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1.일단 이러한 정도의 강도를 갖는 언명에 대해서 'fact'라고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사실'이라고 결론을 내리기에는 우리가 아는 정도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 윗 리플에서 언급한 부분을 다시 반복하자면, 왜 이게 'fact'라는 논지를 지지하는 연구가 최근 들어서 점차 증가하고 있는지는 좀 고려해 볼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제가 알기로는 심지어 양자 역학이나 수학 같은 추상적 학문에서조차 일종의 문화 사회적 경향은 존재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물며 심리학이나 사회 과학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죠.
'fact'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漁夫는 "조심스럽게 설계한 반복 검증 실험들을 모두 통과했으며 상당한 시간 동안, 그리고 현재까지 반례가 나타나지 않은 과학적 명제"라면 fact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당한 숫자의 진화심리학적 '가설'들은 이미 fact의 수준에 접근했습니다. '여성이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남성보다 경제적 측면을 더 중요하게 간주한다'는 얘기(http://fischer.egloos.com/4324864) 같은 것 말이지요. David Buss가 하도 광범위하게 철저히 조사를 해 놓은 턱에 지금은 비슷한 연구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모르겠습니다. 이게 벌써 17년 전 얘기거든요. 그리고 아직 이 책에서 든 증거들을 송두리째 부정할 만한 충격 있는 증거가 나왔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fact'라 말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 'The red queen(붉은 여왕)', Matt Ridley, 김윤택 역, 김영사 간, p. 375~376
漁夫는 문화 사회적 경향에는 별로 흥미가 없지만, 여러 가지 경로로 발견한 증거들이 어떤 이론에 의해 짜임새 있게 아귀가 맞아 들어가냐에는 관심이 꽤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낙타가 어떻게 혹을 갖게 되었는가 혹은 은면경 어류가 어떻게 빛을 내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하나 이상 있을 수 있다. 그중에서 관찰된 사실들을 가장 논리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선택된다. 탐정수사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누구나 인정하는 이야기 구성의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그 이야기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해결하고자 하는 종류의 문제에 잘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은 과정에 의존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예를 들어 생물학자나 탐정이 신성한 힘 같은 것을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 불행한 광부를 죽인 폭발은 주피터가 던진 번개에 의한 것일 수 없으며, 낙타의 혹은 진화의 방향을 잡아주는 신에 의한 것일 수 없다. 헤이스팅스의 은면경 어류에 대한 설명은 게임의 규칙을 철저하게 따랐다. 즉 그의 해석은 은면경 어류와 그들의 서식처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과정들만 인용하였으며 그 살인 미스터리에서의 스틸먼의 해결에서처럼 알려져 있는 모든 사실들에 부합하였다.
또한 홈스와 그의 도전자가 내세운 제안처럼 헤이스팅스의 설명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을 예견하였다. 다행히도 그러한 예측은 조사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어서 다양한 탐구에 의해서 밝혀낼 수 있는 가설이 되었다...
- George C. Williams, "The pony fish's glow(진화의 미스터리)", 이명희 역, 두산동아 刊, p.37~38
(漁夫 주) 이 내용에는 각주를 좀 달아야 되는데 그 각주는 인용해 온 포스팅을 보시길.
물론 漁夫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발견된 남녀의 심리적 성차들에 대해 일관성 있게 설명해 주는 이론은 현재는 진화심리학 뿐이란 것입니다. David Buss는 "인간에 대한 연구에서 아름다움, 모성, 혈연관계, 도덕성, 협동, 성, 폭력과 같은 인간 경험의 핵심들에 대해 일관성 있는 이론을 제공하는 유일한 것은 진화심리학이다"라 단언합니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학자들이 '유일한' 같은 단어를 써 단언하는 것은 별로 못 본 것 같네요.
' 1 + 1 = 2 '란 명제는 漁夫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수학자들은 그거 논리적으로 구축해 나가느라 꽤 많은 공리계를 다듬어야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Gottlob Frege의 'three-ness(3性)' 얘기는 유명한데, 전 3을 이렇게 정의해야 하는지 아직 잘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 사람에 따라 별로 관심이 없는 fact가 당연히 있습니다. 모든 사실에 똑같이 관심을 두기는 불가능하겠지요.
http://fischer.egloos.com/3520907에서 알렙님 보시기에 '아무 가치가 없는 주제'들을 나열했습니다. 증명할 수 없다고 하셨는데, 두 개만 뜯어 보기로 할까요?
1) 폭력성 얘기 ; http://fischer.egloos.com/4438270
범죄 통계를 진화심리학자들이 (가짜로) 작성했다면 알렙님 말씀을 수긍할 수 있습니다.
2) 장기적 性的 상대가 다른 성적 상대를 찾을 때의 '관용' 문제 ;
이 문제로 죽는 여자 수는 남자 수에 비해 몇 배는 될 겁니다.
같은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을 더 죽이는 특성이 있는 사람이 현대 사회에 더 적합한가 아닌가 좀 질문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사형시키거나 감방에 보내는 방식으로 돈을 들여 가면서 대응하고 있습니다(이런 방법으로 범죄 성향에 대한 억제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몇 연구에서 나왔듯이 옆 부족과 치고 받는 부족 사회에서는 다른 남자를 많이 죽인 남자가 아내를 더 많이 거느렸다는 얘기는 빼더라도 말입니다.
이런 얘기가 '파란색을 좋아하면 보수주의자다'란 언명과 의미가 비슷하다는 말씀은 알렙님의 개인 취향 또는 희망이시겠지요. 한국의 사법 체제 및 교도소를 유지하는 데는 漁夫가 내는 세금이 들어가니까 말입니다. 漁夫는 속물이라서, 스스로 버는 돈에 무심하지 않거든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진화 심리학은 일반 심리학에 비해서 이런 쪽으로는 좀 더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0세기 초에 정신 분석학처럼 일종의 '유사 과학적' 사회 과학/정치학 경향으로 후대에 평가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漁夫가 붉은 색으로 강조해 놓은 부분은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가설 수립/검증에서 핵심적으로 신경을 써야 하는 문제입니다. Judith Harris가 '부모는 아이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다'란 통념을 반박했을 때 기존 학자들의 반박에 대응하며 내놓은 것은 주로 '기존 연구 방법의 헛점 - 보려고 하는 것만 열심히 찾았다' 였지요. 이 문장을 아마 수긍은 안 하시리라 생각합니다만.
진화심리학이 그런 비판을 받은 것은 사실인데, 진화심리학 내부에서 '무엇이 맞는 설명'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벌이는 검증 경쟁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진화심리학에서 어떤 현상을 진화론적 이치에 맞게 설명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그럴듯한 가설이래도 실제 검증을 통과하지 못해서 인정 못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동성애는 현대 사회에서 상당히 널리 퍼진 현상인데, 그에 대해 이 리플에서 보듯이 '자신은 번식하지 않지만 조카들에게 투자한다'고 해석하면 그 자체로는 이치에 맞습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이 실제 조카들에게 이성애자들보다 더 많이 투자하는지 조사한 결과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 가설은 기각되었습니다. 그보다는 '성적으로 상반된 선택'이 (최소한 일부분의 동성애자들에 대해서는) 더 잘 부합하는 설명이란 얘깁니다.
정신 분석학을 유사 과학적이라고 생각하고 계신다니 그 점에서는 漁夫와 의견이 일치합니다. 단 진화 심리학을 유사 과학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漁夫와는 영 딴판입니다. 이 점에서는 인지과학을 하시는 아이추판다님도 의견이 같습니다. 관심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만(다른 어느 글에 '진화론도 완벽한 이론 체계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라 리플을 다셨던 것 기억합니다), 漁夫가 내세우는 근거는 유감스럽게도 진화론적 사고입니다.
모든 생물들은 환경의 효과가 일정하면 어느 정도의 세대 후에는 그 환경에 맞도록 적응합니다. 여기에는 신체적 구조 뿐 아니라 행동도 들어갑니다. 신체적 구조가 환경에 맞도록 적응하더라도 행동적 특성이 그것을 뒷받침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처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행동을 바꾸는(무려 사회생물학의 '괴수' E.O.Wilson의 말이지요)' 동물이라도 거의 고정된 환경에 오래 처하면 (아예 아무 생각 없이도) 즉각적으로 그 상황에 행동이 고정적으로 이득인 방향으로 대응하도록 진화하는 것이 그 개체에(더 근본적으로는 그 개체의 유전자에) 이득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뱀 보고 '저거 도망가 말아'라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보다 별 생각 없이 잽싸게 튀는 사람 중 어느 편이 생존에 유리했을지야 분명합니다(학습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본능이지요). 사람도 화석과 유전자 등 여러 증거들로 보아 침팬지에서 갈라져 나온 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대략 600만 년 가량 살아 왔다고 알려져 있지요.
漁夫가 알렙님께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남녀의 생리적/신체적 성차가 (진화적으로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한 이론들은 받아들일 의향이 있으십니까? 만약 없다면, 漁夫가 인간의 진화적 문제들에 대해 알렙님과 더 이상 얘기한다면 서로 시간 낭비일 따름입니다. 받아들일 수 있다면, 생리적/신체적 성차에 대한 진화적 이론과 심리적 성차에 대한 진화적 이론은 완전히 같은 논리에 근거합니다(뭐, 성차 뿐 아니라 언어를 포함한 인간의 다른 모든 행동적 특성에 대한 진화적 이론도 마찬가지죠). 전자는 되고 후자는 안 된다는 근거가 있습니까?
漁夫
ps. 제가 적은 리플에 대해 '소수자 우대 정책'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 답플에서 제가 '비틀어서 말했다'는 점에 대해 좀 상술하지요.
기본적으로 'joke'입니다. 단 'affirmative action'을 (그 정책의 이해 관계자들이 경제적으로 어떻게 그에 대해 반응할 것인지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많이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날려 주는 냉소가 될 수도 있겠지요. 허수아비 치기 식이라고만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http://fischer.egloos.com/4244214와 같은 정책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에 대한 漁夫의 의견은 그 포스팅 안에 있으니 漁夫가 진짜 'affirmative action'이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시다면 그것을 참고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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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아 주셔요 ^^
덧글
데이터로 밀어붙이는 게 장난이 아니니까 이거야 '링'의 수준이 다르고 격한 정도도 다르죠. orz 페미니즘이나 정신 분석학은 그런 데이타를 제공하는 데에 있어 상당히 부족하지 않습니까(정치적인 발언;).
저는 제가 내는 돈에 심각하게 민감합니다. 그게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 정책을 지지한다면 전 반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진화심리학은 그 점에서도 꽤 탄탄하다고 생각합니다.
진화심리학의 최대의 약점은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근거가 부족하게 느낄 수 밖에. 그렇지만 아우슈비츠도 아닐진데 인간을 그런 식으로 실험한다는 건 매우 위험한 생각이죠.
제가 요즘 통계를 공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orz 최소한 상대방이 어떻게 공격하는지는 알아야...orz 흑흑 수학 공부하려니 만만찮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컴퓨터에 공식만 때려넣으면 계산을 다 해주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다만 그 공식에 때려넣을 데이터를 마련할 생각을 하면 정신이 아득해집니다...-_-;
이건 매우 몹시 정말 많이 개인적인 생각인데, 페미니스트들이 자꾸 순환논리로 주장을 펴는 것을 보면 데이터 마련할 생각이 아련해서 그런게 아닌지...-_-; 제가 페미니즘을 깊게 공부하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스티븐 핑커에 물을 약간 섞어 말하면 "아무래도 수상해..."
진화심리학이 왜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지 못하나요. ^^;; '원하는 모든 실험을 하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만, 실험실 연구에서는 기본 맥락을 통제해서 많은 실험을 하고 있고 인성에 대한 상당수의 고찰은 그 실험실 연구에서 나온 것입니다. 맥락을 통제하지 않으면 말이 안 되는데, '마음대로 통제가 잘 안 된다'는 사람이기 때문에 참말이긴 하지요. 그렇다고 연구를 못 하는 건 아닙니다.
핑커는 가장 강력하게 선천론에 가까운 주장을 펼치는 학자라고 합니다. 빈 서판에서 대부분 나온 얘기니만큼 그건... :-)
저는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하지만 과학적 명제의 타당성도 중시하지만 그 사회적 수용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부님은 과학자들이 순진하게 내 놓은 발표들은 그것대로 따로 존재하고, 그걸 정책에 입안하는 건 정치가들의 몫이라고 하셨지만, 정말 실제 세상에서 일이 그렇게 돌아가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부님이 자주 사용하지는 표현대로 '세상은 진흙탕'인데요...) 그런 의미에서 진화 심리학이 연구하는 주제들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심지어 사회 정치적으로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전히 이러한 연구 결과가 일종의 경향성을 띠는 데는 사회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 초반에 인종에 따른 지능의 차이를 연구하던 사람들도 어쩌면 '우리는 순수하게 과학을 연구할 뿐이다' 라고들 주장했겠죠 (아니 그랬으리나 분명 생각합니다) 당장 어부님이 소수자들에 대한 우대 정책으로 바로 연상이 옮겨가는 것을 보세요. 엄밀히 말하자면 진화 심리학과 소수자 우대 정책은 아무 상관이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과학은 과학이고 정책은 정책인데 말이죠.
저는 진화론이 현재 생물학의 여러 분야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타당하고 무오류의 이론이라는 데는 전혀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걸 복잡한 인간 행동에 어떻게 적용시키고 관찰 대상으로 삼느냐는 사실 근본부터 곰곰 따져보는 게 맞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조심스럽게 설계한 실험'은 일반 사회 현상에 적용하기가 극히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게 제 의견이고요.
거장들을 언급하셨는데 저도 진화심리학에 대해서 저보다 몇 배는 더 험한 말씀들을 하시는 거장들 많이 압니다. :-) 워낙 심리학이라는 분야가 '근성'이 성공을 보장하는 경향이 있어서 - 논문을 써 보셨다면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지만 - 전 거장들의 의견이라고 해서 별로 신용하지는 않습니다.
사회적 수용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작가 Richard Rhodes가 말하듯이 사실과 전언자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전언자가 있건 없건 사실은 존재합니다. 그 사실을 찾아낸 사람들을 깐다고 사실이 바뀌지도 않습니다.
물론 어떤 사실을 외부에 전달할 때 과학자가 제대로 전하느냐 아니냐는 중요합니다. 문제는 과학자의 말(주로 논문)보다 과학자의 말을 들어서 외부에 알리는 중간 통로인 언론들이 제대로 전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연구의 최첨단에 서 있는 사람들이 교양서를 열심히 저술합니다. 최소한 수학이나 다른 물리학보다는 그런 책들이 한국에 소개되는 상황은 훨씬 나은 느낌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업계 전문가도 아닌 제가 알렙님과 토론이 되지도 않았겠지요. 저는 이 분야에서는 상당히 최근의 발전도 완전히 일반인보다는 그나마 눈꼽만큼은 더 알고 있는 편이라 생각하니까 말입니다. 진화심리학자가 자신의 의견을 책 쓰는 시점에서 정확히 세상에 알리려 하는 노력이 적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진화 심리학이 연구하는 주제들이 무의미하다면, 그 '응용' 면에서 볼 때, 우리는 어떤 정책이 왜 성공하냐 그렇지 않냐를 분석하는 유용한 도구를 잃어버리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인간은 모든 걸 다 같은 정도로 배우는, 스키너 상자로 모든 것들을 다 길들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인간이 지나 오고 형성되었던 시대에 어떻게 지내 왔고 그래서 어떤 특성을 가졌는가는 진화적인 역사고, 우리가 그렇게 형성된 인간의 특성 자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특성이 안 나타나도록 통제할 수는 있지요(물론 돈이 듭니다). http://fischer.egloos.com/4385988 포스팅에서 제가 적었듯이, "우리는 당장 인간의 '사전 배선'을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적정 맥락'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총이 있더라도 방아쇠만 당기지 않으면 사람이 다치지는 않습니다. '사전 배선'이 바람직하지 못해 보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방아쇠를 당기는 조건(=맥락)'을 피하는 것입니다."입니다.
사전 배선과 맥락을 모르고 어떻게 사람의 행동을 현재의 우리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겠다는 말입니까? 과학적인 연구의 타당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과학은 과학일 뿐입니다. 정치나 정책이 아니지요. 하지만 정치나 정책이 사회를 더 바람직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사람에 대해 연구하는 진화심리학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 말이 나온 김에 소수자 우대 comment 얘기도 덧붙이면, 특정인 우대의 다른 단면은 역차별입니다. 그에 대해 '일반인'이 갖는 불공정하다는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면 의도가 좋은 정책이라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충분히 고려만 한다면 찬성이라고 조건을 다는 것도 그 때문이고, 진화심리학은 무엇을 어떻게 고려할까에 대한 좋은 참고가 됩니다. ]
진화론의 가치를 인정하시니 그에 대해서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이 포스팅 적을 때 사실 그러신지 확신이 없었습니다(창조론에 비해서 훨씬 더 낫게 생각하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요). 시간이 되신다면, Harris의 'No two alike'에서 'That damn rectangle'을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렵다고, 못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거장들 오래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소위 '굴드파'가 그들이지요. 그들도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는 혁혁한 업적을 쌓은 거장들일 것입니다. 근성은 연구에 필요하지만, 몇 분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심리학에서는 지금까지 전체를 통괄하는 이론이 드물었고 따라서 누구 말마따나 '실험가들이 완전히 지배하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좀 놀란 일이 있습니다. 진화심리학은 이런 상황을 확실히 낫게 만들었습니다. 최소한 전체를 기저의 한 논리로 이어 주었다는 점에서는 Buss가 자랑스럽게 기술하듯이 '유일하다'고 말할 정도니 말입니다.
그것을 좋아하실지 안 좋아하실지는 알렙님께서 선택하실 수 있고 누구도 뭐라 못합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과학적 이론의 건전함을 판정하는 제가 아는 기준으로 비춰 볼 때 진화심리학은 알려진 심리 현상들을 논리적 모순 없이 가장 폭넓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일 뿐입니다.
두 번째 문단: 바로 그 부분입니다. 어째서 다른 과학 분야보다 진화 심리학 관련 분야 책들이 열심히 소개되는지에 대해서 한 번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저의 일관된 의견입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공격성과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정도의 명제라면 저도 충분히 과학적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이 블로그에서도 그러한 사실을 소개하는 덧글들에 '현대 사회의 부적응자인 불쌍한 남성들'와 같은 덧글들이 달리는 것은 저로서는 심히 염려스러운 상황입니다. 그게 물론 가벼운 농담이나 의견 교환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남성들 하나도 안 불쌍합니다. (참고로 혹시 저를 무슨 페미니스트 여성으로 오해하시는 다른 분들이 있을까봐 disclaimer 로 밝히는데, 저는 남자입니다 ;;)
흠 저는 어부님이 진화 심리학자들은 순진한 과학자들이니 정치 사회적 현상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라고 주장하시는 줄로 오해했습니다. 당연히 정책에는 과학적 근거가 필요합니다만, 그게 단순히 진화 심리학 하나라면 글쎄요. 전 그러한 정책이 별로 성공적일 거라고 예측하지 못해겠습니다. '진화 심리학적 경향도 고려해 달라'는 정도면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그런 정책은 뭐가 되나요? 남성 역 우대 정책 뭐 이런 건가요?
네 번째 문단: 그 '유일하다'는 이야기도 내부 관점이죠. 마치 제가 저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서 진화 심리학이나 진화론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처럼 계속 이야기하시는데, 그렇다면 저는 같은 이야기를 지지론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당연히 아시겠지만 인간의 사고 체계라는 게 자신의 정치 사회 심리적 조건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는지라, 어부님이나 저나 왜 이렇게 진화 심리학을 열열히 지지하고 또 반대하는지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볼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 자신이 먼저 고백하자면, 앞에서도 몇 번 밝힌 듯 한데 과학적 이론이라는 배경을 업고 남성이 부적응자라느니 남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얘기들은 솔직히 좀 찌질하게 보입니다. 어쩌면 저야 말로 '진짜 골수 마초'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_-
예지력이 -1 떨어졌습니다.
이 문제는 '적응'의 기준을 무엇으로 놓느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남성이 더 돈도 잘 벌고 일도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회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을 겁니다. (한국은 분명 남녀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잖습니까?) 하지만 어부님 말씀처럼 성적이나 교실 부적응 여부, 수명 등을 기준으로 놓는다면 여성이 남성에 비해 분명한 우위에 있겠죠.
말씀처럼 어느 사회가 남성 위주냐 아니냐는 그 사회의 역사적 맥락에 의존하겠지요(서아프리카에는 현재도 여성 위주 사회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인간의 보편적 특성에 대해 얘기한 것이었으니까요. 남성이 '최대의 패배자'라고가까지 말한 사람 중에는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George Williams도 있습니다.
Frey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요소까지 생각하면... 전 알렙님의 논지가 잘 이해가지 않습니다. 남성 배려 정책-> 남성 우대 정책 -> 여성 차별 정책 논리인 것 같은데, 여성에게 들어갈 비용이 남성에게 들어간다는 면에서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이건 좀 아니죠.
저도 찌질이가 되렵니다. 하하.
그게 'Blank Slate'에 공감하냐 아니냐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야 찌질이인 거 세상이 다 알지만 jane님까지 찌질이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
참고로 전 어부님을 찌질이라고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그런데 전에 일본에서 남자가 마땅치 않으면 딸을 자기 아내로 삼았던 일이 있었다는 리플을 다신 기억이 있는데, 소스를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_@ 제가 일본사 관심이 많은지라 이것저것 뒤져보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요;;;
하지만 여러 모로 보아, 이과(특히 수학, 물리학, 공학) 분야의 여성 부족 현상과 직장에서 여성이 승진하기가 어렵다는 두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곳이 있는가는 좀 의심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승진이 늦은 것은 분명히 여성에 대한 편견도 있겠지만, 지위 추구를 남성이 더 열심히 한다는 것도 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의 위계 문화는 여성보다 남성에 적합할 가능성이 높을 뿐더러, 위험을 무릅쓰거나 가족과 떨어지면서 돈을 많이 받는 위치에는 남자들이 더 많이 지원하기도 하지요.
승진 역시 말씀하신 대로, 돈벌이의 절박성 같은 것도 엄연히 변수로 작용하니.. 여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단정짓고 넘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은 여성이 남성에 비해 승진이 늦는다는 게 사실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역시 이과에 공학 직장인데, 팀 내 과장 세명 중 두명이 여성이고, 기술직이 아닌 관리직에는 여성이 오히려 더 많네요.)
이런 '여성의 증발 현상'을 어느 정도 다룬 유명인의 교양서는 'The blank slate'입니다. 미국 국회에서 '50대 50이어야만 한다'고 성비를 강조한 사람에 대해 Pinker는 몇 가지 재미있는 사례를 들어서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마 IT 쪽에 계신 모양인데, 그 편은 그래도 좀 나을 겁니다. 여성은 주로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안정되고 보수가 낮은 보직'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고 'The blank slate'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Pinker가 인용해 온 한 여성 과학자인지 사회학자인지의 말은; "어디서든지 여성이 쿼크 등에 큰 흥미를 갖지 못하는 것을 본다. 나는 아마 전기 청소기의 작동 원리에 대해 흥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정확한 인용인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랬지요. ^^;;
아니면 "여성은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있다"고 일단 전제해놓고 들어간다거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