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분들이 아실 만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은 (무엇보다도 경제력으로) 유럽의 강국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탈리아 본토에서 나중에 획득한 영지(terra ferma)를 합쳐도 인구수로는 신성로마 제국이나 프랑스, 터키 등의 1/10 수준밖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외교가 결정적으로 중요했다. 군사적으로(=쪽수로) 상대방을 압도할 능력이 안 되면 외교가 첫째 수단일 수밖에.
1525년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 왕 프랑스와 1세가 신성로마 제국 카를 5세에게 사로잡혔다. 카를 5세는 당연히 베네치아에게 승자인 자기 편으로 붙으라고 종용했다. 이 때 베네치아의 통령(doge) 안드레아 그리티의 대답이;
두 분을 모두 제가 잘 알고 지냈으니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구려. 승자하고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패자와는 같이 울도록 하겠소.
[ source; '바다의 도시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정도영 역 ]
漁夫
ps. 물론 베네치아의 1000년 역사에 이런 대규모 성공작만 있진 않다. 기념비적인 실패 사례도 물론 있다. 하지만 외교로 먹고 사는 생활을 수백 년 한 만큼 그들의 art에는 일반인이 알아 두면 좋은 것이 당연히 많다.
덧글
양식이란 행동의 주도권을 쥐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물론 고금에 군사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들었다는 말은 맞습니다만, 옛날 수렵채집 위주 비정착 민족을 빼고는 대부분의 남성이 군대에 나갈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정착 생활이 되고 난 다음에는 많아 봐야 남성의 1/5~1/3 이상 군대로 데려가기가 힘들지요. 현대 미군처럼 기계화가 진행된 경우래도 이라크 완전 '정복 후 정착'에 실패한 채로 철수한 사례를 보더라도, 적정 '쪽수'는 꼭 필요합니다. 당시 베네치아는 본토 주민을 빼고는 인구가 15만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최대로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이 2만을 넘기 힘들었지요. 인구가 1600만이라던 터키 및 프랑스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2. 북한의 외교가 항상 성공만 거둔 것은 아니다! 라며 전직외교관 한 분께서 북한외교실패사례를 잔뜩 모아 책을 한 권 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하겠죠. 결국은 국가단위 떼쓰기인 벼랑끝전술이 항상 통할리가. 하지만 슈퍼파워 하나만 바라보고 잘 봐 주십쇼로 일관한 외교가 나름 슈퍼파워 둘 사이에서 야바위해가며 스킬습득 랩업한 외교를 까는건 좀 우습달까요. 북한은 외교관들의 역량이 아니었으면 옛날에 결단났을거라는 의견도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2. sonnet님도 기본적으로는 우리 나라의 외교를 '배짱이 부족하다'고 지적하시지요. 그리고 저는 '동북아 균형자론'을 한국 외교의 전형적인 방향착오 사례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말씀처럼, 북한은 줄타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둘이었지만 한국은 하나 뿐이었고 지금도 그런데 '둘로 착각'했으니 말입니다.
북한은 서희를 닮아 담판모드를 좋아하나 봅니다.^^우리 대통령 처럼 비굴모드가 아닌 ^^
그리고 서희가 담판한 상대처럼 우리 나라가 미국하고 그렇게 대등하게 놀 수 있는가요?
레판토에서 이겼지만 결국 투르크와 화해, 투르크 침공에 거점을 잃고도 배상금을 지불하고 화해...
asianote님이 말씀해 주신데로 지면 거점잃고 배상금물고 화해, 이기면 이긴대로 배상금 물고 화해...
전사와 상인의 외교에서 결국 이기는 것은 전사라는 실례가 아닐지....
게다가 터키는 지금의 미국처럼 희생이 생기면 정권이 바뀔 수 있는 나라가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베네치아는 큰 희생을 계속 감수할 수 없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