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 개성의 탄성(No two alike) - Judith Rich Harris 포스팅에서 알렙 님의 첫째 comment에 대한 Steven Pinker의 대답입니다.
아래 인용은 Steven Pinker 등을 포함하는 소위 '선천론자'들이 자녀 양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문단입니다. Pinker가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면(!), 이 생각은 친딸과 수양딸을 키워낸 Judith Harris도 거의 공유한다는 데서 약간 더 설득력이 있겠지요.
스티븐 핑커의 제안
漁夫는 이 포스팅에서 보듯이 결혼했고 애도 있습니다. 그래선지, 아래 문단을 곱씹을수록 느낌이 와 닿는군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굳이 자기가 원하는 성격으로 조형해야만 할까요? 조형 '당하는' 쪽도 사람입니다.
물론 결과는 이렇게 되지만 말입니다...
이 조언을 앞 포스팅에서 인용한 프랭크 팔리의 말과 비교해 본다면
이건 진짜 얼마나 무성의한지 - 해리스의 말처럼 진화생물학(과 행동유전학)에 대한 무지는 젖혀 놓더라도 - 제가 다 화가 날 지경입니다.
요약하면, 알렙 님의 말씀처럼 'good enough parents'에는 저도 물론 동의하지만, 보살핌을 받는 아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라도 현대의 쓸데없는 오해는 이만 접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인간임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이에게뿐만이 아니라 부모에게도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는 결과만 가져올 뿐입니다.
漁夫
ps. 개인적으로는 알렙 님의 생각을 오해한 데 대한 사과의 뜻도 들어 있음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ps. 2. 지금 漁童은 마루에서 '동이'를 보고 있지요. 으하하!
ps. 3. '개성의 탄생'에서 제가 몇 번이고 보고 있다는 부분은, 해리스가 '어떤 요인이 형제들을 다르게 만드는가'에 대해서 논한 부분 및 다른 사람들의 오류를 지적한 곳이지, 해리스의 주된 아이디어 자체는 아닙니다. 그 부분은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 어디까지나 '정상 범주의 양육에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입니다. 아이를 비참하게 만들어서 인성을 바꾸겠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리 어렵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John B. Watson의 '아이를 조건화하기' 실험처럼 아이를 다루려고 생각하면...........
.
닫아 주셔요 ^^
알렙 ] 어부님 정도 되시는 분도 독해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한 연구를 일반 대중 - 부모를 포함한 - 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건 이 가설을 지지하는 쪽이건 반대하는 쪽이건 공히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는 거죠. 전 차라리 '최선을 다해서 양육하는 건 중요하다' 정도의 모호한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신뢰할 만하다고 봅니다.
아래 인용은 Steven Pinker 등을 포함하는 소위 '선천론자'들이 자녀 양육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문단입니다. Pinker가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면(!), 이 생각은 친딸과 수양딸을 키워낸 Judith Harris도 거의 공유한다는 데서 약간 더 설득력이 있겠지요.
스티븐 핑커의 제안
漁夫는 이 포스팅에서 보듯이 결혼했고 애도 있습니다. 그래선지, 아래 문단을 곱씹을수록 느낌이 와 닿는군요.
모든 사람이 운명이나, 유전자, 또래 집단 등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영향력을 인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진실은 우리의 소망과 무관하고 때로는 그 소망에 의지하도록 우리의 등을 떠밀기도 한다.
사실 아이가 행복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漁夫 추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알고리듬이 없다는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자녀들의 특성을 미리 지정하기를 원하는가?... 현실적인 부모라면 오히려 시름을 덜 수 있다. 아이를 자극하고 사회화하고 아이의 성격을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대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를 비판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해리스가 자녀의 삶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면제시키려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해리스는 성인에게 삶에 대한 책임을 부여한다. 즉 삶이 어렵다고 부모 탓만 하면서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해리스의 이론은 우리 모두에게 지역과 문화의 건강에 대한 집단 책임을 부여한다. 그 속에 또래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내가 우리 아이를 어떻게 대하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을 생각해 보자. 이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물론 부모의 양육은 매우 중요하다. 해리스는 독자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부모는 자식에게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이고, 부모의 행동은 아이들의 행복에 대단히 중요하다. 양육은 무엇보다 윤리적인 책임이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거나 무시하거나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크고 강한 사람이 작고 힘없는 존재를 그렇게 다루는 것은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해리스의 말대로,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쥐고 있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현재를 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들의 현재를 아주 비참하게 만들 힘도 쥐고 있다."
둘째, 부모와 자식은 인간적인 관계로 맺어져 있다. 배우자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신혼 부부 외에는 어떤 사람도 "그렇다면 내가 우리 남편이나 아내를 어떻게 대하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라고 묻지 않는다... 남편이나 아내의 성격을 개조할 수 없다는 말에, "내가 그(혹은 그녀)에게 쏟아 붓는 이 모든 사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너무 끔찍하다"라고 대꾸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성인이 되었지만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를 떠올릴 때마다 분노로 몸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오래 전에 부모를 잃었지만 부모가 보여 준 사랑과 희생을 회상하면서 행복한 추억에 젖어 드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부모는 자식이 그런 기억을 갖고 성장하도록 잘 키울 필요가 있다.
- "The blank Slate(빈 서판)", Steven Pinker, 김한영 역, 사이언스북스 刊, p.696~98
사실 아이가 행복하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漁夫 추가;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알고리듬이 없다는 것은 실망스런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자녀들의 특성을 미리 지정하기를 원하는가?... 현실적인 부모라면 오히려 시름을 덜 수 있다. 아이를 자극하고 사회화하고 아이의 성격을 향상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대신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해리스를 비판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해리스가 자녀의 삶에 대한 부모의 책임을 면제시키려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해리스는 성인에게 삶에 대한 책임을 부여한다. 즉 삶이 어렵다고 부모 탓만 하면서 불평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해리스의 이론은 우리 모두에게 지역과 문화의 건강에 대한 집단 책임을 부여한다. 그 속에 또래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내가 우리 아이를 어떻게 대하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라는 질문을 생각해 보자. 이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물론 부모의 양육은 매우 중요하다. 해리스는 독자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한다.
첫째, 부모는 자식에게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이고, 부모의 행동은 아이들의 행복에 대단히 중요하다. 양육은 무엇보다 윤리적인 책임이다. 부모가 자식을 때리거나 무시하거나 학대하거나 방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크고 강한 사람이 작고 힘없는 존재를 그렇게 다루는 것은 끔찍한 일이기 때문이다. 해리스의 말대로,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쥐고 있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현재를 쥐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아이들의 현재를 아주 비참하게 만들 힘도 쥐고 있다."
둘째, 부모와 자식은 인간적인 관계로 맺어져 있다. 배우자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신혼 부부 외에는 어떤 사람도 "그렇다면 내가 우리 남편이나 아내를 어떻게 대하든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라고 묻지 않는다... 남편이나 아내의 성격을 개조할 수 없다는 말에, "내가 그(혹은 그녀)에게 쏟아 붓는 이 모든 사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너무 끔찍하다"라고 대꾸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성인이 되었지만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를 떠올릴 때마다 분노로 몸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오래 전에 부모를 잃었지만 부모가 보여 준 사랑과 희생을 회상하면서 행복한 추억에 젖어 드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부모는 자식이 그런 기억을 갖고 성장하도록 잘 키울 필요가 있다.
- "The blank Slate(빈 서판)", Steven Pinker, 김한영 역, 사이언스북스 刊, p.696~98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굳이 자기가 원하는 성격으로 조형해야만 할까요? 조형 '당하는' 쪽도 사람입니다.
물론 결과는 이렇게 되지만 말입니다...
자식의 성격을 자기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려고 의욕적으로 달려들지만, 결국 무기력한 방관자 겸 운전사로 전락한다. (Matt Ridley)[1]만약 결과가 그렇지 않더라도, 솔직히 전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위에 인용한 바로 다음 부분에서 Pinker는 漁夫가 '달갑지 않은 이유'를 그대로 설명해 줍니다.
나는 사람들이 위와 같은 설명을 듣고도 시선을 떨구면서 작은 목소리로 "그래, 나도 안다."라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아이에 대해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이처럼 단순한 사실들을 종종 망각한다는 것은 현대의 교의들이 사람들을 얼마나 깊이 사로잡고 있는가를 보여 준다. 사람들은 아이가 특별한 인간 관계의 당사자란 사실을 쉽게 잊고 말랑말랑한 공작용 재료쯤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또래 집단에 적응한다는 이론도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생각하면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또래 집단"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친구와 동료"라고 표현하는 것을 아이들의 세계에 그럴듯하게 적용시킨 용어이다. 우리는 찢어진 청바지나 배꼽티를 입고 싶어 안달하는 아이들을 보고 개탄하지만, 마찬가지로 덩치가 아주 큰 사람이 나에게 분홍색 덧바지를 입혀 기업 이사회 모임에 보내거나 디스코 의상을 입혀 학술 회의에 보낸다면 죽고 싶은 심정이 들 것이다. "또래 집단에 의해 사회화된다"는 "어떤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인데, 사회적 동물에게 이것은 "삶"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빈 서판이라 생각하면서 아이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 Ibid., p.698~99
- Ibid., p.698~99
이 조언을 앞 포스팅에서 인용한 프랭크 팔리의 말과 비교해 본다면
[해리스의] 명제는 언뜻 보기에는 터무니없다. 하지만 부모가 이 말을 믿는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라! 어떤 부모는 아이들을 마음대로 학대하지 않겠는가? 왜냐고? "하등 문제 될 것이 없으니까." 힘든 일과를 마치고 귀가한 부모한테 아이는 전혀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하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왜?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으니까."
[Harris'] thesis is absurd on its face, but consider what might happen if parents believe this stuff! Will it free some to mistreat their kids, since 'it doesn't matter'? Will it tell parents who are tired after a long day that they needn't bother even paying any attention to their kid since 'it doesn't matter'?
- http://judithrichharris.info/tna/prevquot.htm
[Harris'] thesis is absurd on its face, but consider what might happen if parents believe this stuff! Will it free some to mistreat their kids, since 'it doesn't matter'? Will it tell parents who are tired after a long day that they needn't bother even paying any attention to their kid since 'it doesn't matter'?
- http://judithrichharris.info/tna/prevquot.htm
이건 진짜 얼마나 무성의한지 - 해리스의 말처럼 진화생물학(과 행동유전학)에 대한 무지는 젖혀 놓더라도 - 제가 다 화가 날 지경입니다.
요약하면, 알렙 님의 말씀처럼 'good enough parents'에는 저도 물론 동의하지만, 보살핌을 받는 아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부모를 위해서라도 현대의 쓸데없는 오해는 이만 접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인간임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이에게뿐만이 아니라 부모에게도 필요 이상의 고통을 주는 결과만 가져올 뿐입니다.
漁夫
ps. 개인적으로는 알렙 님의 생각을 오해한 데 대한 사과의 뜻도 들어 있음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ps. 2. 지금 漁童은 마루에서 '동이'를 보고 있지요. 으하하!
ps. 3. '개성의 탄생'에서 제가 몇 번이고 보고 있다는 부분은, 해리스가 '어떤 요인이 형제들을 다르게 만드는가'에 대해서 논한 부분 및 다른 사람들의 오류를 지적한 곳이지, 해리스의 주된 아이디어 자체는 아닙니다. 그 부분은 이해하기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1] 어디까지나 '정상 범주의 양육에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입니다. 아이를 비참하게 만들어서 인성을 바꾸겠다고 생각하면 그건 그리 어렵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John B. Watson의 '아이를 조건화하기' 실험처럼 아이를 다루려고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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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아 주셔요 ^^
덧글
<반면에 오래 전에 부모를 잃었지만 부모가 보여 준 사랑과 희생을 회상하면서 행복한 추억에 젖어 드는 사람들도 있다.>
--->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이것이 전부라고 봅니다. 얼마전 뉴스기사를 보니까 초등학교 아이를 하루종일 학원에 보내는 엄마가 그렇게 학원을 닥달해서 보내는 것도 부족했는지 뭔가를 더 닥달하다가 아이가 결국 '엄마 인생이나 잘하세요'라는 말에 할 말이 없었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그 부모들한테 이런 글을 보여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덧붙여 한국식의 '효'사상이 오히려 자식을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부모의 자식을 통한 신분상승(저는 이걸 남편감 잘 물어 신분상승을 도모하는 신데렐라 욕망의 변형으로서 유사 신데렐라 욕망으로 부르고 싶습니다)의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점에서 정말 개탄스럽습니다. 한국사회는 맹모삼천지교라는 고사에 대한 찬양부터 그만두고 그 고사를 가장 먼저 비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ps: 이러한 부모의 욕망의 대표적인 에를 들라면 현대한국사회의 김연아 선수와 그 어머니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김연아 선수가 자기 엄마를 변호해주느라 애를 많이 쓰던데 그럼에도 김연아 선수의 어릴적 일기내용-피겨하는 기계인 것 같다-을 비춰보건대 자기 어머니에 대해 애증이 교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록 성공을 했기에 어머니에 대한 증오는 일단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겠지만 말이죠. 더 큰 문제는 김연아 선수의 성과와 별개로 김연아 선수 엄마의 욕망은 사실 찬양보다는 비판되어야 하는데 이것을 한국사회가 극도로 찬양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문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덧붙여 한국식의 '효'사상이 오히려 자식을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부모의 자식을 통한 신분상승(저는 이걸 남편감 잘 물어 신분상승을 도모하는 신데렐라 욕망의 변형으로서 유사 신데렐라 욕망으로 부르고 싶습니다)의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수단" <--- 제가 이렇게 말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원래 가족 사이에도 이해 관계의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피가 안 섞인 부부 뿐 아니라 피가 섞인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말입니다.
->위장전입 같은 걸 끼얹나??
이거 명언이로군요
결혼도 안 했는데..
아이를 인격체로 대해라 란 말에 동의하는 부모는 많지만 아이를 애완견 처럼 대하지 말아라는 말에 동의 하는 부모는 많지 않더군요.
소유나 조종해야 할 개체로 대하지 말고 같이하고 지켜 봐야 할 대상으로 바라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는 훼이크고...
현대 교육학에서 스키너의 영향이 너무 크기는 큽니다. 스키너의 조작주의적 분석과 조건형성이 심리학에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것 때문에 아이들을 "텅빈 서판"으로 인식하는 경향또한 증가했거든요. 유아기에도 각각 인지발달단계가 있으며 그 단계마다 이루어지는 발달의 완성(과제의 완성)을 중요시했던 피아제의 인지발달론이 핑커의 주장하고도 유사한 부분이 많군요.
좀 골때리는 건 어디서 생긴 루머인지 모르겠지만 조작적 조건반응을 주창한 스키너는 엄격한 아버지라서 그 자녀들이 모두 성공했고, 인지발달론을 주창한 피아제는 그냥 케세라세라 방임한 아버지라서 그 자녀들이 모두 사회적 낙오자가 되었다는 루머가 넷상에서 돌더군요. 그걸 기반으로 스키너 이론 킹왕짱 피아제 이론 이뭐병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뭐...
사실 독립 학문 분과로서 진화심리학은 대략 20년밖에 안 됐기 때문에, 거기서는 두 사람이 그리 중요하게 취급되지는 않습니다. Matt Ridley 같은 사람은 피아제를 높게 평가하고는 있지만, 잘못된 의견도 지적하더군요.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라... ^^;;
내일쯤 보겠습니다;;;
사실 좋은 양육이란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이죠. 이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는 게 의외로 쉽지 않은 듯 하더라고요.
전문가가 꼭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있을 필요는 없겠죠...(아이는 커녕 결혼도 안 했으면서 부모들 데리고 parent guidance도 실컷 하고 비싼 돈 charge 하는 사람으로서 찔려서 하는 방어적 진술임을 당연히 아시겠죠...쿨럭)
태반 공유에 대한 논문은 제가 나중에 시간이 되면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요즘 행동 유전학 세미나가 매주 있는지라 그 분에게 물어보면 되겠더라고요.
아이를 비참하게 만들어서 인성을 바꿀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증명된 사례들이 꽤 많지요. 가령 루마니아의 고아들 같은 사례들은 조금만 읽어봐도 정말 심난해지는 경우가 많이 존재하죠...
사실 여기 교수들은 선천론과 그 반대 입장에 대해서 양비론적 태도를 갖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여기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또 덧글이 길어질 것 같아서 이번에는 그냥 생략하겠습니다...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 또 하나의 재미있는 현상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어떻게 바뀌는가 아니겠습니까 :-)
특히나 몇년(...) 전에 오라버니께서 양육가설 읽어보라고 하셔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가 번역본 없음에 좌절하고 있었는데, 앞글에 달린 덧글의 정보 덕분에 번역본을 조금이나마 접하게 되어서 그것도 좋았네요.
셋째 임신중인 입장에서는....아이가 '인간이다'라는 사실만 가슴에 박아두면 사실 큰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분명 줄어든다는데 힘을 보탤 수 있겠습니다. 저는 정말 그 명제 덕분에 육아가 매일매일 즐겁거든요. (즐거워서 셋째까지 지른..;;)
축하한다. 너 정말 애 기르는 것을 좋아하는가 보구나.
접근 방법은 달라도 교육계의 결론과 같은 결론이 나오는군요@_@ '한 아이를 키우려면 한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 라는 게 요즘 교육학계의 인식이라...:) 본성'과' 양육 이 최근의 트렌드라고나 할까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아이의 특성을 알고, 그 특성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이죠:) 특히 성차에 따른 차이를 고려하는 교육도 최근 10년 사이에 많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Single-sex education 같은 사조도 있고요.
한줄요약을 하자면 1. 애를 파악한 뒤 2. 잘 키워라(...) 정도일까요^^;;;
single-sex education에 대해서는 그리 찬성하지 않습니다. 물론 성향에는 예외가 존재하지만 남녀 아이들에도 분명히 성향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교육이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촉법소년도 성인처럼 처벌해서 피해자를 보호하는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스티븐 레빗의 연구에 따르면 연령에 따른 형벌 감경이 없으면 확실히 범죄는 줄긴 하겠지요. 그런데 아직 제대로 갈 가능성이 더 많은 사람을 장기간 감옥에 가둔다는 것이 타당한지는 모르겠습니다.
책을 못 읽어봐서 그런데, 아이의 성격적인 면을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높이는 것은 양육으로 가능하다고 보나요? 직접적으로 예를 들면, 하루에 15시간씩 각종 과외 학원 공부를 시키면 전문직이 될 확률이 더 올라간다든지, 이런 것도 소용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나요? 소용 없으면 좋겠는데 ㅎㅎ
하지만 Matt Ridley의 말을 한 번 들어보소~~~
"교수 집안의 아이가 어쩌다가 가난하고 학구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집에서 자라나면, 학교 성적은 형편 없지만 중년에는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뛰어난 교수가 될 수 있다. 반대로 그런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학구적인 교수 집으로 입양되면 학교 성적은 뛰어나지만 중년에는 깊은 사고력이 불필요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이건 단순히 잡설이 아니라, 나이가 들면 들수록 유전율이 높아진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Ridley가 든 가상적인 사례입니다. 다 성장한 후에는 양육 방법 자체가 크게 영향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지만, 우리 나라 대입 같은 10대 후반의 단판치기에서는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여러모로 과거 집성촌이 가지고 있던 순기능들에 대해서 재조명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가 싶네요.
이분 책은 왤케 두껍고 비싸고.ㅎㅎㅎ
.............
내가 뭘 산거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