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09 13:02

Rwanda 얘기 하나 Views by Engineer

  대량학살의 요건(길 잃은 어린양님)을 트랙백.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이 분야의 전문 서적을 일부러 보지 않는다면, 漁夫 같은 일반 사회 현상에만 관심 있는 이과생들을 위한 최상의 대량학살에 대한 참고서는 Jared Diamond가 썼습니다.  바로 '제 3의 침팬지(The third chimpanzee)'와 '붕괴(Collapse)'가 그것이죠.
  다이아몬드 교수의 이 두 책은 다른 면에서도 훌륭하므로(전자는 과학적으로 조금 낡은 부분을 개정해야 하겠지만) 구태여 구구 절절이 소개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Mark Ridley가 'Committee'라 부른 다이아몬드 교수의 폭넓은 지식을 기반으로 대량학살(genocide)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전자에서는 전세계에서 일어났던 대량학살 사례들을, 후자에서는 르완다와 부룬디에서 일어난 대량학살 사건의 밑바닥을 탐구했습니다.

  이 사태의 배경이라면

... 르완다부룬디의 인구는 주로 후투족(인구의 85퍼센트)과 투치족(15퍼센트)의 두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 면에서 이 두 부족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해왔는데, 전통적으로 후투족은 농업에 종사해으며 투치족은 양을 쳤다.  후투족과 투치족은 외관상으로 구별이 가능하다고 한다.  후투족은 땅딸막한 체구에 피부색이 짙고 납작코와 두꺼운 입술, 각진 얼굴을 하고 있는데 반해 투치족은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며 피부색이 옅고 얇은 입술과 길쭉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르완다와 부룬디에 먼저 정착한 부족은 후투족으로, 이들은 남서쪽으로부터 이동해 들어왔다.  나일 강 유역에 거주하던 투치족은 그보다 늦게 북동쪽으로부터 이동해 들어와 후투족을 지배했다.  나중에 독일(1897)과 벨기에(1916)의 식민 정부가 들어섰을 때 그들은 투치족을 통해 나라를 통치했다.  유럽인들은 피부색이 옅은 투치족을 보다 우수한 종족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1930년대에 들어서자 벨기에는 식민지인들에게 부족의 표시가 되어 있는 신분증을 가지고 다닐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구별은 더욱 뚜렷해졌다.

- '붕괴', 강주헌 역, 김영사 간. p.438

  지금 생각하면, 강대국의 '분열하여 지배한다(divide et impera)'는 정책의 유산으로 인해 - 동양에서는 以夷制夷라고 쓰죠 - 르완다와 부룬디 두 나라는 민족 분쟁이 발발한 셈입니다.
 


  장기적인 민족 분쟁이 어떤 결과를 부를 수 있는가를 웅변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죠.  물론 민족 분쟁만이 이 방아쇠를 당긴 유일한 원인은 아닙니다만 궁극인(ultimate cause)중 하나가 민족 간의 반감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제 3의 침팬지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뉴스에 나온 경우더라도 국제 사회가 대량학살을 막기 위해 손을 쓰는 경우는 상당히 드뭅니다.  르완다의 바로 옆 부룬디에서는 반대로 투치족이 칼자루를 쥐었는데, 사망자 수는 대략 10만 부근으로 평가받는 수가 많습니다.  피해자의 말인즉;

  1972년 부룬디에서 투치족에 의해 8만~20만 명이 살해된 후투족의 한 명이 아프리카 국가 기구(이것?)에서 격한 어조로 연설했다.

  "투치 인은 포르스터의 '아파르트헤이트'보다도 잔인하며, 포르투갈 식민지주의자보다도 비인도적입니다.  히틀러의 나치 운동을 제외하면 세계 역사에서 이것과 비교할 만큼 엄청난 사건은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리카인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의 지도자들은 오히려 사형 집행인인 미콤베로(투치 인, 부룬디 대통령)를 받아들여, 그와 우애의 악수를 나누기까지 했습니다.  존경하는 각국의 지도자들이여, 만약 백인 압제자로부터의 해방 운동에 나미비아, 짐바브웨, 앙골라, 모잠비크 그리고 기니비사우 등 아프리카 인들의 도움을 바란다면, 당신들에게는 아프리카인에 의한 다른 아프리카 인 살인을 용인할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의견을 표명하기 전에 부룬디의 후투 민족 전체가 근절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까?"

- '제 3의 침팬지', p.429

  이런 것을 보면 씁쓸하기 짝이 없죠.  오죽하면 다이아몬드가 "제노사이드는 .... 인간성을 특징짓는 것 중 하나다."라 말했겠습니까.

  漁夫
.


닫아 주셔요 ^^



덧글

  • aeon 2009/09/09 13:13 # 답글

    '칼자루를 쥐었다'라는 표현이 이번 경우보다 더 처절한 때는 없을 거에요. 저긴 총이 부족해서 대충 대장간에서 만든 칼로 때려 잡으니..
  • 漁夫 2009/09/09 19:59 #

    머셰티인가요? 총보다 싸다고 후투족에게 대량으로 뿌렸다는. 현실이 이건 뭐, 악몽보다 더 잔인할 줄이야.
  • reske 2009/09/09 13:37 # 답글

    후투-투치와 유사한 사례가 미얀마 소수민족이죠. 영국은 카렌족같은 소수민족으로 미얀마인들을 통치했지만, 정작 독립하자 공산독재정권이 소수민족 탄압에 나서는.. 이건 뭐 식민잔재 청산이라고 옹호해 주기도 뭣하고 말이죠.;;;

    제노사이드는 영장류의 폭력적인 본성이, 관료화(효율화)된 군대체제와 현대식 병기를 만나면서 만들어진 비극적인 현상인듯 합니다. 그런데 뭐 중국 역사책에 수십만 대군을 땅속에 묻어 죽였다 이런걸보면 꼭 현대의 사건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그나저나 아프리카는 잔학행위의 정도가 상당히 심하더군요, 다른 대륙에 비해서. 쿠데타 일으킨뒤 대통령 배를 갈라서 내장을 빼낸뒤 그걸 비디오로 찍어 판매하는 (우욱 -_-;;)
  • 漁夫 2009/09/09 20:02 #

    증오를 성공적으로 진압해야 하는데, 한국은 오히려 그 '증오'가 전쟁 때문에 '구 친일파'보다는 '상대방 진영'으로 옮아간 감이 있습니다. 구 기득권층도 한국전쟁 땜에 왕창 없어졌고요.

    침팬지와 공유하는 '전쟁 본성'이 무기와 결합하여 나타난 특성 중 하나죠. 물론 현대의 사건만도 아니고 옛날은 지금보다 규모가 더욱 큽니다. 적어도 현 상황이 그대로 가는 한은 OECD 국가 내에서 제노사이드가 다시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봅니다.

    아프리카가 달리 후진국이겠습니까, 저런 엽기적인 일이 아직 백주에 벌어지니까 그렇죠.
  • shaind 2009/09/09 19:10 # 답글

    저 르완다 이야기를 보니, 우리나라가 해방 직후에 소위 "친일청산"을 "제대로"하려 들었다면 제법 끔찍한 사태가 일어났을 것 같습니다. sonnet님은 "계급투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셨지만......
  • 漁夫 2009/09/09 20:03 #

    예. 충분히 동의합니다. 한국전쟁이 그 잔재를 몽땅 이데올로기 분쟁으로 돌려놓고 휴전선이 둘을 가로막아서 바뀐 거겠죠..
  • vicious 2009/09/09 21:41 # 삭제 답글

    곁다리로 흐르는 이야기지만.. 우리나라도 모두가 "만족"하는 "친일청산"이 되려면 한강을 시체로 메워야 할지도....

    뉴기아나는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고대도 아니고 현대에 저런 대량 학살이 버젓히 벌어지는게 참..

    낯선 사람이나 타 집단에 대한 살인 기술은 인류 기술과 함께 나날이 발전하는것 같네요.
  • 漁夫 2009/09/09 23:36 #

    그게 어떻게 '모두가 만족'이 되겠습니까....

    최소한 '선진국'에서는 살인 및 제노사이드 빈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데서 위안을 삼아야죠.
  • aeon 2009/09/09 23:20 # 답글

    더 무서운 건 그냥 팔다릴 잘라서 패혈증으로 죽게 한다는 사실.. 후우.
  • 漁夫 2009/09/09 23:36 #

    '검은 식이요법'도 있습니다. 감방에 넣어두고 물도 먹을 것도 안 주고 죽을 때까지 방치... ㅎㄷㄷ
  • aeon 2009/09/10 07:59 # 답글

    감방이라니 그런 시설도 감방이라고 부릅니까 덜덜...
    차라리 총이나 가스실은 인도적인(!) 살상방법이죠. 예전엔 짱돌이나 막칼, 막창으로 대충 찌른다음 죽게 내버려뒀을 테니..
    규모 자체는 옛날이 더 작지 않을까요? 확실히 더 잔인하다는 덴 이견이 없습니다만.
    오다 노부나가가 히에이잔 태운거나, 에치젠에서 일향종을 대량 학살한 거나... 이세 나카지마까지 포함하면 그 시절에 대략 10-20만으로 추정된다네요. -_-; 그 시절 인구가 어느정도인지 통계치는 없지만 확실히 지금보다 학살당한 사람의 비율은 높겠죠.
  • 漁夫 2009/09/10 23:39 #

    살인률을 비교하면 확실히 낮아지고 있습니다. 인간(특히 남자)의 살인 본성을 이 정도로 억제하고 있는 것만 해도 현대 사회의 큰 공적이라고 할 수 있죠.
  • 한우 2009/09/10 21:00 # 답글

    이런 이야기를 보면 언제나 후덜덜합니다..
    우리 나라 친일 청산을 생각해 보니, 만약 실제로 청산됐으면, 그 때 당시에 큰 피바람이 불었을것 같군요.. 후덜덜
  • 漁夫 2009/09/10 23:40 #

    도대체 몇 명이나 죽어야 했을지 상상이 안 가는 수준이지요.
  • aeon 2009/09/10 23:44 # 답글

    아. 이야기 핀트는 정말 어긋난 거지만 전 현대사회의 비효율이 너무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노동이 아니라 교육을 제공할 수 있고, 여성을 번식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고, 서로 죽이고 죽이는 걸로 해결하지 않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말싸움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어떤 식으로든지 시체가 쌓이는 건 혐오스럽습니다. 친일파 청산이든, 빨갱이든, 유대인이든, 뭐든 간에.
  • 漁夫 2009/09/11 01:38 #

    그런 '사치'를 누릴 정도로 사회가 컸다는 얘기도 되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하는 편이 경제적으로 더 이로운 결과를 불러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편이 더 정확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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