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2/26 00:08

피임약; 의외의 효과 Evolutionary theory

  결혼 연령 성비의 문제; 감옥에서 여성이 교육을 더 받게 될 동기를 부추기는 요인을 얘기했었다.  이 포스팅에서는 약간 다른 얘기를 하겠다.  물론 미국의 경우라 한국과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참고가 되긴 할 테니까.

  앞 얘기에서는 주제가 감옥이었는데, 거기에다 여성이 짝을 짓는 데 불리하게 만드는 다른 요인이 하나 더 있다.

   피임약이 많은 사회적 변화를 초래한 건 사실이다.  ... 사실 피임약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은 다수의 남성이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의 반응과 비슷하다.
  어떤 점이 비슷하단 말일까?  피임약과 남성의 수감은 결혼 시장에서 여성의 경쟁을 격화시킨다... 피임약 덕분에 남성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도 쉽게 섹스를 즐길 수 있다.  진화심리학의 논리에 따르면 여성들은 섹스 파트너를 매우 까다롭게 고른다... 그러나 피임약을 쓰는 여성의 논리는 이와 크게 다르다.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기호가 우리의 본능에 여전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혼전 관계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피임약으로 무장한 일부 여성들은 섹스를 통해 더 많은 즐거움을 만끽하려 한다.
  ... 개방적인 여성들 때문에 남성들은 결혼하고자 하는 욕구도 덜 느끼게 된다.  어떤 남성들은 바람둥이로 살아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굳이 결혼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결혼이 가능한 남성의 숫자는 줄고 남성의 교섭 능력은 강화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경우 여성들이 취하는 합리적인 반응은 결혼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하는 것이다.  이렇게 능력을 갖춘 여성들이 혼자서도 아이들을 부양할 수 있게 되자 남성들은 육아에 점점 관심을 갖지 않게 되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공급이 크게 늘어나자 남성들은 굳이 멀리서 섹스 상대를 찾지 않아도 섹스를 즐길 수 있고, 심지어 똘똘한 자녀까지 둘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통계적으로 확인된다.  미국에서 대졸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3대 4다.  이것은 미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선진 17개국의 통계 자료를 분석해본 결과 대졸 여성의 숫자가 대졸 남성의 숫자보다 많은 나라가 15개국이나 되었다.  미국 남성들 가운데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태어나서 1960년대 중반에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었다.  남성들의 대학 졸업률은 그 뒤 하락하기 시작했다.  합리적 선택 이론에 비추어보면 남성의 대학 졸업률이 하락하던 시기가 여성이 피임약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 시기와 일치하는 게 우연은 아닐 것이다.

- 'The logic of life(경제학 콘서트 2)', Tim Harford, 웅진지식하우스 刊, 이진원 역, p.129~31

이론! 피임약 УРА! [1]


  그런데 피임약은 원래 '여성 해방!'의 상징적 존재 중 하나 아니었나? 
  경제학자 L. Edlund의 논의를 볼 때, 결혼이 꼭 여성에게 부정적인 면만 있다고 볼 수는 없듯이[2] 피임약도 꼭 긍정적인 면만 있다고는 볼 수 없다.  항상 '의외의 측면(또는 unexpected result)'이란 존재하게 마련.  경구 피임약이 처음 나왔을 때 여기까지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漁夫

[1] 젊은 남자들은 이럴지 몰라도, 이미 漁夫하곤 상관 없는 소리다 ㅋㅋㅋ
[2] 링크에 적었듯이, 결혼은 남성의 소득을 여성 쪽으로 이전시키는 효과가 있다.  결혼이 줄자 여성이 '더 좌파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덧글

  • Ladcin 2014/02/26 00:43 # 답글

    새로운 시선이군요. 피임약이 의외의 결과를...
  • 漁夫 2014/02/27 22:15 #

    그러게 말입니다. 이 '인과 관계의 연쇄'는 가끔은 너무 복잡해요.
  • 칙촉 2014/02/26 03:32 # 삭제 답글

    어짜피 피임약도 남자가 만든건데 멀
    이래저래 암컷은 빡쎄다
  • 이덕하 2014/02/26 06:58 # 답글

    “진화심리학의 논리에 따르면 여성들은 섹스 파트너를 매우 까다롭게 고른다... 그러나 피임약을 쓰는 여성의 논리는 이와 크게 다르다.”

    --->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입니다. 아내가 피임약 쓰고 다른 남자와 잤다고 남편이 질투를 별로 안 합니까?
  • rumic71 2014/02/26 10:13 #

    섹스 파트너가 아니라 결혼상대를 까다롭게 고르는 거지요.
  • 일화 2014/02/26 11:30 #

    여성들 중 일부가 (결혼을 미루면서) 섹스 파트너를 고를 때 신중한 태도를 버린다 = 쉽게 인스턴트 섹스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혼 여성에게는 적용이 힘든 논리이고, 남편의 질투와는 아예 무관한 이야기죠.
  • 이덕하 2014/02/26 11:49 #

    제가 너무 짧게 써서 오해를 불렀군요.

    남자의 질투 기제는 “내 아내가 피임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남의 자식을 키울 위험이 없다”라는 의식적 지식과 별로 상관 없이 작동합니다.

    남자의 발기 기제는 “모니터 속의 포르노 배우와 성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의식적 지식과 별로 상관 없이 작동합니다.

    마찬가지로 섹스 파트너 선택과 관련된 여자의 심리 기제는 “내가 피임약을 먹고 있으니 이 못 생긴 남자와 성교를 해도 내가 열등한 유전자를 얻을 일은 없다”라는 의식적 지식과 별로 상관 없이 작동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자의 성 행태 결정에는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그런 심리 기제 말고도 의식적 지식도 영향을 끼칩니다. 이런 면에서는 본문의 이야기가 어느 정도 들어맞을 수 있습니다.
  • 포도주 2014/02/26 15:35 #

    [이 못 생긴 남자와 성교를 해도] 이건 아닌듯합니다.
    피임은 '섹스로 인해 아이를 가지게 되어 혼자서 양육하는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지
    피임 덕분에 못 생긴 남자와 성교하려 하는 것과는 상관없습니다.
  • 포도주 2014/02/26 15:37 #

    즉 "내가 피임약을 먹고 있으니 이 잘 생긴 남자와 성교를 해도 즐거움만 얻을 뿐 혼자서 아이를 양육할 부담을 질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 漁夫 2014/02/27 22:20 #

    all / 제가 시간 없이 빨리 쓰다 보니 저 ... 부근에 한 문장을 생략해서 애매해졌는데, 지금 집 밖이라 보충해 올릴 방법이 없네요. 어쨌건 제가 이해한 것은 '임신의 가능성 걱정 안 해도 되니, 좀 더 맘대로 섹스해도 된다'는 것이고, 앞뒤 문장들 뜻을 감안할 때 저자도 이 의미로 썼습니다.
    특히 결혼 안 한 여성의 경우는 남편의 질투를 별로 우려하지 않아도 상관 없지요. 저는 원치 않는 임신 가능성이 여성의 혼전 성교 가능성을 크게 억제하고 있었다는 의견에 찬성하는 편입니다.
  • 대공 2014/02/26 09:04 # 답글

    결혼이 줄자 여성이 '더 좌파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이게 무슨 이야기죠?
  • MoGo 2014/02/26 10:45 #

    "결혼은 남성의 소득을 여성 쪽으로 이전시키는 효과"가 있으므로 결혼률의 감소는 여성(일반)의 경제력을 약화시켰고 여성(일반)이 좀 더 좌파적인 스탠스(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재분배를 추구하는 정치적 지향)를 취하도록 하게 되었겠죠. 그런 뜻.
  • 채널 2nd™ 2014/02/26 23:50 #

    대공 // 대저 좌파는 ... 더 많은 놈들에게서 뭔가를 뺐어서라도............... 그게 모토(?)였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라는 생물들은 기본의 결혼 시스템에서는 그냥 저냥 먹고 사는데 문제가 없었는데, 남성이라는 생물들이 '기피'를 하니까 ㅎㅎ 먹고 살 길이 막막해졌다고 생각해 봅니다. <-- 이럴 때 나오는 전가의 보도 :: 전두환이 나와라~ 노무현이 나와라~ 박근혜 뭐하냐??

  • 漁夫 2014/02/27 22:22 #

    all / 어쨌건 성별 상관 없이 '자기 이익(incentive)'을 추구하는 게 사람인 만큼, 자신의 수입이 (이유가 뭐건) 줄어드는 상황에서 좌파적 정책을 지지하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겠지요.
  • 착선 2014/02/26 11:10 # 답글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여성용 비아그라도 곧 나온다는데, 이것도 예상치 못한 효과를 가져오려나요?
  • 漁夫 2014/02/27 22:25 #

    ...... 여성용 비아그라 OxzTL

    암튼 피임약이 결혼 가능성을 줄여서 이런 결과를 갖고왔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 일화 2014/02/26 11:28 # 답글

    역시 복잡한 세상의 인과관계를 미리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듯 싶네요. 피임약에 이런 효과가 있다니 말입니다...
  • 漁夫 2014/02/27 22:29 #

    자연계도 그렇고 사람 사회도 그렇고 .... 예측은 정말 어렵죠.
  • 소드피시 2014/02/26 11:38 # 삭제 답글

    동양권에서는 경구피임약 뿐 아니라, 게임이나 애니메이션도 한 역할 하겠네요. 히키코모리와 초식남 양산의 주범...
  • 漁夫 2014/02/27 22:29 #

    '2D가 안 되면 3D는 더욱 어렵느니라' ㅎㅎㅎㅎ
  • Minowski 2014/02/26 12:16 # 삭제 답글

    인공자궁이라는 것이 등장하면 어떻게 될런지도 참 궁금해지는 대목이죠...
  • 漁夫 2014/02/27 23:21 #

    음... 예상은 힘듭니다만, 직장에서 업무 공백이 사라지기 때문에 좀 나아질까요? 이 문제는 서구에서도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만 어느 독일 여성이 미국에서 "미국 여성들이 직장 최상층까지 (생각보다 헐 많이) 와 있는 게 놀랍다. 독일에서는 그러기가 꽤 힘들다. 독일 회사들은 업무 공백을 싫어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렇더라도 남성보다는 육아에 더 많이 신경쓰는 편이 여자란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만.

    사실 보편화할 경우 크게 변화를 일으킬 만한 것이라면 친자 검사라고 생각합니다. 부성 불확실성은 상당한 변수 중 하난데 이걸 없애버린다면...
  • Singular 2014/02/28 13:36 # 삭제

    친자 검사는 벌써 충분히 퍼졌을텐데요? 뉴질랜드처럼 이걸 불법으로 만든 곳도 있다고는 합니다만.
  • 漁夫 2014/02/28 19:40 #

    Singular 님 / 제가 말하는 '보편화'란, 산후 페닐케톤뇨증 검사나 40대 이상 임신부의 태아 염색체 검사처럼 '거의 100% 진행하는'이란 의미입니다. 한국은 현재 '단지 궁금해서 하는 친자감별'이 허용되어 있지 않다고 압니다.
  • 채널 2nd™ 2014/02/26 23:52 # 답글

    피임약을 '즐기는' 쪽이 남성이 더 많은지, 아니면 여성이 더 많은지는........................................

    (암만 봐도 피임약의 '부작용'은 남성이 더 즐기는 듯.) ;;;
  • 漁夫 2014/02/27 23:40 #

    기혼 부부가 사용한다면야, 사실 양편 다 좋겠지요.

    하지만 '정자 전쟁'의 저자인 Robin Baker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남자가 콘돔을 (잘못)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하하.
  • Singular 2014/02/27 06:37 # 삭제 답글

    한국에서 아이 덜 낳기 정책과 성 감별 낙태가 지금같은 결과를 낳을 줄 예상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성 감별은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인데도 말입니다.
  • 漁夫 2014/02/27 23:42 #

    네. 어떻게 보면 '죄수의 딜레마'죠. 늘 그렇듯이 이 함정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잖습니까.

    성 감별 낙태는 그렇다 치고, 사실 아이 덜 낳기 정책은 크게 필요가 없는 정책이었다는 것이 Matt Ridley가 '이성적 낙관주의자'에서 주장하는 내용입니다. 늦건 빠르건 경제 성장이 진행되면서 크게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전세계에서 거의 보편적으로 보이는 현상이라는 것이죠.
  • Singular 2014/02/28 13:39 # 삭제

    한국,중국 등이 모두 아이 덜 낳기 정책을 밀어붙였고, 꽤나 성과를 봤다고 자뻑합니다만. 여러 자료를 보면, 정책 따위 없었어도 줄었을 겁니다. 정책으로 더 빨리진 듯 합니다만. 오히려 성감별로 결혼 대란을 일으켰습니다. 오히려 지금은 인구가 줄까봐 난리. 그 시절엔 경제 성장으로 출산률이 저절로 떨어진다는 걸 몰랐고, 인구가 줄어도 문제란 생각도 못 했습니다.
    성비 문제는 80년대부터 기사가 자주 나왔을 겁니다. 초등학교에서 남녀 짝이 안 맞는다고요. 이 상태에서 결혼 문제가 생기는 건 뻔했는데, 아무 대책도 없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 漁夫 2014/02/28 19:47 #

    제 성비 포스팅들에 어느 분께서 리플을 다셨는데, 현 상황에서 워낙 외국으로 나가는 남성들이 많아서 실제 국내 평균 성비는 여성이 우세하다는 주장을 링크해 주셨더군요. 저야 그 포스팅을 주민등록 기준으로 작성했으니 한계는 있게 마련이지요...

    실제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은 아무래도 남성이 많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은 합니다. 아직 자신은 없습니다만.
  • Singular 2014/03/01 01:16 # 삭제

    도시로 몰리는 여자를 생각하면, 선진국으로 나가는 건 여자 쪽이 많을듯 합니다만.
  • 漁夫 2014/03/01 10:46 #

    한국 유학생이나 기타 취업 때문에 나가는 경우가(어케 보면 '위험 감수'에 해당하죠) 꽤 많은 점을 감안하면,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는 자세한 통계 자료가 필요합니다. 전 아직 거기까진 조사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가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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