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20 10:55

치료하면서 고통이 어떻게 사라져 갔나 책-역사

  고통이 고통스럽게 사라진 날...(오돌또기님)을 트랙백. 
  오돌또기님은 글에 the day pain died (보스톤 글로브)라는 기사를 링크시키셨습니다.


어부가 주워들은 역사는
 
  최면 마취에서 언급한 같은 책에서 본 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을 Wikipedia의 마취 항목을 이용해 조금 더 확장해서 요약하면 [ 그 책은 isoflurene이 도입되기 시작했다는 데까지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연대
사람
사항
~1540
Valerius Cordus
ether 최초 합성
~1540
Paracelsus
ether 진통 작용 발견
1769
Joseph Priestley
N2O(nitrous oxide) 발견
1799
Humphry Davy
N2O 마취 작용 발견
1818
Michael Faraday
ether 진통 작용 재발견
1842/1
William E. Clarke
ether 뽑을 진통 목적으로 사용
1842/3
Crawford W. Long
ether 수술 마취 목적으로 최초로 사용(1849 발표)
1845
Horace Wells
N2O 치과 진통 목적으로 사용; 실패
1846/9/30
William G. Morton
N2O 치과 진통 목적으로 사용; 최초 성공 사례로 알려짐
1847
James Simpson
chloroform 진통 작용 발견
1853
John Snow
빅토리아 여왕의 출산 chloroform 사용
1870s
 N2O 마취 재인식
1890s(?)
 N2O 마취에 산소를 병용하기 시작
1930
워터스
cyclopropane 마취에 사용
1951
C. W. Suckling
halothane 합성(사용은 1956년부터)
1963
Ross Terrell
enflurane 합성(사용은 1966년부터)
1980s
 halothane/enflurane을 isoflurane, sevoflurane, desflurane 등으로 대체 개시
현재
 sevoflurane, desflurane 대세

  Wikipedia를 보면 이슬람 의사들도 마취 목적의 화합물을 사용했다고 돼 있는데 설명은 이 정도로만 하죠.

  그러면 마취를 하지 않고 수술을 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 책은 어떻게 묘사해 놓았을까요?
 
...  강한 통증을 억지로 참는 것은 신체에 매우 나쁘다.  앞에서 말했듯이 강한 통증에서는 아드레날린이 나오는데, 그것이 극단적이면 뇌일혈이나 협심증이 되거나, 쇼크나 폐수종이 일어나거나 한다.
  1960년대에 영국 북부의 의사들이 N2O나 큐라레 등의 근 이완약만으로 마취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어쨌든 마취약은 조금밖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깊은 마취에 수반되는 트러블이 없어 한때 환영을 받았다... 확실히 마취가 걸린다.  근 이완약으로 사용하는 큐라레에 교감 신경계를 억제하는 작용이 조금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결국 폐기되었다.  교감 신경계를 억제하는 힘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수술 중에 혈압이 지나치게 올라가거나 폐수종이 일어나거나, 수술 후에는 반대로 혈압이 내려가 시달리거나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교감 신경계의 흥분은 체력을 소모하기 때문에 이 마취로는 환자의 수술 후의 회복이 늦어지는 것 같았다.
  마취는 그저 통증을 없애고, 의식을 없애는 것만이 아니다.  교감 신경계를 억제하여 수술에 대한 환자의 과도한 반응을 컨트롤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감 신경계를 억제하는 것은 마취의 중요한 측면인 것이다.

- '마취의 과학', 스와 구니오, 손영수 역.  전파과학사, p.72~74

  물론 19세기 중반의 의사들이 이런 것을 다 알고 마취를 시도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프더라도 인체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니 (아픈 것을 억제할 수 있어도) 받아들이고 그대로 수술해라'고 말한다면 허용될 일이 아니죠.  그리고 아프면 당연히 발버둥 치거나 하기 때문에 수술이 제대로 될지도 의문이고 말입니다.
  주워다 옮긴 마취의 역사는 그렇다 치고, 트랙백해온 글에서 오돌또기 님께서 어떤 언급을 하셨는가 봅시다.
 
... 놀라웠던 것은 마취제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인식된 후 무려 3백년이 지나서야 수술에 쓰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허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근대의학의 발전과 사회의 근대성이 발전하는 속도 사이에 무려 3백년의 시차가 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고통이 인간의 원죄이며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


개소리 하는 친구들, 한 번 아파 볼텨?



  이러니 어부의 입에서 이 포스팅 같은 소리가 안 나오냐고요.

  漁夫
.


닫아 주셔요 ^^



ps. 바나나신 만쉐이(손나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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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漁夫의 'Questo e quella'; Juvenile delinquency : 의학과 한의학에 대한 개인 의견 2009-12-14 09:06:07 #

    ... bsp; 심지어는 이미 일차 검증을 통과한 약도 현장에서 뭔가 살펴볼 만한 것이 있으면 다시 검증하며, 충분히 괜찮다 싶은 수준의 약도 더 좋은 약이 나오면 주저없이 대체한다(마취에 관한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기반 이론 뿐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사용하는 skill에 대한 이 정도의 끊임없는 검증이 현대 의학을 만들어 낸 것이다. ... more

덧글

  • 액시움 2009/06/20 12:48 # 답글

    어떤 닌겐이 중세를 더 이상 암흑 시대라 부르지 말자고 했던가요.
    최근 사랑니 맹출의 통증 때문에 방바닥을 구르다가 위대하신 따이레놀의 은총을 입어 목숨을 구했습지요. '호산나 진통제 만드신 이여 호산나'를 외쳐도 모자라거늘, 마취제를 만들어놓고도 300년을 안 써먹다니! ㅜㅜ
  • shaind 2009/06/20 14:45 #

    중세는 암흑시대라고 부르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중세적이라고 부르는) 이 글에 나온 특이한 사고방식은 실은 근대를 특징짓는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근대 (19세기) 영국인들이 (탈곡, 제분, 제빵이라는 근면을 요구하는 밀과 비교해서) 감자가 "너무 먹기 쉽다"는 이유로 감자를 경멸했고, 그래서 "감자먹는 에이레인들" 역시 경멸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으리라 믿습니다. 오 위대한 청교도 정신이여.

    비슷하게 아메리카 동부의 청교도들은 중세인들만큼이나 많은 마녀를 연료로 썼고, 빅토리아 시대가 종교적 근엄함 안에서 양산한 수많은 변태성욕의 목록을 생각해보면 좀 아연실색할만하죠.

    인간이 "이상한 것"을 믿지 않게 되기 시작한 시기를 흔히 근대로 잡지만, 실은 근대도 조금만 들여다보고 나면 썩 기분좋지는 않습니다..
  • 漁夫 2009/06/21 16:47 #

    액시움님 / 진통제와 마취제를 찬양하라! 알렐루야 알렐루야~~~~

    shaind님 /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 중세에 '암흑적'인 요소만 있지는 않았습니다만, 합리성(소위 우리가 근대성이라 하는)이 유력하게 등장한 시점이 근대라는 점에서는 중세를 '암흑기'라고 특정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단어로 규정을 해야 한다면 '암흑기'라고 부르는 데 저는 굳이 이의를 달지 않는 편입니다. transient time이니 근대에서도 전근대성을 찾아보려면 많습니다만, 전근대성이 없어져야만 한다면 그것은 20세기 와서도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 제갈교 2009/06/20 14:52 # 답글

    세상 사람들이 관운장 장군이 아닐진대
    어찌 그 3백여 년 동안 마취를 안 하고 수술을 하다니... 환자의 아픔은 나의 즐거움...도 아니고 말이죠. ㅠㅠ
  • 漁夫 2009/06/21 16:47 #

    좀 안타까운 노릇이지요...
  • 시노조스 2009/06/21 05:06 # 답글

    바멘...
  • 漁夫 2009/06/21 16:47 #

    바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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