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30 23:43

노화의 진화 이론(11) ; 'undervaluation of the future' II ㄴ노화(老化)의 진화 이론

 시리즈의 앞 글은
 * 노화의 진화 이론(1) ; 기계와 생물
 * 노화의 진화 이론(2) ; 성숙, 생식률, 사망률
 * 노화의 진화 이론(3) ; 생식률과 수명의 관계
 * 노화의 진화 이론(4) ; 거장들의 공헌
 * 노화의 진화 이론(5) ; 거장들의 공헌 - 직관적인 이해
 * 노화의 진화 이론(6) ; 잡다한 것들 
 * 노화의 진화 이론(7) ; 이론의 예측
 * 노화의 진화 이론(8) ; 이론의 예측과 실제 I - 사람
 * 노화의 진화 이론(9) ; 불로 집단의 안정성 - simulation
 * 노화의 진화 이론(10) ; 'undervaluation of the future' I


 
  원래 실제 사람의 사망률 변화를 먼저 설명하고 싶었는데, '노화 유전자가 진짜로 젊은 시절에 이익을 주고 노년 시절에 손해를 준다는 점이 mechanism 수준까지 입증된 사례가 있냐'는 질문을 하시는 분이 계셔서 'undervaluation of the future'란 제목의 포스팅 두 개를 삽입하게 되었습니다.  

X + Y = const

  참고로, X(유지/보수), Y(번식)이란 notation은 그냥 갖다붙인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경우, 성적 전략 및 기타 행동에서 X 염색체는 좀 더 보수적인 성격이고, Y 염색체는 좀 모험적인 전략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 아래에서 보듯이, 그렇다고 X 염색체가 완벽하게 유지/보수적인 측면만 있지는 않지만 우선 편의상... :-) ]

  우선 '번식'이 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적죠.  8편에서 이런 인용을 한 적이 있습니다.
 
  수컷의 번식성공도는 수컷들간의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수컷의 생리 기능도 이러한 경쟁에 비중을 더 많이 두고 있으며 그만큼 신체 보존에는 크게 신경 쓰지 못한다.  수컷의 일생은 막대한 판돈이 걸린 도박이다.  압도적으로 우수한 수컷이 수없이 많은 자식들을 얻을 수 있는 반면 평범한 수컷은 단 한 명의 자식도 못 가진다면, 적응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커다란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희생되는 것이 바로 수명을 연장시키는 형질들이다.

- 'Why we get sick', G.C.Williams & R.Nesse, 최재천 역, 사이언스북스, p.177~78

  대부분의 포유류 수컷은 번식을 하기 위해서 상당히 위험한 전략을 구사해야 하며, 위험을 줄이는 '안전빵' 전략은 곧 자식 수의 감소로 이어집니다.  이러니 까딱 잘못해서 저승으로 가시더라도 번식 성공률을 크게 높일 수 있는 모험을 하고,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수컷은 심각하게 건강에 손상을 입든지 진짜로 저승행... 얼마나 남자가 위험한 행동을 하는가는 8편에 상세히 적었으니 여기서는 일단 줄이고, 이 포스팅에서는 성염색체와 '번식 행동'이 미시적으로 수명과 얼마나 관계가 있는가만 간단히 적겠습니다.  

  인간이 발생할 때 기본형은 여자입니다.  이 증거는 어떤 이유 때문에 Y염색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세포가 남성 호르몬(testosterone)에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 경우 성격이나 외형이 여성으로 성장한다는 데서 뚜렷합니다.  즉 인간 남성이 태어나려면 'Y 염색체 - 원시 고환이 테스토스테론 분비 - 이로 인해 원시 여성 생식기가 없어지고 남성 생식기가 발달 / 뇌와 체형의 남성화' 등의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가 아는 모든 '남성적' 행동은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Y 유전자로 귀결시킬 수 있지요.  반면 여성의 임신/수유/출산 등 번식에 필요한 것은 여성 호르몬, 특히 에스트로겐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 윌리엄스의 다면발현 이론은(5편 참조) ] 이론적으로는 매우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런 유전자가 실제로 있을까?  이 개념을 구체화한 진화생물학자인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는 이에 대해, 초년에는 뼈의 강화를 촉진하여 뼈를 튼튼하게 만들지만 말년에는 동맥 벽을 점점 석회화시켜 결국은 동맥경화증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1]
   사실 생식을 위해 수명을 줄이는 증거는 많이 있다.  예를 들어 남성의 생식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이러한[2] 방식으로 면역계를 억제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동맥 벽의 쇠퇴를 촉진하며 전립선암과 관련이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단순한 십대 치매(testosterone dementia) 말고 다른 방법으로도 기대수명을 줄일 수 있다....
  여성의 생식 호르몬 역시 장기간에 걸쳐 유해한 효과가 나타난다.  임신 중에 나오는 많은 양의 에스트로겐은 테스토스테론처럼 면역을 억제한다(적은 양의 에스토르겐은 면역을 자극하지만)[3].  또한 비교적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의 건강 문제는 에스트로겐의 영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사람 역시 생식 호르몬에 일생 동안 노출되기 때문에 유방암에 걸린다는 데는 이견이 없으며 이것은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 'Why we age', Steven Austad, 최재천,김태원 역, 궁리 간, p.173~75

[1] 시리즈 5번 포스팅에 나와 있음.
[2] 시리즈 3번 포스팅; X+Y=const 상황.  생식에 자원을 투자하다 보니 다른 곳에 쓸 자원이 모자라게 된다는 얘기.
[3] 임신 때 면역계가 억제되는 현상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유전자 입장에서 보아 태아는 모체와 1/2만 동일하기 때문에, 태아의 조직이 모체와 동일할 리가 없는데도 모체의 면역계는 태아를 공격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아는 면역계의 입장에서 뿐 아니라 착상 후 하는 일의 측면에서도 '기생충과 똑같다'는 증거가 많다.  면역계의 입장에서는 태아를 공격하고 싶어도 못 하도록 임신 중 족쇄가 채워진 셈이다.

  이런 사례는 사람 외에 다른 생물에서도 맘만 먹으면 제가 아는 정도만 해도 상당히 예를 들 수 있습니다만 여러분께서 분명히 지루하실 것이라서 이만 접어 두겠습니다.  즉 이 상황을

수명 연장(유지/보수) + 번식 = 일정치

  라고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의 인구통계학자 스튜어트 올샨스키가 말하는 일화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날 밤 나는 아내와 함께 침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3년 간의 연구 끝에 과학 잡지에 실을 원고를 보내고 난 뒤라 스스로 성취감을 즐기면서 침실등을 막 끄려는데, 아내 새러가 원고에 대해 물어왔다.  새러는 우리 작업에 일시적인 흥미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내와 아내 친구들은 모두 노화와 그에 따른 몸과 마음의 변화에 남편들 못지않은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최근 끝낸 연구 결과를 간단하게 한마디로 설명해 줄 수 있겠어요?"하고 아내가 물었다.

  내 연구는 생식과 죽음 사이의 연결 고리를 정립하는 것으로 연구 내용이 매우 복잡했기 때문에 "전체 개념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소"했더니, 아내는 그래도 설명해달라며 고집을 피웠다.  내가 잠시 있다가 불쑥

  "섹스의 대가가 죽음이오"

  하고 말하자, 아내는 곧바로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지금부터 섹스는 끝이에요."

  무방비 상태로 한 대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요.  섹스와 죽음과 영생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이야기해주겠소."

- "The quest for immortality", Stewart Olshansky & Bruce A. Carnes, 전영택 역, 궁리 간, p.55~56

분명히 장기간 동안 천천히 설명해 주려 꽤 노력했을 듯

  그리고 번식 뿐만이 아니라, 유지/보수 내에서도 단기간의 이익과 장기간의 이익이 대립할 수 있습니다.
 
  다윈 의학자가 되기 위해 최근 의과대학에 진학한 진화인류학자이자 노쇠 연구가인 폴 터크(Paul Turke)는 면역계가 연령의 영향을 받는 체계임을 저자들에게 일깨워 주었다.  면역계는 우리를 감염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위험한 화학물질들을 분비하는데, 바로 이 화학물질들이 우리의 조직까지 손상시켜 결국 노쇠와 암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 'Why we get sick', G.C.Williams & R.Nesse, 최재천 역, 사이언스북스, p.177~78

  만성 육아종 질환은 중성백혈구나 단핵구의 총수 및 탐식기능은 정상이나 식세포 내로 들어온 균을 살균하는 기능에 결함이 있어 박테리아와 진균감염이 반복되는 질환이다.  이는 세포 내 과산화수소, 할로겐, 과산화물 등의 생성불능으로 식세포 내로 들어온 균을 효과적으로 죽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인간과 유전병', 박재갑 편, 동아출판사, p.137

  식세포라고 불리는 백혈구는 박테리아 또는 기생충이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 등의 외부 물질을 인식하고 집어삼키거나 파괴하는 일을 한다.  식세포는 정상적인 대사 과정에서 생산한, 적은 양이지만 같은 효과를 지닌 산화제를 이용해 외부 물질을 집중 공격해서 죽인다.  식세포 중 어떤 것은 박테리아를 집어삼킨 후 수류탄처럼 터지며 산화제를 그 주위에 퍼뜨린다.  어떤 아이들은 유전적으로 필수 효소가 부족해서 식세포 안에 산화제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없다.  당연히 이 아이들은 만성 박테리아 감염으로 고생한다.  식세포가 폭발하지 않더라도 이 산화제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된다.  산화제는 세포가 늙고 파괴되면 식세포 벽 사이로 새어 나오거나 대량으로 방출된다.  만성 감염은 감염원과 면역계가 연장전을 벌이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때 감염자는 식세포에서 나오는 산화제의 폭격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주로 효과적인 위생 처리를 할 수 없는 국가에서 특히 암이 많이 걸리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 'Why we age', Steven Austad, 최재천,김태원 역, 궁리 간, p.213~14

  식세포는 산화성 분자들인 H2O2, halogens, -OO- (산소-산소 결합) 등을 동원하여 미생물들을 산화시켜 죽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신체 조직까지 손상시키게 되죠.  요지는 '면역계는 병원체를 단기간에 처리하기 위해 위험한 물질들을 동원하는데, 이것은 병원체를 빨리 죽이는 데는 효율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조직을 손상시킨다' 정도면 되겠습니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생물이 더 많은 에너지를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얻기 위해 채택한 산소 호흡 체제야말로 어느 이상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조직을 파괴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는 셈입니다.

   음식이 분해되는 마지막 단계에서 분해된 산소 분자의 몇 퍼센트가 물과 결합하지 못하면 미토콘드리아 안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미세한 생화학적 결함 때문에 산소는 손상을 입히는 자유산소라디칼(free oxygen radicals) 또는 산화제(oxidants)가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분자들은 다른 분자로부터 떨어진 전자와 원자들을 쪼개는 - 산화시키는 - 일을 하도록 특화되어 있어서, 분자들이 일을 수행하는 효율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더 많은 산화제를 생성해서 다른 분자들을 손상시킨다.  즉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셈이다... 
  인간이 산화될 때, 그것을 노화라고 부른다.  사실 노화는 산화 이상의 더 많은 과정을 포함하지만, 산화가 노화의 주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
  어떤 자유라디칼은 너무 반응을 잘해서 무장한 정신병자처럼 만나는 것마다 공격한다.  산화제 대부분이 미토콘드리아 안에서 만들어지므로 사실 미토콘드리아의 모든 부위에 가해지는 손상은 산소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하는 특이한 손상이다..

- 'Why we age', Steven Austad, 최재천,김태원 역, 궁리 간, p.208~09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 현상(대부분은 포유류에도 공통된 것들)에 단기간 이익과 장기간 손해의 진화적 교환 뿌리 깊게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요.


  다음 포스팅은 원래 테마로 돌아가서, 인간의 연령에 따른 사망률 곡선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이 뭔가를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漁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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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09/12/01 00: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漁夫 2009/12/01 18:23 #

    진화학자들의 한탄이 바로 그것입니다. "진화적인 관점에서 의학 연구를 수행해 주기를 바라고 싶다."
  • asianote 2009/12/01 00:11 # 답글

    모든 물질은 결국 분해되고 마는 것이 운명. 그것이 생물이건 무생물이건요.
  • 漁夫 2009/12/01 18:24 #

    생물 개체 자체는 결국 죽어 없어지지만 유전 물질은 거의 영원에 가깝지요...
  • Allenait 2009/12/01 00:18 # 답글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군요..
  • 漁夫 2009/12/01 18:24 #

    네. 이 편에서는 절실히 그 점을 깨닫게 되지요.
  • 아일우드 2009/12/01 19:27 # 답글

    아하!! 등가교환이군요!! 일화도 재밌고요 ㅎㅎ 다음 편도 기대기대~
  • 漁夫 2009/12/01 22:18 #

    가치로 따지면 '등가'인지 모르지만, 시간으로 보면 '가까운 미래가 (불확실한) 먼 미래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시차 교환이 되는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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