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04 19:01

직관과 정책의 간극 Evolutionary theory

  Risk management ; '직관'의 함정을 트랙백.

  이 글에서 위기 관리의 전문가 피터 샌드먼(Peter Sandman)이 한 말을 다시 옮깁니다.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통제할 수 있는 위험보다 더 많은 분노를 일으키는 법이다.:...  

  ... 샌드먼은 자신의 전문 지식을 다음의 방정식으로 간단히 정리했다.

  위험(risk) = 유해물 + 분노

  ... 샌드먼이 유해물 자체가 아닌 분노를 강조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위험 방정식에서 분노와 유해물이 똑같은 무게를 지니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유해물의 정도가 높아도 분노가 낮으면 사람들은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유해물의 정도가 낮아도 분노가 높으면 사람들은 과잉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죠."

  'Freaknomics', 번역본 198~200 페이지.

 


  트랙백 글 맨 끝에서 얘기했듯이, 이런 태도가 이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런 '비이성적인' 반응을 보일까요?  더군다나 특정 집단에서만 그렇다면 모를까, 지구 반대편이나 여기나 별 차가 없군요. 

  그렇다면, 지구 반대편에 있으며, 사람들 간의 친척 관계도 아주 먼 두 나라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위 샌드먼의 진술이 일단 인류에게 보편 타당하다고 가정해 봅시다.  진화론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생물 종이 보편적인 행동 양식을 - 관심을 갖는 대상이 신체 구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 보인다면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1. 그 행동이 그 종이 처한 상황에서 생존에 도움이 되는가?  
  2. 그렇지 않다면, 단지 진화적으로 물려받은 유산인가?
  3. 진화적 잔재도 아니라면, 단지 다른 더 중요한 생존 요인에서 나오는 부산물인가? 
  일단, '(사람을 포함한) 동물이 어떤 행동을 할 때 꼭 그 행동이 이치에 부합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꼬마선충(C.Elegans)을 포함하여 신경계가 있는 동물들은 모두 학습을 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명한 파블로프의 개의 경우, 벨소리와 음식에 어떤 인과 관계도 없습니다만 개는 '상관성이 있다'고 파악해 버립니다.  사람도 '위험율을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형편없다'라고 트랙백 글에서 '괴짜 경제학'의 저자들이 지적하니 오십 보 백 보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면, 왜 이렇게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이 살아남았을까요?  저는 '석기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꼭 이치에 맞아야만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한 이유는 필요없습니다.  대충의 상관 관계를 알아서 어느 정도만 예측할 수 있어도 도움이 됩니다.  그것도, 위험한 상황에서는 생각하고 있을 여유 없이 '바로 떠오르는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가령, 뱀에 대한 공포심은 인간에게도 있죠.  하지만 독이 없는 뱀도 상당수이므로, 뱀을 보자마자 (사냥해 잡을 생각을 안 하고) 피하는 것은 확률상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생명을 잃을 위험에 대한 '경보'는 그 정도의 '식량 획득 기회 상실'을 대가로 치를 가치가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보 장치에는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실수 가능성이 따라다닙니다.  저는 좀 낡은 건물에서 오래 일했기 때문에, 복도의 화재 경보기가 오작동하여 소리를 시끄럽게 내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아예 꺼 버리자는 소리를 하지는 않더군요. ^^  랜돌프 네스(Randolph Nesse)와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의 'Why we get sick?'에서는, 인간의 면역 체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 [알러지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IgE 체계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실 저비용의 방어 반응에 대한 진화적인 시각에 따르면, 체계 전체는 적응적이라도 대부분의 개별적 반응들은 해로울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화재경보기 원리(smoke-detector principle)이다.  화재경보기는 무시무시한 화재가 지금 일어나고 있음을 경고하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실제로 제 구실을 하는 경우는 적다.  대부분은 몇 년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달려 있거나, 담배 연기나 토스터 연기에 속아서 때때로 거짓 경보를 울려댈 뿐이다.  하지만 짜증나는 거짓 경보도, 화재경보기를 사고 건전지를 이따금씩 교환하는 데 들어가는 돈도, 큰 불이 나면 화재경보기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확신에 의해 보상받고도 남는다...

'Why we get sick', 번역본 226~227page [ 강조는 번역본에 있는 것임 ]


  직관적으로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도록 '머릿속의 경보 장치'가 켜지더라도 개별적으로 항상 옳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근래 한 실험 결과를 인터넷에서 본 적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물이 담긴 컵을 주고 거기에 침을 뱉도록 한 후, '컵에 담긴 물을 마셔 주십시오'라 하자 대부분이 마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유는 족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몸에서 나온 것을 피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성적으로 따져 보면 정말 논리에 합당하지 않은 행동이죠. ^^  그리고 꼭 경보 장치가 안 켜지더라도 직관적 감이 틀리는 사례는 숱하게 많습니다.  23명 이상이 한 자리에 모였다면 그 중 생일이 똑같은 두 명이 있다는 쪽에 돈을 거시길.  감으로만 할 경우 아마 대부분은 '없다'라 대답하실 겁니다.  이런 정확한 확률 추론은 인류의 석기 시대 때 필요 없었겠죠?

  또 하나, 이번에 감염 확률이 낮으니 큰 문제가 아니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분들이 '그럼 네가 광우병 걸리면 어떻게 하겠냐?  그래도 찬성하겠냐?'고 얘기한 데서 저는 중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화론은 본질적으로 혈연 관계에 있는 집단이 아니라면 집단 선택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개체, 더 정확하게는 유전자가 '이기성'의 기본 단위죠.  "아무리 확률이 낮더라도 내가 걸리면 어떻게 하지"란 개체 보존 본능(더 정확히 하면 '유전자 보존 본능')이 더 인간의 직관적인 판단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통제 가능한 경우 (또는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보다 통제 불가능한 위험의 경우에는, 실제보다 위험을 과대 평가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자신은 (유전자의 사본을 남기기 위해) 어떤 경우에라도 가능한 한 죽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특히 위험이 '현재형'일 때 이런 성향이 더욱 강해지는데, '나중에 죽는다'라면 죽기 전에 자손을 남길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현재형일 때는 이럴 시간이 없죠).  이런데 '어느 결정이 합리적이니 넌 거기에 따라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생존'이 우선인 한은 항상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이런 성향이 자연스럽다고 (본성스럽다고) 해서, 정책 결정에서까지 '이 자연스러움'에 복종해야 할까요?  불행하게도 '좋은 정책'의 본질은 '누군가는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받는 이익의 총합이 그보다 더 크다면 진행할 수 있다'라 생각합니다.  즉, 정책의 본성은 '집단 통계적'인 셈입니다.  이 속성과, 인간의 본질인 '개체성(이게 적당하지 않다면 '이기심'이나 '사리 추구'라고 해도 됩니다)'과는 아무래도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네요. 
  결국 지도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원래 사리 추구 성향을 띤 사회 구성원에게 특정 정책을 어떻게 큰 사회 갈등 없이 납득시키느냐라고 생각합니다.  강압적으로 할 수도 있고, 설득으로 할 수도 있겠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지도자에게 생긴 또 하나의 문제라면 지도자가 사용할 수 있는 선택 사양이 제한된다는 점이겠죠.

漁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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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늑대별 2008/06/04 20:11 # 답글

    아하...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말 많이 배웁니다...^^
  • 어부 2008/06/05 08:49 #

    뭘요, 얼렁뚱땅입니다. -.-
  • 제갈교 2008/06/04 22:41 # 답글

    그러고보니 교는 왠지 남이 운전하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기 싫은 이유가 본인이 "통제 불가능"하기 때문이었군요. 뭔가 이유를 알게되어서 기쁩니다. :) / 그나저나 협상만 할 줄 알지, 인민들의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해 시위를 하게 만드는 이명박 대통령은 참 지도자감으로는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르겠군요. (쩝.)
  • 어부 2008/06/05 08:50 #

    '통제 불가능'을 겁내는 성향은 인간의 'standard option'이란 생각이 점점 듭니다.
    아무리 봐도 이 대통령은 서울 시장의 그릇이 한계네요. '정면 돌파'한다고 또 나갈 상황이 아닌데 말입니다.
  • BigTrain 2008/06/05 11:42 # 답글

    이렇게 한계가 일찍 드러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_ㅜ
  • 어부 2008/06/05 12:39 #

    이럴 줄 알았으면 주변 사람들을 도시락 싸고 다니면서 말렸을 겁니다. 하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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