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6 21:56

Titus Livius; 로마사 21권 ㄴLivius 'Ab urbe condita'

  로마사에 대한 현대 서적들을 보다 보니, 원사료들이 궁금하여 우선 Livius(Livy)의 로마사(원제는 Ab Urbe condita로 기억)를 올립니다.  물론 번역은 제가 시간 남으면 해 보는 거니만큼 규칙적으로 꾸준히 올라올 거라는 생각은 포기하시는 편이 ;-)  사실 Polybius 쪽을 먼저 하고 싶었지만 먼저 잡은 link가 이거라서.

  여기 번역된 판본이 1800년대 초반의 것이라 그런지, 원문 라틴어가 그래서 그런지 문장이 그리 쉽지 않고 길게 늘어지는 바람에 번역이 발번역... 당근 질은 보장 못 하고 두세 번 다듬은 것도 아닙니다만 일단 감안하고 봐 주십시오.  당연히 source link도 넣어 드리니 필요하시면 참고 요망.
  
  Source는 
http://www.gutenberg.org/files/10907/10907-h/10907-h.htm#book21

 ===

 BOOK XXI.

 B.C. 219-218

 

 1~63절


 [ 요약 ] 
 

 Origin of the second Punic war. Hannibal's character. In violation of a treaty, he passes the Iberus. Besieges Saguntum, and at length takes it. The Romans send ambassadors to Carthage; declare war. Hannibal crosses the Pyrenees: makes his way through Gaul; then crosses the Alps; defeats the Romans at the Ticinus. The Romans again defeated at the Trebia. Cneius Cornelius Scipio defeats the Carthaginians in Spain, and takes Hanno, their general, prisoner.

 포에니 전쟁의 기원.  한니발(Hannibal)의 특성.  조약을 깨고 에브로 강(the Iberus)을 건넜다.  사군툼(Saguntum)을 포위하고 마침내 함락했다.  로마는 특사들을 카르타고로 보냈으며 전쟁을 선언했다.  한니발은 피레네 산맥(Pyrenees)을 지나고 경로를 갈리아(Gaul)로 잡은 후 알프스를 넘었다.  로마군을 티치노(Ticinus)에서 격파했고 트레비아(Trebia)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나이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Cneius Cornelius Scipio)는 카르타고인을 스페인에서 격파했고, 대장 한노(Hanno)를 포로로 잡았다.

 

        *        *        *        *        *

 

 1 I may be permitted to premise at this division of my work, what most historians [12] have professed at the beginning of their whole undertaking; that I am about to relate the most memorable of all wars that were ever waged: the war which the Carthaginians, under the conduct of Hannibal, maintained with the Roman people. For never did any states and nations more efficient in their resources engage in contest; nor had they themselves at any other period so great a degree of power and energy. They brought into action too no arts of war unknown to each other, but those which had been tried in the first Punic war; and so various was the fortune of the conflict, and so doubtful the victory, that they who conquered were more exposed to danger. The hatred with which they fought also was almost greater than their resources; the Romans being indignant that the conquered aggressively took up arms against their victors; the Carthaginians, because they considered that in their subjection it had been lorded over them with haughtiness and avarice. There is besides a story, that Hannibal, when about nine years old, while he boyishly coaxed his father Hamilcar that he might be taken to Spain, (at the time when the African war was completed, and he was employed in sacrificing previously to transporting his army thither,) was conducted to the altar; and, having laid his hand on the offerings, was bound by an oath to prove himself, as soon as he could, an enemy to the Roman people. The loss of Sicily and Sardinia grieved the high spirit of Hamilcar: for he deemed that Sicily had been given up through a premature despair of their affairs; and that Sardinia, during the disturbances in Africa, had been treacherously taken by the Romans, while, in addition, the payment of a tribute had been imposed.

 

 1. 내 작업의 이 부분에서 전제를 밝혀도 될 것인데, 거의 모든 역사가들이[12] 그들의 전체 작품의 시작에서 고백했던 것이다; 나는 한니발의 지휘 아래 카르타고인과 로마인 사이에 벌어졌던 모든 전쟁에서 가장 기억할 만한 것을 관계지으려 한다.  어떤 국가도 대결에서 자원을 동원하는 데 더 효율적이지 않았을뿐더러 힘과 에너지를 쓴 정도도 그 때보다 더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전쟁의 기술을 도입했지만 1차 포에니 전쟁 때 처음 시도한 것들이다; 그 전쟁의 운은 아주 다양했고 승리는 불확실했으며, 정복한 사람들은 더 위험에 노출되었다.  그들은 (그들이 동원한) 자원보다 거의 더 큰 증오를 갖고 싸웠다; 로마인들은 피정복자가 승자에 대항하여 무기를 공격적으로 잡은 점에서 분개했으며, 카르타고인들은 그들이 항복할 때 그것이 거만함과 탐욕으로서 자신들을 지배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뒷이야기가 있는데, 한니발(Hannibal) - 9세 때 아버지 하밀카르(Hamilcar)가 자신을 스페인으로(아프리카 전쟁이 끝났을 때 하밀카르는 군대를 거기로 이동하는 데 전에 헌신했다) 데려가도록 졸랐다 - 제단으로 이끌려 갔다; 그리고 제물 위에 손을 얹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언약을 세웠는데, 가능하면 곧 로마인의 적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시칠리아와 사르데냐의 손실은 하밀카르에게 큰 슬픔을 주었는데, 그가 전쟁에서 너무 일찍 절망해서 시칠리아를 포기했으며, 아프리카의 소요 기간 동안, 덧붙이자면, 배상금을 지불하고 있었는데도 사르데냐를 로마에게 기만적으로 빼앗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Footnote [12]: Thucydides seems to be specially referred to.

 [12]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특별히 언급한 듯하다.

 

 2 Being disturbed with these anxieties, he so conducted himself for five years in the African war, which commenced shortly after the peace with Rome, and then through nine years employed in augmenting the Carthaginian empire in Spain, that it was obvious that he was revolving in his mind a greater war than he was then engaged in; and that if he had lived longer, the Carthaginians under Hamilcar would have carried the war into Italy, which, under the command of Hannibal, they afterwards did. The timely death of Hamilcar and the youth of Hannibal occasioned its delay. Hasdrubal, intervening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held the command for about eight years. He was first endeared to Hamilcar, as they say, on account of his youthful beauty, and then adopted by him, when advanced in age, as his son-in-law, on account of his eminent abilities; and, because he was his son-in-law, he obtained the supreme authority, against the wishes of the nobles, by the influence of the Barcine faction, [13] which was very powerful with the military and the populace. Prosecuting his designs rather by stratagem than force, by entertaining the princes, and by means of the friendship of their leaders, gaining the favour of unknown nations, he aggrandized the Carthaginian power, more than by arms and battles. Yet peace proved no greater security to himself. A barbarian, in resentment of his master's having been put to death by him, publicly murdered him; and, having been seized by the bystanders, he exhibited the same countenance as if he had escaped; nay, even when he was lacerated by tortures, he preserved such an expression of face, that he presented the appearance of one who smiled, his joy getting the better of his pains. With this Hasdrubal, because he possessed such wonderful skill in gaining over the nations and adding them to his empire, the Roman people had renewed the treaty, [14] on the terms, that the river Iberus should be the boundary of both empires; and that to the Saguntines, who lay between the territories of the two states, their liberty should be preserved.

 

 2. 이 근심에 영향을 받아, 그는 로마와 평화를 찾은 후 바로 시작한 아프리카 전쟁에서 5년 동안 그렇게 행동했으며, 다음에는 스페인에서 카르타고 제국을 확장하는 데 9년 간 몰두했다.  그가 그 때 하고 있던 것보다 더 큰 전쟁을 숙고했으며, 만약 더 살았다면 한니발의 지도 아래에서 다음에 감행했던 이탈리아 침략 전쟁을 하밀카르의 지휘로 카르타고인이 했을 것임은 명백하다.  때맞은 하밀카르의 죽음과 한니발의 젊은 나이는 전쟁을 지연시켰다.  부자 사이에 끼어 있는 하스드루발(Hasdrubal)은 지휘권을 약 8년 간 쥐고 있었다.  사람들의 얘기에 따르면, 젊었을 때의 준수함 때문에 그는 하밀카르에게 지목받았고, 나이가 먹어서는 두드러지는 능력 때문에 그가 사위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그가 사위였기 때문에, 귀족들의 의사에 반해 군대와 대중에서 매우 유력한 바르카 그룹(Barcine faction)의 지지를 얻어[13] 최고 지휘권을 얻었다.  그는 힘보다는 오히려 계략으로, 왕자들을 즐겁게 하여, 그들의 지도자와 친선 관계를 맺어 계획을 추진하고, 미지의 나라들의 호의를 얻어, 무력과 전투보다 (그런 방식으로) 카르타고의 힘을 성장시켰다.  그러나 평화는 그 자신에게는 더 안전하지 않았다.  한 야만인이 그의 주인이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것에 불만을 품고 공개된 장소에서 그를 죽였다; 목격자들이 공포에 사로잡혔지만 그(하스드루발)는 피해 나온 것처럼 똑 같은 얼굴을 유지했다.  그게 아니라, 고문으로 찢겼을 때도 고통을 기쁨이 능가하는 미소짓는 그 표정을 계속 보여 주었다.  하스드루발이 국가들을 그의 제국에 (우호 관계로) 더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로마인들은 그와 조약을 갱신했고, 그 문구에 에브로 강이 두 제국 사이의 경계며, 두 나라 사이에 있는 사군툼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말이 있다.<1>

 

 Footnote [13]: The Barcine faction derived its name from Hamilcar, who was surnamed Barca. Hanno appears to have been at the head of the opposite party.

 [13] 바르카 그룹은 바르카(Barca)란 하밀카르의 (가문) 이름에서 왔다.  한노는 반대 당파의 수장으로 보인다.

 

 Footnote [14]: A.U.C. 526, thirteen years after the conclusion of the first Punic war, being the sixth treaty between the Carthaginians and Romans. The first was a commercial agreement made during the first consulate, in the year that the Tarquins were expelled from Rome; but is not mentioned by Livy. The second is noted by him, lib. vii. 27, and the third, lib. ix. 43. The fourth was concluded during the war with Pyrrhus and the Tarentines, Polyb. V. iii. 25: and the fifth was the memorable treaty at the close of the first war.

 [14] A.U.C. 526(Ab Urbe condita, BC 753 로마 건국 후 526) 1차 포에니 전쟁 종료 13년 후에, 카르타고와 로마 사이의 여섯 번째 조약이다.  첫째는 집정관 1대 시기에 - 타르퀴니우스(Tarquin)가 로마에서 쫓겨는 해 - 맺어진 상업 합의며 리비우스가 언급하지 않았다.  둘째는 리비우스가 7 27(vii. 27)에서 언급했고, 셋째는 9 43(ix. 43)에서 언급했다.  넷째는 피루스(Pyrrhus)와 타렌툼 인(Tarentine)과 벌인 전쟁을 끝낸 조약이다(Polybius V. iii. 25).  마지막 다섯째는 1차 포에니 전쟁 종료를 결정한 기억할 만한 조약이다.

 

 어부 주 <1> 이 조약에 사군툼에 대한 언급이 있는지는 역사가들의 언급이 일치하지 않는다.  한 예로, 이 시대에 더 가까운 저자인 폴리비우스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리비우스가 이렇게 기술한 데는 로마의 행위를 변명하기 위해서였을 가능성이 크다.

 
  漁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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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ane 2011/09/26 22:39 # 답글

    오오 어부님은 능력자이십니다...ㄷㄷ
  • 漁夫 2011/09/28 21:59 #

    어흑 진짜 능력자들이 웃습니다 ㄷㄷㄷㄷ
  • 한우 2011/09/26 22:48 # 답글

    오오 어부님은 능력자이십니다 (2)
  • 漁夫 2011/09/28 21:59 #

    어흑 진짜 능력자들이 웃습니다 ㄷㄷㄷㄷ (2)
  • asianote 2011/09/27 08:42 # 답글

    진화심리학, 음악 덕후인줄로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역사에도 조예가 깊으시군요. 참으로 앞에 분들 말씀대로 능력자입니다. 거기에 어동동지도 있으니 진화적으로도 승리자...
  • jane 2011/09/27 20:55 #

    asianote님도 남말할 입장이 아니실텐데요.-_ㅠ 흑흑...
  • 漁夫 2011/09/28 22:03 #

    어흑 진짜 능력자들이 웃습니다 ㄷㄷㄷㄷ (3)

    진화적으로는 '1/2 승리자' 죠. 어동 하나뿐이니까요 ;-)
  • asianote 2011/09/28 22:05 #

    어부 님 // 100%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방법은 자웅이체 생물에게 없는걸로... 그나마도 여성동지들에게 가끔 처녀생식이 나타난다고 하지만 어쨌든 수컷은 절대 불가능한 미션입니다!
  • 漁夫 2011/09/28 22:17 #

    뭐 그래도 n=2면 '거의 다 전했다 나는 유전자 전달 지상명령을 명목상으로는 완수했노라'고 묘비명을 쓸 수 있을 듯하니... ㅎㅎㅎㅎ
  • ameling 2011/09/27 18:07 # 답글

    오오 어부님은 능력자이십니다 (3)
  • 漁夫 2011/09/28 22:03 #

    어흑 진짜 능력자들이 웃습니다 ㄷㄷㄷㄷ (3)

    이거 다음 문단은 정말 짜증나서 슬슬 싫증이.
  • kuks 2011/09/27 23:02 # 답글

    오오 어부님은 능력자이십니다 (iv)
  • 漁夫 2011/09/28 22:03 #

    어흑 진짜 능력자들이 웃습니다 ㄷㄷㄷㄷ (3)
  • 빤스지기 2011/09/30 02:16 # 삭제 답글

    오우 노력하신것이 눈에 다 보입니다.
    하시는 김에 기타 다른 로마사 1차사료도 좀해보시죠
    원하시면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던 베게티우스, 프론티누스의 전략론,
    폴리비우스. 카시우스 디오.
    케사르의 아프리카전쟁기, 스페인 전쟁기
    등등을 전부 웹 자료로 보내드리죠.
    대신에...
    전부 번역 하시길 (??)

    답변은 제 블로그로 오셔서 좀 해주시구요
    ㅋㅋ 너무한가?
  • 漁夫 2011/09/30 08:46 #

    kuks님께 소개는 들었습니다. 대단하신 로마 시대 애호가라고 들었지요 ;-)

    저도 말씀하신 것들의 source가 어디 있는지는 대충 아는데, 번역을 구하기는 힘들더라고요. 당장 이거 하나만 해도 19세기 문장의 극악함을 실감 중이래서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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