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가축화 (2) ; 재갈의 영향 고고학

 말의 가축화 (1)의 후속편.

  앞 편에서는 고고학자 Marsha A. Levine의 의견을 다루었다.  이 분의 총합적 의견은 여기서 잘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데레이프카와 보타이 유적에서 나온 말의 이빨들이 말을 길들인 증거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 의견의 주창자는 고고학자 데이빗 앤터니(David Anthony)다.
  그러면 말의 이빨에 어떻게 길들인 증거가 남는지 궁금하실 것이다.  이유는 재갈(bit) 때문이다.
재갈이 뭔지 모르시는 분?

  재갈은 (다 아시다시피) 말의 입에 채워서 말의 동작을 제어하는 도구다.  얼핏 생각만 해 봐도, 말처럼 힘이 세고 빠른 동물의 입에 채워서 그 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는 자체가 말의 입에 굉장히 큰 힘을 가한다는 얘기다.  
  재갈의 영향을 잘 보여 주는
이 article에는 재미있는 얘기가 매우 많다.  제목부터가 그렇기도 하고 ;-)  

  1) 재갈은 말의 삼차신경 위를 바로 지나간다.  삼차신경통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고통스러운 증상 중 하나다.
  2) 세게 잡아챌 때는 300kg/cm2(무려 300기압) 정도의 힘을 말의 입에 가한다.
  3) 혀를 심하게 압박하기 때문에, 말은 지속적으로 재갈을 혀로 들어올려 압력을 줄이려 시도한다.

피가 잘 안 돌아서 혀가 퍼렇다.볼펜 장난 하다 잉크 먹은 거 아님

  아래 X선 사진은 오래 전 재갈이 아니라 현대식이지만, 붉은 네모 쳐 놓은 데를 보면 혀가 얼마나 눌리나 알 수 있다.
  이러니, 말은 혀에 걸리는 압박을 줄이려고 자꾸 혀로 재갈을 들어내려 하고, 이 과정에서 아래 그림에 보이는 첫 어금니(P2)와 재갈이 마찰하게 된다.  결국 아래 그림처럼 어금니 가장자리가 닳게 된다.  야생마에서는 이 현상이 없기 때문에, 재갈을 물린 말과 그렇지 않은 말을 이빨을 보고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위 그림은 재갈이 말의 어디에 걸리는지 보여 준다.  말의 입에서 재미있는 점은, 어금니와 앞니 사이에 이가 없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치간이개’라고 부르는데, 말의 얼굴이 길어지면서 생긴 부산물이다.  말이 풀을 먹을 때 눈을 일정 높이 이상 유지하여 주변을 계속 감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된 것이다.  이 덕에 사람이 재갈을 물려 통제할 수 있다.  이 첫 어금니의 어느 부분이 닳는지 그림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얼마나 닳아야 재갈을 물었다고 볼 수 있나?  앤터니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3mm 이상 이 부분이 닳는 현상은 연령 3~20세 사이의 이빨만 고려한다면(이 범위 밖은 발달 기형 또는 오래 거친 식물을 먹어서 생긴 자연 마모와 구분이 힘들다) 재갈 말고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 특징적 마모 현상은 보통 ‘bit wear’라 부른다.

  데레이프카에서 나온 다른 증거는 ‘cheek piece’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길쭉하고 구멍을 뚫어 놓은 도구가 몇 개 출토되었다.

  이 크기 및 모양은, 말 뺨 옆에 위치하고 재갈을 끼우는 고리로 보면 딱 들어맞는다. 
  지금이야 아래 쇠고리처럼 금속제를 쓰지만, 철기 시대 아니었던 말 가축화의 초기에 그런 게 있었을 리가.
고삐에 연결하여 재갈을 잡아당길 고리가 필요하죠

  데이빗 앤터니의 논리는 결국

  1] 데레이프카나 보타이에서는 사람들이 재갈을 사용하여 말을 탔다.
  2] 특히 보타이에서 발견된 토기를 조사하면, 말 젖 흔적이 나타난다.
  3] 당시 보타이에서는 바퀴가 발견되지 않았다.
  4] 데레이프카에서 재갈을 사용하기 위한 'cheek piece'가 발견되었다.

  이 네 가지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사람이 말을 이동 수단으로 사용한 맨 첫 시도는 '승마'지, '전차'나 '우마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 포스팅에서 Marsha Levine이 이 논리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미 했다.  Levine의 논리는

  0] 말의 사망 연령; 분포가 야생마를 사냥한 것에 가깝다.
  1] 재갈 마모(bit wear)
    * 당시의 부드러운 마구로(금속이 없었으니까), 발견된 정도의 마모 흔적이 남겠는가?
    * Anthony 등은 다른 방법으로 이런 마모 흔적이 날 수 있는지 비교 제시하지 않았다.
  2] 'cheek piece'는 다른 용도로 쓰였는지 알 수가 없으며, 주변의 다른 출토 유물과 연도 차이가 많이 난다.

  이다.  이에 대한 Anthony의 반박은 

  0] 데레이프카와 거의 비슷한 사망 연령 분포는, 로마 시대 Kesteren 유적에서도 나왔다(시대로 보아 물론 말이 길들여진 후).
     위 그림에서 보듯이, 데레이프카(보타이도 별 차 없음)의 사망 연령 분포라고 반드시 사냥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데레이프카의 이빨에는 수컷이 많다.  Stephen Budiansky의 지적처럼, 일반적으로 야생마 집단에는 암컷
   이 많기 때문에, 수컷이 많다는 것은 야생보다는 사육의 특성에 가깝다.

  2]  bit wear ; 漁夫 생각으로도 '다른 원인으로는 그런 마모가 생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는, 전세계에 야생마 집단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이상 상당히 어렵다.  조사할 수 있는 야생마 이빨 자료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 이빨을 조사하는 사망 연령 집단을 3~20세로 한정한다; 3세 이하에서는 이의 모양이 불규칙하며, 20세 이상은
       자연마모가 심하기 때문이다.
    * 현대의 여러 집단과 비교한다.  아래는 금속 재갈을 쓴 경우, 야생마, Botai, Kozhai(다른 유적지) 등을 비교했을
       때의 data다.  Botai는 확실히 야생마 집단보다 마모가 더 많다.
        * 금속 마구는 당연히 bit wear가 크다.  하지만 옛날에 사용했을 뼈, 삼, 말갈기, 가죽 등을 사용해도 착용 150시간
          정도 되면 확실하게 bit wear를 알아볼 수 있다.
  ========================

  개인적으로는 David Anthony의 생각을 선호한다.  (어차피 내가 뭐라 하건 별 의미는 없지만 -.-)
  참고로 언어학적 증거를 보면, PIE(proto-Indo-European)에서 재현된 단어에 말과 바퀴는 있지만 전차는 없다.  따라서 맨 처음에 인도유럽어 사용자가 확산되기 시작할 때는 바퀴 달린 탈것을 이용하고 기병대처럼 승마 기술은 있었지만, 전차를 이용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전차는 고고학적으로도 좀 더 후에 발명되었다고 한다.

  漁夫

 [ sources ]
  1.
http://www.naturalhorseworld.com/Downloads/ToBitorNottoBit.pdf 
  2. 
http://users.hartwick.edu/anthonyd/harnessing%20horsepower.html (David Anthony)
  3.
http://www.igloo.lv/horses/horse_behaviour.pdf (Marsha A. Levine)
  4. '말에 대하여', Stephen Budian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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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위장효과 2012/08/09 15:58 # 답글

    저 치간이개를 보고 그 사이에 뭐 넣어볼까 궁리해보고 그게 혀를 어떻게 누르는지를 파악하고 시도해본 선사시대의 선구자들은 정말 대단했...

    일단 올라타고 다니다가 다시 전차로 바꾸고 그러다 다시 기병으로 전환...결국 승마상태에서 적당하게 쓸만한 무기가 없어서 그랬던건지 아님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이게 또 사람 미치게 하는군요^^. 유명한 우르의 군기(슈타인호프님은 다른 이름을 제시하셨지만^^)에 달린 코덱스에서 보면 나귀가 끌고 가는 전차에 대한 그림은 있어도 기병은 없는 걸 봐선 선사=>역사로 넘어가는 시대어디에선가 전차를 개발하고 그 때는 기마보다 전술적으로 뭔가 우위를 가지긴 가졌을텐데 그게 과연 뭔지 궁금합니다.
    전쟁사 책들 한 몇 권을 뒤져보면 답이 나올까...그러고보니 선사시대 말을 가축화한 후 병기로 사용하게 된 단계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술이 없긴 했네요.
  • Fedaykin 2012/08/09 16:34 #

    말이 작아서 사람이 타고 오래 달리기 어려웠고, 안장이나 등자가 없어서 안정적으로 말 위에서 뭔가를 휘두루기 어려워서 전차를 발명하기 전까지 (유목민족을 제외하곤) 말은 군용으로 쓰이지 않았다, 정도가 일반적인 이론인데...

    고삐가 있었으면 당연히 사람이 위에 탔겠네요. 그럼 바퀴가 발명 안된 상황에서 말은 무슨용도로 사용했을까요?? 신기하네. 애완용르로 길렀을리는 없고.. 저당시 사람들은 말을 왜 가축화했을까요??
  • 스카이호크 2012/08/09 16:50 #

    초창기에는 말들이 작아서 전장에서 활용하기엔 부적합했다는 얘기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요. 크기가 작아 타기도 불편하고 힘도 약해서, 직접 타는 것보단 여러 마리를 묶어서 수레를 끌게 하고 그 수레를 타고 싸우게 되었다...고들 합니다.

    기마보다 수레가 우위인 점이라면야 다루기 쉽다는 것(유목민이나 말 산지에 살거나 귀족 정도나 말을 평소에 타 볼 수 있었을 겁니다. 거기다 마구도 시원찮아서 말을 다루는 난이도는 전차를 모는 것보다 훨씬 높았겠지요.), 더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는 것, 질량이 더 크다는 것 정도겠네요.
  • 위장효과 2012/08/09 17:23 #

    말의 체형...그 간단하고도 제일 중요한 걸 저는 왜 생각못한 걸까요...OTL(니가 멍청한 거지!)

    두분 고맙습니다^^.
  • 漁夫 2012/08/10 21:28 #

    all / 찾아 보았습니다만, 초기에 길들여진 말들이 크기가 얼마만한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하나 생각이 드네요. '말이 작아서 전장에서 쓰기에는 부적합하다'란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현대의 시각으로 당시 말의 크기를 보면 곤란할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당시의 말을 탄 사람들이 말이 없던 사람들보다 얼마나 이로왔을까'가 촛점이기 때문입니다. 불편했다고 해도, 말이 없는 사람과 겨룰 때는 말을 탄 편이 아무래도 훨씬 유리했을 테니까요.
  • 일화 2012/08/11 00:08 #

    all / 간단하게 검색한 결과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조상마의 체고는 대충 132센티 가량이라는 글이 있더군요( http://blog.naver.com/milumy?Redirect=Log&logNo=80018777389 ). 그에 비해 일본의 말은 110 ~ 135센티라고 하고( http://cafe.naver.com/kojphistory/2078 ), 몽고말에 기원을 두는 우리나라 제주 조랑말은 120센티가 안됩니다( http://blog.naver.com/feelfri?Redirect=Log&logNo=70124370574 ). 일단 이러한 검색결과만으로는 가축화 당시의 말이 작아서 전쟁용으로 사용되기 어려웠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 대략적인 전차의 존재시기와 소멸경위를 고려하면 전차는 어디까지나 말을 타는 기술이 떨어지는 농경민족들을 위한 무기로서 등자의 개발로 태생적인 한계가 극복되자 사라진 것으로 보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漁夫 2012/08/11 01:13 #

    일화 님 / 경솔하게도 '말에 대하여'에 있는데 깜박했습니다 -.-

    데레이프카 종마(재갈 흔적 있는 넘)의 경우 '14.2뼘' 정도라고 합니다. 여기서 원문을 찾아 보니 '뼘'은 'hands'로, 말의 크기에만 쓰는 단위라고 하네요. http://en.wikipedia.org/wiki/Hand_(unit) 를 보면 one hand = 10.62 cm(=4 inch) 이므로, 이 말은 144cm 정도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데레이프카에서 발견된 대부분의 말 크기는 12~14 뼘이니 13뼘 기준으로는 약 134 cm 정도라고 봐야 할 듯. 말씀하신 크기와 거의 같습니다. http://www.amazon.com/The-Nature-Horses-Exploring-Intelligence/dp/0684827689#reader_0684827689 여기서 15페이지를 보면, 몇 뼘의 위치 기준이 나와 있습니다.

    전차에 대해서는 약간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데, 이미 그리스-로마 시대에 오리엔트에서는 전차를 쓰고 있었으나 로마군은 전차를 완전히 버렸습니다. 하지만 중국 진나라에서 발명된 등자가 서방에 도달한 것은 중세지요. 따라서 서방에서 전차를 포기한 이유는 기병 스타일에 비해 빠른 조향이 어려웠던 점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 일화 2012/08/11 22:43 #

    어부님 / 말씀하신 조향의 어려움과 지형을 가린다는 점이 전차의 상대적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등자 발명 이후가 아닌가 싶어서 그렇게 말씀드린 것인데, 그러고보니 정확히 언제 사라졌느냐하는 시점도 잘 모르고 한 헛소리이긴 했네요. ㅡㅡ;;
  • 漁夫 2012/08/12 19:58 #

    일화 님 / 어차피 전차를 쓸 만한 회전은 평야에서 하니까 지형이 그리 크게 문제될 것은 아니었을 테고, 참고로 전차의 중량은 의외로 가벼웠다고 합니다. 표준은 30kg 이하였다고 하므로, 수레에 실어 운반하는 데 그리 크게 부담될 것은 아니었겠지요. 전 조향 쪽이 더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 일화 2012/08/09 16:06 # 답글

    이렇게 빨리 동양방송이 실현될 줄이야!! 기대했던 바를 120% 만족시키는 좋은 포스팅이었습니다. 저도 확실히 이번 논리가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네요. 기마 대 전차의 경우 두가지가 선후관계가 아니라 별도로 다른 집단에 의해서 발명된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라는 언급을 예전에 읽은 기억이 나는데, 대체로 기마는 유목민족이 전차는 농경민족이 발명한 것으로 정리되었습니다. 가까운 중국만 해도 춘추시대까지 기병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한족과 기병이 주력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북방민족들이 있으니 말이죠.
  • 漁夫 2012/08/10 22:04 #

    감사합니다. ;-)

    그런데 재갈에 의한 치아 마모는 '확증'이지 '그 때부터 말을 탔다'는 얘기는 아니지요. 재갈을 사용하지 않은 채 말을 탔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보타이의 BC 3500년 부근 연도는 '재갈을 사용한 가장 빠른 연도'지 '말을 탄 가장 빠른 연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건 보타이에서는 쌓인 말똥더미(아마도 마굿간)까지 발굴되었다고 하니, 최소한 거기선 말을 바퀴 달린 탈것을 끄는 용도로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말을 사육하고 탔다는 것은 분명하지요.
  • Allenait 2012/08/09 18:03 # 답글

    저렇게 혀를 압박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 漁夫 2012/08/10 22:05 #

    네 저도 좀 놀랐습니다.
  • shaind 2012/08/09 18:07 # 답글

    전혀 딴 이야기지만 재갈을 물리는 행위는 겉보기보다 매우 Sadistic(?)한 행위였군요.
  • 漁夫 2012/08/10 22:06 #

    말처럼 힘 세고 빠른 동물을 제어하려면, 어느 정도 고통을 주지 않고서는 어렵겠지요.
  • 얀군 2012/08/10 09:17 # 삭제 답글

    호주 원주민이나 북미 원주민들이 말과의 첫번째 접촉을 가진후 100년 이내에 독자적인 승마술을 완성한 것을 볼때, (더구나 재갈이나 안장없이!) 아마도 승마의 가능성을 발견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호주 원주민들은 심지어 현지 목장에서 카우보이로도 일했었다고 하더라구요 --;; (역시 재갈과 안장없이)
  • 漁夫 2012/08/10 22:07 #

    그래도 원주민들은 서양 사람들이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는 점이 있지요. 다른 곳의 유적에서는 오랜 기간 동안 말을 잡아먹기만 했다는 얘기도 있거든요.
  • Warfare Archaeology 2012/08/10 11:11 # 답글

    재갈이 말에게 얼마나 큰 충격(고통?)을 가하는지 몰랐는데, 저 사진 한방으로 바로! 으음~잘 봤습니다.
  • 漁夫 2012/08/10 22:08 #

    오죽하면 'To bit or not to bit' 이라는 말까지 ㅎㅎㅎ
  • 애쉬 2012/08/11 14:42 # 답글

    좋은 글 박수 한번 치고~

    말이 전쟁에 이용된 것은.... 기병을 적극 전투에 활용한 알렉산더 대왕의 업적 이전엔

    정보통신이나 척후 등 비전투적인 데 국한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말의 작은 덩지는 큰 결함이 아니였을 것 같네요 헬레니즘 시대 이후부터 카이사르의 시대 까지 대회전에도 기병대를 도입하는 전술이나 기동전이 보급되고 덩지 큰 말들이 선택된 것 아닐까요?

    전차를 사용하는 부대의 유무는... 그 국가의 경제력 차이는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집트나 아나톨리아 쪽의 국가들과 동방국가들은 엄청나게 부유했지만
    신생로마가 그 땅을 정복하기 전까지 로마는 가난한 나라였다지요

    말만 해도 중장기병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데 경보병과 중장기병 정도의 차이보다 일반기병과 전차기병의 차이는 더 더욱 컸을 것 같습니다.
    전차기병을 군사적으로 의미있을 정도로 갖출 수 있는 왕은 많지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전차를 만들 수 있는 차축을 만드는 일은 첨단 기술이였다니
    경제력+기술력(철기)이 풍부한 사회가 아니였다면 불가능한 일이였을 것입니다.
  • 漁夫 2012/08/11 16:59 #

    감사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업적 이전에도 기병과 전차는 이미 전장에서 쓰이고 있었습니다. 히타이트와 이집트가 대규모로 붙어서 (후자가 깨진) Kadesh 전투를 보십시오;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Kadesh 전차가 직접 전장에 나서는 주력이 아니었다면 저렇게 수가 많은 것을 좀 이해하기 힘들지요.

    Gaugamela 전투; http://en.wikipedia.org/wiki/Battle_of_Gaugamela
    여기서도 전차보다 페르시아 기병의 수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전투용으로 볼 수는 없지요.
  • 스카이호크 2012/08/13 00:31 #

    애쉬// 아시리아 제국부터 기병들이 전장에서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BC 1,000년 즈음부터 나타났고, 창기병과 궁기병으로 나뉘어서 운용되었다고 합니다. 창기병은 보병집단의 선두에 서서 적진을 흩어놓고 궁기병은 측면/후면 공격에 나서는 식이었죠. 등자 빼고는 후세의 방식 그대로입니다.

    전차는 다루기 쉽긴 하지만 기병에 비해 단점이 많아서 도태된 것입니다. 장점이 많지만 비싼 게 문제였다면 로마가 세계제국이 된 다음에 전차부대를 대규모로 육성했겠지요. 하지만 전차는 이미 알렉산드로스가 페르시아를 침공하는 시점에 (그때까지도 현역이긴 했지만) 이미 구식 무기체계였습니다.
  • 한우 2012/08/12 19:30 # 답글

    저렇게 혀를 압박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2)

    재갈의 구조는 꽤 단순해 보이는데, 저렇게 크게 힘을 줘서 말의 혀를 압박한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 漁夫 2012/08/12 19:56 #

    저도 이번에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지요.
  • 누군가의친구 2012/08/12 23:37 # 답글

    재갈이라는게 별것 아닌줄 알았는데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말이 나름 불쌍합니다.

    PS: 말이 일선에서는 물러났다지만, 여전히 기마경찰이라던지, 중국군 일부를 보면 그저...ㅠㅜ
  • 漁夫 2012/08/12 23:42 #

    불쌍하기는 하지요. 그런데 '말의 유전자'도 이 상황을 싫어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하고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말이 지금처럼 번성할 수 있지, Przewalski horse 같은 야생 친척은 사실상 멸종하다시피 했거든요. 재갈 없이 말을 통제하기가 상당히 곤란하니, 아마 재갈 없이는 말이 그렇게 유용하게 쓰였으리라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ps. 네 아직도 기마 경찰을 쓰는 데는 많지요? 은근히 도심에서도 빠른 속도의 이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자전거 경찰의 이점도 많더군요. 오토바이도 씁니다만 ;-)
  • 위장효과 2012/08/13 08:00 #

    80년대 중후반, 아파르트헤이트가 그야말로 극에 달한-그게 곧 끝물이었지만-시절 남아공 육군에서도 게릴라전용으로 기병대를 운용했습니다.
  • u2em 2012/08/17 17:28 # 답글

    제가 서울 경마공원에서 경주마가 입을 벌리는 것을 몇번 가까이 봤을때는 혓바닥은 저렇게 파랗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창백하긴 하지만 약간 분홍색이 도는게 전부였던 것 같은데...

    그때 재갈이 혀를 압박한다는 건 몰랐기 때문에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 漁夫 2012/08/18 18:55 #

    저게 나온 원본에서 '의외로 흔히 볼 수 있다'고 해 놓은 것을 보면 매번 보이지는 않는다는 얘기였지요.
  • 새긴믈 2016/09/07 15:45 # 삭제 답글

    마구 관련 자료를 모으고 있는데, 질문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의 데레이프카 마구 추정 유물 도면은 어디서 구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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