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28 10:23

과학계의 가혹함 책-과학

  다른 데의 소감들에서 나는 과학이, 더 구체적으로 '과학계'가 상당히 잔인하다고 했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상호 감시의 눈이 번득이고 상대방의 실수를 잡아내려고 기를 쓰는 사회가 만만할 리가.  제한적이긴 하지만, 내 경험으로 볼 땐 회사보다 헐 가혹하다...
  이는 나처럼 비학계인의 단순한 추측이 아니고, 학계인들도 인정한다.
 
  사회생물학 문헌은 건전한 토론, 편집장에게 보내는 글,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하면서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지적 등으로 가득 차 있다.

- 'The triumph of sociobiology(사회생물학의 승리)', John Alcock, 동아시아 刊, 김산하,최재천 역, p.138

  이건 상당히 점잖은 표현이다.
 
  ... 비유적으로 말해, 교수들(그 밖에도 경쟁이 치열한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당구대 앞에서 결투를 벌이지 않는다는 것도 확실하지가 않다.  교수들은 같은 동료들을 '함부로 해도 되는 부류'와 '함부로 하면 큰코다치는 부류', 말이 곧 행동을 의미하는 사람과 허풍만 가득한 사람, 비판을 해도 별 탈 없이 넘어가는 동료와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은 동료로 나눈다.  학회가 열린 자리에서 잭나이프를 휘두른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겠지만, 그래도 언제나 톡 쏘는 질문, 통렬한 되찌르기, 도덕적 모욕, 위압적인 독설, 분노의 항변, 원고 검토 및 연구비 심사 등이 난무한다.  물론 학계는 제도적으로 이런 소란을 최소화하지만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토론의 목적은 매우 강력한 주장을 제기해 회의론자들을 '강제로' 믿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힘을 잃은 회의론자들은 최소한 이성을 잃지 않았다면 그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원칙상 강제력은 이론 자체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옹호자들은 그 이론을 지지하기 위해 협박("명백히..."), 모욕("이 연구는 ...을 위한 엄밀함이 부족하다"), 비하("오늘날 진지하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등의 언어적 우위 전술을 동원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마도 이 때문에 H. L. 멩켄은 "대학 풋볼은 학생들 대신 교수들이 뛴다면 훨씬 더 흥미로울 것이다"라고 썼을 것이다.

- 'How the mind works(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Steven Pinker, 동녘사이언스 刊, 김한영 역, p.766

 
  '검증'은 다른 말로 일상적인 가혹함을 의미한다.  이 좁은 문을 통과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당연히 달리 대우해 마땅하다.

  漁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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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Ladcin 2013/07/28 10:37 # 답글

    겉으로는 평범한 외교적 수사같지만 속으로는 욕하고 비하하는거군요(...)
  • 漁夫 2013/07/29 13:06 #

    혼네와 다테마에는 일본에만 있는 얘긴 아닙니다.
  • 스카이호크 2013/07/28 10:59 # 답글

    어라. 본 책인데 왜 저 구절이 낯설까요(...)

    검증당하는 건 진짜 골치아픈 일이지요(...) 그나마 전 (학계에 비해) 느슨한 회사에서, (말빨로 때울 수 있는) 기획 일인지라 매우매우 유리한 위치입니다만, 그래도 어렵더군요. 쿨럭
  • 漁夫 2013/07/29 13:07 #

    저거 보고 다 기억할 사람이 몇이나...

    검증을 통과하면 인정을 받는데, '인정 받는다'가 회사건 학계건 쉬울 리가 없지요. 회사에서 전 사실 크게 깨지거나 했다곤 볼 수 없습니다만 자존심 긁히는 상황은 좀 있었지요. 그러면서 크는 거고...
  • 배길수 2013/07/28 11:11 # 답글

    수백 명의 셸던 리 쿠퍼들이 모여있다고 상상해 보면(...)
  • ㅁㅁ 2013/07/28 11:21 # 삭제

    그거 정말 끔찍하군요 (....)

  • 漁夫 2013/07/29 13:07 #

    학계는 그렇지요....
  • Charlie 2013/07/28 11:50 # 답글

    21세기에 석궁을 맞을 위험도 있죠... 학술의 세계는 역시 대단합니다.
  • 漁夫 2013/07/29 13:08 #

    어째 성대 그 수학 교수가 생각.....
  • 위장효과 2013/07/28 15:06 # 답글

    지뇽뇽님 글도 그렇고 이글도 그렇고...저희 업계도 그런 점에서는 꽤나 시끌벅적하죠. 외부인이 보기에는 그냥 저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야말로 죽어라고 두들겨패대는...

    심지어 모 분과학회의 은퇴하신 모 교수님같은경우에는...국제학회에서조차 그 분이 발언하겠다고 마이크잡으면 단상의 연자고 좌장이고 할 거 없이 모두 자세 바로.(절대로 그런 거 가지고 트집잡은 적이 없는 분인데도 그런다는...^^. 한 번은 "교수님의 말씀이 곧 최종결론입니다."라는 말까지 나왔...)
  • 漁夫 2013/07/29 13:08 #

    만약 서로 띄워주기만 한다면 카바수술이 그렇게 논란이 될 이유도 없겠지요.

    오, 어느 분인지 궁금하네요. 거의 본좌 소리 듣지 않으면 그러긴 어려울 텐데요.
  • 2013/07/29 16:2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7/29 18:5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3/07/29 19:3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모모 2013/07/29 00:02 # 답글

    연구실에서 리비전 코멘트 날아오는 것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살벌하기 그지 없습니다... 후덜덜하죠. 한 번 그런 거 받아보면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자려고 누워도 벌떡 일어나게 되더군요 =_=;;
  • 漁夫 2013/07/29 13:10 #

    '니 자존심 따위 쓰레기통에나 집어넣어' ㄷㄷㄷ
  • 유치찬란 2013/07/29 01:51 # 삭제 답글

    학계가 다 그렇죠..
    뭐 개인적으로는 농학, 화학, 환경을 애매하게 걸치고 있고 분야마다 매우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매우 보수적이고, 나이 따위는 숫자에 불과하며, SCI 저널 편집장쯤 되면 거의 극단을 달리는.. 거기다 머리가 좋을수록 성격파턴자가 많음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저널 퍼블리셔들도 돈에 눈먼 기관들이고... 짜고치는 고스톱과 살벌한 토론, 그 안의 다양한 주판과 계산기 두들김이 오가며, 서로 눈치 살피고... 눈치게임, 표절, 상대 논문 리젝을 통한 새싹 자르기.. 등 이러한 부분들도 특급, 일류급, 이류급, 삼류급 저널과 연구자들 집단에서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이는 복잡한 필드니까요...

    사실 생각해보면 저같이 초짜가 아는 내용만으로도 영화로 만들면 경제계보다 치열한 암투극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漁夫 2013/07/29 13:11 #

    '저널 퍼블러셔들도 돈에' 뭐 얼마 전에 여기 올리려고 하나 번역 허가 구했다가 92$ 요구받아 본 경험에선 상당히 동의합니다.

    하하, '암투극'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사례를 하나 보았습니다. tbC....
  • 노말시티 2013/07/29 15:15 # 답글

    이상적으로는 과학은 어떤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는 가혹하지만,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가혹하지 않죠. 현실적으로는 이 둘을 잘 분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긴 하지만요.
  • 漁夫 2013/07/29 16:15 #

    맞는데... 제대로 일 서로 했다 쳐도, 의견이 갈려 그 땜에 한 번 감정 대립이 생기면 공정하게 나가기는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fraud 의혹을 받는 순간 사람 자체에 낙인이 찍히는 거나 마찬가지인 건 참 무섭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포스팅했던 Anders Mollers가 그런 경우죠.
  • kuks 2013/07/30 02:31 # 답글

    오늘도 논문 때문에 박 터지실 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 漁夫 2013/07/30 08:56 #

    그 박 터지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셨으니 어쩔 수 없기는 하죠....
  • 지나가던의사 2013/08/01 06:17 # 삭제 답글

    아티클도 아니고 걍 초록 하나 냈는데 날아왔던 리비젼 메일을 생각하면 으음... 진짜 끔찍하긴 하죠. 도망가고 싶습니다...
  • 漁夫 2013/08/01 09:39 #

    솔직히 제가 리뷰어래도, 더 좋은 논문 보기 위해서는 가차없이 의견 날릴 것 같습니다 (후다닥)
  • 누군가의친구 2013/08/05 15:49 # 답글

    특히나 과학의 특성상 그 가혹함이 더 한것 같습니다.
  • 漁夫 2013/08/07 22:23 #

    과학이 지금처럼 혁혁한 성공을 거둔 이유도 바로 이 의외의 가혹함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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