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1/04 11:42

비만(obesity); 축복인가 저주인가 Evolutionary theory

  약으로 비만을 치료할 수 있을까?(polycle님)를 트랙백.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사실 인간의 어떤 유전자가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딱 부러지게 말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트랙백한 원글은 비만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여럿 나열하고 있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이 유전자들은 '현대의 음식이 넘치는 환경에서'나 문제지, 옛날의 음식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축복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굶어 죽을 상황에서도 이들은 살아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G. C. Williams와 R. Nesse가 쓴 "Why we get sick"에서 개략만 인용하겠습니다.

  ...  피마 파파고 족에는 비만이 만연했다... 이들에게 일반인들에게 맞는 권장 식단을 제공했지만 계속하여 비만에 관계된 질환으로 죽어 갔다... 이들(학자들)은 피마 파파고 족의 비만 사례에 대해'절약형', 즉 음식물에서 알뜰하게 에너지를 추출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제안했다.  이 경우 일반인에게 적절한 식단이라도,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열량이 많게 된다...

  이런 해석은 Matt Ridley의 'Genome'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기억에 의존했으므로 실수가 있어도 넘어가 주시길)

  ...  그러나 이 책에서 처음 우리는 유전자의 '좋음'과 '나쁨'을 명확히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와 마주쳤다.  (동맥 경화과 관계된) 유전자가 1형이라고 해서 반드시 동맥 경화로 죽지는 않는다....  헌팅턴 무도병처럼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거의 틀림없이 40대까지는 발병한다'라 말할 수 없다...

  비만은 헌팅턴 무도병이나 Tay-Sachs 병처럼 뚜렷이 사람을 죽이는 질병이 아닙니다.  석기 시대에는 지금보다 굶주리는 일도 더 많았을 것이며, 이런 환경에서는 음식에서 칼로리를 얻어내는 효율이 높으면 기근 때 당연히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겠죠.  반면에 가끔 주변에서 보이는 '아무리 먹어대도 살 안 찌는 사람'은 기근 때 분명히 돌아가실 가능성 넘버 1입니다. ^^  '비만 유전자'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축복도 저주도 아니며, 상황에 맞춰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유전자일 뿐입니다.  '정상' 유전자와 공존하는 평형 다형(polymorphic equilibrium)이 존재하는 이유도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에 '비만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오로지 주변 환경이 현재의 인간을 만든 석기 시대의 환경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현생 인류는 대략 4~15만 년 전에 아프리카(와 중동 부근)에서 생겨났음을 잊으면 안 됩니다.



닫아 주셔요 ^^


덧글

  • Semilla 2008/11/04 11:50 # 답글

    옛날에 로마에서는 귀족들이 음식을 맛만 보고 뱉어냈다던데... 너무 효율적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도 음식을 포기 못하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도;;;
  • 어부 2008/11/04 18:25 #

    뱉어냈으면 다행이지만 Cicero 서한집에서도 나왔듯이 토하는 약 먹고 또 먹고 하기도 했죠. (오모나.......)
  • Charlie 2008/11/04 23:25 #

    거위털을 써서 토하고 계속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8시간동안 연회를 하다니! 그런 부러운! (퍽)
  • 어부 2008/11/05 00:34 #

    그 때야 로마 사람들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했으니까 가능했죠.... (저도 부럽3)
  • reske 2008/11/06 18:29 #

    전쟁영웅+그동안 쌓은 막대한 부로 평생 럭셔리한 인생을 산 루쿨루스는 저의 어린시절 로망 ㅠㅠ 저도 집에다가 레스토랑(식당이 아닙니다) 만들고 내킬때마다 이용하고파요
  • 어부 2008/11/06 18:43 #

    reske님 / 전쟁은 좀 그렇지만 '루쿨루스의 향연'은 사실 저도 좀 부럽습니다. -.-
  • Ya펭귄 2008/11/04 12:57 # 답글

    비만유전자==>하루 한끼를 줄이고도 버틸 수 있다==>하루 한끼를 덜먹는다==>한끼 4000원 X 20일 X 12달 ~= 100만원. 1억원에 대한 금융소득으로 따질 경우 1%에 해당하므로 금리 1%를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인 바... 비만유전자는 효과적으로만 활용하면 현대에서도 보다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특질이 될 것이라는....

    (물론 믿으면 골룸합니다...)
  • 어부 2008/11/04 18:25 #

    식비가 장난이 아닌데 분명히 부자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지만... 하루 두끼로 억제할 수 있을지는 정말 의문인데요? ㅋㅋㅋ
  • Ya펭귄 2008/11/04 22:23 #

    제 옆의 두 넘은 진짜로 점심식사를 건너뛰고 있능........
  • 어부 2008/11/05 00:34 #

    목적이 다이어트인지 재테크인지 꼭 확인해 봐야 할....
  • Ya펭귄 2008/11/05 14:58 #

    목적이 다이어트였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하루 두 끼라는 수단이 '사용 가능하다고' 증명되는 순간, 목적의 자리에 다이어트 대신 재테크라는 것을 바꾸어 넣는다고 해도 여전히 잘 돌아가리라는 예상은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물론 다이어트가 높은 인센티브를 가지게 될 지, 금리 1% 상승효과가 높은 인센티브를 가지게 될 지는 따져봐야 하겠습니다만...
  • 어부 2008/11/05 22:14 #

    흠.... 저는 아무래도 다이어트로 인한 인기 상승(=유전자 매력도 상승)이 incentive가 더 강력할 거라고 봅니다. 금리 1%는 효과가 나타나기에는 너무 느려요.
  • 구들장군 2008/11/04 13:21 # 삭제 답글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런 유전자가 있긴 했군요.
    원칙적으로 보면-어부님 말씀처럼- 축복받은 유전자일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이 비정상적[!]이라서 그렇죠. 그런데 뭔가를 얻으면 뭔가를 치러야했을텐데, 저런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단점이 있었을지 궁금하네요.

    그나저나.. 가끔 하는 생각인데, 몸에 있는 지방세포의 대부분을 부작용없이 원하는 신체특정 부위로 보낼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엄청난 대박일 것 같습니다. 다이어트 관련 시장이 고사하겠죠?
  • Semilla 2008/11/04 14:01 #

    ...여자라면 슴가! (후다닥)
  • 에르네스트 2008/11/04 14:42 #

    성형수술관련도 대타격입니다~
  • 어부 2008/11/04 18:28 #

    구들장군님 / 참 신기하기는 합니다 ^^ 단점은 뭘까 좀 생각해 봐야 할 일이긴 하죠. 아, 현대 사회에서는 부적응 유전자니 뭐....
    신체특정 부위로 보낸다면 대박이기는 한데, 지방 세포가 한 번 분열한 뒤에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연구용으로는 또 어렵다는...

    Semilla님 / 진화론적으로 중요한 H! I! P! (Wiki의 waist-to-hip ratio를 참고하셔요) 도 무시하면 안되죠....

    에르네스트님 / 흐흐흐.... ^^
  • Semilla 2008/11/05 01:03 #

    그런 기술이 생긴다면 아예 망토처럼 늘여서 몸을 둥글게 말고 그 지방 망토로 감싸고 굴러다니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hip은 근데 지방도 지방이지만 골반 뼈 모양하고도 상관 있지 않나요? 무게 중심 때문에라도 어느 정도 아래에도 배치해줘야겠지만... (그럼 종아리에 달고 지방모래주머니로 써도;; 관절에 무리가 가려나요;;)
  • 어부 2008/11/05 22:15 #

    Semilla님 / 답은 좀 후에 아마 Semilla님께서 경험이 없으실 일에 대한 포스팅으로 대체하겠습니다..
  • 에르네스트 2008/11/04 14:41 # 답글

    아니면 어느이상은 지방을 축적안하게 유전자를 바꿀수있는 기술을 누군가 개발한다면 개발한 사람은 돈방석에 오를것같습니다.(+ 노벨 의학상도?)
  • 어부 2008/11/04 18:29 #

    사실 만복감만 느끼고 소화/흡수 안 되는 메틸셀룰로스 같은 불활성 고분자 물질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근데 지나치게 먹으면 이것도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 프랑켄 2008/11/04 17:21 # 삭제 답글

    비만 유전자가 석기 시대땐 정말 유용했다........ 이제 먹고 살 만 해지니 어제는 아군이었던 놈이 이젠 적군으로 바뀐 꼴인데, 이것 하나만 봐서는 분명 문제지만 이 문제가 생긴 원인을 살펴보면 전반적으로 사회가 풍요로워졌다는 또 다른 증거이니 마냥 싫다고 부정할 수도 없고 참 골때리는군요.
    참 석기시대 때 사람들이 못 먹고 산 거 같지만, 최근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현대인 못지않게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결과가 나왔죠 예를 들어 터키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나온 석기시대 유골 조사해 보니 남자 키가 178, 여자 키가 168로 현대 터키인보다 오히려 신장이 더 좋은 결과가 나왔고, 농경이 시작되기 전 인디언 유골도 어찌나 건장한지 조사하던 고고학자가 '너무 건장해 꼴보기 싫다'란 말을 할 정도였죠
    아이러니하게도 농경이 시작되면서 사람들 전체적인 체격이 오히려 작아져 버렸는데, 위의 터키 쪽은 남자가 160, 여자는 155로 난장이(?)로 변해버렸고, 인디언 쪽도 안습으로 변해버렸죠, 60살 이상까지 사는 비율이 5에서 1로 확 줄어버렸으니,
    이걸 보면 왜 농업이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긴 합니다.
  • 어부 2008/11/04 18:32 #

    '제 3의 침팬지' 얘기죠? ^^

    전반적으로는 영양 상태가 석기 시대가 헐 더 좋았지만 그래도 '비만이 문제일 정도로 정말 풍족하게' 된 시점은 현대의 제 1 세계라고 봐야죠. 당시에도 이미 '제일 좋은 땅'에 산 일부 종족들은 '비만 유전자'가 덫이었을지도요 ^^
  • muse 2008/11/04 17:25 # 답글

    역시 비만은 evolutionary lag 중의 하나겠지만 저처럼 물만 먹어도 살찌는 체질은 오늘도 우울-┌
    (우울해지면 더 먹어서 악의 순환 사이클 완료)
  • 어부 2008/11/04 18:34 #

    네 바로 evolutionary lag이죠. 그런데 악의 순환은 좀... ㅎㅎ
    미국(또는 유럽)에 가 보면 진짜 한국에서 찐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래도 식사가 문제라는 점에는 다 동의할 겁니다.
  • 늑대별 2008/11/04 21:22 # 답글

    오랜만의 포스팅이시네요. 목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어쩌면 소위 성인병(요즘은 생활습관병이라고 부른다지요)들은 대부분 이런 유전자와 관계가 있을 듯 합니다. 재미있지요..^^
  • 어부 2008/11/04 22:17 #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래 아래 포스팅은 사실 그 동안에 썼는데, 미리 작성했다 날짜만 바꿨더니 밸리에 새 글로 안 떴나 봐요 -.-

    대부분의 성인병들은 인간이 너무 오래 살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죠. 옛날에야 (수명이 더 짧아진 농경 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기본적으로 운동량이 많고 수명이 짧은 편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인에게 성인병이 생길 시간 여유도 별로 없었을 겁니다.
  • Ha-1 2008/11/04 22:52 # 답글

    고대인 혹은 원시인과 현세 인류가 참 다른 점이 많다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진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나는 것 같네요
  • 어부 2008/11/05 00:36 #

    아, 제가 말한 석기 시대 사람과 지금과는 거의 같습니다. 아마 10만 년 아프리카인하고 지금하고는 신체 차이는 거의 없을 것이고, 적어도 4만 년 전에는 지금의 사람은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현재의 사람이 된 지는 정말 얼마 안 되죠.

    이 테마를 나중에 다룰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제가 최근의 발견에 대해 너무 모릅니다.
  • 위장효과 2008/11/05 07:55 # 답글

    우리나라의 비만은...미국가면 "당신 무지 날씬합니다!"소리 들을만하지요^^. 비만 수술용 침대는 다른 침대보다 특대사이즈고...비만 환자들때문에 CT나 MRI의 사이즈를 키워야한다니 말 다했지 않습니까?
  • 어부 2008/11/05 22:58 #

    제 교회 친구 하나도 미국에서 '무지 날씬합니다'란 소리 많이 들어서 한 때 (한국에서도) 날씬할 거라는 착각에 몇 달 동안 빠지기도.... ^^
  • reske 2008/11/06 18:33 # 답글

    비만 유전자야말로 저를 진화심리학 추종자로 만든 가장 중요한 주제중 하나. 비만에 대한 진화심리학적 설명은 정말 sensible한거 같습니다.

    전 석기시대였으면 퇴출1순위겠군요->먹어도 안찌는 타입. 문제는 그게 근육이나 키로 가는것도 아니라는거... 여자로 태어났어야 하는건데...
  • 어부 2008/11/06 18:45 #

    현대인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4만 년 전과 같기 때문에, '현대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면 설명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제 1세계의 인간에게 역사상 지금처럼 식량이 풍족했던 일이 없었거든요.

    저도 옛날엔 먹어도 안찐다고 생각했건만 지금은 절제하지 않으면 걍.... 나이가 그 문제를 해결해 드릴 테니 걱정마시압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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