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15 15:18

특허의 맹점 Views by Engineer

 우선 다음 특허 두 개의 내용을 살짝 보시고...

 
USP 6,368,227
 USP 6,004,596

  Tim Harford의 논평;

  ... 좀더 중요도가 높고 비용이 많이 드는 혁신(이런 혁신의 중요성은 점차 높아져가고 있다)의 경우 시장은 오래전부터 정부의 지원, 즉 특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혁신에 특허가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다.
  기본적인 발상은 타당하다.  특허는 아이디어의 사용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함으로써 발명을 장려한다.  애초에 혁신을 장려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익이 그 독점권 부여에 따르는 비용보다 더 클 거라는 기대에서다.  특허가 실제로 이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는 대답하기 어렵다.  미국특허청은 '빵껍질 없는 밀봉 샌드위치'에 특허번호 6,004,596을 발급하거나 미네소타의 다섯 살배기 꼬마가 낸 '그네를 미는 방법'에 특허번호 6,368,227을 부여하는 등 어이없는 행태로 신임을 상실했다.  이런 자질구레한 특허는 그 자체로는 해롭지 않지만 특허청이 참신함이 없거나 연구 노력을 거의 혹은 전혀 요하지 않는 아이디어에 특허를 부여하는 시스템임을 드러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 'Adapt(어댑트)', Tim Harford, 강유리 역, 웅진지식하우스 刊, p.1

  대충 짐작이 가시겠지만 漁夫는 화공학 분야의 '업계인'으로, 직접 특허 여러 개를 써 보기도 했다(물론 다 등록되지는 않았다).  그 경험에서 보아, 漁夫는 Matt Ridley의 다음 말에 아주 많이 공감한다.

  ... 발명가들이 발명을 하게 부추기는 실질적 요인이 특허라는 증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중요한] 혁신은 전혀 특허를 받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네덜란드나 스위스는 특허 제도가 없었지만 발명가들을 끌어들였고, 이들은 거기서 꽃을 피웠다.
  그리고 20세기의 중요 발명 중에는 특허를 끝내 받지 않은 것이 대단히 많다.  자동변속 장치, 베이클라이트(합성수지의 일종), 볼펜, 휴대전화, 셀로판, 입자가속기[1], 회전나침반, 제트엔진, 자기기록기, 파워스티어링 기계, 안전면도기, 지퍼[2]....
 ... 현대의 생명공학 회사들은 신종 질병의 치료법을 개발하는 도중에 칼 샤피로(Carl Shapiro)가 '특허의 가시숲'이라고 부른 것에 자주 맞닥뜨린다.  만일 특정 물질이 인체 내에서 대사되는 경로의 각 단계마다 특허가 걸려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의학 분야의 발명가는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을 특허권자와의 협상 과정에서 모두 날려버리는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디어를 테스트해보기도 전에 말이다....
  이와 비슷한 일은 이동전화 통신에서도 일어난다.  혁신적 제품을 시장에 도입하려는 대형 이동전화 회사들은 특허의 가시숲을 싸우면서 헤쳐나가야 한다... 그 결과에 대해 어느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는 혁신이나 투자가 아니라 로비와 소송이 더 유리할 수 있다."[3]

-- '이성적 낙관주의자(The rational optimist)', Matt Ridley, 2010, 조현욱 역, 김영사 刊, p.399~400

[1] Leo Szilard는 독일에서 cyclotron에 대한 특허를 땄고, 미국에서 처음 만든 Ernest Lawrence도 특허를 땄다고 하므로 cyclotron에 대해서라면 옳지 않아 보인다.
[2] zipper는 초창기 특허가 있다.  헨리 페트로스키의 저작들을 참고.
[3] 최근의 애플-삼성 소송전이 바로 이 전형적 사례 아니겠나.

  글쎄, 나도 기술 발명자에게 적절한 인센티브를 부여하지 않으면 발명이 침체되리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현재의 특허 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는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요즘 신규 특허를 써 본 사람이라면 자기가 쓸 특허가 어떤 의미가 있을지 고민은 한두 번 해 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시숲 내에서 살짝 빈 곳을 찾아서 억지로 짜내고, 새로운 물성 분석법을 수식 써 가면서 특허에 응용하는 지경인데[4], 실제적 목적에 어떤 구체적인 이점이 있으려나?  법률적 이점 말고 말이다. 

  漁夫

 [4] 가상적 예를 들자면,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분석법으로 property X, Y를 정의하고 'Y ≤ -3X + 29'인 제품을 특허 범위로 잡는 식.  화학 제품, 특히 고분자에선 이런 특허가 심심찮게 보인다.

덧글

  • Fedaykin 2012/08/15 15:31 # 답글

    과제에서 요구하는 특허 실적을 채우기에 아주 좋....ㅠㅠ
  • 漁夫 2012/08/17 01:17 #

    하하하.
  • 피그말리온 2012/08/15 15:36 # 답글

    알박기의 시대라는 것 같기도 하고요....(긁적)
  • 漁夫 2012/08/17 01:17 #

    알박기를 조장하는 제도라면 좀 문제가 있다고 봐야죠.
  • kuks 2012/08/15 17:25 # 답글

    가시숲이라니 적절한 비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허괴물(patent troll)도 알고보면 트롤링에 가까워보이기도 하지요.
  • 漁夫 2012/08/17 01:17 #

    사실 저 책들에 더 리얼한 일화들도 나오는데 여기서 인용하지는 않았지요.
  • 긁적 2012/08/15 20:49 # 답글

    뭐든지 제도가 생겨나면 악용하려는 사람이 있게마련이죠;; 담당자들의 삽질도 생겨나기 마련이고. 요즘 특허괴물이나 애플의 소송건을 보면 특허제도의 부작용이 너무 커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 漁夫 2012/08/17 01:18 #

    그래도 요즘은 검색이 쉽고 다양해져서 트롤들을 피하기가 약간 나아진 점도 있습니다. 예전엔 이뭐병.......
  • 산마로 2012/08/15 21:07 # 삭제 답글

    특허 뿐만 아니라 지적재산권 전체에 부작용이 많죠. 재산권의 일종으로 인정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소유권을 중시하는 사상가들도 지적재산권은 이름과 달리 소유권(재산권)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죠. 한국에서는 전통적 소유권은 그리 존중하지 않으면서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을 절대시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꽤 자주 보이는데 이론적으로는 지적재산권이 전통적 소유권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액시움 2012/08/16 12:45 #

    근데 절대 대다수는 지적재산권 개념이 없다는 게 함정.
  • 漁夫 2012/08/17 01:20 #

    지재권에서도 말이 많지요. 가령 미국은 저작인접권을 저작자 사후 70년으로 늘려 버렸는데(소위 '디즈니법') 이거 은근히 부작용이 많습니다.

    어디까지 권리를 인정해줘야 하는지는 정답이 나오기 힘들지요.
  • 골든 리트리버 2012/08/15 23:50 # 답글

    하포드는 포상금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효는... 글쎄요(...)
  • 漁夫 2012/08/17 01:19 #

    포상금 제도도 나름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안을 짜내기가 참 어렵지요.
  • 노말시티 2012/08/16 11:15 # 답글

    원칙적으로는 관련 기술 종사자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기술이라면 새롭다는 것 만으로는 특허가 되지 않지만 이 기준이 그렇게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제 생각에는 기술의 참신성에 따라 특허 기간에 차등을 두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 사람이 아니어도 한 2년뒤에는 쉽게 개발될 수 있는 기술이라면 특허 기간을 2년만 주는 식으로요. 현재의 특허는 거대 자본의 영역 표시 정도로 활용되고 있는 게 현실이죠.
  • 漁夫 2012/08/17 01:21 #

    특허의 2대 요건은 잘 알려진 대로 '신규성, 진보성'입니다.
    ... 그런데 '2년 뒤에 쉽게 개발'은 객관적 기준이 나올 수가 없어요. 이 때문에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는 현실......
  • jake 2012/08/17 09:44 # 삭제 답글

    US6,368,227 그네를 "옆으로" 타는 방법 재밌네요.^^

    미국의 경우 "진보성" 대신에 "non-obvious"라는 용어를 씁니다(35 U.S.C. Article 103). 이것은 단순한 용어만의 차이는 아니(었)죠. "자명하지 않은" 것이란, "진보된" 것보단 약한 개념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운영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특허받는 것이 한국에서 특허받는 것보다 더 쉬웠죠. 최근에는 미국에서도 심사가 강화됨으로써 그 차이가 줄긴 했습니다만, 어떻든 저 그네방법에 특허를 부여하던 당시의 기준은 그러했습니다.

    그 얼마전까지의 "관대한" 기준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US6,368,227 의 청구항이 얼마나 non-obvious한지는 의문입니다. 관련 기술을 검색해 보진 않았지만, 상식적으로 보아 부실한 권리로 보여집니다. 부실한 권리는, 찾아 보면 훨신 더 많을 겁니다. 심사관도 사람인지라 종종 잘못된 일 처리를 하기도 하죠. 수백 만 개나 되는 미국 특허 중에서 1%만 부실권리라고 하더라도 몇만 건에 달하겠죠. 사후적으로 그런 특허들을 무효로 만드는 길도 열려 있구요.

    저 그네 특허도, 누군가가 굳이 무효로 만들겠다고 덤비면, 승산은 커 보입니다. 저 특허가 출원될 당시에 그네를 옆으로 타는 방법이 알려져 있었음을 보이거나, 저 정도의 응용은 (출원 당시의 견지에서) 통상의 그네타기로부터 자명했다는 것을 보이면 되겠죠. 다만, 지금까지 법적으로 그렇게 다툰 사람이 없었으리라는 짐작을 해 봅니다. 놀이터에서 그네를 옆으로 타는 아이들의 행위는, 저 특허의 유효/무효를 따지기 이전에, 침해 자체에 해당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구요(저 특허를 "사업상" 실시한 것은 아닐 테니).

    이렇게 말했지만, 부실 특허가 많은 것이 좋을 리는 없을 겁니다. 최근에는 미국도 non-obvious라는 기준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기 시작했구요(이제는 "진보성"과의 차이가 사실상 없어 보입니다). 이것은 심사관들이 분발해야 할 문제겠죠.
  • 漁夫 2012/08/18 17:43 #

    ..... 솔직히 특허 유지에도 돈이 드는데 저런 특허를 누가 '유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긴 하지요. 어쨌건 공개 기술로 흔적은 남으니만큼.

    반면 한국 특허는 발급이 훨씬 더 까다롭기로 유명했지요. 원래 특허 제도의 의미는 이편이 더 정확하리라 판단.
  • jake 2012/08/17 11:31 # 삭제 답글

    특허가 발명 자체를 증가시키지 않더라도, 이미 발명된 기술의 "공개"를 증가시킨다면, 그 효용도 별도로 계산되어야겠죠. 이 부분은 Matt Ridley의 인용문에서 간과된 것 같아서 적어 봅니다.
  • 漁夫 2012/08/18 17:45 #

    특허 제도의 취지 자체가 '공개하여도 발명자에게 이익이 가게 한다'는 것인데, 지금은 그 반대로 쓰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문제겠지요.
  • 2012/08/17 16:3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漁夫 2012/08/18 17:45 #

    잘 지내니?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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