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26 22:29

과학을 하는 방법 Views by Engineer

  漁夫 자신이 기업체에서 연구원으로 꽤 오래 재직했던 만큼 - 지금도 반쯤은 그렇지만 - 최소한 남들이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해 왔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漁夫님, 과학을 제대로 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참 난처하다.  "그런 거 설명할 필요 있습니까?  주변의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하면 되죠."  이러기에는... 좀 쪽팔리지 않는가. -.-  '10년 넘게 해 오셨다면서요. 그것도 모릅니까?' (울컥!) ...... 
  하아, 진짜 난감한 일이다.  역시 남들에게 배워 오는 것(이라고 쓰고 베끼기라고 읽는다)이 더 쉽다고 생각하는 漁夫는, 직접 읽은 책에서 좀 참고가 될 만한 것을 추려 보기로 하겠다.  다른 이과 분이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해도 도움이 될지도.

==========

  ... 과학을 하는 그 자체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마술이 전수되는 것과 같이 또는 법률과 의약의 노련함과 전통이 전수되듯이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전수되는 하나의 예술이었다.  책과 교실수업만으로는 법을 배울 수 없다.  의약의 노련함도 배울 수 없다.  더구나 과학은 배울 수 없다.  왜냐하면, 과학에서는 아무것도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다.  
어떤 실험도 최후의 증거가 될 수 없고 모든 것이 단순화되었으므로 근사점일 뿐이다.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Richard Feynman)은 칼 테크(Cal Tech)의 학부 학생들이 꽉 찬 강의실에서 그의 과학에 대해 솔직히 말한 적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이해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허심탄회하게 질문하였다.
  우리는 세계를 구성하는 이 복잡한 움직이는 것들이 신들의 위대한 체스이며 우리가 이 게임을 구경하고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게임의 규칙을 알지 못하며 우리에게 허용된 것을 체스를 구경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충분히 오랫동안 관찰한다면 우리는 마침내 두세 가지 규칙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의 규칙을 우리가 기본적인 물리학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모든 규칙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 규칙으로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경우가 매우 복잡하여, 이 규칙들을 사용하여 게임을 추적할 수 없다.  이 다음에 무엇이 일어날 것인지는 더욱더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더 게임의 규칙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우리 스스로를 제한하여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규칙들을 모두 알고 있다면 우리는 이 세상을 이해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  'The making of the atomic bomb', Richard Rhodes.  문신행 역, 민음. -

  .. 이번 장에서 우리는 플레처 리드(
Fletcher Reede)의 이야기만큼 가상적인 상황에 대해 살펴보았다.  '진실의 세계'는 시장이 완전하고 자유롭고 경쟁적인 세계다.  한편 현실에서 우리가 완전하고 자유롭고 경쟁적인 시장을 달성하는 것은 권모술수를 잘 부리는 변호사가 누구에게나 진실만을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당신은 왜 이런 기묘한 경제학자의 공상에 대해 간략하나마 살펴보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대답을 하자면, 이러한 공상은 왜 경제적 문제가 대두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또한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Undercover economist', Tim Harford.  김명철 역, 웅진 지식하우스. - 

  마지막으로 인용하자면, 漁夫가 이글루스 멤버 중 (漁夫와 주된 관심사는 다르지만) 가장 과학적인 판단력을 존중하는 분 중 한 분이신
sonnet님의 글에서 꼽겠다.

  ... 이런 점은 모델이란 것에는 언제나 생략된 요소가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 점은 지도를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누구도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표시된 1:1 크기의 지도를 들고다니지는 않는다.  지도는 언제나 그 지도를 선택한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는 요소들을 중점적으로 남기고, 덜 중요한 요소들을 생략한 후 과감히 현실을 축소함으로서 비로소 가치를 갖게 된다.
  정리해 보자면 이 문제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덜 틀리기 위한 일종의 지침 같은 것은 존재한다.

1) 대개의 모델은 현실을 단순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하지만 또한 현실의 어떤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이해에 도움을 준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델을 갖고 놀아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2) 자신이 어떤 결론 같은 것을 믿는다면 그 결론이 어떤 모델에서 도출된 것인지 기억하고, 필요할 때마다 그 모델로 되돌아가 변수를 바꾸어가면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정교한 연구를 통해 얻어낸 결론이라도 결론에서 모델이 떨어져나가버리면 결론은 곧 낡고 틀리게 된다.
3) 늘 가능한 복수의 모델을 갖고 놀아야(sonnet님께서 직접 넣은 강조) 한다. 서로 다른 모델은 현실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복수의 모델을 비교검토하는 한편, (크게 잘못된 모델이 아니라면) 각 모델들이 어느 정도 상보적인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4) 모델을 갖고 충분히 놀았다면 모델이 현실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생략했던 부분들을 끄집어내어 우리의 결론이 얼마나 적실성이 있는 것인지를 다시 맞추어 보아야 한다. 사실 많은 모델은 그 모델에 잘 맞지 않는 사례들을 따로 빼내 골방에 쳐넣어 감춰두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곤 한다. 따라서 단순화 과정에서 생략된 사례들이야말로 결론의 적실성을 검증할 진정한 시험대가 된다.



   여기 나온 것 중 중요한 점만 추리고 경험상 깨달은 몇 개만 첨부하자;

  0. 사실은 대개의 경우 매우 복잡하다.
  1. 따라서, 특히 관심 있는 한두 가지 사항에 집중하여 가설('모델'이라 말해도 된다)을 세운다.
  2. 관심 있는 사항만 변할 수 있도록 실험을 설계한다. (몇몇 역사적인 과학들, 가령 고생물학이나
     역사학 등에서는 실험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3. 실험을 진행한다.
  4. 결과를 분석하고 가설과 부합하는지 검토한다. 
    * 가설과 부합할 경우 다른 실험을 더 진행한다.  물론 앞의 가설과 계속 부합할 경우 가설은 '진실'
       에 점점 가까와지는 셈이다.
    * 부합하지 않을 경우 이유를 검토해야 한다.  실험 자체가 잘못 진행되었거나, 실험 도중에 변수
       의 범위 자체가 가설이 적용되는 범위를 벗어났을 수도 있다.
    * 가설과 결과를 검토할 때 극단적인 범위의 것은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대체로 변수가 가설을
       적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수가 많기 때문인데, 어떤 경우는 오히려 가설의 타당성을 확
       인해 볼 수 있는 잣대가 되어 주기도 한다.

  漁夫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해 온 거의 모든 '과학'이라 불리우는 일은 이 설명(이 설명 자체도 사실 단순화니 '모델'인 셈이다)에 잘 부합한다.  어느 누구도 - 이 쪽에서 오래 굴러 온 사람이라면 - 잘 모르는 어떤 일의 전체를 한 번에 설명하는 모험을 하려 들지 않는다.  어떤 가설을 세울 때라도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고 출발한다.  좋은 단순화야말로 과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고, 요즘 '환원주의 타도'나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漁夫는 다소 시큰둥한 편이다.  가설이 실제와 얼마나 잘 맞는지에 대한 적절한 검토만 있다면,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문제점을 거의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작게 나누어 하나씩 해결하라'는 방법은 2000년 전부터 있었다.  Divide et impera.

  漁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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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초록불 2008/04/26 22:43 # 답글

    저는 후배나 동료의 고민을 대개 가장 간단한 에스/노 상황으로 단순화시켜서 소거해나가는 방법으로 해결해 줍니다.

    아무튼 위와 같은 문제로 역사학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딪칠 수 있는데 반해, 문학은 그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역사학자보다는 작가가 되는 쪽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답니다.
  • 어부 2008/04/26 22:57 # 답글

    어, 그러고 보니 사람의 고민을 해결할 때 그거 굉장히 효과적일 수 있겠군요.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역사학 뿐 아니라 진화론도 상당수가 실험실 실험이 가능하지 않아서 (초파리 진화 실험은 한 세대가 짧아서 실험실에서도 가능하대지만요 ^^ ) 같은 문제라도 의견 일치를 보기가 쉽지 않은 편입니다. 그나마 제가 지금 하는 일은 그렇지 않아서 나은 편이죠.
  • 새벽안개 2008/04/26 23:53 # 답글

    세상은 환원주의자들이 생각하는 모델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지요.
    특히 경제학자들은 자유경쟁이라는 잘못된 모델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전하는 종교의 전도사와 같다능.
  • Leonardo 2008/04/27 01:09 # 답글

    정말, 문제를 작게 나누어서 해결하는 방법이 좋습니다.

    우리가 고민한다고 하면서 고민을 여러개를 한꺼번에(혹은 이것저것 돌아가면서)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 마냥 고민을 한다고 하죠.
    (고민 하니까 갑자기 요즘 대부업계 광고중 하나인 레오나르도, 뉴턴, 에디슨을 페러디한 광고가 생각나네요, 근데 에디슨은 좀 싫음 - 돈 -)

    정도는 그것이지요.
    모드~은 가설, 모델을 만족하는 이론.
    완벽.

    확실히 지도는 어느 필요한 부분을 강조해서 그리지요.
    그나저나 그전에 안구 건도 그렇고,
    여러가지 지식을 야금야금 먹고 가네요. 어부님 살랑해욤!!! ㅎㅎㅎ
  • Frey 2008/04/27 08:29 # 답글

    진화 관련 실험은 보통 미생물 단계에서 이루어지더군요. 초파리 수준만 되어도 한 세대가 2주는 되니까... 몇백 세대를 보기 위해서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ㅠㅠ
  • 어부 2008/04/27 11:32 # 답글

    새벽안개님 / 실제 사례와 정밀하게 비교 검토하는 과정은 그래서 꼭 필요하죠. 경제학자들이 되도록 자유 시장에 가깝도록 가져가자고 주장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것이, 기본적으로 경제의 효율은 자유 시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Leonardo님 / 항상 깨닫는 것은 문제를 작게 나누는 것만도 꽤 어렵다는 점입니다. 일단 문제를 확정한 다음에는 그것을 해결할 옳은 질문을 찾아야 하고 그 질문을 해결할 수 있도록 실험을 설계해야 하는데, 그게 그리 간단하지 않죠. [쑥스럽습니다]

    Frey님 / 미생물이 당연히 가장 쉽습니다(100% 동의!). 그런데 노화 연구 등의 문제에서는 미생물을 쓰기가 상당히 곤란해서, 이 편에서 유명한 실험 중 하나가 초파리더군요. 실험실 수명을 2배까지 늘려 놨다니 대단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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