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 - The life of a colossus) (아마존 페이지)
지은이; 에이드리언 골즈워디(Adrian Goldsworthy) [ 인터뷰 기사; 저자의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
번역; 백석윤
한국판; 루비박스 刊
인터넷 동아 대백과 사전에서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실감이 안 난다면 달력을 뜯어봅시다.
1. 7월; July (=Julius)
2. 현재 쓰는 달력인 그레고리우스력의 전체적인 구도는 율리우스력이다.
7월의 이름은 동양권인 우리는 무시할 수 있겠지만,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 자체의 기초 개념을 그가 만들고 자그마치 2000년 이상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종교적 문제로 인해 몇 나라들이 다른 달력을 쓰는 외에는, 거의 전세계가 카이사르가 만든 달력에 의지하여 일상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죠.
그러면, 그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저자 서문의 맨 끝 문단을 옮겨 보겠습니다. [ 앞으로 페이지 번호는 번역본 기준임 ]
남편, 아버지까지는 평범하다고 해도, 연인(지금까지도 최고 수준. 클레오파트라 기타의.. 여자들은 다투어 그의 애인이 되려 했다고 전해집니다), 불륜남(돈 조반니의 기록을 능가한다고 해도 믿어주겠습니다. 그것도 지중해의 전 영역에 걸쳐서), 망명자, 인질(납치범을 거꾸로 잡아 처형한 인질이 몇이나 있을까요), 변호사(그의 웅변 수준은 당대 로마 최고급), 지휘관(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군 중 하나며 고대 로마가 낳은 최고의 명장으로 불림), 반역자, 독재자(술라와 함께 로마 역사의 가장 유명한 독재관), 그리고 신(사후 Divus Caesar로 칭해졌으며 그의 카리스마는 그의 이름을 황제의 칭호로 사용한 로마 황제들 및 독일/러시아 황제에 의해 20세기까지 계승되었음)이 되기까지의 여러 역할들은 [망명자만 빼고] 모두 그가 매우 뛰어나게 잘 했으며 어떤 것들은 2000년 뒤인 지금까지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지경입니다.
아무튼 그의 생애 자체가 웬만한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이며 죽음과 그 뒤에 펼쳐진 역사까지도 더할 나위 없이 극적인데다, 고대 로마란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나라의 정체(政體)를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 세계사 공부에서 서구 뿐 아니라 어느 나라의 교육에서도 앞으로 그가 빠질 일은 없을 것입니다.
0. 비교 리뷰의 관점
리뷰를 쓴다고 하면, 좋건 나쁘건, 관점이 있어야 하겠죠.
그가 이렇게 중요한 인물인 만큼 그의 전기 전체 뿐 아니라 어느 한 부분만 다룬 책이나 논문만 해도 수없을 정도로 쌓였는데, 저자가 이 위에 또 하나를 보태면서 제시한 목표는 이렇습니다.
우선 저자의 목표가 만족할 만큼 제 눈에 들어오는가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찰이나 배경 설명이 잘 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둘이 잘 어울리는지에 대해서요.
그리고 현 시점에서,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읽힌 로마사 관계 단일 서적은 아무래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전 15권)'일 것입니다. 그 중 카이사르의 이야기는 4권과 5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카이사르가 살아 있던 때를 서술한 분량만 따져도 이 책보다 더 많습니다. 따라서 일차적인 비교 대상을 '로마인 이야기' 4/5권으로 잡고, 다음 책은 필요에 따라 참고했습니다.
{ 1차 사료 }
* 갈리아 전쟁기(Commentarii de Bello Gallico) [ 카이사르 著, 박광순 역. 전에 적은 감상 ]
* 내전기(Commentarii de Bello Civili) [ 카이사르 著, 김한영 역 ]
* 알렉산드리아 전쟁기(De Bello Alexandrino) [ (아마도) 아울루스 히르티우스 著 ]
* 아프리카 전쟁기(De Bello Africo)
* 에스파니아 전쟁기(De Bello Hispaniensis)
{ 2차 사료 }
* 칸나이 BC 216 [ 마크 힐리 著, 정은비 역 - 무기 서술에서 참고 ]
* 카이사르의 죽음(The assassination of Caesar) [ 마이클 파렌티 著, 이종인 역 ]
'대비열전(플루타르크 영웅전)'과 기타 그리스계 1차 사료들도 보고 싶었습니다만, 대비열전은 상당 부분을 '로마인 이야기'에서 볼 수 있다고 하며(잠실역 교보문고에서는 품절이라 리뷰 시간에 맞추어 살 수도 없었습니다), 나머지는 국내에서 번역본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흥망사'도 번역이 있고 아마 참고할 만한 부분도 있겠지만, 제대로 전부를 보려면 너무 부피가 클 뿐더러 후에 새로 발견된 것들을 주석 또는 부록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다고 들어 제외했습니다.
닫아 주셔요 ^^
1. 집정관(consul)이 되기까지; 기원전 100~59년
기본적인 사실 관계, 선택한 사료 및 재구성 결과가 좀 다릅니다.
결국 카이사르를 구원한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이렇게 유력한 인물들이 구명 운동을 펼친데다 당시에는 카이사르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더해져 마침내 술라의 허락이 떨어졌다. 카이사르는 생명을 구했을 뿐 아니라 공직을 계속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는 상당한 특혜였다. ( pp. 100~01)
술라가 작성한 '살생부'에는 한 젊은이의 이름도 올라 있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도 마리우스의 처조카이자 킨나의 사위란 점에서, 술라가 보기에는 마땅히 처벌해야 할 민중파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술라의 측근들이 그를 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아버지도 없는 카이사르 가문의 후계자가 아직 18세에 불과하며, 정치적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더구나 로마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는 여사제(베스탈레)들까지 카이사르 구명 운동에 가담하자, 절대 권력자 술라도 마침내 그들의 탄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목숨을 살려주는 것은 승낙했지만 술라는 젊은이에게 한 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킨나의 딸과 이혼하라는 것. ... 더구나 킨나가 죽고 민중파가 궤멸한 지금은 킨나의 딸인 아내와 이혼하는 것이 오히려 이치에 맞는다. 술라는 물론이고 술라에게 그의 구명을 부탁한 이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18세의 젊은이한테서 돌아온 대답은 '노'였다. 술라는 격분했다. 한 무리의 '코르넬리우스 일당'이 그를 붙잡으러 갔다. 카이사르는 로마에서 달아났을 뿐더러, 이탈리아 전역을 도망쳐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열이 나서 펄펄 끓는 몸으로 동굴에 숨어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었다... [ '술라에게 잡혔다'는 서술은 전혀 없으며, 결과적으로 잡히지 않았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 ('로마인 이야기' 제 4권, pp.61~63 )
젊을 때의 중요한 사건인 '술라의 명령에 대한 불복종'을 재현하는 데도 시간 순서 및 결과가 상당히 다릅니다.
위 인용에서는 약간 희미하게 보일 뿐이지만, 다른 곳에서도 기본적으로 시오노의 서술은 더 극적인 상황을 강조합니다. 반면 골즈워디는 더 평이하고, 감정을 억제했습니다.
닫아 주셔요 ^^
2. 전직 집정관(proconsul); 기원전 58~50년(갈리아 전쟁)
그가 직접 기록한 "갈리아 전쟁기"는 명문으로 이름이 높으며, 유명한 첫 문장을 견본 삼아(!) 여기 옮겨놓겠습니다.
Gallia est omnis divisa in partes tres, quarum unam incolunt Belgae, aliam Aquitani, tertiam qui ipsorum lingua Celtae, nostra Galli appellantur.
영역 ]
All Gaul is divided into three parts, one of which the Belgae inhabit, the Aquitani another, those who in their own language are called Celts, in our Gauls, the third.
한역 (박광순 譯, 범우사) ]
갈리아는 모두 세 지역으로 나누어지며, 그 한 지역에는 벨가이 인이, 다른 한 지역에는 아퀴타니 인이, 그리고 나머지 한 지역에는 그들의 언어로는 켈타이인, 로마에서는 갈리 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갈리아 전쟁 및 이후에 그가 치른 전쟁들은, 카이사르 자신 아니면 주변 측근이 쓴 전쟁기가 남아 있습니다. 참고할 수 있는 사료가 이것 뿐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로마 시대의 사료라고 해도 이것들과 완전히 독립적인 것은 거의 없습니다), 원문과 비교할 때 골즈워디와 시오노의 시각 차이를 제 입장(즉 일반 독자 입장)에서도 선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선, 갈리아 전쟁 시작 때인 기원전 58년의 갈리아 상황 및 당시 카이사르 군의 배경을 두 사람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비교하겠습니다.
항목 | 골즈워디 | 시오노 |
로마군 | 군단병, 백인대장, 편성, 주요 무기 등 요점을 설명 | 생략(2권 '한니발 전쟁'에서 상세히 다루었기 때문) |
주요 부하 장교 | * 처음에 따라간 사람이 누군지 열거 * 인물 분석; 종군한 장교의 신분과 경력을 분석하여 종군의 주된 동기가 무엇인지 추론 | * 이 부분에서는 빠져 있으나 뒤의 '3/15' 부분에서 어느 정도 다루었음 * 종군 동기 분석은 없음 |
카이사르의 의도 | * 군단을 이동시킨 전후 시간 등으로 보아, 처음에는 발칸 반도가 정복 목표였을 수 있음 | * 헬베티 족의 이동 가능성은 3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으므로 애초부터 갈리아가 목표였음 |
갈리아의 상황 | * 갈리아 부족들에 대한 설명(333~45 pp) - 정치; 초기 단계지만 다른 지중해 도시 국가와 유사한 체제 - 군사 전략; 대부분 기습공격 - 군사/족장의 군사적 능력; 기병을 빼면 대부분 오합지졸. 기병의 기량은 뛰어남 - 문화; 드루이드가 종교. 전쟁 승리 공적 을 중시 * 세력 경쟁; 부족의 세력 다툼을 위해 게르 만인 및 로마를 불러들임 | * 대략 한 페이지 반 분량(204~05 pp) - 갈리아 인구 1200만. 100개 가까운 부족 할거 - 위협적인 존재; 라인 강 동쪽의 게르만인 다른 내용들은 생략했거나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등장함 |
헬베티 족의 이동 배경 | * 근원 ; 348~53pp - 부족이 호전적. 부족 거주지가 주변 약탈 에 부적합 - 유력자 오르게토릭스가 '업적을 남겨' 왕 이 되려고 부족민을 이동하도록 부추김 | * '게르만인의 행패' 때문이라고만 함 (漁夫 개인적으로는 잘못된 서술일 가능성이 높다고 간주) |
전투의 서술 | * 카이사르의 실수에 대해 좀 더 엄한 입장 (e.g. 네르비 족과 1차 대결한 상브르 전 투) * 병참에 대해 좀 더 관심과 언급이 많음. * 지형도 마찬가지며 높이도 등고선으로 표현해 줌. 전장에 등고선을 표현한 그림 방식이 효과적임 | * 전투 상황을 간단하게 표현한 도식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음 * 알레시아 포위전 부분에서 로마 방어 시설을 묘사한 그림은 상당히 효과적임 |
책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지만, 사건의 배경에 대해 일관되게 자세히 서술한다는 점에서는 골즈워디가 시오노보다 훨씬 더 친절하고 명료합니다. 그리고 원사료인 '갈리아 전쟁기'의 많은 부분을 상당히 균등하게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반면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줄여도 되겠다 싶으면 과감하게 줄이고 있죠. 재미를 위해선지 시리즈 전체의 조화를 위해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건 그렇습니다.
골즈워디는 개인적인 가치 판단을 다른 곳에서는 삼가고 있습니다만, 드물게도 자신의 생각을 배경 설명의 끝 부분에서 여과 없이 드러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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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전, 그리고 독재관(dictator); 기원전 49~44년
위와 비슷한 방법으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항목 | 골즈워디 | 시오노 |
3/15 암살자들의 동기 | 성공할 경우 자신들이 원로원의 선두에서 공화국을 이끌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란 의견 제시 | 개개인의 경력을 상세히 분석하고 동기를 추리. 사람들이 '옛 공화정'을 그다지 그리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골즈워디와 의견이 일치함 |
라비에누스에 대해 | 차후 배신의 동기를 '대우에 대해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란 가능성을 강조(디오 카시우스의 설) | 파트로네스인 폼페이우스를 따른 '로마 사나이'로 표현. 시오노는 '사내다운 남자들'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은 것으로 보이며 그 경향은 여기서도 변함이 없음 |
폼페이우스 | * 훨씬 이해하는 입장에서 기술 * 이탈리아를 포기한 근본 이유는 카이사르에게 단련된 고참병들을 새로 모집한 신병이 상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 | * 정치적인 실책을 강조함 |
전투 묘사 | 알렉산드리아, 아프리카, 문다의 전투 과정을 상세하게 언급 | 폼페이우스가 죽기 전에 싸운 전투 외에는, 중요 부분만 기술하고 작은 전투는 생략하는 경향이 있음. 특히 문다 회전은 결과만 언급 |
중요성 별로 정리하고 약간 약하다 싶은 것을 줄여 버리는 경향은 시오노 쪽이 두드러집니다.
닫아 주셔요 ^^
4. 총평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로마인 이야기 전부를 보고 싶지는 않지만 카이사르에 대해서는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현재 국내 상황에서 매우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근래 나온 적절한 카이사르의 일생 전체를 다룬 전기의 번역이 로마인 이야기를 빼고는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Yes24 검색 결과를 보십시오. 그리고 나온 지 좀 오래긴 하지만, 시오노 자신이 추천하는 제롬 카르코피노의 '두께 5cm짜리 카이사르 전기'는 아직 번역 안 됐거나 됐더라도 절판된 지 오랩니다) -.-
답부터 먼저 말해 버렸으니 좀 싱거워진 감이 있습니다만, 위의 비교 사례 등을 기준삼아, 이 책의 서문에서 말한 목표를 제대로 수행했는가를 언급해 보겠습니다.
* '로마인 이야기' ; 민중파(populares)의 일원으로 젊어서부터 진로를 결정하고 일로매진
* 이 책 ; 카이사르는 민중파와 기본적으로 같은 문제 의식을 공유하기는 했고 술라에게 혼이 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민중파 입장에 주로 서긴 했지만 출세에 대한 열망과 택한 방법 등에서는 당대의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기술. 그러나 카이사르는 결코 극단주의자는 - 카일리우스나 클로디우스등을 그 대표로 볼 수 있겠습니다 - 아니었으며 사회의 일부에게만 희생을 요구하는 정책을 채택하지는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평생 민중파로 머물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많은 정책을 폈다. (p. 845)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그의 이미지는, 전에 이글루 회원이고 skepticalleft.com site에서 상당히 유명한 논객이셨던 어느 분의 말을 빌어 표현하여 "(性的 측면에서는) 잡놈이지만, 그 속에 넘치는 관대한 영웅의 풍모"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2. 기원전 1세기의 로마 사회
* 공화정이 심각한 문제에 도달하였으며, 갈등을 해결하는 데 폭력이 일상화되어 기본적인 질서를 지키지도 못하게 되었음을 1장 1~2부에서 간략히 다루었음.
카이사르가 태어난 공화국은 당시 직면했던 문제들을 잘 다루지 못하고 있었다. (p. 52)
* 간략히 다루었다고 해도 요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어서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같은 내용은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3권의 전반부를 거의 모두 할애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 정치적으로는 민중파-원로원파의 당파 대립 구도보다 '개인이 출세 방향으로 선택한 것과 그 결과로 나타난 현상'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정 당파에 대한 의식보다 개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아야 주요 인물들의 행동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명확한 당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한 표현입니다.
cf. 제가 볼 수 있던 다른 번역본들도 당시의 공화국 체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한 것은 별로 없으며, 좌파 뿐 아니라 중도를 지키려는 저자들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는 듯합니다. '로마의 전설 키케로'를 제가 볼 기회가 아직 없었는데, 그 책이라면 어떻게 서술했는지 궁금합니다. 키케로까지 포함하여서 극단적으로 당시의 원로원파(optimates)를 비판하고 있는 책은, 마이클 파렌티 著 '카이사르의 죽음'입니다.
이 책의 관점은 기본적으로 역사학자의 입장입니다. 따라서, 분명하지 못한 사실은 - 가령 카이사르의 출생 연도 - 논란 중이거나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적고 있습니다. 반면 '로마인 이야기'는 그렇지 않으며 여러 가능성 중에서 하나를 골라 (시오노의 저작 기본 방향에 맞는 것을 골랐거나 아니면 단순히 편의상) 명확성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서술을 좋아한다면 (물론 불가피한 애매함을 감수한다면) 이 책을, '이야기로서 갖는 재미'를 중시한다면 로마인 이야기 4/5권을 선택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이 두 책이 사실을 어떻게 재구성했는지 비교하고 싶다면, 제가 1장에서 예로 든 부분을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보신 분이라면 그보다는 선명함이 떨어지며 극적이 아니라고 불평하실 수 있습니다. 골즈워디 자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 그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한 영역본은 아직 없으니까요. ]
이 책에서 나는 우리가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카이사르의 삶을 재구성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모르는 것도 많고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은 그의 생애에 일어난 사건들을, 이어진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독립적,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p. 851)
물론 시오노가 '진짜' 소설가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음'의 범위를 시오노는 상당히 넓혀 잡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선명하지 못함'은 저자가 '모르는 것도 많고'라 생각하여 신중을 기한 때문이죠. 결론적으로, 위에 인용한 골즈워디의 말을 성공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네.
개인적으로는 이 책만 보더라도 당시의 혼란한 로마 사회의 모습과, 그 시대에 출세하려고 정통적인 방법으로 노력한 카이사르, 그리고 긴박하게 움직이던 원로원 및 폼페이우스 등 주변 인물의 영상이 상당히 잘 떠오릅니다. 그리고, '로마인 이야기' 중 뒤 편 한 권에서 보듯이 시오노의 서술은 '진짜 세부까지 가면' 약간 흠이 있기 때문에 이 두 책을 비교하면 골즈워디 편의 서술이 더 신뢰도가 높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군사 관계 쪽에서는 병참의 의미를 시오노보다 더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으며, 카이사르의 실수를 지적하고 폼페이우스의 유능함을 묘사한 점도 눈여겨 볼 점입니다.
제가 이 책을 몇 번 읽으면서 가장 호감 가고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부분을 인용해 놓겠습니다.
아무 가식도 없으면서도, '남들보다 컸던 허영심
* 엘레시엘님의 지적에 따라 수정합니다. 옳습니다. 폼페이우스에 대한 말이었습니다. -.- 감사드립니다, 엘레시엘님 ^^
{ 덧붙임 }
번역은 별 문제 없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오타(또는 오식)도 거의 없습니다만, 두어 곳은 지적해야겠네요. aedile(라틴어 aedilis)는 보통 안찰관(按察官)으로 많이 번역해 왔으며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책에서 쓴 '조영관(造營官)'도 안찰관과 마찬가지로 일본어에서 쓰는 번역이라고 하지만, 안찰관이 더 일반적인 만큼(역자는 로마인 이야기를 보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인데 - 왜냐하면 patronus-clientes 관계에서 clientes를 그냥 클리엔테스라고 했는데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클리엔테스로 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 로마인 이야기에서는 안찰관을 채택했습니다) 왜 안찰관 대신 조영관을 선택했는지 설명을 달았으면 좋았을 것입니다.
추가 ] 하늘색 셰이드 친 부분은 제 실수입니다. Uzitta란 곳이 따로 있습니다. 제 리플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죄송합니다....
닫아 주셔요 ^^
漁夫
ps. 좋은 책을 볼 기회를 주신 이글루스와 루비박스 측에 감사드립니다.
덧글
그런데 지적 하나. '허영심이 야심보다도 훨씬 컸던' 이 아니라, '허영심도 남들보다 컸지만 야심은 그 허영심보다 더 컸다'라는게 카이사르에 대한 시오노 할머니의 서술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허영심이 야심보다 더 컸던건 폼페이우스. 그 동그라미 그려놓은거 보고 폼페이우스 야심 크기를 보고 풋~할 수 밖에 없었죠(...)
지적하신것 처럼 국내에는 카이사르나 공화정 말기에 대한 서적이 비교적 적은편이라 이 책이 더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번역도 좋은 편이라고 평가 하시니 저도 한번 번역판을 구해서 대조해 보고 싶어지는군요. 漁夫님께서는 로마 군사사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주로 관심을 두고 계신 시기가 어느 시기이신지요?
근데 아니, 원판을 갖고 계십니까? 진정한 지름신의 現身으로 인정해 드릴 만..... OzTL
저도 아직 표면만 살짝 긁어본 정도라 뭐라고 말을 못하겠습니다만 골즈워디의 다른 로마 관계 저서들도 좀 보고 싶습니다. 아마존 뒤져 보다가 10군단 역사에 대한 책도 찾았는데 환율이 영.... 칸나이 BC 216이 좋은 안내서였는데 아쉽게도 테마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 좀 관심이 있는 쪽은 군사 제도의 변화입니다만, 국내에서 좋은 번역서가 있는지 의심이라 당분간 접어 두고 있습니다.
원문; Uzitta(http://www.forumromanum.org/literature/caesar/africo.html#41)
영문; Uzita(http://www.forumromanum.org/literature/caesar/africoe.html#41)
이 부분은 번역본 754 페이지에 '우지타'가 처음 등장하는 부분입니다. 주요 전투 장면과 몇 애매한 곳만 집중해서 보다 보니 뻔히 영문을 보고도 놓쳤군요.
Felicitas! (탑수스 전투의 군호!)
[어?]
여담이지만, 시오노씨의 전쟁사 서술과 전문 역사학자의 서술을 비교하고 싶으시다면, 시오노씨의 전쟁3부작 콘스탄티노플 공방전과, 스티븐 런치만 경의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을 비교해 읽어보시면 괜찮습니다. 역사학자의 시각과 작가의 시각이 아주 극명하게 대조되거든요.
하이켈하임의 로마사는 도대체 언제쯤..ㅠㅠ 로마사 이야기 보니 옛날생각나네요. 다시 그쪽을 한번 살펴봐야 하는데.
시오노를 항상 픽션스럽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 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의 서술을 '십자군'이란 책과 비교해 보면(저자가 전문 교수입니다) 세부가 거의 차이가 없거든요. 비슷한 사료를 갖고 쓰면서도 방식이 이렇게 많이 달라지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좋은 책 많이 펴 주시길~
그리고 시오노가 군사 전문가가 아닌 만큼(다른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긴 마찬가지죠) 그 분야 서술이 아무래도 전문성이 좀 떨어질 수밖에요.
현재형 군국주의 쪽은 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데, 현실 국제 정치는 오히려 시오노가 말했던 것보다 더 냉혹하다고 보는 입장이기 때문이죠. 시오노는 그냥 현실만 말한 것 뿐인데, 거기 어떻게 대응하냐 하는 문제는 개개인의 몫입니다. '역사가 그랬다'란 서술이 '지금의 군국주의 옹호'와는 바로 연결되지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