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5/13 16:28

오늘의 한마디('12. 5. 13) ; 완벽한 관점 Evolutionary theory


  오류는 100퍼센트의 인간이나 0퍼센트의 인간을 가정하는 것, 철학자 메리 미즐리의 이른바 '완벽한 관점(nothing-buttery)'에 매몰되는 것이다.

- 'Nature via nurture(본성과 양육)', Matt Ridley, 김한영 역, 김영사 刊, p.266

  지금 이 구절을 따온 것은 내가 이 부분을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인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트위터에서 동성애에 대한 논란을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사실 이 편이 더 크다).

  동성애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많이 드는 이유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일단 나타난 동성애 성향을 '치료'할 방법은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성향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논리다.  약간 다르게 말하면 '본성의 옹호'인 셈이다.
  그런데 동성애자 옹호에서 이것이 별로 타당한('타당한'이 그렇다면 '효과적인'이라고 해 두자)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남성이 폭력성이 높다는 것은 사실 상식에 가까운데, 그 근본 원인(근접인 proximate cause)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남성 호르몬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남성 폭력을 낮추기 어려울 것이다.  이건 '본성' 아닌가?  남성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본성이라고 옹호해 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본성이라고 억제 못 하는 것도 아니다.  포스팅이 좀 쓸데 없이 길긴 하지만, 현대 OECD 국가의 사법 체계는 남성의 살인 사망률을 적어도 1/100 이하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동성애가 본성이기 때문에 놓아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동성애를 처벌하면 문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란 주장을 반박하기 힘들기 때문에 곤란하다.  사람은 인센티브에 민감하며, '본성'이라고 해도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옹호자가 있을 리가.  '본성'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유연하다는 것을 알아 두자.

  동성애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성적 취향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으며 당사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하면 되지, 굳이 본성을 근거로 들고 온다면 별로 좋은 전략이 아니다.  그거 이상 다른 얘기가 필요한가?

  漁夫

덧글

  • 死海文書 2012/05/13 16:38 # 답글

    저도 그 정도가 딱 좋다고 봅니다. 바꿔 말하자면 '그냥 좀 냅둬라, 뭐 피해라도 주냐?' 쯤 되겠네요.
  • 漁夫 2012/05/14 09:00 #

    그렇지요. 전 사실 매춘이나 근친상간 문제에서도 입장이 똑같습니다.
  • 효우도 2012/05/13 16:50 # 답글

    되돌릴 수 없다는 말 자체가 동성애를 되돌려야 할만한 것으로 취급하는 듯한 말.
  • 漁夫 2012/05/14 09:01 #

    뉘앙스는 일단 접어두고요, 일단 저건 별로 좋은 '전략'이 아니거든요.
  • kuks 2012/05/13 17:18 # 답글

    저는 동성애에 대해서 거부감이 드는 입장인데 그렇다고 비난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입양 등의 문제에서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면 '일반인'의 손을 들어주는 정도이지요.

    사실 이에 대해서 저는 별다른 논리나 관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제한적인) 용인' 정도로 대해주고 싶군요.
  • 漁夫 2012/05/14 09:03 #

    그렇지요. 개인적으로는 권장하지는 않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해당 개개인이 control할 범위니 말입니다.

    전 사실 매춘이나 근친상간 문제에서도 입장이 똑같습니다.
  • 일화 2012/05/13 17:36 # 답글

    스티븐 핑커가 지적한 '자연적인 것은 좋은 것(올바른 것)'이다'라는 오류의 한 예로군요. 개인적으로 스캇 펙 박사의 '인간의 본성은 옷을 입은 채로 대소변을 보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가장 적절한 대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 漁夫 2012/05/14 09:03 #

    하하하 원문이 궁금하네요. ;-)
  • 이덕하 2012/05/13 18:03 # 답글

    저는 “성적 취향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으며 당사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옹호론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논리가 성립한다면 “콘돔을 사용하는 근친상간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으며 당사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기 때문에 근친상간을 반대할 이유도 없다”라는 결론에 이를 것입니다.

    저는 “동성애는 악이다”라는 명제만큼이나 “동성애는 악이 아니다”라는 명제도 그냥 도덕적 입장일 뿐이며 정당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漁夫 2012/05/14 09:07 #

    전 매춘이나 근친상간 문제에서도 입장이 똑같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가령 매춘으로 성병에 감염되거나, 근친 결혼으로 2세에 문제가 생기거나) 자신들이 책임진다는 한에서 말입니다. 전 구세대라 개인적으로 이것들과 동성애를 '권장'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하든지 말든지는 해당 개인의 책임이다'란 입장입니다.

    현대 도덕 규범이 다 그렇다시피 인간의 유전자 속에 녹아든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지요. 전 개인의 행동 자유를 존중한다는 입장에서 - 이것도 20~21세기의 도덕이지요 - 개인의 성적 자유를 존중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 댕진이 2012/05/17 15:12 #

    콘돔을 사용하는 근친상간에 대해서 그럼 콘돔의 실패율만큼 지지하시는 겁니까?
    이해를 쉽게 하기위한 비유였겠져? ㅋㅋㅋㅋ

    근친도 역시 합의에 의해서 누군가에게 피해주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빠->딸 같은 케이스는 가치관 형성이전에 세뇌 시켜버릴수 있으니 합의라 해도 진짜합의가 아닐수 있으니.
    좀더 생각해봐야 겠네요.
  • 이덕하 2012/05/13 18:12 # 답글

    “noting-buttery”는 “Nothing-Buttery”의 오자겠지요.

    “완벽한 관점”은 김한영 씨의 번역어인가요?

    http://earlyrain.org/nothbut.htm 에 따르면 “완벽한 관점”은 적절한 번역어가 아닙니다.

    “Nothing-Buttery”는 “...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관점”을 말합니다. 특히 신을 염두에 둔 말인 것 같습니다.

    메리 미즐리의 어떤 이야기가 “Nothing-Buttery”와 연결되는지도 궁금합니다. <본성과 양육>을 아직 안 읽어 봐서요.
  • 漁夫 2012/05/13 18:16 #

    지적 감사합니다. noting은 제 오타가 맞고, 번역본에는 양편 다 소문자로 되어 있습니다. 저 설명은 번역본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 외엔 아무것도 없다' 쪽이 좀 더 문맥을 적절하게 표현하겠네요.

  • dunkbear 2012/05/13 19:33 # 답글

    지금은 동성애 반대론자들의 생각이 어떤 지는 몰라도, 예전에는 그 '본성'론이 그 반대의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동성애 자체가 타고나는 것이고 따라서 치유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논리죠. 납득가
    지는 않지만 말씀대로 '본성' 운운하는 건 동성애 이슈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漁夫 2012/05/14 09:07 #

    현대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입장만 갖고도 충분히 옹호가 가능한데, 다른 것을 굳이 들여올 필요가 없지요.
  • 라임에이드 2012/05/13 20:06 # 삭제 답글

    '성적 취향이 당사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다'와 '성적 취향은 본성이다'는 정확히 반대되는 말 아닌가요?

    "동성애자는 이성애를 하지 않고 동성애를 하기로 '선택'한 사람"이라는 주장을 하고 계신건가요?
  • ihjid 2012/05/13 21:06 # 삭제

    좀 난독하신듯. 님의 말과는 별 관련없는 포스팅임.

    '타고나는 본성이니 어쩔수 없다'는 주장은 동성애 옹호주장으로 써먹기엔 별로 좋지않다는 이야기.

    본성이라도 유연성이 있으며, 많은 경우 본능이라고 어쩔수 없다고 하기보다는 사회제도 등을 통해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사례도 많다는 것.

    본능=자연=선 이라는 도식이 성립하지 않음을 생각할 때 이런식의 옹호는 좋지 않다는 이야기임.
  • 漁夫 2012/05/14 09:28 #

    라임에이드 님 /

    일란성 쌍동이의 경우에서 보듯이, 개인이 '자유로 선택'한 것은 정말 자유로운(강압을 안 받는) 환경에서도 [당연히 유전자의 영향 때문에] 의외로 좁을 수 있습니다. 떨어져 자란 일란성 쌍동이도 같은 상표의 옷, 화장품, 심지어 사소한 행동 습관까지 똑같은 사례는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이 자유 의지로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어떤 성적 습관을 가져라'고 압력을 가하지 않았다면, 이들이 간 길이 동성애건 이성애건 양성애건 '자유 선택'이지요. 그 '선택'의 이유가 뭐건 간에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이 선택 결과를 왈가왈부할 권한이 없습니다.
  • jane 2012/05/14 05:07 # 답글

    백번 동의동감합니다.
    그나저나 양육과 본성은 꼭 읽어볼 만한 책인가요? 요즘 읽을 책이 널려 있어 손을 대지 못하고 있습니다. -_-;;
  • 漁夫 2012/05/14 09:29 #

    개인적으로 같은 작가의 '붉은 여왕'이나 '이성적 낙관주의자'의 수준보다는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종류의 argument는 폭넓고 풍부하기 때문에 참고 자료로는 딱 좋습니다.
  • johndoe 2012/05/14 14:41 # 삭제 답글

    남성의 폭력성은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칠 여지가 많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허용될 정도를 제외하고는 제한하고 제재를 가하는 것이죠. 따라서 그것이 본성이라는 것도 별로 옹호될 여지가 없습니다. 게다가 폭력성을 제한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자유나 행복추구권을 그다지 침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현대 사법체계가 살인사망률을 현저히 낮췄다고 해도 남성의 폭력성 자체를 억제시켰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폭력성을 억제시켰다기보다 폭력성이 행동으로 발현되는 것을 억제시켰다고 보는게 옳지 않을까요.

    하지만 동성애와 같은 성적지향은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가 아닐뿐더러 단순히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남성의 폭력성과는 다르게 본성이라는 것이 옹호의 논리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무해한)개인의 기호나 취향도 남들이 왈가왈부 할 수 없는데, 그것이 선천적으로 형성된 거라면 옹호의 근거의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본성이라도 옹호의 근거가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는데 동성애는 전자 쪽이죠.

    '성적취향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지 않으며 당사자에게 결정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라는 말도 남을 설득하기에 좋은 논리이긴 하지만 지금껏 그것만으로 충분했다면 굳이 본성이라는 것을 가져올 필요도 없었겠죠. 또한 동성애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주로 기독교도들인데다가 그들은 타인의 취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신이 그렇게 창조하셨다'라는 말만큼 그들을 설득할 최상의 논리가 더 있을까요.
  • 漁夫 2012/05/14 23:09 #

    폭력성을 억제시켰다기보다 폭력성이 행동으로 발현되는 것을 억제시켰다고 보는게 옳지 않을까요.
    ===> 제가 현저한 의미로 현대 OECD 국가의 예를 들었습니다만, 이미 통계가 남아 있는 한으로 볼 때 16세기 이후(이 때도 수렵채집 시기보다 수치 자체는 꽤 낮음) 살인률 자체는 계속 내리막을 걷고 있었습니다. 국가 단위가 된 이후부터 계속 살인을 억제해 왔다는 얘긴데, 폭력성이 높은 개체에게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가해 왔다는 얘기도 됩니다. 아직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 보면 아무래도 이 편으로 선택이 일어나겠지요.
    물론 큰 눈으로 보면 현재 '폭력의 방아쇠를 억제'하고 있다는 말씀이 옳습니다. 아직 이런 선택 효과가 두드러질 시간이 그리 충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하지만 동성애와 같은 성적지향은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행위가 아닐뿐더러 단순히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남성의 폭력성과는 다르게 본성이라는 것이 옹호의 논리로 사용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 종교적 문제 여부가 물론 걸림돌이 되긴 할 겁니다만, 현재의 OECD 국가들에서는 어느 정도 종교를 제외하고 얘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논리만 갖고 말하자면, 제 포스팅에서 적었듯이 '본성이냐 아니냐'는 '그것을 억제하는 정책을 내야 하냐'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종교인들에게 얘기할 때는 그게 '먹히는 수단'은 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지금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네요.
  • 모모 2012/05/14 16:59 # 답글

    제가 이 문제로 토론해본 적이 있는데, 동성애 반대측 논리가 기본적으로 "자연스럽지 않은 행동이다"에서 나옵니다. 그에 대한 대응이 "동성애적 행동은 자연에서 폭넓게 나타나는 선천적 특징이다"가 되는 건 필연적이겠지요. 즉, 저런 논리가 나오는 건 기본적으로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않다"는 (멍청한) 반대논리 때문이라는 겁니다.
  • 漁夫 2012/05/14 23:17 #

    하하 멍청한 반대논리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저도 그런 때 '동물들 중에서 동성애는 일정 시기에 자주 관찰된다'고 반론을 하니 말입니다.
  • 댕진이 2012/05/17 15:17 # 답글

    동성애의 원인에 대한 가설은 많지만 확정가설(혹은 정설)이 아직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자연계 전체에서 흔하게 관찰됨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때문에 대부분의 동성애 반대론자들의 반대논리인 "자연스럽지 않다."가 반복되는게 아닌가 싶어요.
    게다가 그게 의외로 설득력이 강하지요.
    "뭐 상관없다" 같은 방관주의자들도 대부분 "내가 그 성애의 대상이 된다면 기분이 나쁘다"(순화해서)고 표현하니까요.
  • 漁夫 2012/05/17 21:59 #

    그렇지요. 말씀처럼 '정설'이 없기도 하고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대부분을 설명하는 정설'이 없다고 과학적인 설명이 힘을 잃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해답에 도달하는 설명이 여럿일 수도 있고, 'case-sensitive'인 경우라면 그에 맞는 설명이 여럿일 수 있으니까요.

    ... '자연스럽다'가 '좋다'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설명이 상당히 많이 필요한 경우가 많지요. 요즘 '자연주의자'들의 주장에는 정말 맛가게 하는 게 많기도 하고요.
  • 2012/10/24 18:45 # 삭제 답글

    "성적 취향은 당사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다"는 것은 어부님 본인의 판단 기준으로는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사회적인 주장으로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것은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성적 취향은 당사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다"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반대 여부보다 더 큰, 다시 말해서 더 범위가 넓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즉 "(동성애를 포함한 모든) 성적 취향은 당사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다"라는 명제는 동성애를 비롯한 모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성적 취향에 대한 혐오를 반대하지 않는 이상 성립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동성애 이외에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성적 취향이라고 해서 모두 사회적으로 긍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예컨대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나(아동 포르노를 즐기는 것 등) 동물과 성교를 하기를 즐기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제로 아동을 강간하거나 남의 동물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면 남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성적 취향은 당사자에게 결정 권한이 있다"는 명제는 동성애 뿐만 아니라 아동 취향이나 수간 취향까지 관계되는 더 큰 문제인 만큼 오히려 정당화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어부님이 이러한 성적 취향들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와는 별도로 동성애자들이 그런 전략을 취하지 않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 漁夫 2012/10/24 19:37 #

    해당 사회의 시각도 계속 변해 왔습니다. 한국 사회가 50년 전이었다면 홍석천이나 하리수 같은 사람이 공공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21세기 시각에서 이게 타당하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재 해당 사회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mainstream의 주장'이 반드시 합당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개인 의견을 좀 덧붙이지요;
    - 아동 포르노를 보는 것만이라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니 문제 없습니다.
    - 현실의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삼겠다면 문제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이건 미성년자의 미숙할 수 있는 판단 기준에게 성적 결정권을 맡긴 것입니다. http://fischer.egloos.com/4747635 미성년자의 법정 증거 능력에 제한이 있는 것과 같은 이유로 찬성하지 않습니다.
    - 수간 하겠다면 당사자가 거기서 병을 옮거나 하지 않는 한 문제삼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관계되는 일이 아니니 어떤 피해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Jonathan Heidt가 도덕에 대한 분석에서 상세히 예를 들었으며, 요즘 유명해진 하버드 교수의(이름이 갑자기...) 도덕 강의에서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물론 말씀하신 것처럼 수간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가'는 도덕에 관련된 문제라서 우리가 왈가왈부한다고 쉽게 바뀔 수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인권조차 처음에는 도덕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다른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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