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8 00:18

적응과 비적응; 그 판단의 어려움 Evolutionary theory

  진화론 관계 책을 보다 보면, 어떤 생물의 특정 형질, 또는 도킨스가 그의 책 제목에서 써 잘 알려진 단어대로라면 표현형(phenotype)이 적응(adaptation)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물론 생물의 시각(vision)처럼 없을 경우 손해가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어느 성질이 적응이라는 데 거의 모두 동의하는 특성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특성들이 이렇게 적응인지 아닌지 쉽게 가를 수 있지는 않습니다.  심지어는 인간의 언어가 적응 특성이 아니라 주장한 Stephen J. Gould 같은 학자도 있습니다.
  명목상 사이비로 진화론을 열심히 소개하고 있는 이 블로그에서도 적응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는 이상, 학자들이 적응에 대해 갖는 의견이 어떤지 이번 포스팅에서 적도록 하지요. 

표현형과 성공(적 번식의) 여부
 
  위에서 적은 것처럼, 특정한 개별 특성이 적응인지 판단하기는 의외로 쉽지 않습니다.  이것을 엄격하게 다듬고 몇 가지 적절한 기준을 처음 제시한 것은, 故 George C. Williams의 1966년 책인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입니다.  이 책은 진화생물학의 '히말라야 산봉우리'나 '고전'이라는 말을 들으며, 여기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는 학자가 거의 없을 정도의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아는 한에서는 이 책은 아직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습니다(즉 저한테 없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저서에서 소개한 내용을 중심으로 여기 핵심을 옮겨 놓겠습니다.

  윌리엄스는, 적응 개념이 필요할 경우에 이를 결정하는 데 사용할 기준('신뢰성', '효율성' 그리고 '경제성') 또한 제공했다.  그 메커니즘은

  1) '정상적인' 환경에 속한 모든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적절히 작동하는가?  그리고 특정 기능이 설계된 맥락에 의존하여 작동하는가? [ 신뢰성 ]
  2) 그 메커니즘이 특정한 적응적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가? [ 효율성 ]
  3) 그 메커니즘이 적응적인 문제를 해결할 때 유기체로 하여금 큰 비용을 치르도록 강요하지는 않는가? [ 경제성 ]

  바꿔 말하면, 적응은 생물학적 메커니즘의 유용성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유용성이 없는(improbable usefulness) 경우도 설명한다(Pinker, 1997).  본질적으로 적응에 관한 가설은 '단지 우연에 의해서는 발생할 수 없는, 믿을 만하고, 효율적이며, 경제적인 설계 모음에 관한 확률적 진술'이다(Tooby & Cosmides, 1992; Williams, 1966).

- 'Evolutionary Psychology(마음의 기원)', David Buss, 김교헌 외 역, 나노미디어, p.34

  이 설명은 일반성을 위해서 좀 추상적으로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사례로 보는 편이 이해하기 쉽습니다.

  ... 문제는, 유기체의 어떤 속성이 적응적인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다.  윌리엄스는 적응을 유발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표준을 세웠는데, 적응은 '바로 그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경우에만 유발된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날치가 파도 위로 뛰어올랐다가 다시 물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물 속으로 떨어지는 것의 적응적 가치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행동은, 왜 올라간 것은 다시 아래로 떨어지는가를 설명해 주는 물리적 법칙인 중력으로 더 간단히 설명된다.

- ibid. p.34

  인간의 배꼽을 생각해 보자.  배꼽 그 자체로 인간의 생존이나 번식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어떤 적응(예를 들어, 태아가 성장하도록 양분을 제공해 주는 탯줄)의 부산물로 보일 뿐이다.  따라서 어떤 것을 적응의 부산물로 가정한다면, 그 부산물이 왜 적응과 함께 존재하는지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Tooby & Cosmides, 1992).  적응관련 가설과 동일하게, 부산물에 관한 가설도 엄격한 과학적 기준에 따라 평가해야만 한다.  특정한 경험적 예측이 부산물 가설로부터 도출돼야 하고, 경험적 방법을 통해 이를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 ibid. p.68~69

  특정 생물 종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이라고 다 적응이라고 볼 수 없는 이유가 이것 때문입니다[1].

  그러면 구체적으로 자연 환경과 비자연 환경에서[2] 어떤 종이 나타내는 여러 가지 표현형의 가능성을 짚어 보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인용이 좀 길지만, 적응/비적응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대단히 좋은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 엄밀한 의미에서 보았을 때, 진화적 설명을 제시할 수 있는 대상은 비교적 좁은 영역의 반응 양식에 국한된다.  그와 같은 반응 양식은 어떠한 종이 진화 과정을 거치면서 일상적으로 접했던 환경 내에서 발달한 것들이다.

                 환경            전형적으로 (번식에)        전형적으로
                                       성공적인 것           성공적이 아닌 것
--------------------------------------------------------------
            E1 (자연적)                 P1
            E2 (자연적)                 P2
            E3 (자연적)                 P3
유전형    E4 (자연적)                 P4
            E5 (비자연적)                                         P1
            E6 (비자연적)                                         P5
            E7 (비자연적)              P2
            E8 (비자연적)              P6
-------------------------------------------------------------
 < 그림 2-1 > 서로 다른 표현형(E1 ~ E8)이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의 단일한 유전형으로 나타날 수 있다.[3]
 
  <그림 2-1>은 환경과 특정한 유전형의 표현형 사이에 있을 수 있는 관계를 개괄하고 있다.  E1에서 E4에 이르는 환경은 네 가지 서로 다른 자연환경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조상 개체군이 그에 적응하기 위해 충분히 오랜 기간 접했던 환경이다.  이러한 네 가지 형태의 환경에서 서로 다른 표현형(P1~P4)이 발달하며, 각 표현형은 그러한 환경에 대한 적응 방식을 나타낸다.  환경 E5에서 E8까지는 그 종이 진화사를 거치는 동안 일상적으로 접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유전형이 발달할 수 있는 네 가지 환경을 나타낸다.
  E5의 환경에서 생물은 P1을 나타낸다.  P1은 E1에서의 표현형의 전형이지만, E5의 환경에서는 적응적이지 못하다.  아마도 이하에서 언급할 두꺼비의 경우처럼, 이처럼 자연환경에서 적응적인 특징이 비자연적인 환경에서는 적응적이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생래적인' 행동 유형들이다.  약 특정한 자극에 대한 일정한 반응이 폭넓은 환경 조건에 두루 적응적이었다면, 그러한 반응은 비교적 고정되고 불변적인 방식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크며, 그리하여 그러한 반응은 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 대부분의 환경에서 나타날 것이다.  실험자가 굴린 작은 공을 먹어치움으로써 공을 뱃속에 담아 살아 있는 포대자루처럼 된 두꺼비는 이 사례에 해당한다.  두꺼비의 신경계는 움직이는 작은 공과 곤충을 구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적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4]
  E6에서 생물은 새로운 표현형을 나타낸다.  이는 자연환경에서는 절대 나타나지 않으며, 번식 성공을 증진시키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인간 실험자가 사회적으로 철저히 고립된 환경에서 양육한 붉은털원숭이는 자해(自害)등 다양한 비정상적 행동 방식을 발달시킨다.
  E7에서 성공적인 표현형은 P2인데, 이는 본래 E2에서의 전형적인 표현형이다.  하지만 이는 E7에서도 적응적이다.  예를 들어 인간이 토끼를 호주에 유입했을 때, 많은 환경적 특징은 토끼의 조상들이 접했던 것과 달랐다.  하지만 호주의 환경은 많은 측면에서 자연환경과 매우 흡사했기 때문에 토끼들의 행동은 매우 적응적이었으며, 그리하여 토끼들이 번성할 수 잇었다.
  E8에서는 생물이 자연환경에서 절대 관찰할 수 없는 표현형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표현형은 뜻밖에도 번식적인 측면에서 성공적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보았을 때, 이러한 행동은 적응 방식으로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동은 자연선택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점들은 예컨대 산업 사회 같은 비자연적 환경에서 인간의 성행동을 진화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기능에 대한 연구에서, E5에서 P1의 부적응성에도 불구하고 E5와 E7에 의해 예시되는 상황은 기능에 대한 연구에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연선택을 통해 형성된 행동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반면 E8에서 P6이 우연히 이익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E6과 E8이 예시하는 상황은 기능에 대한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자연선택으로 형성된 행동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의 미국 남편들은 피임약을 먹는 자신들의 부인에 대해 성적 질투심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질투심이 그것이 표출되는 비자연적 상황에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을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러한 질투심은 피임약이 없었던 자연환경에 대한 적응 방식을 나타내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반면 의학도는 자신의 정자를 정자 은행에 기부함으로써 엄청난 번식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를 남성이 자신의 정자를 정자 은행에 기부하도록 적응되었다는 증거로 볼 수는 없다.

- 'The evolution of human sexuality(섹슈얼리티의 진화)', Donald Symons, 김성한 역, 한길사, p.86~89

  인간의 성차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문제들이 왜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상당히 있을 수 있는지 실감이 나실 것입니다.

  漁夫

 [1] 여기서는 noise(무선효과)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우연한 현상에 따라 달라지는 noise는 한 종 내에서도 특징이 일치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2] 생물 연구에서는 아무래도 자연 환경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비자연 환경에서 실험을 많이 하므로, 이 구분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연구할 때는 '자연 환경' 실험은 현재 거의 어렵겠지요.  서구 사회보다 좀 '자연 환경'에 가까운 사회는 있겠지만, 100% '자연 환경'인 인간 사회는 현재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3] 노화의 진화에서 다면 발현(pleiotropy)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그 점을 이해하신 분이라면 아마 고개를 끄덕이실 듯.
 [4] 바꿔 말하면, 두꺼비가 진화한 환경에서는 사람이 굴러가게 한 작은 공처럼 보이는 것은 거의 두꺼비의 먹이였다는 얘깁니다.  즉 '그런 건 무조건 먹어치우도록'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없었다면 사람은 미끼를 단 낚시로 물고기를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

닫아 주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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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RuBisCO 2011/09/08 08:31 # 답글

    확실히 판단하기 애매한게 많죠. 굳이 큰 의미가 없지만 해는 되지 않아서 꼽사리 끼어가는 애들도 있고,
    심지어 성적인 코드따위로 우연찮게 정착해서 도움이 안되는데도 생식에 위험한 수준 직전까지 가는것도 있고.
    그런게 또 묘한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 漁夫 2011/09/08 22:51 #

    상대방 성의 어떤 특성을 선호하는 경우 이유가 있는 수도 없는 수도 있지요. 이것이 그 종의 계통수(phylogenetic)적 측면에서 올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특성의 부산물 때문에 남을 수도 있고... 우리는 그것을 다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려운 문제지요.
  • 일화 2011/09/08 11:47 # 삭제 답글

    저도 나름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만,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정의'라는 것은 비전문가들의 입장에서는 선문답에 가깝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결론은 쌈박하게 이해가 잘되지만 말이죠.
    그런 면에서 어부님의 공덕이 매우 크고, 새삼스럽지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漁夫 2011/09/08 22:53 #

    뭐 비전문가 입장에서 저걸 다 이해해야 하지는 않지요. 결론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비전문가에게는 충분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Dawkins 같은 과학 해설가들의 공적은 결코 간과할 수가 없지요.

    저야 뭐 취미 삼아 포스팅으로.... 잘 보고 계신 듯하니 오히려 제가 감사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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