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적응과 자연선택- ![]() 조지 C.윌리엄스 지음, 전중환 옮김/나남출판 |
솔직히 내가 1966년 나온 이 책에 준 평점에 크게 놀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책의 중요성을 의심해서? 물론 아니다. 번역이 후져서? 역시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절대 모자라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잘 돼 있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맘에 안 들어서? 그럴 리가.
그 진짜 이유는, 이 책이 (좋은 번역에도 불구하고) 일반 생물학 애호가 수준에서는 읽기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 책을 Matt Ridley 같은 교양서 전문 저자의 '붉은 여왕'과 비슷한 수준으로 술술 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붉은 여왕'은 독자층이 일반인을 겨냥했으니 이 책처럼 생물학 전문가 대상이 아니긴 하다. 그런 면에서는 도킨스의 '확장된 표현형'이 겨냥한 독자층이 이 책과 비슷할 텐데, 개인적으로 내용만 보면 난이도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이 책은 번역이 훨씬 좋지만, 그래도 읽기 어렵긴 별 차 없다.
그럼 얼마나 어렵길래 이런 소리를 하나? 본문에서 한 예를 가져오겠다. 직접 도전해 보시길!
의미상의 난점과 개념상의 난점을 구별하기란 웬만해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는 다음의 진술에서 잘 드러나는 개념적 오류가 흔히 있다고 본다.
- p.54 (bold체는 본문에도 있음)
북극곰의 하얀 털가죽은 눈으로 덮인 환경에서 사냥감에 몰래 접근하는 데 필요한(necessary) 형질이었다. 짙은 빛깔의 개체들은 생존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하얀색이 선택에 의해 선호되었다.
- p.54 (bold체는 본문에도 있음)
볼드체 부분을 손대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저자가 손보고 싶다고 한 곳이 하나 더 있다...
.................

하기야 저자는 1997년 이 책보다 훨씬 쉽게 쓴 '진화의 미스테리(The pony fish's glow)'에서는 이렇게 적어 놓기도 했다.
.. 그로부터 몇 년 뒤 나는 해양생태학의 대학원생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주제는 큰 물고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작은 물고기가 보이는 적응에 대한 것이었다. 독이 있는 고기가 한 예로 들어졌다. 무게가 10킬로그램 나가는 바라쿠다는 1킬로그램짜리 독이 있는 농어를 잡아먹으면 죽거나 병들게 되므로 그런 종류의 사냥감을 다시 공격할 생각을 단념할 것이다. 그 세미나의 의장이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생물이 가진 독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적응의 아주 좋은 예라는 데 동의했다.
그런데 그 이론에 대한 회의주의자가 하나 나왔다. 그의 이름은 머리 A. 뉴먼으로 훗날 밴쿠버 시의 웅장한 공립 수족관장으로서 화려한 경력을 갖게 되나[1] 아직은 외로운 반대자에 불과했다. 그가 말했다. "잠깐, 독이 어떻게 자기를 방어해 줄까? 포식자에게 이미 잡아먹혀 죽은 후에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나와 몇몇 참석자는 즉각 맹렬한 반격을 했다. "어리석은 소리, 머리. 그 독은 그 독을 가진 개체를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종 전체를 일반적으로 보호해 주지 않나." 그 얘기에 더 이상의 이의는 없었고 토론은 계속되었으나 나는 머리가 정말 그것을 수긍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도 세미나 당시에는 그 이론을 받아들였으나 그 믿음이 확고하지도 오래가지도 않았다. 나는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식의 자연선택 이론과, 자연선택을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생각되는 '종에 이로운 적응'이라는 개념 사이의 괴리에 차츰 더 마음이 편치 않게 되었다. 진화론을 개체들 간의 자연선택으로 단순화하는 교과서에 그와는 일치하지 않는 예들이 무심히 나열되어 있는 경우는 허다하였다.
- 'The pony fish's glow(진화의 미스테리)', George C. Williams, 이명희 역, 두산동아 간, p.67~68
[1] Vancouver aquarium의 이 링크를 참고.
그런데 그 이론에 대한 회의주의자가 하나 나왔다. 그의 이름은 머리 A. 뉴먼으로 훗날 밴쿠버 시의 웅장한 공립 수족관장으로서 화려한 경력을 갖게 되나[1] 아직은 외로운 반대자에 불과했다. 그가 말했다. "잠깐, 독이 어떻게 자기를 방어해 줄까? 포식자에게 이미 잡아먹혀 죽은 후에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나와 몇몇 참석자는 즉각 맹렬한 반격을 했다. "어리석은 소리, 머리. 그 독은 그 독을 가진 개체를 보호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종 전체를 일반적으로 보호해 주지 않나." 그 얘기에 더 이상의 이의는 없었고 토론은 계속되었으나 나는 머리가 정말 그것을 수긍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나도 세미나 당시에는 그 이론을 받아들였으나 그 믿음이 확고하지도 오래가지도 않았다. 나는 교과서에서 설명하는 식의 자연선택 이론과, 자연선택을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생각되는 '종에 이로운 적응'이라는 개념 사이의 괴리에 차츰 더 마음이 편치 않게 되었다. 진화론을 개체들 간의 자연선택으로 단순화하는 교과서에 그와는 일치하지 않는 예들이 무심히 나열되어 있는 경우는 허다하였다.
- 'The pony fish's glow(진화의 미스테리)', George C. Williams, 이명희 역, 두산동아 간, p.67~68
[1] Vancouver aquarium의 이 링크를 참고.
물론, 왜 이 '독고기' 예가 잘못됐는지와 어떻게 설명해야 맞는지에 대한 더 구체적인 설명은 없다..... -.- 윌리엄스가 쓰는 글들이 내게는 상당히 함축적이고 미묘하면서도 건조하게 느껴지는데, 영어권 학술 문장으로는 오독의 여지가 적어 좋겠지만 대중서로는 부적합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2] 도킨스가 이 책과 같은 내용을 이기적 유전자나 눈먼 시계공 스타일로 썼다면 아마 책 부피가 1.5배로 늘었을 것이다. 서술 목적상 그렇게 하지 못한 '확장된 표현형'을 일반 독자용으로 추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대중 목적이란 서평 전제로 보아 10점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내용이 안 좋아서 그런 게 결코 아니다.
요약하여, 이 책은 전반적으로 저자가 서문에 적은 것을 인용하여 표현하자면 "x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x+1세까지 생존할 확률보다 크기만 하다면 어느 개체군에서나 개체 간의 선택은 젊은 개체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자명한 발상을 [아내에게] 제안하였다."가 정말 그럴 듯하게 들리는 사람에게는 아주 훌륭한 도전거리라 하겠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기적 유전자(원서 혹은 이용철 역)를 세 번 보고, 윌리엄스의 '진화의 미스테리'를 충분히 이해하셨다고 생각하면 그 때 도전해 보시는 게 어떨까 싶다.
漁夫
[2] 개인적으로 '인간은 왜 병에 걸리는가(Why we get sick)'가 그 정도로 쉽게 읽히는 문체와 서술이 된 것은 적어도 80%는 공저자 랜돌프 네스(Randolph Nesse)의 덕이라 추측한다. 근데 정작 윌리엄스 본인은 이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는 암시가 있으니 아무래도 윌리엄스는 대중서 저자로는 좀 거시기....
덧글
아무래도 햇볕좀 쬐셔야겠어요!!!(근데 요즘 서울 하늘은 완전 미숫가루탕이잖아...)
라는 문제는 제쳐두고,
바라쿠다가 학습을 통해 농어를 다시는 먹지 않는다면 바라쿠다 여러마리가 농어 한마리한테 집단공격이라도 하는게 아닌바에야 바라쿠다 한마리당 농어 한마리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건데, 이게 잘 될지 모르겠군요.
뭐, 바라쿠다랑 농어의 몸무게가 10배차이나면 개체수도 그정도 차이 날테니 그럭저럭 되려나?
그리고 바라쿠다가 학습으로 다시는 농어를 먹지 않게 되는거라면, 농어의 독이 치사량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런데 그렇다면 역으로 바라쿠다가 농어 독에 면역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거 아닌가?
차라리 농어의 독이 치사량이라면 농어를 먹는 바라쿠다가 모조리 죽어버려서 농어를 먹지 않는 습성을 가진 바라쿠다만 살아남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데 이런 경우라면 학습할 여지도 없겠죠.
이건 거의 틀림없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초파리나 예쁜꼬마선충 등도 학습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으니 바라쿠다가 이 정도를 학습 못할 이유는 없겠죠.
"그리고 바라쿠다가 학습으로 다시는 농어를 먹지 않게 되는거라면, 농어의 독이 치사량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런데 그렇다면 역으로 바라쿠다가 농어 독에 면역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거 아닌가?"
바라쿠다가 거의 (독 있는) 농어만 먹는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작은 고기들 대부분은 독이 없고, 바라쿠다 입장에서는 굳이 독 있는 농어의 특정 독을 잘 해독하는 기전을 개발하느니 그냥 다른 고기 잡아먹는 편이 낫습니다.
"차라리 농어의 독이 치사량이라면 농어를 먹는 바라쿠다가 모조리 죽어버려서 농어를 먹지 않는 습성을 가진 바라쿠다만 살아남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네 찬성합니다. 굳이 치사량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건드리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 논의에서 촛점은 농어의 독이 자기 방어용으로 진화했는지에 있는데, 생각보다 이건 쉽게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전중환 교수가 한 건 하셨군요.
번역 비판을 해 보겠습니다. 훌륭한 번역이길 빕니다.
'내가 죽어서 나하고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이 이득을 보는 상황'을 진화의 동력에서 제외시킨 것이 윌리엄스의 가장 큰 공로 중 하나며, 이 책에서 '종의 이익'이 왜 현실성이 부족한지 자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저걸 분간해놓지 않는 일반 수준의 교양서적이 꽤 많은데 정말 적절하군요.
복어야 뭐, 지금까지도 먹고 죽는 사람이 간혹 나올 지경이니 옛날에 그거 먹고 죽은 사람이 꽤 있긴 하겠지요.
'복어를 먹으면 죽는다'를 학습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복어처럼 생긴 놈을 좋아하는' 특성을 지닌 포식자의 생존률이 낮을거라고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해석이 가능합니다. 복어처럼 생긴 특성엔 여러가지가 있을텐데, 색깔이나 배부른 모습 등이 있겠죠. 그것만으로도 이를 기피하는 후손의 비중이 높아질거라고 생각라는 것은 쉽습니다.
'바라쿠다'처럼 큰 물고기에게 대체로 농어는 많은 식사 대상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 상황에서 농어와 비슷하게 보이는 많은 녀석들을 회피하는 것은 대가가 너무 큽니다. 특정 행동을 개발하는 데는 대체로 어느 정도의 비용이 따르긴 합니다만, 이 경우는 잠재적 식사 범위를 좁히기까지 하기 때문에 손해가 큽니다. 가장 쉬운 예로 낚시에 대한 방어 기전이 거의 진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meantone 님 / 하나 더 추가하면, 같은 종의 다른 개체가 뱀을 보고 놀라는 것을 봐야만 혐오감을 느낍니다. 못 보면 본능적인 혐오감이 발동하지 않아요 ;-)
저도 이번에 조지 윌리엄스의 저서 < 적응과 자연선택 > 을 읽으려고 시도했지만 시간이 없어서 읽다 말다가 읽다 말다가 하다가
결국 2회 완독했습니다 --;;
제 인생 여지껐 읽었던 생물학 교양서적(?) 중에 제일 빡센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문체가 바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서 어려웠습니다.
아무래도 조지 윌리엄스 할아버지는 리처드 도킨스 처럼 일반인들 수준을 위해 풀어쓰시는 능력이 조금 부족한 스타일 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저 나름대로 X+1세 까지 생존할 .... 이 부분의 조지 윌리엄스가 아내에게 말했던 자칭 < 자명한 발상 > 이 무엇인가
노화가 왜 일어나는가? 노화의 진화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유전자 선택 관점으로 나름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전공자의 어설픈 실력으로 적응과 자연선택 책 서평과 설명 및 노화의 진화에 대해서 나름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려보았습니다.
http://blog.naver.com/ohryan77/220249319541
제 블로그 입니다.
현대 진화생물학의 원류이자 필독해야 할 명고전 - 조지 윌리엄스 저서 < 적응과 자연선택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 서평 총정리 |작성자 오뎅제왕
밑에 댓글은 노화의 진화에 대해서 제가 써본 건데 어부 님 생각에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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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노화 aging 이 진화 - 인간은 왜 늙는가?
[출처] 현대 진화생물학의 원류이자 필독해야 할 명고전 - 조지 윌리엄스 저서 < 적응과 자연선택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 서평 총정리 |작성자 오뎅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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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머슨의 강의를 듣고 나서 아내 도리스와 함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에머슨의 강의에 대해 느낀 불만을 아내에게 토로하고 난 다음.
"X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X+1세 까지 생존할 확률보다 크기만 한다면 어느 개체군에서나 (개체군 내애서 ) 개체(개인) 간의 선택은 젊은 개체에 더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자명한 발상을 제안하였다.
- 조지 윌리엄스 저 < 적응과 자연선택 > 번역판 2013 p. 11 머리말(1996)
[출처] 현대 진화생물학의 원류이자 필독해야 할 명고전 - 조지 윌리엄스 저서 < 적응과 자연선택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 > 서평 총정리 |작성자 오뎅제왕
아직까지 이해가 안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맨 위의 "X세까지 생존할 확률이 X+1세 까지 생존할 확률보다 크기만 한다면 어느 개체군에서나 (개체군 내애서 ) 개체(개인) 간의 선택은 젊은 개체에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윌리엄스의 자칭 자명한 발상 이나,
밑에 1957년 논문 등에서 적대적 다형질 발현 - 생식 이후 생애주기 노년에 자연선택은 선택압 힘이 약해져서 발현되는 유전자들을 걸러내지 못한다." 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갈 사람도 촘 있을 것이다.
잡아먹히는 시기는 동시에 잡아먹혀서 A크릴새우 B크릴새우랑 차이가 없어서 개체 자신은 천수를 다하지만, B크릴새우는 유전자 포괄 적응도 입장에서는 이미 자손을 남겼기 때문에 번식 성공도에서는 이득이다.
이 때문에 크릴새우같이 작은 피식자 동물들은 대게 짧은 수명에 생애주기에서 번식을 빨리 하는 쪽으로 진화되었다. 그리고 알을 많이 뿌린다던가...
즉 특정 생식교미 시점( 암수 유성생식 유전자 재조합 ) 이후 생애주기 후반에는 크게 세 가지 경우의 유전자들 ->
(1) (생애주기에 상관없이)개체의 건강상태나 후생 질병 육체능력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미치건 미치지 않건 유전자들이나 다소 부정적인 유전자,
(3) 이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생애주기 초반 생식시점 이전에는 긍정적이었다가 생애주기 후반 - 생식시점 이후 노년에는 부정적 효과를 발현하는 유전자들
이런 유전자들 때문에 개체의 육체는 노화를 겪는다. 그리고 이런 유전자들은 번식시점 이후 생애주기 후반에는 논문들에도 언급했듯이 자연선택의 압력이 약화되어서 노년에 부정적인 유전자들이 걸러지지 않거나 또는 사람과 같이 후천적인 환경요인이나 식량사
정 완화로 생각보다 오래 살게된 경우.. 정해진 평균수명에서는 번식 시점 전후로 개체의 생명/수명이 끝나기 때문에 자연선택이 유전자들을 걸러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위 세 가지 유전자들이 보존되어 자손에게 유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유전자들은 노후시점에 발현된다.
바로 이것이 노화의 원인에 대한 진화생물학의 설명이자 < 적대적 다면발현= 적대적 다형질 발현>에 대한 설명이다.
(라고 개인적인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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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죽더라도 자신과 유전자를 공유한 다른 개체에 이득을 주는 것(친족선택)이나
집단에 이득을 주는 것(집단선택)으로 이해됩니다.
그렇기 진화할 수 있는 것이죠.
현재는 상식이 된 아이디어인데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고 윌리엄즈옹이 회고하는 부분이구요.
여기서 윌리엄즈가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현재는 친족 선택으로 이해한다고 합니다. 특히 독이 있는 벌레의 경우 어릴 때 (애벌레 등) 가까운 데 모여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