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의 사고 방식과 성차에 대한 태도
하도 자주 이 블로그에서 적었던 내용이라 여기 자주 오실 분들에게는 지루할 내용이다.
다음 세 문장을 보자.
* 남자는 여자보다 대체로 키가 크다.
* 결혼 상대를 고를 때 대체로 남자는 여자의 용모를, 여자는 남자의 재산을 중요하게 본다.
* 여러 가지 물건이 섞여 있는 모습을 한 번 보고 그 중에 특정 물건을 찾아내라고 요구하면 여자가 더 빨리 찾아낸다.
셋 다 객관적 지표들을 사용하여 측정이 가능하고, 반복 검증을 통과한 옳은 주장이다. 그리고 왜 그런지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여기 자주 들르시고 진화심리학적 사고 방식을 이해하는 분이라면 아마 이유를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남녀의 성차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주장들은 남녀의 평균적인 차이를 언급하지 개별 사례에 대해서까지 예측을 정확하게 하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 'The red queen', Matt Ridley, 김윤택 역, 김영사 간, p. 375~376
하지만 '평균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만약에 임의로 한국 성인 남성과 여성 한 명씩을 고르고 그 중 어느 편이 키가 작을 것이냐고 질문한다면, 여러분은 확실히 '여성'이라고 답해야 옳을 가능성이 크다. 마찬가지로 그 두 사람에게 결혼 상대로 무엇을 중요하게 보냐는 질문을 하더라도, 위에 적은 것처럼 답을 해야 옳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되겠다. 쉽게 말해서, 진화심리학에서 성차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통계적으로 보는 남녀의 차이며,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평균적인 남성과 여성이 보이는 행동의 편차(bias)인 것이다. 전형적으로 이런 식이다;

위의 4점 척도 그래프를 무리하게 '행동 확률'로 옮기자면, 같은 상황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결혼 고려 및 장기적 상대를 선택할 때 후보자의 재정적 전망을 남자에 비해 대략 20~50%는 더 중요하게 본다는 말이다.[1] (물론, 남자가 여성에 비해 다른 점들에 대해서도 이런 얘기는 마찬가지다)
이 이유는[2] 차치하고, 특정 상황에서 어떤 점에 대해 평균적으로 어느 편 성이 내리는 판단이 한 편으로 쏠려 있을 경우 그것이 현대 사회의 관점에서 불편해 보인다고 해서 그 편 성을 비난할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3] 이런 진화적으로 나타나는 성차는 인간의 대부분을 만든 석기 수렵채집민 생활에서 나타났으며, Matt Ridley의 말대로 "과거에 한때 그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수명이 길기 때문에 요즘도 인간의 유전자는 거의 100% 석기 시대 그대로며, 그에 의거한 행동 양식도 마찬가지다. 어느 진화심리학자의 말처럼 "인간은 모두 추월선 상의 석기 시대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간의(아니 모든 생물의) 유전자에 입력된 프로그램은 'if.... then... ' 방식의 조건부(conditional)라는 점이다. 살인에 대한 제재가 미비한 씨족-부족 사회에서 남자가 살인하면 번식 가능성을 크게 올릴 수 있지만, 현대 OECD 사회에서는 살인은 번식 가능성 증대는 커녕 여생의 수십 년을 감옥에서 지내게 만들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인 남성의 살인 사망률이 20~60%이던 수렵 채집인이 현대 OECD 사회의 환경에서는 살인율 0.3% 이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4] 진화심리학자건 진화심리학의 발견을 다른 분야에 응용하는 학자들이건, 도덕이나 가치 판단에서 한쪽의 성을 비난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5] '오독'을 우려하는 설명은 숱하게 보이지만 말이다.
아마 Steven Pinker의 책에서 나왔을 텐데, "오류는 0 아니면 100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완벽한 관점'에 매몰되는 데서 나온다." 사람의 행동 성향 편차에서 0과 100으로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평균적 편차는 양편에 대해 아주 큰 편이 아니며 개인에 따라서 역전되기도 한다. 가령 개인에 따라, 어떤 경제적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대안 중 하나를 고르는 trade-off 상황에서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쪽을 선택하는 선호 정도가 다를 수 있다(모험적이냐 안정적이냐). 특정인에 대해 단기적 또는 장기적 전략을 조금 더 많이 선호한다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위의 조사 결과를 두고 '여성들은 돈 밝힌다'고 바로 말한다면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오류인 것이다.
진화심리학의 발견 및 거기서 나오는 파생 결론들을 도덕/정치/사회적 관점에서 공격하는 사고 방식의 문제점이 하나 더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판단 경향('본성'이라고 말하겠다)이 무엇인지를 밝혀 낼 때 현대 시각에서 보아 장점인지 약점인지를 전혀 가리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21세기 OECD 사회 주민들에게 불쾌해 보일 얘기 뿐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현재와 같이 장점 많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고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나올 수 있었나 같은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전해 준다.[6]
2. 인간 가족처럼 '수컷이 암컷 및 그 새끼들에게 열심히 평생 투자하는 경향이 높은' 종은 포유류에서 대단히 예외적이다.
일부 유쾌하지 못해 보이는 결론 때문에 진화심리학 또는 그 논리를 거부한다면, 인간의 장점을 묘사하는 설명도 포기해야 한다. 특히 여성에 대해서는 일부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렇게까지 말한다;
- ibid, p.399~400
객관적인 장점 많다[7]. 하지만 '약점으로 보이는 것'과 이 '장점'은 같은 (진화심리학적) 논리를 써서 이유를 밝힐 수 있다. 누군가가 '약점으로 보이는 것'을 진화심리학적 논리를 써 설명할 때 그것을 비난한다면, '장점'을 얘기할 때도 비난해야 타당하지 않을까.
어떤 한 사안에 대해 '장점으로 들리는 것'을 얘기하면 괜찮고, '약점으로 들리는 것'을 말하면 나쁘다는 사고방식에는 많은 분이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과학에서 개개인의 선호가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우선이 아니지 않은가.
漁夫
[1] 이 결과는 너무 흔하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뉴스거리도 아니다; 이 링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물론 성격도 중요하며 진화심리학에서는 그것도 설명한다. 하지만 여러 성차 조사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다른 조건이 비슷할 때) "남성은 미모, 여성은 배우자의 '수입' 또는 그 가능성을 더 중요시한다"는 점이다.
[2] '여성의 번식 잠재 능력(female's fecundity)은 귀중하기 때문에, 남성은 여성에게 번식(물론 자신의 번식이기도 하다)의 대가로 (임신 및 육아 시기에) 필요한 자원을 공급한다. 따라서 여성은 자원 공급 능력 또는 잠재력이 높은 남성을 선택하게 되었다'가 답이며, 좀 더 진화론적 단어로는 '자원을 많이 공급해 주는 남성을 선택한 여성들의 자손이 평균적으로 더 많이 생존했다'이다. Robert Trivers의 1972년 'Parental Investment and Sexual selection'을 참고.
[3] '과거의 진화적 역사 때문에 현재의 인간이 이렇다'는 맥락이 중요하다. 여기에는 현재의 인간에 대한 가치 판단이 전혀 없다. "여성이 배우자 선택에서 돈을 중요하게 보고 실제 그에 따라 도시에 좀 더 모일 수 있다"는 문장이 "남성들은 성인 여성의 낮은 연령, 미모와 함께 낮은 WHR을 선호하고, 지위가 높고 돈 많은 남성일수록 실제 그런 여성들과 결혼한다"는 (흔해빠진) 서술에 비해, 한 쪽 성에 대해서 특별히 더 모욕적이거나 부정적 뉘앙스가 있다고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4] "인간 행동이 유전자의 노예고, 유전자에 묶인 자동 인형처럼 인간이 행동한다"는 말이 잘못이라는 것이 여기서 명백하다. 진화심리학; 편견타파 릴레이 참고.
[5] G.C.Williams나 J.Diamond 같은 대가들도 '남자들이 무슨 쓸모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 '그 질문은 말이 안 된다'고 받아치지 않으며,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윌리엄즈는 '남자는 비용 효율적이지 않다는 슬로건은 전적으로 옳다'고 하며, 다이어몬드는 'Why sex is fun'에서 이 문제에 대해 아예 한 장(章)을 할애했을 정도다.
[6] 漁夫에게는 보통 극장에서 보는 영화들에 비해 이런 설명이 훨씬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방콕으로 지내는 거겠지만.
[7] 다른 이유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Matt Ridley의 이 논리에 대해 솔직히 100% 찬성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성이 회사에 봉사하기보다 자신의 야망에 봉사해서 해를 끼칠 가능성에서 보면, 확실히 여성이 그런 risk를 덜 보여 준다는 말은 전적으로 맞다.
.
닫아 주셔요 ^^
덧글
현대처럼 환경이 급격히 변하는 경우는 진화의 역사에서 지극히 이례적이기도 하고, 사람처럼 세대가 긴 생물의 유전자 변화는 느린 편이라서 그렇기도 하지요. 사실 '현대 사회의 변화'가 얼마나 더 오래 갈 수 있을지도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OTL...
제 생각 속에서 재평가를 해 보고 싶은 책은 'The bell curve'(Murray & Herrnstein)인데, 제 포스팅에서 소개한 '진화의 미래'의 저자 크리스토퍼 윌스는 아주 혐오하는 반면 Steven Pinker는 '이들은 연구 결과에 한계점을 분명히 밝혔으며 인종차별적인 티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라 말해서 서로 상반됩니다. 물론 이 책은 논란이 아주 많았는데, 제대로 좀 읽어보고 싶군요.
단 개인적인 야망이 지나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그 점에서 남자보다는 여자가 좀 낫다는 의견에는 저는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자의 행동 본질 중 하나가 '높은 지위 추구'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리고 진화심리학이 '과학'인 동안은, 다른 학문들보다 많은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과학은, 다른 것과 달라서, 정치적으로 저항하는데 한계가 있거든요. 말씀하셨듯이 '취향보다 사실이 우선'하는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것을 '취향'의 영역에 밀어 넣고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을 분리한 것이 현대 자유주의의 시작(혹은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시작)이라면, 여러 과학적 사실들이 '개인의 취향과 선택'의 영역을 다루기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 ㄷㄷㄷ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통계적 bias를 과학으로 설명한다 해서, 개개 판단에 대해 인간이 자율성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니 진화심리학에 대해 ㄷㄷㄷ한다면 '오독'이 되는 셈이지요.
그리고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자연주의적 관점은 '논리학적 오류'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실제 생활'에 적용이 안되는게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성애에 대한 논쟁에서도 보듯이,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에 용납된다가 아니라, '정체성'이라는 관점, '바꿀수 없다'는 관점, 근본적으로 자연주의적인 관점에서 옹호되고 있다는 것을 볼때, 과학은 좌파든 우파든 '핵심 병기'입니다. 그런 병기에 대해서 ㄷㄷㄷ 하지 않는다는건 무리한 일이죠.
'반동'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 관점은 또 다른 반대편 문제점을 퍼뜨렸습니다. 근본적으로 특정 인간관을 옹호하는 지점은 과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탈민족적, '탈 떼거리적' 자각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것은 인간의 본성과도 거리가 먼 얘기지요. 따라서 자연주의적인 인간관은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현대적 사고 방식에 반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실제 생활'에 적용이 안되는게 아니라는 점"이 - 병풍A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는 얘기가 아니라 - 바로 '옳지 않은 관점'에서 나오는 셈입니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좀 안습이지요.
"자연주의적 관점은, 모든 행동에 대한 '비용'의 기준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큰 가치가 있죠."라는 의견은 저도 거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 자신이 매춘에 대한 정책에 대해 논의를 할 때 그것을 사용했었지요. 저는 정책 수립이라는 관점에서는 자연주의적 행동(즉 '본능적 행동')과 해당 정책에 대한 개인들의 대응 결과로 나타나는 사회적 경향을 반드시 대조하여 정책의 비용과 반드시 대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