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08 01:34

속이고 속기 책-과학

  정우성 '사람에게 속고 또 속아도 믿는다...'(중앙일보) 

  다른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는 사람을 만나보신 일이 있는가?  현대처럼 경찰과 법이 있는 국가에서도 이 특성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간주된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다른 사람을 등쳐먹는 것이 일상적인 사이코패스처럼 적극적으로 벌하지는 않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스코틀랜드 인류학자 콜린 턴벨(sic.)(Colin Turnbull)은 이크족(Ik people)으로 알려진 우간다 종족에서 태어난 아두파란 이름의 마음씨 고운 작은 소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크족은 기근으로 끔찍하게 몰락하고 있다.  이크족 도덕규범으로 아두파는 미친 아이였다.

  아두파가 미쳤다는 것은 인간이, 특히 그녀의 놀이 친구들이 얼마나 사악할 수 있는지를 그 아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두파는 놀이 친구들보다 나이가 더 많았으며 더 관대했다.  그런 점 역시 이크족의 사회에서는 미친 것으로 치부되었다.  더욱 딱한 것은 그녀는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을 주고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녀의 부모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에겐 다른 두 아이가 있었으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인 이 아이들은 완전히 '정상'이었기 때문에 부모는 아두파를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다만 아두파가 어디서 음식을 구해 그들에게 가져다줄 때는 예외였다.  그들은 아두파가 음식물을 들고 오면 와락 빼앗았다.  그러나 아두파가 움막 속으로 들어와 쉬려고 하면 그녀를 내쫓았다.  아두파가 배가 고파 찾아오면 부모는 마치 그 아이가 자기들을 행복하게 해주기라도 한 것처럼 이크족 스타일로 웃었다.

  아두파는 결국 부모에게서 쫓겨나 굶어 죽었다.

- 'Evil Genes(나쁜 유전자)', Barbara Oakley, 이종삼 역, 살림 간, p.393

  이 당시 이크족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감안해도, 그리 듣기 유쾌한 얘기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두 번 전세금을 떼였던 사람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번이라면 몰라도 (정말 재수가 없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두 번이라면, 진지하게 "사람을 좀 의심해 봐라"고 제안할 만하지 않겠는가?  세상에 천사만 살지는 않는다.  대체로 인간 사회가 살 만 하고 사기나 폭력 등의 범죄는 예외로 취급되는 경우에도 너무 사람을 믿는 경우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

  漁夫

  ps. 그러면 '경찰과 법'이 없는 국제 사회에서는 어떻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漁夫에게 이 포스팅 맨 마지막 발언 같은 말이 어떻게 들리겠냐고.  그냥 호구 인증이지.

  ps. 2. Turnbull의 책이 신빙성을 의심받고는 있지만, 일반적인 수렵 채집 사회에서 이 일화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매우 고도의 폭력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남을 무조건 믿기만 해서 괜찮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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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효우도 2012/04/08 01:55 # 답글

    헐. 이런증상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는 없나요?
  • 漁夫 2012/04/08 19:36 #

    저는 심리학 전공자가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 재미있는 점이라면, 윌리엄스 증후군 (http://en.wikipedia.org/wiki/Williams_syndrome ) 환자들에서 암시를 얻을 수 있듯이 이러한 사회적 태도는 상당히 유전자의 지배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 효우도 2012/04/08 01:58 # 답글

    어느 만화에서 나온 말이 생각나는군요. 남을 의심한다는 것은 남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남을 믿는 것은 그를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
  • dunkbear 2012/04/08 08:05 #

    라이어 게임에서 거짓말할 줄 모르는 순진한 여주인공에게 남주인공이
    언급하는 대목이군요. 저도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었습니다.
  • 漁夫 2012/04/08 19:39 #

    사람의 사회적 태도는 외지인을 혐오하고 주로 수백 명 정도가 반복 상호작용하는 구조에서 나타났습니다(그 중 적어도 10% 이상은 상당히 가까운 친족이었겠지요). 이런 환경에서 '주판알 굴리기'가 중요하지 않았을 리가 없지요.

    요즘의 연구는 심지어 1세 정도밖에 안 된 아이들도 '정의'의 감정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감정이 이렇게 일찍부터 나타난다는 것은 애초부터 이 감정을 내장시켜 놓는 편이 유리할 정도로 인간의 생활에 이 감정이 중요했음을 암시합니다.
  • kuks 2012/04/08 01:59 # 답글

    극단적 이타주의...
    예전에 제가 교양과목으로 들었던 수업내용 중에 꿀벌을 예로 든 것을 기억합니다.
    (극단적에 가까운) 이타주의로 인해 제대로 돌아가는 집단의 예로 말이지요.
  • D-Liszt 2012/04/08 15:11 # 삭제

    이른바 '사회적 곤충'의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의 배후에는,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 외에도 자신의 '딸들'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고 복종시키는 데 필수적인 페로몬의 지속적인 분비,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집단의 유지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개체의 존속 뿐만 아니라 여왕의 사망 시 reproducer의 지위를 얻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데 좀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 존재한다는 최신 연구결과도 있습지요. ^^;

    참고1)
    http://www.livescience.com/8070-termite-battles-explain-evolution-social-insects.html

    참고2)
    www.youtube.com/watch?v=yVTIn00p324
    일본 자이언트 말벌의 사례입니다만, 엄마가 페로몬을 안 뿌려주시니 새끼들이 난을 일으켜 공동체를 쓸어버립니다. ㄷㄷㄷ

  • kuks 2012/04/08 15:14 #

    D-Liszt//
    제가 사회심리학을 들으면서 대충의 집단운영형태만 들었는데, 이렇게 다른 분야의 심층분석을 보니 느낌이 새롭네요.

    자료 정말 감사합니다.
  • D-Liszt 2012/04/08 18:27 # 삭제

    kuks님/

    별 말씀을요. 저야말로 kuks님의 방대한 떡밥격파 자료에 큰 도움을 받았는 걸요. ^^;
  • 漁夫 2012/04/08 19:49 #

    제 꿀벌과 호박벌 포스팅을 보시면 좀 이해가 쉽습니다; http://fischer.egloos.com/3050963

    벌과 개미('막시류')는 성 결정 체제가 좀 독특하기 때문에, 친척 관계의 결정이 인간과는 다릅니다. 이 때 여왕벌의 짝짓기 시스템에 따라 호박벌처럼 되기도 하고 꿀벌처럼 되기도 하지요.
  • D-Liszt 2012/04/09 10:02 # 삭제

    어부 님/

    ..... 자료에 대한 제 설명이 얼마나 부적절했는지 깨닫고 있는 중입니다. ㅜ.ㅜ
    아울러 kuks님께도 죄송;
  • 漁夫 2012/04/09 23:38 #

    D-Liszt 님 / 음 저는 그렇게 이상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

    사실 '페로몬'은 여왕 측의 전략이고, 일벌 쪽의 전략은 다릅니다. '이기적 유전자'와 '모든 생물은 섹스를 한다(Dr. Tatiana's sex advice)', 그리고 '이타적 유전자(the origin of virtue)'등의 책을 보면 양편의 여러 가지 '전략'들을 아주 흥미진진하게 알려 줍니다. 벌의 경우는 그렇고, 개미의 경우는 좀 달라지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
  • kuks 2012/04/09 23:45 #

    D-Liszt님//
    아니, 저는 님의 자료가 너무 고마웠지 말입니다. ;;;

    부적절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漁夫님의 글과도 크게 대치되는 점도 못 느꼈구요.

    두 분의 자료와 설명에 저같은 문외한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Ya펭귄 2012/04/08 02:17 # 답글

    호구인증 : "식사시간이다!!! 어서 와서 다 뜯어먹어라!!!"
  • 漁夫 2012/04/08 19:50 #

    하하하하 ;-)
  • RuBisCO 2012/04/08 02:39 # 답글

    하아... 뭐 인간이 원래 그런 동물인것을... 그렇게 되지 않는게 지성인이죠.
    그나저나 글보다도 링크가 후덜덜한게 사이코패스는 빙벽에서 밀어버린다니.
    정말 간단명료하네요. 이거야 말로 진정한 오컴의 면도날이군요!!!
  • 漁夫 2012/04/08 21:23 #

    이런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지금까지 계속 문제가 되어 왔지요. 쉬운 게 없어요.

    '치료를 시도하지 않는다'는 것이 부족 사회의 방법이지요. 지금에도 '고도의 사이코패스'는 사실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 한우 2012/04/08 08:37 # 답글

    이타주의에 대한 ㅎㄷㄷ한 예시군요..
  • 漁夫 2012/04/08 21:23 #

    '이타주의만 쓰는 전략'이 털릴 수밖에 없는 예시라고나 할까요.
  • marlowe 2012/04/08 09:33 # 답글

    저게 일종의 순교자 컴플렉스는 아닐까 의문이 드네요.

    좀 다른 얘긴 데, 저는 착한 주인공이 학대 받다가 죽고 나서야 인정받는다는 스토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영화 [길]이나 [플란더스의 개]같은...)
    죽은 다음에야 그 사람의 진가를 깨닫는다는 설정이 너무 슬퍼서요.
    (예수의 생애가 대표적이겠지만요.)
  • 漁夫 2012/04/08 21:24 #

    솔직히 저 아이가 이크족의 험난한 환경에서 순교자 컴플렉스를 '배웠을' 듯하지는 않습니다. 저건 천성이라고 봐야지요.

    저도 안 좋아합니다. 사람이 돼지도 아니고 말입니다(죽은 뒤에야 '맛있다고' 칭찬해 준다는 얘기 말입니다).
  • 짜오지수시아 2012/04/08 13:31 # 답글

    일화를 보니 후진국인걸 감안해도 막장 부모인건 맞는 것 같네요. 이쪽도 막장 부모 많은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런 동네보다는 아무래도 상황이 좋다보니(저런 일이 일어났으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매장당할 거란 것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 참 좋은나라 같습니다.
  • 漁夫 2012/04/08 21:25 #

    대다수 '일반인' 들에게는 OECD 국가 환경이 훨씬 좋지요. 하지만 가령 친척이 살해되었을 때 누구가 갖는 감정인 '가해자를 내 손으로 죽이고 싶다'는 OECD 국가에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게 치러야 할 '대가'기도 하고요.
  • Alias 2012/04/08 21:41 # 답글

    천성이 악한 건 아닌데 상대방의 악의가 눈에 아주 잘 들어오는 사람이 현대사회에선 가장 좋겠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은 개인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단점이...-_-
  • 漁夫 2012/04/08 22:00 #

    악의를 관찰할 수는 있어도 항상 거기 제대로 대응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요. 아시다시피 상대방의 힘이 나보다 센 경우는 어케 해 보기가 어렵잖습니까 -.- https://twitter.com/#!/quarantineSta/status/188848749949370368
  • Alias 2012/04/08 22:15 #

    그래서 강자의 눈에 띄지 않는 회피 및 은폐, 다른 강자와 친해놓기(좀 개인적 손해를 보더라도), 이도저도 안될 경우 자폭을 위한 최후병기 준비 등 이래저래 할 게 많....-_-;

    그래도 인생을 너무 전쟁터로만 보는 건 좀 그렇죠...적어도 한국은 가정집에서 "불침번" 을 서야 하는 세상은 아니니까...;;;
  • 漁夫 2012/04/08 22:26 #

    네 한국은 그 정도로 막장은 아닙니다. 한국의 범죄율 자체는 절대 높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고 전반적 치안 상태도 훌륭한 편이니까요.

    그런데 아직 한국은 일반적 사회적 신뢰도가 현저히 낮다고 알고 있습니다.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서요. 뭐, 한국이 그 동안 발전해 온 속도를 생각하면 너무 기대가 큰지도 모릅니다.
  • 지뇽뇽 2012/04/09 10:57 # 답글

    원만성(갈등을 싫어하고 사람들을 의심하지 못하고 누구에게나 잘 해주고..)이라는 성격 특질이 높은 사람들이 사기를 잘 당하는 편이라는 연구가 있다는데 데 그 생각이 나네요ㅎㅎ
  • 漁夫 2012/04/09 11:03 #

    윌리엄즈 증후군의 경우에서 보듯이, 사람을 잘 의심하지 못하는 특성도 상당 부분 유전자로 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무섭지요. 뭐, 성격의 유전성이 대부분 50% 부근이란 것을 생각하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닙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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