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ton and Napoleon

   4대 해전 - 트라팔가 해전 (2)을 트랙백.

   레오 실라르트(
Leo Szilard)는 에드워드 텔러유진 비그너와 함께 독일의 원자폭탄 위협을 미국 정부에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벨기에령 콩고에서 나는 우라늄 광석을 독일이 대량으로 확보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그 때 실라르트는 그의 옛 연구 동료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벨기에 여왕과 친하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1939년 7월 16일, 실라르트는 텔러를 운전기사 삼아(^^) 아인슈타인이 있던 롱아일랜드 페코닉(Peconic)으로 갔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이들의 연쇄반응 계산 결과에 대한 얘기를 듣고 기꺼이 자신의 권위를 사용하여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메시지를 전하기로 동의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영어가 서툴었기 때문에 실라르트는 긴 초안과 짧은 초안을 독어로 만들었고, 아인슈타인은 긴 쪽을 택했습니다.  이 편지가 지금 아인슈타인-실라르트 편지라고 불리는 유명한 역사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개인적으로 루즈벨트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실라르트는 루즈벨트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사람 중에서 이 편지를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중 적극적으로 나선 사람이 바로 생물학자이자 경제학자였던 알렉산더 작스(
Alexander Sachs) 였죠.  그는 정기적으로 루즈벨트를 만나고 있었으며, 그 때 직접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
  작스는 대통령이 바빴기 때문에 10월 11일에야 -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지 40일 뒤 - 루즈벨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작스는 이런 비유로 대통령을 납득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 미국의 젊은 발명가가 나폴레옹에게 편지를 보냈던 일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은 영국 해협의 변덕스러운 조류가 큰 골치거리였죠.  발명가는 나폴레옹에게 어떤 날씨에서도 영국을 공격할 수 있는 돛 없는 배를 건조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의 육군을 몇 시간 안에 바람이나 폭풍 걱정 없이 영국에 실어 나를 수 있다고 설명하고 계획서를 제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죠.  나폴레옹 왈; 돛이 없는 배?  몽상가는 물러가라!
  젊은 발명가는 바로 로버트 풀턴(
Robert Fulton)이었습니다.



  작스는 대통령에게 조심스럽게 들어주도록 청했습니다. "제가 이제 전하려는 것은 그 발명가의 제안과 거의 비슷합니다."  FDR은 보좌관을 불렀고, 보좌관은 FDR이 수년 동안 보관한 나폴레옹 브랜디 한 병을 갖고 왔습니다(대단한 유머 감각! ^^).  두 사람은 두 잔을 하나씩 들고 건배한 후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스는 아인슈타인 편지를 루즈벨트에게 전했지만, 편지를 읽는 대신 자신이 800단어로 요약한 내용을 들려주었습니다.  이 부분의 내용은
이 웹페이지에서 볼 수 있으니 여기서는 줄이겠습니다.

  얘기를 다 들은 FDR, "Pa(보좌관의 애칭)! This requires action!"

  이 말이 바로 원자력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문장이었음을 그 때 누가 알았겠습니까.

  [ Richard Rhodes의 '원자폭탄 만들기(The making of the atomic bomb)' (민음사에서 번역본 내놓았음) 에서 발췌 및 요약정리 ]

by 어부 | 2008/03/26 22:41 | 책-역사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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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제갈교 at 2008/03/26 23:00
지금 쓰이는 대부분의 배들은 돛이 없는 배...;;;
하늘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는 나폴레옹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Commented by 어부 at 2008/03/26 23:10
뭐, 할 수 없는 노릇이죠. 1차 대전 당시 항공모함이 떴다면 .... ^^
Commented by 파파울프 at 2008/03/26 23:49
아항~ 이 이야기였군요 :) 허긴 사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증기 함선에 관해 별로 신경쓰지 않았고 오히려 거부감만 드러낸 것은 여기저기서 보이고 있네요. 실제로 그것이 많이 이용된 것은 "근본없는" 미국 이었으니...
Commented by 어부 at 2008/03/27 00:24
'installed base' 또는 '기득권'이 새 기술의 도입 속도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실례라고 봅니다. 미국이야 특별히 범선 전통이 없었던 국가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까요.
Commented by 구들장군 at 2008/03/27 21:27
글 잘 읽고 갑니다. 이걸 보면, 지도자 자신이 과학에 일가견이 있을 것까지는 바랄 수 없지만, 적어도 설명해주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개념은 필요하다는 게 느껴지네요.
Commented by 어부 at 2008/03/27 21:56
과학에 일가견을 가지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인기를 모으는 정치인...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양립하기 어려운 성격으로 봅니다. 남자들은 사물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요.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과학자야 아니었지만 이집트 천문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듣고 율리우스력을 만들었죠. 이런 사람들은 그래도 그릇이 다른 겁니다. 나폴레옹이나 우리 나라의 누구(음...) 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튀거나 못 알아들어서야, 좀 아니죠.
Commented by vvin85 at 2008/03/31 01:11
문명에서 나온 그 발언이군요. 이런 배경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Commented by 어부 at 2008/03/31 10:29
vvin85님 / sonnet님 블로그에서 자주 뵈었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문명에서 나왔다'는 말을 제가 잘 이해를 못 하겠네요. 혹시 '문명'이란 책이나 오락이? ^^
Commented by Mizar at 2008/04/02 00:07
사실 기존에 잘 자리잡고 있는 병기 대신에 새로운 기술이 이를 대체할 수 있게 되면 판을 새로 짜야 하는 경우도 생기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기존의 판을 깨고 도약할 기회를 노리는 후발 주자들이 적극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19세기 중반에 기선이 해군에 도입될 무렵에도 1위의 해군국이었던 영국보다는 오히려 프랑스(비록 나폴레옹 시대에는 부정적이었습니다만..)쪽에서 군함의 기선화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고 하더군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훗날에 영국이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개발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기존의 절대적인 우위를 새로운 경쟁으로 돌린 것은 놀라운 도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어부 at 2008/04/02 00:22
네, 사실 이런 신기술을 바로 도입해 성공한 대표적인 경우가 '까마귀'를 도입해 카르타고를 물먹인 로마일 겁니다. 로마인 이야기에서 저자가 '바다의 사나이들은 배의 미관도 소중히 여긴다(그래서 까마귀 따위를 달지 않았다). 바다의 사나이가 아닌 로마인들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Mizar at 2008/04/02 00:39
'바다의 사나이가 아닌 로마인들은 그런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하하..이거 대박이네요..^^;;;
어째 칭찬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모호한 말입니다..^^
Commented by 어부 at 2008/04/02 01:11
저건 참 ... 칭찬이긴 한데 말입니다. ^^
'고정 관념'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가, 저런 사례들 보면 뼈저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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