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눈은 모든 면에서 쓸모 있게 잘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어떤 면을 보면 제멋대로이다. 우선 가장 두드러진 것은 눈의 개수로, 두 개의 눈이 가장 편리할 이유가 있을까? 왜 한 개, 아니면 세 개, 아니면 그 이상의 더 많은 눈을 갖지 않았을까? 물론 이유가 있기는 하다. 두 개의 눈이 한 개보다는 낫다. 눈이 두 개 있기 때문에 입체를 파악하고 주변환경에 대해 3차원적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하지만 기왕이면 세 개였다면 더 좋을 뻔했다. 우리 앞쪽에 있는 사물에 대해 입체적 시야를 가질 뿐만 아니라 뒤에 하나 더 달렸다면 뒤에서 부딪쳐오는 물체에 대한 위험을 감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안구 뒤쪽에는 6개의 작은 근육이 붙어 있어서 원하는 방향으로 안구를 움직여주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6개일까? 카메라 다리가 3개면 충분하듯이 3개의 근육을 적절히 배치하면 충분했을 텐데. 눈의 수는 모자라고 그것을 움직이는 근육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데, 그 이유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눈의 특성 중 유용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명백한 결함을 보이는 것도 있다. 망막의 원추체와 간상체에서 나오는 신경섬유는 뇌를 향해 안쪽으로 발달되지 않고 안구와 광원이 있는 쪽으로 나 있다. 신경섬유들은 안구 내에서 한 다발로 뭉쳐져 시신경을 이루고 망막에 있는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 물론 이 신경섬유와 신경절, 그리고 그것에 붙어 있는 혈관들의 층은 극히 얇지만 이들 층, 특히 혈관 층을 통과하면서 약간의 빛이 유실된다. 그리고 신경섬유가 빠져나가는 구멍 부분(맹점)에서는 안 보인다. 망막은 안구 바깥의 단단한 섬유성 공막에 느슨히 붙어 있어서 망막 분리 현상이라는 심각한 의학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만약에 신경섬유들이 공막을 통해 망막 뒤쪽에서 시신경 다발을 형성하였다면 이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기능 면에서 더 논리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 동물도 있는데 꼴뚜기와 오징어가 바로 그들이다(그림 A). 우리 인간의 눈은 다른 모든 척추동물들처럼 시신경이 망막에 거꾸로 붙어 있는 대단히 어리석은 구조를 하고 있다(그림 B).

- George Williams, "The pony fish's glow", Brockman Inc., 번역 이명희, 두산동아, 25~27p.

위에 보시는 것처럼, 문어의 눈은 신경이 망막/안구 바깥쪽으로 애초에 뻗어 있습니다.
반복해서 얘기합니다만, 문어의 눈은 기본 구조 측면에서는 인간과 거의 동일합니다만, 세부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망막과 시신경의 위치 관계가 더 합리적으로 된 외에, 인간은 수정체의 두께를 조절하여 망막에 촛점을 맞춥니다만 문어는 (카메라처럼) 렌즈와 망막 사이의 거리를 바꾸어서 촛점을 맞추죠. 그리고 인간의 눈(및 시신경)은 뇌의 일부가 부풀어올라 형성되는 발생 과정을 겪습니다만, 이들의 눈은 피부 조직이 변형되었습니다. 순전히 다른 기관이 이렇게 비슷하게 진화했으므로, '상사 기관'이지 '상동 기관'이 아니죠.
漁夫
덧글
(이해가 안가시는 분들은 이 포스팅의 카테고리명 참고)
그런디... 저것을 신(이라는 망상)과 연결시킨다면 거기서부터는 ㄴㅁㅈ... ^^
결국 사람의 눈도 셀수없이 많은 버전업으로 기초설계의 수정의 기회를 놓쳐버린게 아닐지. 물론, 그 버전업의 내용중에 그 결함있는 설계에 대한 처리도 들어있는지라 "사용자"의 입장에서 불만은 없습니다 ^^ (오히려 맹점실험은 재미있기까지 하고)
농담입니다~ 장난이고요, 좋은 글 많이많이 써 주셔요.
L_Psyfer님 / 기초 설계 수정 기회를 '놓쳤다'보다는, '고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고 지금도 없는'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 생각하는 넘들은 사망하시거든요 ^^
기본적으로 S/W처럼 좀 장기적 관점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도 그런데, 생물은 이런 장기적 사고가 약에 쓸려고 봐도 없으니 더 심하죠. 말씀처럼 사람의 눈 version up에서 결함을 줄이려는 땜질이 들어 있다는 것은 아주 정확한 표현이십니다. ^^
Gnossienne님 / 자연이 수십억년 동안 한 시행착오의 사례를 돌이켜 보는 것은 참 재미있습니다.
저런 일이 신이 없어도 가능하다는 데는 정말 놀랄 따름입니다. 사실은 생물은 자연계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진화할 수 있다고 하는데 - 사람의 인위선택에서는 진화 속도가 진짜 빠릅니다 - 적절한 조건만 잡으면 포유류의 눈의 구조는 '안점'에서부터 불과 40만 년 정도면 진화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런 구조를 갖는 데는 수 억 년이 걸렸죠. 아마 진화의 잠재 능력보다 자연의 변화 속도가 느리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사실 비행기가 굴러다니는 고철더미에서 탄생 가능하죠. 자가 번식하는 고철들이 날지 않으면 살기 힘든 조건이라면요. -_-;
뭐랄까, 보잉747은 조립되지 않아도 안토노프225가 조립되어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로 비유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왜 문어 눈은 저런식으로 발생했는지도 궁금해지네요.
갑자기 눈이 왜 생겼는지 궁금해집니다.
시노조스님 / 사실 Jared Diamond의 '총, 균, 쇠'를 보면 식물의 작물화 과정이 알기 쉽게 나와 있습니다. 사실 밀은 별 차가 안 나고(야생종이 원래 지금하고 거의 닮았습니다), 옥수수가 특히 현저하게 다릅니다.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학자들 사이에서도 야생종이 지금 옥수수의 조상이다 아니다로 치고 받는대니까... ^^
비행기는 진짜 그렇습니다. 하하하... ;^D
Dataman님 / An-2부터 시작하는 일련의 수송기 중 '궁극형'인 모양이군요. 히엑. 그렇다면, 225가 아니라 2 정도로 낮춰 주시면.... (펑)
byontae님 / 눈이라는 기관도 참 이야기할 거리가 많은 기관이라는 말씀에 진짜 동의합니다. 제가 전공자가 아니라서, 척추동물과 문어 눈의 진화적 발생 과정까지는 잘 모릅니다. 아니면 개체가 발생할 때 어떻게 되는지 포스팅해 주시면 (떠넘기기) .... 사실 '눈먼 시계공'에서 도킨스가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해서 '진화를 뒷받침하는 데는 불완전한 기관이 더 강력하다'고 말하긴 했죠.
Leonardo님 / A/S 따위는 생물체에게(진화에게)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당장 살아남기만 하면 그 어떤 땜질도 서슴없이 ^^ 저도 포스팅하고 보니 눈 발생에 흥미가 가는데 좀 전문적인 영역이라 능력이 딸립니다. 눈의 발생 이유는 '장거리 탐지 기관'으로 귀보다 지향성이 좋으니까라고 봅니다.
문어 얘기도 포스팅하고 싶은데 어디서 자료를 찾아야 할지 아직은.
제가 가진 상식으로는 암만 생각해 봐도 ; 눈알이 360도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최소한 4개의 근육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 위아래 움직임과 좌우 움직임을 조합해서 360도로 움직일 수 있을테니까요. 3개의 근육만으로 360도 자유로운 움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이해시켜 주실 수있는 분? T.T
대략 3억년 전에 나와서 1억 5천만년 전에 사라진 삼엽충의 눈도 굉장히 잘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리처드 포티는 '삼엽충'에서 파콥스( http://en.wikipedia.org/wiki/Phacopida )의 예를 들어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요.
진화 관련 서적 몇 권을 읽으면서 '진화=발전'이라는 관념이 가장 대표적인 오해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큰기차님 / 그 책 진짜 사 보고 싶습니다. 결국 문제는 실탄이었다는....
말씀처럼 진화는 발전이 결코 아닙니다. 요즘 연구자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라고 한다네요.
1. 사람눈에 꼭필요한 눈의 갯수는 2개다. 그러나 3~4개 있으면 더 편리하고 다양하게 시각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3개 내지 4개의 눈을 디자인하겠다.
2. 사람눈에 꼭필요한 안구근육의 갯수는 3개다. 물론 4~6개 있으면 더 편리하고 다양하게 시각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나는 최소한의 필요만 충종시키는 3개의 안구근육을 디자인하겠다
1.과 2.는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까?
p.s. 안구근육이 4~6개 있으면 왜 더 편리하고 다양한지, 눈이 최소한 2개이상 있어야 되는 이유는 무엇인지까지 설명드릴 필요는 없겠죠
1. 사람눈에 꼭필요한 눈의 갯수는 2개다. 그러나 "3~4개 있으면 더 편리하고 다양하게 시각정보를 얻을 수 있으므로 3개 내지 4개의 눈을 디자인하겠다". 라고 하셨구요 ( 따옴표 밖 부분은 당연한 이야기므로 왜 그런지 설명 생략 )
2. "사람눈에 꼭필요한 안구근육의 갯수는 3개다." 물론 4~6개 있으면 더 편리하고 다양하게 시각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만 "나는 최소한의 필요만 충족시키는 3개의 안구근육을 디자인하겠다 ". 라고 하셨습니다 ( 따옴표 밖 부분은 당연한 이야기므로 왜 그런지 설명 생략 )
질문이 부정확했네요. 죄송합니다. ^^
1.과 2.는 충돌하지 않나요?
p.s. 그리고 설마.. 안구근육이 3개일 때보다 6개일 때 더 편리하게 더 다양하게 시각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신 건 아니시겠지요?
p.s.의 부분은 필요 없는 것을 당연하다는 것처럼 얘기하시는군요.
안과에서 눈 검사를 한다고 산동제라는 안약을 넣는데, 그로 인해 동공이 커지고 대낮에도 빛을 더 받아서 그날은 종일 눈이 부시더군요.
그늘에서도 미간을 찡그리고 있거나 선글라스를 써야 하고, 자동차 대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편이 나을 정도로요.
반면 낙지는 깊게는 심해까지도 분포하며, 어두운 바닷속에서 적은 양의 빛이나마 최대한 활용하려면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초음파를 쓴다든지 다른 감각기관이 있다면 굳이 그렇게 좋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그리고 사람이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다면 머리카락 때문에 곤란할 것 같습니다.
머리카락이야 잘라버린다고 하더라도 들어오고 처리해야 하는 양이 많으니 많이 피곤할 테구요.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
현재 낙지가 바다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진화의 역사적인 문제지, 눈이 광학 장치로서 잘 가동하는지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대단히 심해까지 자주 들어가는 향유고래의 눈도 사람처럼 원초적인 문제를 다 안고 있는 척추동물의 방식이니까요. 물론 한도가 있으니 얘네야 초음파 같은 보조 수단을 동원하겠지만요.
그리고 사람이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다면 머리카락 때문에 곤란할 것 같습니다 <--- 사람이 만약 뒤통수에 눈이 생기고 이것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지금 전면을 향한 눈이 갖고 있는 눈썹과 같은 '보조 장치'가 생길 것입니다. 물론 머리카락도 그 부분은 없어질 테고요.
http://www.whosaeng.com/sub_read.html?uid=2789§ion=sc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