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205758
한 후보 지지자들 역시 “전쟁이냐, 평화냐. 투표로 심판하자”, “전쟁을 막는 방법 한명숙”, “국민은 평화, 정부는 전쟁” 등이 쓰인 피켓을 들었다.
한 후보측 임종석 대변인은 “이번 선거를 정권견제론 및 심판론으로 끌고 갈 것”이라며 “천안함 사태에 따른 경제위기가 지난 10년간의 경제안정과 발전을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태를 둘러싼 반전(反戰)과 평화를 고리로 현장유세를 펼쳐 ‘야권표 결집’을 시도한다는 전략이다.
한 후보의 수사는 보기에는 좋지만, 漁夫는 그가 요점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나라의 야당을 대표하여 서울 시장에까지 나온 인물이 이 상황에서 '전쟁이냐 평화냐 선택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면, 이것은 국가 간의 관계 및 국제 정략에 대해서 매우 무지하다는 증거니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요즘은 약간 다른 분야의 포스팅을 주로 하시지만, sonnet님의 글들은 이 분야의 보물 창고나 다름 없습니다.
여기서 히요씨는 중대한 비약을 하나 한다. "남은 건 군사적으로 쳐 쓰러뜨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라고.
즉 자신이 제시한 유화책과 전쟁 중 택일하라는 식으로 독자에게 제시한다. 이게 과연 좋은 선택일까? 전 미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전쟁과 평화의 양자택일이란 구도는 한마디로 협박에 굴복한 모습이라고 지적한다. 이 지적은 정말 통렬하다. 94년 북핵합의의 미국측 당사자였던 갈루치 조차도 이 말이 옳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을 정도니까 말이다.
... 결국 이렇게 살펴보면 "정치/경제적인 합리적 접근으로 될 상대가 아닌, '비합리적인 상대방' 이라고 간주한다면, 남은 건 군사적으로 쳐 쓰러뜨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란 히요씨의 이야기는 문제를 평화와 전쟁의 양자택일인 것 처럼 포장해 제시함으로서, 잘 모르는 독자로 하여금 유화책을 택할 수 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전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 sonnet, '히요씨의 주장에 답하다 #4' 에서 (강조는 sonnet님이 직접 넣음)
한명숙 후보가 평화를 사랑한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한 후보가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漁夫도 모릅니다만, 맹목적으로 '평화를 선호하도록' 만드는 선택을 강요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의 행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좁혀서 결국에는 북한에게만 이로운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그럴 거라는 생각까지는 안 하지만, 대한민국이 손해를 보더라도 북한에게 좋다면 괜찮다는 생각은 설마 아니겠지요.
제 개인적 관점으로 보자면(shaind님의 관점과도 일치하지요)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흑백 논리입니다. 제 취미인 진화생물학에 대해 서술할 때에도 '이 모든 변화는 연속 변수다'거나 '절대적(100%나 0%만 있는)이 아니고 서로 상대적이다'란 말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이번 천안함 건도 마찬가지지요.
중요한 것은 여러 가설 중 무엇을 믿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절대적으로 신뢰도 얼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여러 가설 중 신뢰도가 가장 나은 것'을 선택했나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이 포스팅에서)
마찬가지로 사람의 머리로 전쟁과 평화라는 길항개념을 취급하기는 쉽지만, 완전한 평화와 전면 전쟁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의 "그라디언트"를 취급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 shaind -
흑백 논리가 무서운 것은 그 외에 다른 가능성을 봉쇄해서 유연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이번 천안함 사태 같은 경우 진짜로 전쟁을 할 가능성이 실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한국에게 무슨 군사적 도발을 하더라도 한국이 적극적 대응을 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줄 경우에, 북한이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뻔하지 않습니까?
영장류의 사회 생활을 연구해 온 Frans de Waal의 말로 이 포스팅을 끝내는 편이 좋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 평화는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핵심적인 질문은 이렇다. 누구를 위해 좋은 것일까? 팍스 로마나(pax romana)는 로마인들에게는 축복임에 틀림없었겠지만 로마 제국의 속국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까? 모든 사람은 자기 입맛에 맞는 평화를 원한다...
영국의 주간지 '옵저버(Observer)'의 전 편집장인 코너 크루즈 오브라이언(Conor Cruise O'Brien)은 1950년대 유엔에 제출한 한 결의안 초안을 두고 달라이 라마의 한 티베트인 참사관에게 승인을 요청한 일화를 들려준 바 있다. 초안에는 '승리(victory)'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 참사관은 티베트인은 평화의 종교를 신봉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처럼 끔찍한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했다. 오브라이언은 불교를 믿는 사람들도 싸움을 하는지, 그리고 싸움에서 이기면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는지 물었다. 그러자 참사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그런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 있지요. 우리는 그것을 아주 훌륭한 최고의 평화(very excellent best peace)라고 부릅니다."
- 'Peacemaking among primates(영장류의 평화 만들기)', Frans de Waal, 김희정 역, 새물결 刊, p.38~39
{ 추가하자면, 이 포스팅도 보시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
漁夫
ps. 원래 이런 포스팅은 다 아시다시피 漁夫의 장기가 아닌데 어쩌다 보니 연속하게 되네요.
덧글
그것은 마치 돌림노래..
일본이 데인 게 있어서 좀 '무조건 반전' 성향이 없지 않지요...
전 이명박 대통령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자국민이 공격을 받았을 시 국가의 수장이 저렇게 단호하고 강경한 의지의 자세를 보인다는 것이 바로 수장의 모범이라 생각하는데 어째 민주당 애들은 얼른 돈 주고 빌어 전쟁난다 우웡어어ㅓㅓㅓ 전쟁싫어 잉잉 2번뽑아주세요 잉잉 이러고 있습니다. 하긴 대놓고 해전이었던 김대중 대통령때 월드컵 구경 간 그분에겐 한 마디도 없는 당이긴 합니다만
이젠 저 인간들 얼굴도 보기 싫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