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07 00:01

평범한 일상; 수도꼭지 직업 얘기

  즐겁게 살기(초록불 님)에서 리처드 파인만의 이런 일화가 나온다.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는 것을 보았는데, 무엇이 물줄기의 곡선을 결정하는지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것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알고 보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연속성과 중력만 이해하고 조합할 수 있으면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으로 풀 수 있다) [1].  물론 파인만의 경우 고등학교 때 생각해서 스스로 답을 찾았다는 것이 대단하지만 말이다.

  여담으로 직업 얘기 하나만 덧붙이자.  고분자 가공에서 자주 있는 것처럼, 어떤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녹은 고분자를 흘려보내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어느 정도 수준의 분자량과 속도 범위에만 들어온다면, 거의 아래와 같이 보일 것이다.

  보통으로 살살 틀어 놓은 물이 흐르는 수도꼭지와 뭣이 다른지는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

  이 현상이 - 보통 'die swell'이라 부른다 - 나타나는 이유는 고분자의 '형상 기억 능력' 때문이다.  도관에 물을 흘리건 고분자를 흘리건 유체는 도관 벽에 압력을 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벽이 없어질 경우 이 압력 때문에 유체는 벽이 있던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물은 자신이 '도관 안을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거의 즉시 잊어버리기 때문에 상당한 고압이 아니라면 도관에서 나오자마자 저렇게 부풀어오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고분자는 물보다 '기억 시간'이 훨씬 길기 때문에, 사람 눈에 띨 정도로 부풀어오르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2]  

  漁夫

 [1] 이 포스팅에서 언급했던 Halliday 물리 교과서에서 나온 문제로 기억한다.  힌트를 좀 드리면;
   * 어느 높이에서 같은 시간에 지나가는 물의 양은 항상 똑같아야만 한다. (continuity condition)
   * 여기서 물은 자유낙하한다.
  이 두 가정만으로 풀 수 있다.  물론 공기 저항은 없다고 가정해야 한다.

 [2] 이 분야에서 널리 알려진 다른 현상 하나를 설명하려면, 이 포스팅의 방법이 아니라 (좀 더 전문적인) 방법을 쓰는 편이 훨씬 쉽다.  하지만 이 방법은 너무 전문적이기 때문에 이 포스팅에서는 제외한다.

덧글

  • kuks 2011/11/07 00:12 # 답글

    문외한으로서 질문드리자면 표면장력과는 관련이 없는지요?
  • shaind 2011/11/07 00:55 #

    표면장력은 이 물줄기가 (방울방울 끊어지기 전까지) 얼마만큼 가늘어질 수 있는지와 더 관계가 깊습니다.
  • kuks 2011/11/07 01:47 #

    shaind님, 답변 감사합니다.
    저는 물줄기가 가늘어지는 것이 중력가속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문외한에게는 너무 어렵네요.
  • 漁夫 2011/11/07 20:20 #

    kuks 님 / 가늘어지는 것은 중력 때문이 맞습니다. shaind님의 풀이를 보시면.......

    shaind 님 / 아니 거기서 그런 거 생각하셨나요? 우와!
  • kuks 2011/11/08 01:37 #

    漁夫님, 무슨 말인지 알았습니다. 겨우 이해했다는... ㅋㅋㅋ
  • shaind 2011/11/08 21:39 #

    뭐, 야수베가스™였으니까요. 자대에서는 "내무반 책꽂이에 있는 책을 본다" 같은 행동도 불가능했을테니;
  • RuBisCO 2011/11/07 00:13 # 답글

    부풀어 오르는 이유를 관을 타서 흐르다가 끝 부분을 따라려다 그리 된거라고 생각했던 저는 역시 돌이었군요[...]
  • 漁夫 2011/11/07 20:20 #

    하하 그건 이번엔 관계가 없었어요 ;-)
  • 초록불 2011/11/07 00:14 # 답글

    헐헐... OTL
  • 漁夫 2011/11/07 20:22 #

    이건 그렇다 쳐도 '관심사를 파들어가는 데는 이번 여행으로 충분했다'고 말한 Werner Heisenberg를 보면 ㅎㄷㄷ이죠. Heisenberg는 휴가 여행을 떠나서 며칠 동안에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의 수학적 체계를 만들어 냈다고 전합니다. 물론 그 전에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긴 했습니다만.
  • 일화 2011/11/07 01:34 # 답글

    예전에 '재미있는 물리여행'에서 관련 내용을 읽고 한참 고민끝에 이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저 책 덕분에 인문계 수준에서는 과학으로 머리를 싸맨 기억이 없었다는...
  • 漁夫 2011/11/07 20:23 #

    의외로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는 아니지요 ^^;;
  • Quency 2011/11/07 02:10 # 답글

    아 1번은 학생시절 유체역학 중간고사 문제로 나왔던건데 또 만나게 되니 반갑습니다. 그 문제는 좀 더 쉽게 해서 꼭지로부터 d거리에 있는 물줄기의 면적을 구하는 문제였었죠. 글구보니 그 때의 문제는 문제 자체에 교수님이 힌트를 넣어주신거였었네요.
  • 漁夫 2011/11/07 20:23 #

    하하 힌트를 좀 주셨네요 ^^;;
  • LEEY 2011/11/07 03:45 # 답글

    미세유체 중간고사에서 본 문제인데
    진짜 연속성이랑 중력만 알면 되요.

    flow rate을 instantaneous flow area * flow velocity로 보고, 수도꼭지에서 일정한 flow rate으로 물이 나옵니다.

    수도꼭지에서 유속보다 밑에서 유속이 더 빠릅니다. 중력에 의해 가속했지 떄문이죠.

    flow rate은 일정한데 유속이 빨라지니 면적이 좁아져야 하고, 그 결과로 흐름 형태가 아래로 갈 수록 좁아지죠.
  • 漁夫 2011/11/07 20:24 #

    그렇지요. 하지만 저기서 연속방정식을 생각해 내는 것은 어느 정도 비슷한 문제에 경험이 있어야 하겠지요.
  • RedPain 2011/11/07 08:07 # 답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_-)/

    분자가 뭔가 기억을 한다는 건 당연히 말이 안 되니, '형상 기억 능력'이란 의인법으로 사용된 것인데.. 이런 현상이 왜 나타나는 건가요? 즉, 고분자가 물보다 '기억 시간'이 긴 이유는 뭔가요?

    제가 볼 때, 물은 압력에 의해 부피가 거의 변하지 않고 고분자는 상대적으로 압력에 의해 부피가 조금 더 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를 해봅니다. ;;;
  • 漁夫 2011/11/07 20:28 #

    가장 간단하게 말해서 고분자 용융체(polymer melt)는 물보다 고체에 훨씬 가깝습니다. 물은 수소 결합이 좀 있다고 해도 결합은 약하지만, 고분자는 분자량이 대략 적어도 10,000이상 되는 것들이 모여 있지요.

    우리가 고체에 대해 얘기할 때 가장 두드러지는 특성은 '(특정) 모양을 오래 유지한다'는 점입니다. 반면 액체는 옮겨 담자마자 용기 모양에 맞춰 거의 순식간에 모양이 바뀌지요. 이 때문에 물은 모양을 '금방 까먹는' 반면, 물보다 고분자는 고체에 훨씬 가깝기 때문에 모양을 오래 기억합니다.
  • shaind 2011/11/08 21:38 #

    압력에 의해 부피가 변한다는 말씀은 묘하게 핵심을 찌르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면 부피가 변하는 것은 탄성변형의 전형적인 특성이니까요. 그리고 형상 기억은 근본적으로는 탄성에서 기인하는 현상이니까......
  • RedPain 2011/11/08 22:09 #

    어부님// 제가 화학에 개념이 없어서 이해하기 힘드네요. "고분자 용융체는 물보다 고체에 훨씬 가깝습니다"라는 말씀은 단순히 "모양을 유지하려는 힘이 세다"라고 받아들이면 되나요? 혹시나 "모든 분자는 고체 상태, 액체 상태, 기체 상태 등을 가진다. 즉, 고체와 액체 중간 어디쯤 되는 상태는 매우 특수한 조건에서만 존재한다"라는 제 상식을 깨는 말씀이실까봐 한 번 여쭈어봅니다.
    그리고 "물은 수소 결합이 좀 있다고 해도"라는 말씀은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의 결합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 그리고 분자량이 클 수록 형상 기억 능력이 높아지나요? or 그런 경향이 존재하나요?

    덧. 이 덧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질문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비전공자가 단 몇 줄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것 같군요. ;; 답변 감사합니다. 꾸벅.
  • RedPain 2011/11/08 22:15 #

    shaind님// 탄성..... 저..점성 아닌가요? ;;;

    덧. 제가 묘하게 핵심을 잘 찌른답니다. (먼산)
  • 漁夫 2011/11/08 22:41 #

    RedPain 님 / 우선 수소 결합(hydrogen bonding)의 의미에 대해서는 http://ko.wikipedia.org/wiki/%EC%88%98%EC%86%8C_%EA%B2%B0%ED%95%A9 여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네, 여기서 '고체성(solidity)'는 '모양을 유지하려는 경향'으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극단적으로 분자량이 커지는 curing의 경우(이 경우, 눈으로 보는 크기의 고분자 물체 대부분이 문자 그대로 '한 분자'가 되기 때문에 실제 분자량은 무한대가 됩니다) 실제적으로 고체나 다름 없습니다. 심지어는 가열해도 전혀 녹지 않게 되지요. 분자량이 커지면 일반적으로 형상 기억 능력이 높아진다고 보아도 됩니다.

    shaind 님 /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금속 등 저분자 물체와 고무 등 고분자 물체의 탄성은 의미가 약간 다릅니다. 후자의 경우 상온에서 상당한 길이만큼 늘어나도 탄성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에너지 탄성이 아니고 엔트로피 탄성이지요.
  • RedPain 2011/11/09 08:08 #

    어부님/ 답변 감사합니다. 꾸벅.

    curing... 눈에 보이는 것이 한 분자라니 신기하네요. 그러니 열을 아무리 가해도 당연히 액체가 될 수 없겠죠. 분해는 가능하겠지만..
  • 긁적 2011/11/07 08:34 # 답글

    ㅇㅇ 단위시간당 단위면적을 통과하는 유체의 양이 내려갈수록 빨라지니까(유속증가) 면적을 줄여야 하죠. ㅇㅅㅇ.
    는 철학과 학생. (이라지만 스피릿은 공돌공돌)
  • 漁夫 2011/11/07 20:28 #

    네, 맞습니다. ;-)
  • 단순한생각 2011/11/07 09:14 # 삭제 답글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가슴으로는 잘 이해가 안되는 한사람입니다.(...)

    확실히 교양 물리는 2003년 이후로 거의 만지질 않아서 한참을 읽어봐야 뜻이 이해가 가는군요. T_T
  • 漁夫 2011/11/07 20:29 #

    생물학에서도 요즘에는 물리 관계 개념을 사용하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 Ya펭귄 2011/11/07 10:16 # 답글

    뭐 물 자체는 기본 유체역학에서 클리어 가능할 듯한.....

    관 토출 부위에서 두꺼워지는 현상은 일종의 수력도약....
  • 漁夫 2011/11/07 20:30 #

    하하 수력도약이라기엔 좀..........
  • Ya펭귄 2011/11/09 16:11 #

    아, 저거 수력도약 아니었네요.... 착각을....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 qwerty 2011/11/07 11:16 # 삭제 답글

    die swell이 일어나는 이유는 고분자 물질이기 때문 아닌가요.
    관에 들어가기전 자유롭게 얽혀있던 고분자 사슬들이 관에 들어가면 분자 배열이 생겨나서 엔트로피 감소.
    관에서 나오는 순간 본래의 마구 얽혀있던 형태로-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쪽으로- 되기 위해 팽창.
    통과하는 관이 길어질 수록 이 현상이 약해짐.
    ...이라고 배웠던 것 같네요.
  • 漁夫 2011/11/07 20:32 #

    네, 제가 적은 것은 그냥 '한 단계 낮은 수준'의 설명이고, 정말 미시적으로 들어가려면 엔트로피로 인한 탄성(elasticity)이 들어가야지요. 거기서 나오는 것이 제가 tag로 달아 놓은 normal stress.

    이유가 무엇이건 보통 저는 'polymer melt는 물보다 훨씬 고체에 가깝다'고 설명하고 normal stress 및 탄성은 그에 따라 나온다고 얘기합니다.
  • S 2011/11/07 13:21 # 삭제 답글

    YR, 슬슬 하라고 하지 않았냐.. 릴랙세이션 나왔으니 데보라 넘버로 연결시키고 바이블 이야기도 곁들이면 좋아하는 사람들 많겠다. -_-
  • 漁夫 2011/11/07 20:33 #

    허허허 여기서 업계인 수준의 설명을 하기는 무리 아니야!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내부 포스팅 검색(by Google)

Loading

이 이글루를 링크한 사람 (화이트)

833

통계 위젯 (화이트)

9103
369
12893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