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13 23:56

어떤 주석 Evolutionary theory

  베다위키(전 엔하위키)의 처녀 항목을 보면 제 옛날 포스팅이 링크되어 있습니다.  흥미 있을 만한 검색어인지 아직 종종 여기서 들어오는 분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 붙어 있는 5번 주석을 보면

  처음에 이거 봤을 때 참 재미있더군요. ^^;;  '해당 내용의 석기시대 분석'을 한 사람이 바로
George Williams기 때문입니다.

  이 분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약장사 스타일로)
  미국 어디에서인가 열린 진화생물학회에 참석하여, 에이브러햄 링컨을 닮은 허연 구레나룻의 키 큰 사람이 청중들의 뒤에 수줍은 듯이 서서 미소짓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당신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감탄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것이다.  워낙 말수가 적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방 안 곳곳에서는 "조지가 왔던데"하고 수근댈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으로 그가 유명한 사람임은 금세 알 것이다.
  그가 바로 조지 윌리엄스(1926~2010)로, 경력의 대부분을 뉴욕 롱아일랜드의 스토니 브룩에 위치한 뉴욕주립대학 생물학 교수로 지낸 학구적이고 조용한 사람이다.  그는 기록에 남을 만한 실험이나 놀랄 만한 발견을 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다윈만큼 해박한 진화생물학 혁명의 선구자로 꼽힌다.  윈-에드워즈와 몇몇 이름이 알려진 집단선택론자들에게 자극을 받은 그는 1966년 여름 휴가를 이용해 진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책으로 썼다.  '적응과 자연선택(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이라는 그 책은 아직도 생물학 가운데에 히말라야 봉우리처럼 우뚝 서 있다.  그 책이 생물학에 끼친 영향은 애덤 스미스가 경제학에 미친 영향에 필적한다.  그의 이론은 자기 이익에만 관심 있는 개체들의 행동에서 어떻게 집단적인 효과가 생겨나는지 설명해주었다.

-  '붉은 여왕(
The red queen)', Matt Ridley, 김윤택 역, 김영사 간. p.70

( photo form this obituary )

  제가 정말 재미있던 것은, 이 분이 진화심리학자가 아니라는 점이지요.[1]  물론 그의 다른 책에서 진화심리학 및 그 결과물을 호의적으로 평가하고는 있습니다만, 이론가 역할 외의 이 분의 실제 전공은 어디까지나 해양 척추동물입니다.[2]  
  물론 이런 대가가 말했더라도 항상 맞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이 분이 언급한 정도의 내용은 이제 진화심리학자들 사이에서는 거의 '상식' 정도로 통용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가져온 내용을 첨 보았을 때 얼마나 재미있었겠습니까?
 
  漁夫

[1] 그의 전공은 해양척추동물(marine vertebrate)입니다.  William Hamilton이 군생곤충학자(벌, 개미 등)였던 것과 비슷하지요.  20세기의 저명한 진화론 이론가들은 대개 현장 실제 생물학자 경험이 있습니다.  Edward Wilson은 개미가 전공이며, 도킨스도 현장 경험이 풍부하고, Ernst Mayr는 조류학자, Robert Trivers도 자메이카 등에서 오래 현장 조사를 했습니다.  오히려 현장 얘기를 제가 거의 볼 수 없었던 Leda Cosmides 같은 경우가 예외죠.
[2] 이 분의 또 다른 중요한 업적은 노화에 대한 진화 이론을 체계화한 것입니다(논문과 번역).

덧글

  • 위장효과 2013/06/14 00:05 # 답글

    글의 다른 내용보다 "에이브러햄 링컨을 닮은..."이라는 묘사만으로도 어떤 생김새인지 금새 떠올라버렸습니다(뭐 짧은 드래깅으로 확인이 가능했지만) 미국인들에게 "에이브러햄 링컨..."만한 설명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고보니 덕후 오브 덕후(퍽!!!!)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도 에이브러햄 링컨과 비슷한 턱수염 기르고 계시죠 ㅋㅋㅋㅋ. 거기다 다옹께선 얼굴도 길죽한 편이고^^.
  • 漁夫 2013/06/14 19:45 #

    근데 Matt Ridley는 영국인이에요 ㅎㅎ

    다옹은 영국하고 호주에서 영주할 것을 생각해 봤대는데, 영국 음식에 적응하실 수 있던 건 아마 오지 현장 조사 덕이 아니실까 싶습니다....
  • kuks 2013/06/14 00:08 # 답글

    어찌보면 자기가 전공하는 분야의 근원을 거슬러 간 연어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 漁夫 2013/06/14 19:46 #

    이 분은 밥줄보단 부업 같은 진화생물학 이론으로 훨씬 더 유명하지요. 하기야 기초가 탄탄하시니 한따까리 하셨을 수 있음둥....
  • shaind 2013/06/14 00:15 # 답글

    심리학이 제대로 된 과학이 되기 전까지는 진화심리학도 그런 의혹을 절대 벗지 못하겠죠.
  • 漁夫 2013/06/14 19:47 #

    심리학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가 뭐라 하긴 그렇습니다만, '심리학의 기초 이론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다'는 지적은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긴 하지요. 방법론 자체는 충분히 과학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shaind 2013/06/14 21:07 #

    http://sonnet.egloos.com/2064627 이 글에서

    "여러 생각을 결합해서 하나의 정교한 이론을 만들 때, 그리고 그것이 들어맞는다는 것을 설명할 때, 그 이론을 만들 때 들어맞았던 것들 이상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완성된 이론이라면 추가로 다른 것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합니다."

    라는 의미에서, 수많은 현상들과 연역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핵심적인 이론(소위 "First Principle")이 제대로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심리학은 칼 포퍼가 말한 과학의 여러 단계 중에서 '정상과학'에 진입하지 못하고 '사실-수집' 단계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보입니다.
  • 漁夫 2013/06/14 23:28 #

    아시다시피 전 그 '핵심적인', 즉 (생물학이 아닌 무생물의) 자연과학으로 따지자면 물리학 같은 '가장 낮은 단계의' 이론이 심리학에서는 진화심리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완전 검증은 난망하고 학계에서 이에 완전히 동의하고 있지도 않지요....
  • shaind 2013/06/15 00:40 #

    진화론이 그러하듯이, 진화심리학은 작동의 구체적인 메커니즘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에서 first principle이라고 부르기는 심히 무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물학의 first principle을 찾아 거슬러올라가면 생화학, 유기화학, 화학......을 거쳐서 양자화학에 도달하죠. 진화생물학이 아니라요. 심리학에는 딱히 그런 게 없다는 의미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 漁夫 2013/06/15 01:03 #

    진화론이 그러하듯이, 진화심리학은 작동의 구체적인 메커니즘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에서 first principle이라고 부르기는 심히 무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생물체에서는 '진화'가 가장 근본적인 motivation입니다. 그렇다고 구체적인 기전을 고려 안 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만 말이지요.
    가령 자동차의 여러 부품들을 생각할 때, 많은 선택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각 부품에 대해 재질을 어떤 것을 쓴다든지 기타 등등... 하지만 전체적으로 자동차가 사람을 태우고 이동한다는 근본 '목적'을 알지 못하면 해당 부품들이 왜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요.

    생물학의 first principle은 '진화'입니다. 지구상에서 생물이 자신을 복제하면서 살아남는 데 화학을 활용했고 그들이 물리 법칙을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에 화학과 물리학이 생물학을 이해할 때도 중요한 '부품'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만, 화학과 물리학이 (물론 화학은 결국 물리학에 종속되지만요) 생물학에서 하는 역할은 거기가 끝입니다. 물리학적 대상이기만 하다면 생물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자기 복제'는 필요 없으며, 이에 비슷한 개념이 물리학에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진화심리학을 포함한 진화가 작동의 구체적 메커니즘과 전혀 무관하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많은 경우 진화심리학(또는 진화생물학)자들이 구체적 메커니즘을 별로 얘기하지 않는 이유는, '구체적 메커니즘의 제약 아래에서 불가능한 것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는다'를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 선택 압력이 상당히 크면 대개 그 구체적 메커니즘의 제약 안에서 해결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생략하는 것 뿐이지요.
  • shaind 2013/06/15 01:52 #

    천공테이프 기계든 전자식 컴퓨터건 간에 똑같은 알고리즘을 구동할 수 있지만 일단 그 기계에 대한 지식은 알고리즘에 대한 지식으로 보장되는 게 아니죠. (컴공과_한테_컴퓨터_조립해달라고_하면_안되는_이유.txt)

    이게 왜 중요하냐면, 예컨대 컴퓨터가 이런 입력을 했을때 저런 결과를 토해낸다는 것을 관찰하려면 컴퓨터가 어떤 물건이고 컴퓨터로부터 획득하는 모든 정보 중에서 무엇이 의미있고 또 의미가 없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컴퓨터 앞에 앉혀놓은 원시인이 컴퓨터 팬 소음을 아무리 열심히 관찰해봤자 의미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상과학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더 정밀한 측정과 관찰은 그저 더 많은 노이즈를 의미할 뿐입니다. 이것이 칼 포퍼가 '사실-수집'의 단계라고 부른 그런 단계입니다. 과거에 '박물학'이라는 용어로 싸잡혀 불리던 생물학이 바로 그런 경우죠.

    지금 생물학은 정상과학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어떤 생물학자가 어떤 생물이 이러저렇다고 말하면 진화생물학자가 달라붙어서 "왜" 이러저러한지를 안심하고 연구할 수 있게 되었죠. 그런데 심리학자가 마음의 어떤 부분이 이러저렇다고 말했을때, 우리는 그게 진화심리학적 분석이 가능한 레벨의 관측인지, 때로는 심지어 마음이 이러저러한 게 정말 맞긴 맞는 것인지부터 의심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죠.
  • 漁夫 2013/06/16 22:22 #

    단순히 리플로 쓰기에는 좀 복잡해서 포스팅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 RuBisCO 2013/06/14 00:30 # 답글

    사실 "과학"이기에 자기 전공을 벗어나서 이야기 하더라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것이겠죠.
  • 漁夫 2013/06/14 19:48 #

    모든 생물학의 기본은 진화인데, 그 part에서 일가를 이루고도 남은 양반이지요.
  • 피그말리온 2013/06/14 00:41 # 답글

    하긴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맞냐 틀리냐만 있지 전공자로서의 권위 이런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하겠네요...
  • 漁夫 2013/06/14 19:49 #

    네 그렇지요. 하지만 박사 학위를 '조합원증'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해가 족히 가지요....
  • Graphite 2013/06/14 04:56 # 답글

    지금까지 당연히 진화생물학자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군요;
  • 漁夫 2013/06/14 19:49 #

    네 이 분 호구지책은 해양척추동물~~~ ㅎㅎ
  • Frey 2013/06/17 15:12 # 답글

    punctuated equilibrium의 엘드리지와 굴드는 고생물학자였죠. 이 동네에서 계속 공부를 하다 보니 느끼게 되는 건데, 결국엔 현생 연구를 참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화생물학처럼 공통으로 연구하는 분야도 나올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 漁夫 2013/06/17 18:48 #

    네. 실제 아주 유명한 사람들은 실제 사례들을 idea의 원천으로 삼는 일이 많다는 얘기지요. 실제 사례들을 깊게 고려하다 보면, 그게 자연히 이론화로 이어질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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