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24 22:17

Arturo Benedetti-Michelangeli 고전음악-음악가

  20세기에 이탈리아 피아니스트들은 별로 주목받지 못한 모양인데, 그 중에 딱 하나 예외가 바로 아르투로 베네데티-미켈란젤리입니다(1920~95). 레파토리의 폭으로 유명하기보다, 이를 극도로 줄이고 연주의 연마도를 올리는 편을 선택한 특이한 존재입니다.
  그는 1920년 생입니다. 이탈리아 내에서 공부하고 1939년 제네바 콩쿠르에 출전했는데, 코르토가 그 자리에서 '현대의 리스트'라고 선언했을 정도로 연주가 완벽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선지, 당시에 바로 이탈리아 HMV 지사에 녹음을 시작했습니다. EMI 레페랑스 시리즈에 보면 1939~41년의 이탈리아 녹음들이 몇 들어가 있는데, 원숙기의 녹음과 비교하기는 다소 어렵지만 이 때 이미 개성적인 음악 파악 능력과 정확하기 이를 데 없는 기교는 숨길 수 없습니다.
그도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처럼 - 가령 피셔-디스카우처럼 - 전쟁에 말려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는데, 파일롯으로 있다가 격추되었다는 등... 저도 정확한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피셔-디스카우처럼 포로 생활을 하지는 않았다고 아는데, 아뭏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환경 때문에 그는 음악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그가 유명하게 된 것은 1948년의 런던 방문 때입니다. 연주회에서 대갈채를 받았고, EMI와 계약을 맺어 녹음도 재개했습니다. 이 당시의 녹음 중 바흐-부조니의 '샤콘느'와 브람스 '파가니니 변주곡'은 강력한 기교 뿐 아니라, 그 대단한 완성도로 지금까지 유명합니다. 이 이후에 그는 연주회를 극도로 가리게 되는데, 신경질적이라 할 정도로 민감한 성격에 완벽주의자였다고 하는 그의 성질을 고려하면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아마 연주회를 여는 자체가 - 프로 연주가의 생활 수단인데도 불구하고 - 뉴스거리가 된 음악가는 그와 호로비츠 뿐일 것입니다.
  그는 다른 방면으로도 재미있는 화제거리를 많이 남겨 주었습니다. 제자를 별로 두지 않았지만 일단 받으면 집에서 숙식시켜 준다는 말이 있고, 폴리니와 아르헤리치에 대한 평도 재미있습니다. 아르헤리치를 폴리니보다 높이 평가했다고 하는데, 실상 직접 배운 아르헤리치는 "연주를 듣기만 하지 거의 아무 말도 안 한다"고 말했다네요. 바이올린과 오르간 연주로도 프로에 가깝고, 스키어(skier)에다가 자동차 경주에 직접 출전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게 음악 외의 모든 것은 잠시 지나가는 데 불과했다"고 말했다니 역시 투철한 음악인이었음은 틀림 없습니다. 그는 1995년 사망했는데, 세상에 올 때처럼 가겠다고 생각했는지 아무 것도 걸치지 않고 관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전합니다.


▲ 드뷔시 '영상' 1/2집, 어린이 차지의 음반(DG). 이 곡의 필수품으로 공인된 음반이다. (from DG site)

  그는 녹음을 싫어했는데,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고 1960년대 중반에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딴 레이블을 만들어 직접 녹음을 시도했던 일도 있습니다. 지금은
Decca에서 발매하고 있는 베토벤 소나타 32번, 갈루피와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들이 바로 이 'BDM production'의 녹음입니다. 하지만 이 시도는 비극으로 끝나는데, 이 회사가 망하면서 그에게 손해 배상이 집중되었고, 재정적인 면에 대해 잘 몰랐던 그는 고스란히 덤터기를 쓴 모양입니다. 결국 그는 "다시 이탈리아에서는 연주 안하겠다"고 했는데, 이 말을 지켰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중의 바티칸 연주회가 있기는 합니다만, 거기는 공식적으로 이탈리아가 아니죠.... ^^ 그 이후 그는 녹음을 별로 하지 않았으며, 일단 녹음을 한다고 해도 그 세션이 끝까지 진행될지 아닐지는 녹음이 끝나야 안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줄리니 지휘 빈 심포니와 베토벤 협주곡 3번을 녹음할 때, 잘 진행되던 중에 갑자기 그가 같은 부분을 반복해서 몇 번 쳐 보더니 잘 안 된다고 "다음에 하자"고 선언하는 바람에 녹음 스탭이 황당해 했다는 얘기가 전합니다(다시 일정 맞추려면 돈이 한두 푼 들어가는 게 아니거든요... ^^).
  그래서 그의 음반은 이 정도의 예술가 치고는 상당히 적고, 같은 곡을 재녹음한 일이 많아서 레파토리는 더욱 협소합니다. EMI 초기 시대에 유명한 작품으로는 앞에서 말한 샤콘느 등이 들어간 리사이틀 음반, 모차르트 협주곡 2곡, 라벨과 라흐마니노프 4번 협주곡이 유명합니다. 1960년대 중반의 이름난 음반으로는 위에서 말한 Decca 발매 BDM 녹음이 있고, 1970년부터는 DG에서 음반을 냈는데, 전주곡 1/2집, 영상 1/2집, 어린이 차지가 스튜디오 녹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켈란젤리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하며, CD 2장으로 팔리는데 거의 항상 품절인 품목이기도 하죠.
  베토벤으로는 협주곡 1,3,5번(줄리니 지휘)과 소나타 4번(DG)이 있습니다. 소나타 녹음은 완성도가 훌륭하기로 이름이 높은데, 그의 베토벤 소나타 녹음 자체가 아주 드문 점이 아쉽습니다. 이 외에는 슈베르트 소나타 D.537과 브람스 발라드 op.10, 모차르트 협주곡 2곡, 쇼팽 리사이틀 등이 DG에 있습니다. 70년대 중반에 EMI에서 한 녹음도 있는데, 하이든 협주곡 2곡, 슈만 '카르나발'과 '어린이를 위한 작품집' 발췌가 있습니다. 이 외에 실황녹음으로 첼리비다케와 베토벤 '황제', 쇼팽 소나타 2번 외(Music & Arts), 첫 런던 리사이틀(Testament), 바티칸 실황 녹음(Memoria) 등을 볼 수 있습니다.

漁夫

덧글

  • rumic71 2009/01/25 22:34 # 답글

    '연주를 듣기만 하지 거의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건 지적할 곳이 그만큼 없다는 것으로도 해석 가능할지도요. (아르헤리치의 차피협 1번은 매우 즐겨들었는데 정작 그녀의 모 20번은 너무 빠른 느낌이더군요. 두들겨 부수는 느낌은 오히려 바렌보임보다 못했고)
  • 어부 2009/01/25 23:17 #

    원래 좀 과묵한 사람이었다는 데야 뭐.... ^^

    아르헤리치의 연주는 협주곡에서는 아바도 협연의 라벨과 프로코 3번만 갖고 있군요. 쇼팽 1번과 리스트 결합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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