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8 00:23

'이기적 유전자' Evolutionary theory

  이 문단은 Matt Ridley가 '이타적 유전자'란 제목으로 번역된 'The origin of virtue'의 앞쪽에서 Richard Dawkins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명하게 만든 개념에 대해 설명한 것입니다.  아래쪽 포스팅을 적으면서 다시 보았는데, 제가 지금까지 본 중 짧은 분량 안에 가장 명료하게 '이기적 유전자'의 본성을 설명한 좋은 글입니다. 
  포스팅하기에는 약간 길다 생각하실 수도 있고 이미 그 정도는 다 안다 생각하실 분도 많겠지만, 다시 보아도 좋습니다.  생물학 박사이며 저널리스트와 경제 관계 경력이 길어서인지, 자신의 교양서들에서 쉽게 잘 설명하는 능력은 이 업계 최고급이죠.  솔직히 말해, 이 분의 교양서는 도킨스의 책들보다도 더 이해하기 쉽고 명료합니다.

 
  이기적 유전자

  1960년대 중반 생물학계에는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와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이 주도한 일대 혁명이 일어났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개념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이 혁명의 골자는 어떤 개체의 행동을 결정하는 일관된 기준은 그 소속 집단이나 가족의 이익이 아니며, 그 개체 자신의 이익도 아니라는 것이다.  개체는 오로지 유전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어떤 개체이든 그 선조들의 행동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직계 조상이 독신자였다면 우리는 세상에 존재할 수도 없었다.
  윌리엄스와 해밀턴은 둘 다 기성 학계와는 거리가 먼 학자였다.  미국인 윌리엄스는 해양생물학자 출신이고, 영국인 해밀턴은 군생곤충학자[1]이다.  윌리엄스는 1950년대 말에[2], 그리고 해밀턴은 1960년대 초에[3] 일반적으로는 진화를, 특수하게는 사회적 행동을 해석하는 전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 냈다.  윌리엄스에 이론에 따르면 개체의 입장에서 볼 때 늙고 죽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만, 유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미 번식을 끝마친 개체에게 쇠퇴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동물(식물도 마찬가지이다)은 그들이 속한 종이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유전자를 위해 행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유전적 이익과 개체적 이익은 대개의 경우 일치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연어는 산란을 하면서 죽어가고, 벌은 벌침을 쏘는 순간 죽는다[4]).  생물은 대개 유전적 이익을 위해 그 자손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새는 먹이가 모자라면 새끼를 버리고, 어미 침팬지는 애원하는 젖먹이를 매정하게 젖꼭지에서 떼어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식이 아닌 다른 혈연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유전자의 이익이 되기도 한다(일개미나[5] 암컷 늑대는 그 자매의 자손 번식을 돕는다).  때때로 그것은 집단을 위해 희생하는 행위로 나타난다(사향소는 어린것들을 보호하기 위해 이리 떼 앞에서 어깨를 맞대고 잡아먹힌다).  또한 이따금 그것은 다른 생명체 때문에 우리 자신에게 해로운 행위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감기가 들면 기침을 하고, 살모넬라는 설사를 일으킨다[6]).  하지만 어느 경우나 예외 없이 생명체들은 그들 자신의 유전자나 그 유전자의 전사체[7]가 살아남아 복제할 기회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윌리엄스는 특유의 직설적인 어투로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으로 현대의 생물학자들은 타자에게 이로운 행위를 하는 동물을 보면 그가 그 타자에 의해서 조종되고 있다고 간주하거나, 아니면 그것이 교묘하게 위장된 이기성이라고 간주한다."
  이 사상에 이르는 데는 두 개의 경로가 있었다.  하나는 논리적 사고이다.  생물계의 자연선택이 유전자라는 복제 통화(通貨)를 통해 실현된다면, 자신의 생존율을 높이는 행위를 생명체에게 지령할 수 있는 유전자가 그렇지 못한 유전자를 도태시키고 살아남으리라는 것은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산술적 결론이다.  이것은 복제라는 원리에서 도출되는 단순 결론이다.  다른 하나의 경로는 관찰과 실험이다.  개체나 종이라는 렌즈를 통해 볼 때는 수수께끼같기만 하던 생명체의 수많은 행동이 유전자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한 순간에 명료하게 이해되었던 것이다.  해밀턴이 입증했듯이, 군체 곤충은 자매(여왕벌, 여왕개미)의 번식을 도움으로써 자신이 스스로 번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다[8].  그러므로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일개미의 경이로운 이타주의는 사실 이기주의이다.  개미 군체의 이타적 협동 관계란 착각에 불과하다.  각각의 일개미는 그들 자신이 아니라 여왕개미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식, 곧 그들의 자매를 통해 유전적 영속성(永續性)을 추구한다.  그것은 인간이 경쟁자를 제거하고 승진의 계단을 올라가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유전적 이기성이다.  크로포트킨이 말했듯이 개미와 흰개미는 개별적으로는 '홉스주의적 전쟁'을 포기했지만, 그들의 유전자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 'The origins of virtue(이타적 유전자)', Matt Ridley, 신좌섭 역, 사이언스북스 간, p. 30~32

  위에서 말했듯이, '유전자라는 렌즈를 통해 생명체의 행동을 이해하는' 일이 사회생물학(sociobiology)입니다[9].  잘 알다시피 이 이름은 Edward O. Wilson이 붙였죠[10].

  여기 포스팅 독자들이라면 다 이해하시겠지만, 이타주의의 근원이 '이기적 유전자'라고 해서 인간 이타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이타주의를 이해하려면 이유를 명백히 이해해야죠.  多翁의 말처럼 "...그 때문에 우리는 살인범의 심리를 이해하려고 한다".  우리가 살인범의 심리학을 이해하려고 연구하는 이유는, 당연히 살인을 조장하거나 옹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 더 적자면, 우리 유전자의 목적과 - 단지 복제 증식이 다죠 - 우리 개체의 존재 '목적'이 일치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간만이 이기적 유전자의 독재에 반기를 들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아닌 리처드 도킨스.

  漁夫

[1] 벌이나 개미 등, 주로 군집을 이루는 막시류(膜翅類)가 전공이었다.  하지만 그의 이론 연구는 일관되게 개체군 유전학(population genetics)적 성격이다.
[2] 노화에 대한 1957년의 기념비적 논문(
link).
[3] 사회적 행동의 진화를 논증한 1964년의 기념비적 논문(
link).
[4] 일반 꿀벌의 얘기.  말벌들은 그렇지 않다.
[5] 일개미의 경우 '자식이 아니라 어머니인 여왕의 자식 번식을 돕는다'는 것이 더 잘 맞을 듯.  왜 '자매'라 했는지, 아니면 오역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6] 이것은 보기보다 좀 미묘한데, 기침이나 설사는 사람에게 이롭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link)  병원체들이 하는 일은 여기에 편승하여 기침이나 설사를 더 많이 하게 만들고 거기에 실려 다음 희생자를 찾는 것.
[7] 아마 replica의 번역일 듯.
[8] 이는 막시류의 독특한 생식 방식 때문이다.  한 가지 사례라면
이 포스팅을 참고.
[9] 진화심리학도 물론 넓게 보면 사회생물학에 포함되지만, '좁은 의미'의 진화심리학이 추구하는 것은 David Buss의
정의에서 보듯이 단지 '인간 생명체의 행동을 이해하는'과는 좀 다르다.
[10] 지금은 유전자 중심적 설명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책까지 냈다.  도킨스는 이 책에 대해 "던져 버려야 한다.  그것도 있는 힘껏 아주 멀리"라 깠다 ㅎㅎㅎ

덧글

  • Graphite 2014/05/18 00:39 # 답글

    윌슨옹은 어째 갈수록 "도사"가 되어가는 느낌이:..
  • 漁夫 2014/05/18 23:33 #

    제자인 최재천 교수의 얘기로는 원래 유전자 중심 가설에 동의할 때 좀 마지못해 한 느낌이 났다든가 뭐 그랬다네요. 그래서 다른 가능성이 보이자 그냥 갈아탔을 거라는 얘기가 돕니다.
  • 키르난 2014/05/18 09:36 # 답글

    오랜만에 보니 또 좋네요. 매트 리들리의 글이 도킨스보다 훨씬 쉽게 읽히는 건 여러모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하하;;;;
  • 漁夫 2014/05/18 23:34 #

    이 사람이 책 쓰는 기술은 정말 대단해요! 부럽지요.
  • RuBisCO 2014/05/20 16:38 # 답글

    확실히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져 있네요.
  • 漁夫 2014/05/20 19:07 #

    제가 본 중 이해하기 쉽게 쓰는 점으로는 多翁과 함께 단연 1위입니다. 그런데 쉽게 쓰는 만큼, 제가 각주를 요란하게 달아 놓은 것처럼 단순화의 위험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죠.
  • 오뎅제왕 2014/05/20 22:44 # 삭제 답글

    http://blog.naver.com/ohryan77/60122858409




    때로는 유전자의 가장 이기적인 행위가 인간의 뇌에 이타적인 동기 - 진심에서 우러난, 무조건적인, 뼛속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성 - 을 배선한다.


    - 스티븐 핑커 - 빈 서판



    저는 스티븐 핑커 가 빈 서판에서 말한 이 구절이 제일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오죽하면 포괄 적응도 만든 윌리엄 헤밀턴도 [ 이타주의는 유전자의 이기성일 뿐이다 이타주의도 뒤집으면 이기주의가 된다 ] 라고 말했을까여ㅋ





    사실 이기적 유전자나 유전자의 [ 이기성 ] 비유를 진짜 유전자가 이기적이고 인생이 이기적이고 세상이 시궁창이란 말이여뭐여!? 버럭! 이러는 지인들을 좀 봤기 때문에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의 저 내용이 생생하게 와 닿습니다.




    유전자의 이해 관계에 의해서 이타주의적 성향이 형성된다는 사실의 발견은 과학사에서 가장 불온한 발견 중 하나이다. 도덕적 행위가 유적자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또 하나의 전략일 뿐이라면 도덕적 절제라는 것은 얼마나 부질없는 행위인가? 내가 자연주의적 오류에 대해 설명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학생들은 < 이기적 유전자 > 이론이 이기적 행동을 정당화시켜준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내 강의실을 떠나버려 나는 당혹스러웠다

    - 랜덜프 네스

    울면서 나간 학생들과 불쌍한 네스 선생님..



    이기적 유전자 의 혁명이 전하는 메시지는 냉혹한 홉스주의자의 명령이 결코 아니다. 윌리엄스와 해밀턴은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는 좀 더 강한 동력 , 즉 유전적 이익을 밝혀냄으로써 이타성이 끼어들 여지를 만들어주었다. 유전자는 때로는 이기적이지만 때로는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개체의 이타성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 매트 리들리 - 이타적 유전자 p. 35


    붉은 여왕에서도 관련 내용이 있더라고요

    꿀벌은 동료 벌들을 구하기 위헤 적에게 벌침을 쏘고 죽는다. 새들은 적이 나타나면 동료에게 경고 신호를 보내고흡혈 백쥐는 동료 박쥐들에게 피를 나누어준다. 인간 사회에서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희생적인 영웅심으로 기꺼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곧 알게되겠지만 이것들은 다 잘못 본 것이다. 동물들의 이타주의는 다 꾸며낸 것이다. 가장 훌륭한 희생의 경우라도 동물들은 사실 그들 자신의 유전자의 이기적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것이다.

    - 붉은 여왕 - 매트 리들리 p. 69
  • 오뎅제왕 2014/05/20 22:48 # 삭제 답글




    =================================

    무엇보다 이기적 유전자에 의한 이타주의 행동 진화 그 자체보다는


    조지 윌리엄스 이래로 유전자 단위 자연선택이 생물학에 끼친 영향이 확실히 지대하지여


    존 올콕 의 저서 사회생물학의 승리에도 유전자 선택론이 기존의 집단 선택론을 밀어내면서
    생물학의 연구방향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 설명해주더군요

    -----------------------

    나는 사회생물학이 활발하고 왕성한 분야로 거듭날 수 있도록한 진화생물학의 혁명적 공로는 조지 윌리엄스에세 있다고 했다. 진화적 가설의 핵심에서 집단 선택이론을 제거하고 다윈의 개체수준 선택의 중요성을 되돌려놓은 것이 그의 가장 큰 공로이다.

    조지 윌리엄스의 논리는 자연선택으로 동물의 행동을 설명하도록 생물학자들을 독려했다. 그 결과로 리처드 도킨스가 그의 명저 이기적 유전자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1970 ~ 10980년대의 행동학 연구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중략) 윌리엄스 등에 의해 단순한 집단선택 접근법이 폐기되자 학자들은 여태껏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을 탐구하고 발견하기 시작했다.

    동물 개체들이 종의 이익을 위해 거대한 연합을 만드는 대신, 각자의 유전적 성공을 위해 서로 경쟁한다는 사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기이익 유전자 접근법은 사회성 곤충의 불임 일꾼이 보이는 극단적 이타주의에 대한 헤밀턴의 분석에서 잘 드러나듯이 집단 선택 관접을 전복시킨다.


    존 올콕 저 - < 다윈 에드워드 윌슨과 사회생물학의 승리 > JOHN ALCOCK - (the)triumph of sociobiology p. 141 ~ p. 145


    [나는 (자연)선택의 기본단위 즉, 이기성의 기본단위가 종도 집단도 개체도 아닌 , 유전의 기본단위인 유전자 라는 것을 주 장할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 이기적 유전자 > 개정판

    근데 최근의 윌슨 할아버지의 다수준 집단 선택 주장은 노망나셔서 그런 것일가요?

  • 漁夫 2014/05/21 21:41 #

    윌슨의 주장은 Pinker 등 주도적 학자들이 꽤 많이 반박하고 있지요.

    그런데 다수준 선택이 그렇게 까이기만 해야 하는 주장은 아닙니다. 이미 여러 학자들이 증명해 놓은 것처럼, 윌리엄즈 이전의 '고전적' 집단 선택론과 달리 D. S. Wilson 등의 현대 다수준 선택론은 사실상 유전자 중심의 (우리가 익숙한) 관점과 동등하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거든요. E.O.Wilson의 저 주장이 비판받는 이유는 우리가 익숙한 관점이 틀렸다고 대놓고 까기 때문입니다 - 고전적 집단 선택론은 거의 있기 어렵다는 점이 증명됐고, 현대 다수준 선택론은 주류 입장과 동등하니 대체 뭘 까고 있냐는 소리가 당연히 나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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