제학지식을 가지고 해석한 당시 화폐정책은 대충 이러한데, 독일의 대외거래가 모두 경화(태환지폐나 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외환시장이 그렇게 효율적이지 아니하므로, 불태환 마르크화의 가치를 떨어뜨리면 이에 상응하는 만큼 환율이 바로 떨어지지 않게 되어, 일시적으로 경화수입이 늘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외환시장이 반응해서 환율이 실제가치를 반영하여 조정되고, 그러면 다시 독일정부가 화폐가치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이게 반복되면 신뢰가 무너지면서 실제가치 이상으로 환율이 과잉반응하고, 그러면 독일의 무역수지는 바닥을 기게 되는 거죠. 이 과정에서 초기 수출산업분야는 상당한 이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만, 경제시스템이 날아가버린 후까지 그랬을리는 없겠죠.
    다음으로 제가 알기로도 역사적으로 보상비를 지불하던 시기보다 지불못하던 시기에 인플레가 더 큰 것은 맞는데, 이건 제가 알기로는 인과관계가 반대입니다. 인플레가 커지고 독일의 무역수지가 바닥을 기게 되자 배상금을 지불할 경화가 없게 된 것이고, 이후 무역관계에서 단절되다시피한 독일경제의 인플레는 하이퍼~ 단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 일화 2014/06/15 22:43 #

    배상액수에 대해서 (출처가 기억나지는 않습니다만) 당시 독일의 수출총액과 연간배상액이 거의 동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렇다면 이는 사실상 지불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배상금의 지불을 위해서 독일이 뼈저린 감축과 내핍생활을 하면서 불이행을 선언한 것은 아닙니다만, 이는 민주주의 정부, 특히나 정권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의원내각제 하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주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 일화 2014/06/15 22:52 #

    관련 영문위키( http://en.wikipedia.org/wiki/World_War_I_reparations )를 일독하시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저는 대체로 현대 항목의 두번째 문단에 나오는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의 주장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 漁夫 2014/06/15 23:44 #

    마침 전 Versailles treaty 항목을 읽고 있었는데, 알려 주신 보상 항목 쪽이 더 자세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지불 액수에 대해서는 제가 인용한 Kagan하고 대략 비슷하네요.

    인플레이션이 생긴 이유가 뭔지는 - 의도적으로 방치하거나 부추겼는지,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결과인지 - 제가 정확히 다른 자료를 갖고 오기가 무리인 만큼, 지적해 주신 항목에 대해서 언급할게요.
    그 Modern 항목에서는, 전 아래 문구에 대략 절반~60% 정도 동의합니다.

    Detlev Peukert states, "Reparations did not, in fact, bleed the German economy" as had been feared, however the "psychological effects of reparations were extremely serious, as was the strain that the vicious circle of credits and reparations placed the international financial system".

    절반 정도라 조건을 단 이유는, 그 바로 전 독일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러시아와 맺은 조약이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유한 게 아니었거든요.... 몇십 년 전에 독일이 보불전쟁에서 프랑스를 꺾고 강제한 조약도 성격이 비슷했다고 하니까요. 이것은 전쟁에서 진 나라에 이 정도의 배상을 물리는 것이 당시 입장에서 정말로 '가혹'한가 의문을 제기해 볼 필요가 있음을 암시하죠. 게다가 독일은 영토는 잃었지만 국토 분할을 당하지도 않았거든요. (실제 25년 뒤에는 분할을 당하죠)
    그리고 바이마르 정권의 정치가들도 국민 생각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기는 했겠지만, 자신들이 전쟁 책임이 없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할 외무성 조직을 만들었댑니다. 이건 원자탄 맞은 일본이 피해자 코스프레하는 것과 기본적으로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보이거든요.

    ==========

    아마 말씀하신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제 생각보다 일화님 생각이 옳을 가능성이 더 크리라 봅니다. GDP의 연간 2.*%라면 지금 한국에 대입할 경우 대한민국 국방비 수준이니 분명히 크죠. 그걸 다 지불해야 한다면 부담이 적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독일이 저질렀던 짓을 생각하면 그만큼은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 하지 않나 싶네요.
  • 일화 2014/06/16 00:38 #

    어디까지나 추정입니다만, 저는 [Ferguson says "the annuity demanded in 1921 put an intolerable strain on the state's finances" and that total expenditure between 1920 and 1923 amounted to "at least 50 percent of Reich revenue, 20 percent of total Reich spending and 10 percent of total public spending".] 이 부분을 신뢰하다 보니, 조약의 이행이 불가능하였다는 쪽에 좀더 찬동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좀더 합리적인 도즈안이나 영안에 대해서는 (죽는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독일도 의무를 이행하였으니까요.
    조약 자체의 가혹함 여부에 대해서는 저도 이견이 없습니다만, 차라리 국토를 좀 더 확실하게 분할하거나(저는 단치히 회랑에 의한 분단도 의미를 두는 입장이기는 합니다), 아예 루르지방을 2차대전 이후와 유사하게 국제연맹의 관리하에 두어 석탄과 철을 배상목적으로만 사용하게 한다거나 하는 방식을 취하고, 배상액을 현실적인 액수로 감경하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 붕어 2014/06/15 21:05 # 삭제 답글

    엄격함 이전에 전승국이 자신의 승리에 취해 넘 굴욕적인 내용을 강요했기에 힛통 같은 인물이 부상할수 있었다고 봅니다. 보복하고 싶은 대로 다 했지만 막상 그만큼 하려면 직접 점령해 완전히 저항능력을 분쇄한 뒤에나 할 일인데 재일 중요한 걸 안햇지요. 도리어 힛통이 아니라도 누군가 할 만한 일이었다 봅니다.

    패배했단 건 독일인 누구다 다 알수 있었습니다. 당시 기록과 영상을 보면 티가 다 나지요. 대놓고 프랑스가 독일 영토에서 배상금 안낸다고 군을 동원해 석탄을 강제반출 시키는 판이니. 문젠 어설픈 보복이 더 거대한 반동을 불러온 것뿐이라 봅니다
  • 漁夫 2014/06/15 22:27 #

    예, 저항 능력을 더 없애야 했는데 당시에 그렇지 못했다는 건 맞죠.

    하지만 Donald Kagan 등은 그 때 부과했던 조건이 그리 가혹한 것인가 의문을 제기합니다. 가령 독일이 치러야 했던 보상금은 총생산의 6% 정도인데, 이건 작다고는 결코 할 수 없겠지요. 하지만 대략 1970년대 석유 파동으로 서구 경제가 추가로 짊어진 정도라네요(그 때 석유 파동 참 크긴 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독일이 지불한 것은 2~3%니 거기 절반이 안 됩니다.
    그리고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걸려서 열강은 독일을 분할하지 못했습니다. 2차 대전 전후 처리나, 당장 그 때 오스트리아를 분할시킨 것을 보면 독일은 대단히 관대한 처분을 받은 것이지요.

    가장 우스운 모순이라면, 독일이 그 좀 전에 이긴 러시아에게는 훨씬 가혹한 조건을 디밀었다는 것이지요.
  • shaind 2014/06/16 01:32 # 답글

    베르사유 조약은 확실이 어정쩡했죠. 미국과 영국이 보기에는 불필요하게 독일의 원한을 살 정도로 과중했고, 프랑스가 보기에는 (프랑스의 절대적 안전을 보장해줄) 독일의 완전한 약소국화에는 한참 못 미쳤기 때문입니다.

    살려두면 나중에 얼마든지 복수할 수 있는 사람을 어차피 죽이지도 못할 거면서 괜히 모욕만 줘서 원한을 산 것 같은 케이스죠.
  • 漁夫 2014/06/16 21:33 #

    그렇게 되도록 미국과 영국이 방치한 게 결정적인 문제 중 하나였죠. 바게트나라가 영어 썼다면 상황이 달랐으려나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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