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漁夫가 읽어 본 중요한 진화심리학 관계 서적 모두에는 (거의) 예외 없이 표준 사회과학 모델(standard social science model; SSSM)을 비판하는 단락이 들어가 있습니다. 2004년에 나온 David Buss의 진화심리학 교과서도 그렇고, 1995년에 나온 Steven Pinker의 '언어 본능'및 1997년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도 마찬가지입니다. 2004년에도 Buss가 말한 것 같은 수준이었다면 아마 지금도 사회과학계 내부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만약 지금도 그렇다면, 사회과학 쪽을 위해서도 불행한 사태 아닌가 합니다.
a laugh
Steven Pinker의 저술들은 일반인이 읽으면서 바로 이해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Matt Ridley의 책들이 설명하는 수준보다 한 단계 더 깊게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이 때문에 영어 원문에서 보인다고들 말하는 유머가 - 영어를 잘 하시는 분들은 Steven Pinker의 책들이 무지하게 웃긴다고 하시는데, 漁夫는 내용 이해하는 데 바빠서 도저히 유머를 이해할 회로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 좀 가려지는 측면이 있는가 본데, 漁夫가 다음에 가져온 내용도 이런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학계 주류 정규 교육 과정의 피교육자 일원으로 잠시 몸담아 본 경험자로서 말하건대, 주류 학계에서 그 학계의 정설을 신랄하게 공격하는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을까에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면 간첩이라 할 만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다음에
이 분 말쌈이 맞는가는 요즘에는 간단히 검증해 볼 수 있죠. 'years of anthropological malpractice'로 구글신께 경배를 드리면 이런 결과가. 그런데 아무래도 결과로 처음 언급된 책의 저자 Riall W. Nolan은 1983년부터 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편지를 쓴 '젊은 인류학자'에는 들어맞지 않는 듯합니다. 즉,
漁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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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아 주셔요 ^^
a laugh
Steven Pinker의 저술들은 일반인이 읽으면서 바로 이해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Matt Ridley의 책들이 설명하는 수준보다 한 단계 더 깊게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이 때문에 영어 원문에서 보인다고들 말하는 유머가 - 영어를 잘 하시는 분들은 Steven Pinker의 책들이 무지하게 웃긴다고 하시는데, 漁夫는 내용 이해하는 데 바빠서 도저히 유머를 이해할 회로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 좀 가려지는 측면이 있는가 본데, 漁夫가 다음에 가져온 내용도 이런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면 문화인류학적 기록은 뚜렷하게 대비되는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 같다. 현세기의 인류학은 인간의 다양성에 대한 박람회장으로 우리를 인도해 왔다. 그러나 금기, 친족제도, 샤먼 숭배 같은 모든 카니발은 영어의 dog와 독일어 hundt(옮긴이 주; hund가 맞지 않나요? 하지만 번역서 그대로 옮깁니다)의 차이처럼 단지 표면적인 것으로서 그 속에 보편적인 인간 본성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인류학자들 자신의 문화를 볼 때, 무엇이든 괜찮다는 그들의 일관된 사상은 우리를 걱정스럽게 만든다. 미국의 가장 저명한 인류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클리퍼드 기어츠는 동료들에게 '파격적인 것들을 소리치며 팔고, 기이한 것들을 소매하는 깜짝 상인'이 되라고 권고하면서 "만일 우리가 지극히 편안한 진실만을 원했다면 우리는 편안하게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학자들이 인간의 행동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방식에 담긴 어떤 보편적인 형태도 간과하도록 만드는 태도다. 실제로 이 태도는 '에스키모 어휘에 대한 극심한 왜곡'에서처럼 평범한 것들이 파격적인 것으로 은폐되는 명백한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어떤 젊은 인류학자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다.
- 'Language instinct', Steven Pinker, 김한영 외 역, 동녘사이언스 간, p.628~29
인류학자들 자신의 문화를 볼 때, 무엇이든 괜찮다는 그들의 일관된 사상은 우리를 걱정스럽게 만든다. 미국의 가장 저명한 인류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클리퍼드 기어츠는 동료들에게 '파격적인 것들을 소리치며 팔고, 기이한 것들을 소매하는 깜짝 상인'이 되라고 권고하면서 "만일 우리가 지극히 편안한 진실만을 원했다면 우리는 편안하게 집에 머물러 있어야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인류학자들이 인간의 행동이 보여주는 여러 가지 방식에 담긴 어떤 보편적인 형태도 간과하도록 만드는 태도다. 실제로 이 태도는 '에스키모 어휘에 대한 극심한 왜곡'에서처럼 평범한 것들이 파격적인 것으로 은폐되는 명백한 오류를 초래할 수 있다. 어떤 젊은 인류학자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다.
에스키모 어휘에 관한 이야기가 내 연구계획의 한 부분을 차지할 것입니다. "100년 동안의 인류학적 과오(One hundred years of anthropological malpractice)"라는 제목으로 집필중인 책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고약한 전문적 무능력의 사례를 수집해 왔습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됐지만, 해당 분야의 상투적 지식으로 둔갑해 알게 모르게 각종 교과서에 수록된 인류학의 진부한 이야기들 말입니다. 사모아에는 프리섹스 관습이 있어서 범죄와 스트레스가 없다는 이야기, '점잖은' 아라페쉬족과 같이 성이 반전된 문화(남자들은 사람 사냥꾼임), '석기시대의 생활에 머물러 있는' 원시적인 타사다이족(부패한 필리핀 문화부장관이 모계사회 '원주민'이라고 조작한 부락민들), 문명의 여명기에 존재했던 모계사회, 근본적으로 상이한 호피족의 시간개념, 모든 것이 이곳과는 반대라고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문화, 기타 등등...
이것들을 하나로 꿰는 하나의 맥락이 있습니다. 철저한 문화상대주의에 물든 인류학자들은 오직 상식만을 갖춘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쉽게 터무니없는 것들에 현혹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마치 카스테녜다의 돈주안 이야기와 흡사한 것들이 - 내가 정말로 재미있게 읽었던 이야기들 - 수많은 교과서에 엄연한 사실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직업적 '전문성'이 그들을 완전하고도 철저한 얼간이로 만들어 왔던 셈입니다. 근본주의가 기적에 대한 설명을 수용할 수 있게 해주는 것과 똑같이, 훈련된 인류학적 신념을 가진다는 것은 다른 지역의 그 어떤 이국적인 설명들도 믿게끔 해 줍니다. 실제로 이러한 많은 엉뚱한 것들이 모든 학식 있는 사회과학자들의 표준적인 지적 장치의 일부가 되어 다양한 정신적/사회적 현상에 대한 균형 있는 추리에 영구적인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 'Language instinct', Steven Pinker, 김한영 외 역, 동녘사이언스 간, p.628~29
분야는 다르지만 학계 주류 정규 교육 과정의 피교육자 일원으로 잠시 몸담아 본 경험자로서 말하건대, 주류 학계에서 그 학계의 정설을 신랄하게 공격하는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을까에 의구심을 품지 않는다면 간첩이라 할 만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다음에
내 생각에 이것은 나를 영구적인 고용불능자로 만들 것이라 생각하므로 나는 이것을 조만간에 끝낼 계획이 없습니다.
- ibid. p.629
- ibid. p.629
이 분 말쌈이 맞는가는 요즘에는 간단히 검증해 볼 수 있죠. 'years of anthropological malpractice'로 구글신께 경배를 드리면 이런 결과가. 그런데 아무래도 결과로 처음 언급된 책의 저자 Riall W. Nolan은 1983년부터 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편지를 쓴 '젊은 인류학자'에는 들어맞지 않는 듯합니다. 즉,
아마도 그 분은 아직 (최소 15년 이상) 집필 중일 것이라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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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아 주셔요 ^^
덧글
인류학이 학문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할 자격은 제게 없습니다만,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는 오류를 정정하고 거듭나지 않는다면 좀 곤란하겠죠.
사실 최근 연구 결과를 다 반영한다면 교과서의 종교 관련 설명들은 아마 거의 다 바꿔쳐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저 '젊은 인류학자'의 말은 사회학의 조금 범위를 넓게 잡은 감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SSSM'이 대단히 유력한 학파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심지어는 Helen Fisher 같은 사람도 생전의 마가릿 미드를 '가장 존중받는 인류학자'로 묘사했습니다.
2. 제가 책으로 읽은 한으로는 어떤 진화심리학자도 레비스트로스를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던데요. 오히려 인용한 경우는 보았습니다(J. Diamond, 아마도 '제 3의 침팬지' 같습니다).
"저 '젊은 인류학자'의 말은 사회학의 조금 범위를 넓게 잡은 감은 있지만"이라고 제가 위 리플에서도 말했듯이, 제가 포스팅한 것만 본다면 '싸잡아 비판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 하지만 그 인류학자가 Pinker에게 보낸 편지의 맥락 상에서는 저 단어의 범위가 비교적 명확하다고 봅니다. 이게 그렇게 문제가 될만큼 범위가 넓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어쩌면 어딘가에 상세히 설명하셨을지도 모르겠으나, 모두 읽어보지 못하고 질문을 드리는 것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궁금한 부분은, 저 기제의 정체가 소프트웨어냐, 하드웨어냐 하는 것입니다.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들이 어떠한 '본성'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것은 사실인데, 그런 행동양식이 어디서 오는지가 궁금합니다. 발생과정의 뇌에 미리 입력이 되는 소프트웨어로 보아야 할지(신경망이 그런 식으로 구성이 된다던가..), 뇌의 구조 (전두엽, 측두엽, 대뇌피질)를 이루는 것들의 유기적인 결합에서 나타나는 것인지 (이건 좀 무리한 아이디어라고 생각됩니다 ^^;). 소프트웨어적인 프로그램이라면(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면) 발생과정에서 그런 입력을 관장할 수 있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현재의 연구로는 진화심리학이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연구가 되어있다면 어떤 대답을 제시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
메일로 질문을 드리고 싶었는데 메일 주소를 못찾았습니다 (...)
간단하게라도 답변을 주시면 책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