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눈길을 끈 리플

우선 쥐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원 리플에서 쥐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실제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사례가 관찰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입니다) 도망 못 가는 쥐가 얌전히 고양이에게 '나 잡아 잡수쇼'라 나온다면 그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요. 깨물기라도 해야 깜작 놀란 고양이가 도망가는 거 기대할 수 있지 않습니까? [ 반농담 반진담? 하하 ]
실제 쥐의 행동을 비합리적이라고 말하면 쥐에 대한 모독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쥐라고 상상해 보라. 여러분은 목이 마르다. 루트 비어는 맛이 있지만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쓴맛이 나는 탄산수로 갈증을 푸는 동시에 루트 비어로 기분 전환을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함부로 레버를 누르지는 않을 것이다. (옮긴이; 쥐들은 각 음료에 해당하는 레버를 눌러야 마실 수 있습니다)
이제 탄산수의 가격을 다소 올려서 전보다 적은 양을 제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여러분이 똑똑한 쥐라면 제공되는 탄산수의 양이 여전히 루트 비어의 양보다 많은 한, 아무리 탄산수 값이 올라도 더 많은 탄산수를 마실 것이다. 가격 뿐만 아니라 예산까지 고려하여 행동하기 때문이다.... 탄산수 값이 올라서 여러분이 더 가난해졌다 해도 탄산수가 여전히 루트 비어보다 싸다면 비싼 루트 비어보다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탄산수를 더 많이 마셔야 한다.
바탈리오(Raymond C. Battaglio)와 케이겔(John H.Kagel)과 코것(Carl A. Kogut)은 실험으로 그 사실을 증명했다*. 쥐들은 탄산수 값이 올라갈 경우 오히려 더 많은 탄산수를 소비함으로써... 쥐들이 놀라운 지능을 지니고 있으며, 현재의 상황에 맞추어 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이 중요했다. 심지어 쥐조차 합리적이다.
[ * ; 아마도 이 논문일 듯합니다. Experimental Confirmation of the Existence of a Giffen Good, Raymond C. Battalio, John H. Kagel and Carl A. Kogut,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81, No. 4 (Sep., 1991), pp. 961-970 ]
- Tim Harford, 'The Logic of Life', 번역본 p.43~45
sprinter님의 글은 진짜 '평범한 소시민'의 입장에서 철거민(이 경우에는 호프를 열었던 어느 분)의 환경 및 행동을 분석했습니다. 이 글과 다른 글을 아무리 읽어 봐도 희생된 철거민 분의 - 이 호칭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으실 분이 많을 테니 그냥 '이씨'로 바꾸겠습니다 - 의사 결정이 '특별히 비합리적'이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당시에 재개발 일정이 이씨의 예상보다 더 빨라지기는 했습니다만, 당시의 시점에서 그렇게 돌아갈 것이라고 예측하기가 쉬웠을까요? 오히려 그 전까지 '이 정도 걸릴 것이라'는 경험에 비춰 보아서 '2~3억 정도를 더 투자하더라도 회수할 수 있겠다'고 결정을 내렸다고 보아야 하는데, 이씨의 최종 행동이 소수파 15%에 속하기는 했지만 이 때문에 비합리적이라고 딱지를 붙일 수 있을까요? 만약에 이씨의 예상처럼 재개발 일정이 이런 저런 이유로 늦어졌다면 이씨의 선택은 누가 보더라도 '성공한 의사 결정이었군'이라 말했을 거라고 봅니다.
충분히 생각했는데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면, 또 다른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게임'의 당사자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한 결과가 '현재 존재하는 제도의 맹점인 영역'으로 움직인 경우입니다. 다들 권리금에 문제 많다고 생각하는데, 漁夫도 일견 비합리적으로만 보이는 이 제도가 왜 한국에서 이리도 오래 갔는가를 궁금해하다가 서산돼지님의 이 글을 보고서야 순기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애써서 장사 잘되는 좋은 가게를 만들어 놓았는데,1년 계약 기간이 지났으니 가게를 비우라고 주인이 요구해 온다면 어떻겠는가. 또는 장사가 잘 되니까 임대료를 예전의 두 배로 내 놓으라면 어떻겠는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세입자가 다음 세입자로부터 그 가게의 가치를 돈으로 쳐서 받을 수 있다. 그게 권리금이다.
이 제도는 효율적이기도 하다. 세입자로 하여금 자기 소유도 아닌 가게에 긴 안목의 투자를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가게를 비우고 나가더라도 다음 세입자에게서 권리금으로 그 가치를 받아낼 수 있다는 사실이 세입자로 하여금 최적의 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이 제도가 잘 작동하려면 주인이 과욕을 참아야 한다. 가게가 잘 된다고 임대료를 지나치게 높이거나 세입자를 교체해 버린다면 누구도 세 든 가게에다가는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수십년간 권리금 제도가 잘 작동해 왔다는 것은 상가 임대 시장이 주인들의 과욕을 적절히 조절해 왔음을 말해준다. 가게의 가치는 집주인이 챙기는 보증금과 임대료 그리고 세입자가 챙기는 권리금의 합인데 상가 임대 시장이 이 셋 간의 적절한 균형을 만들어 온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는 법. 권리금 제도도 재개발 과정에서는 골칫거리가 된다. 건물이 철거되는 만큼 권리금을 받아낼 다음 세입자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거 직전의 세입자는 폭탄을 떠안게 된 술래와 같은 처지가 된다. 그러나 해결 방법은 없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권리금 제도는 붕괴된다.
- 김정호(자유기업원장) 기고문에서. 강조는 漁夫가 함.
시오노 나나미의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당시의 제도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표면으로 노출된 결과이다'란 말에 동의합니다. 이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위 글에서도 이 제도의 문제점이 잘 나와 있죠.)
漁夫의 성향 때문이겠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어찌 그런 스타일로 분석만 하고 있는가'란 스타일의 접근을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이런 스타일에서 타당한 해결책이 나오는 일이 아주 드물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감정적으로는 (어떤 경우에) 좀 나을 수 있겠지만 이것이 '피해자'에게 실제적으로 좋은 결과가 나올까요?
게다가 위의 리플에서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시스템에서 애초에 소외된 구성원들에게 합리적(?) 행동을 바란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합니까?" 漁夫는 이 말이 '소외된 구성원'을 변호하거나 그들에게 이로운 결과를 끌어내는 데 결코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합리적이지 않은 (또는 않아 보이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좋게 보이십니까? 게다가 이런 실험 결과도 있군요.
- Tim Harford, 'The Logic of Life', 번역본 . p.43
'소외된 구성원들이 정신병원에 장기간 입원한 환자들보다 못하다'는 논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아니라면 '그들은 쥐보다 비합리적이다'란 함의가 있을수도요.
그런 설득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전혀 장담을 못하겠군요. 자신할 수 있으신가요?
漁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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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아 주셔요 ^^
덧글
'핸들이랑 브레이크랑 스로틀이 몽땅 고장났다'고 전달하는 것이야말로 필승의....
이건 사실 '자살'과 '자살소동'의 차이점과도 유사한데.....
아무리 그래도 농성한 측이 '너희가 손대기만 하면 우리는 죽는다'는 식으로 불가피성을 강조했다고는 좀...
사실, 요약을 하면 다음과 같이 될 터인데...
"내가 지금 말도 못하게 궁지에 몰려있으니 (통상적으로 사회통념상 용납되기 힘든) 극한조치를 -불가피하게- 취할 수 밖에 없었고 선택의 여지도 전혀 없다! 그러니 극한조치의 책임은 너희들에게 있다!"
문제는 정말로 궁지에 몰려있을 경우라면 대체로 점거건 뭐건 없이 그냥 자살하고 끝나거든요...
이유는 간단한데... 임대인이 임차인의 현금흐름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그 가게가 잘되는지 안되는지 판단할만한 뾰죽한 방법이 없거든요...
임대인이 임차인의 재정상황에 대해 기껏 알 수 있는 방법이 월세를 잘 내는가 여부 정도인데 이것만 가지고는 장사가 '안되는' 상황은 판단할 수 있을 지언정(월세가 밀리거든요....) 장사가 잘 되는 상황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장사가 잘된다고 해서 계약서 이외의 월세를 더 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땅값이 오르면 세금도 오르니 임대료도 오른다.... 라는 것이라는....
권리금쪽은 모르겠더군요.. 업종전환이 되는 상황에서도 권리금이 유효할지는....
저도 업종전환 상황에서 권리금이 유효할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5년동안의 대충 상황은 이렇죠....
i. 부동산가격이 튑니다...
ii. 부동산폭등을 잡겠다고 세율이 튑니다...
iii. 세율만 튀면 모르겠는데 세율산정의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도 현실화 됩니다...(예전에는 이게 실제가격과의 차이가 컸는데 그 기간동안 바로 그 차이가 줄어들었죠...)
5년동안 한가지만도 아니고 3단연속콤보를 먹은 상황이었으니.... 5년동안 세금이 2배로 올랐어도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닐 듯 합니다... 사실 임대업을 할라 치면 일단 그걸로 세금부터 때울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가나 세율에 민감할 수 밖에 없죠.....
그런데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느냐고 해서 든 생각이지만... 그런 경우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쥐는 고양이를 보는 순간 얼어붙는데, 앞발로 툭툭 쳐도 꼼짝도 못합니다. 그냥 장난감 쥐라도 된 것처럼 완전 "얼음" 상태가 되더군요. 고양이는 장난질 치다가 쥐를 해치웁니다. (배가 고프면 장난질을 치지 않을지도...)
아무튼 제가 본 바로는 그렇습니다. 다른 경우가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쥐덫이야 우습고, 끈끈이를 놓으면 모래를 뿌려 못쓰게 만드는 녀석들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하다가 한마리를 구석에 몰아넣고 때려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제 얼굴쪽으로 펄쩍 뛰어오르며 덤비더군요. 제가 움찔해서 피하자, 그 틈으로 냅다 튀어 도망갔습니다.
결국 저도 머릴 써서 잡긴 했습니다. 쥐덫 위에 미끼대신 쥐약을 놓았죠. 쥐들은 사람들이 쥐덫위에 맛있는 먹이를 놓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거든요. 쥐들이 쥐덫에 안걸리는 것만 신경쓰며 쥐약을 맛있게 잘 먹더군요.
2 저도 잘 모릅니다만.. 아마 권리금도 보상이 되기는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권리금이 얼마니 물어준다는 식은 절대 아니구요, 임차권의 수용금액을 평가할 때 기대수익으로 산정될 것 같습니다.
공토법 시행규칙 28조에 보면, 임차권을 수용할때 기대수익을 평가해서 보상하게 되어 있습니다. 권리금이란 것이, 잔존 임차기간에 그에 상응하는 수익을 낼 수 있을거란 기대하에 오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결국 권리금은 기대수익의 평가문제로 돌아가겠지요.
아무것도 없이 석달치 영업이익[공토법 시행규칙 47조의 휴업에 의한 영업손실보상]과 이사비용 정도만 받는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건 둘 중에 하나가 아닌가 싶어요. 첫째, 사업인정고시 이후에 임차를 한 것이거나, 둘째, 임차기간이 수용보상금 산정 시점 이전에 이미 만료되었거나. 둘다 보상금을 줄 수 없겠죠.
2. 권리금도 보상이 일부 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실 제가 김정호 원장의 얘기를 인용한 것은 '권리금이 의외로 장점이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비합리적인 제도 얘기가 리플에 나온 이상 '이게 그렇지만은 않다'는 논지를 보강하는 데 적당해서요.
사람이 항상 합리적이지는 않지만, 이런 문제에서는 보통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합리적이라고 봅니다.
그들이 생존권을 위해 투쟁했건, 권리금 본전을 뽑아내기 위해 투쟁했건을 떠나서.. 어쨌건 이익을 보전하기 위한 행동(합리적으로)이었던건 맞는것 같네요..; 원글에 대한 덧글에도 달았지만, '사람이 죽은'문제를 합리적으로 분석하려는것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도 많은듯..; 근데 게임이론이나 이런것들이 그런데 쓰라고 만든건데 말이죠.. 아직 대중의 인식과 전문지식간에는 거리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덧글중에 게임이론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면서 sonnet님의 분석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보이려는 분들도 꽤 있네요...-_-; 제가 볼때는 소넷님의 분석은 맞는것 같은데, 왜들 그러는지..(은근히 자신들의 지식(이나 학력)을 과장하려는 냄새가 나서 다소 불쾌하기도 하고...;;;)
말씀처럼 '이익을 얻기 위한 행동'을 '비합리적인데 합리적 게임 이론으로 어떻게 다루냐'고 나온다면 오히려 철거민 측을 비하하는 - 적어도 냉소하게 만드는 - 것을 조장하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쌍방이 합리적으로 행동했는데도 저런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 현 실정에서 저런 사태를 막는 제도를 만들 수 있을까?'라 물어봐야 생산적인 논의가 되겠죠.
용산사태는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이제 정리가 돼야 할 텐데요.
전세금 문제가 현존하고 있으며 '暗' 측면만 있지도 않다면, 그 제도의 '손실과 이득'에서 어딘가 현실에 맞는 절충점을 찾도록 진지하게 노력해야지 '사람 죽었어!!!!!!!!!!!!!!!!! 그 XX들은 절대 안돼!!!'라면 문제 해결과는 요원하다고 봅니다.
예제. 사람이 죽었는데 [팩트를] 따지는 너는 죽일넘.
사람이 죽었는데 [헌법]을 따지는 너는 죽일넘.
[ ... ] 은 대충 아무거나 편한대로 집어넣고 쓰면 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