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양 각하의 국가에 의한 무장력의 독점 - 미국의 방식을 트랙백.
어린양 각하는 위 포스팅에서 이런 기막힌 古人의 격언을 인용하십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프랑스로 망명해 루이 12세에게 이탈리아 원정을 부추긴 밀라노 사람 트리불치오(Gian Giacomo Trivulzio)가 남긴 명언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전쟁에는) 다음의 세가지가 필수적이다. 돈, 더 많은 돈, 그리고 더 더욱 많은 돈이다.”
유럽이 종교 전쟁으로 난장판을 치던 시대에 이런 일도 있었3. (source; Reader's Digest )
뭘 하려 해도 돈이 들지만, 전쟁은 특히 돈이 많이 드나 봅니다.
전쟁을 잘 하려면 다른 요인 하나도 중요한데 - 돈과는 약간 별도로 - 이것은 나중에 간단히 다시 올리겠습니다.
漁夫
어린양 각하는 위 포스팅에서 이런 기막힌 古人의 격언을 인용하십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프랑스로 망명해 루이 12세에게 이탈리아 원정을 부추긴 밀라노 사람 트리불치오(Gian Giacomo Trivulzio)가 남긴 명언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전쟁에는) 다음의 세가지가 필수적이다. 돈, 더 많은 돈, 그리고 더 더욱 많은 돈이다.”
유럽이 종교 전쟁으로 난장판을 치던 시대에 이런 일도 있었3. (source; Reader's Digest )
1557년 필립 2세는 북해 연안의 저지대(현재의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쳐 내려와 생 깡땡에서 프랑스군을 전멸시켰다. (위의 생 깡땡 링크를 참고하십시오) 그 여세를 몰아 전 프랑스를 짓밟고 스페인이 유럽의 패자가 되려 했어도 스페인군을 가로막을 프랑스군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필립 2세는 그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 있었으며, 결국 프랑스와 강화 조약을 맺었다.
후세 사람들은 승리의 순간에 필립 2세의 판단력이 날아가 버려 이런 일이 일어났으리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漁夫 주; 정확히 어느 역사학자인지 모르겠습니다 -.-)는 필립 2세가 생 깡땡 전투 직전에 수도원에 은퇴해 있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 중의 "돈이 지탱하는 한"이란 구절에서 그 단서를 찾아냈다.
사실, 스페인은 부채가 엄청났다. 당시 다른 왕가들이 그렇듯이 스페인도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해 왔으며, 당시 부채가 엄청났다(漁夫 주; 이것이 나중에 무적 함대가 처절히 패배하는 한 요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군대를 행군시키려면 경화(硬貨)가 있어야 했고, 결국 이 때문에 프랑스는 기사회생했으며 유럽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던 것이다.
뭘 하려 해도 돈이 들지만, 전쟁은 특히 돈이 많이 드나 봅니다.
전쟁을 잘 하려면 다른 요인 하나도 중요한데 - 돈과는 약간 별도로 - 이것은 나중에 간단히 다시 올리겠습니다.
漁夫
덧글
tloen님 / 아, 맞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린양님 / 고대부터 국가의 통제력이 증가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무기 제조에 드는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라는 데는 여러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나 봅니다.
구들장군님 / 손자병법은 요약이라도 다시 보고 싶은데 보고 싶은 책이 너무 많습니다. -.-
근본 유럽의 패권이라는게 '과시용'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게 해주는것 같습니다;;;
언급하신 전염병은 각종 천재지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여러가지 천재지변으로 몽골고원의 몽골족이 남하하고 각종 물자를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와중에 식량공급과 재정 충원이 되지 않으니 몽골족은 한정된 재정 장악을 위해 분열됩니다. 황실 내 반란이 이 와중에 벌어지게 되고, 그 때문인지는 저도 정확히 모르겠는데 몽골 군대가 한족 군대에게 이 당시 큰 힘을 쓰지 못한 것은 중앙 정부의 혼란과 충분치 않은 보급물자 확보 같은 그런 문제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즉, 어느 것이 선후적 인과관계가 있다기보다 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뭐..남중국에서 반란이 일어난 직접적인 계기는 1342년 이후 몇번 반복된 황하의 범람을 방지하려고 대규모 치수공사를 위해 대규모의 인민을 끌어다 쓴게 기폭제가 된 것이라고 삼산정명의 책에서 설명되어 있네요.
그러나 남중국 지역에서는 이미 과도한 소금세 수취나 이슬람 상인과 거래하던 한족계 농민들의 착취 등등으로 인해 원조에 대한 남중국의 불만은 점점 쌓여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유목민족이건 아니건 저렇게 돈을 썼다면 망할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한단인님 /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어느 한 쪽이 확실한 원인이라고는 말하기 힘든가 보군요.
유목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나면, 정착해 살다보니 말의 수가 확 줄어든답니다.
즉, 만리장성 넘어와 휩쓸때는 말의 수가 사병 한사람당 예닐곱 마린가 열마리가 넘나 그럴겁니다.
그런데 정착해 살다보니 말의 수가 사병 한사람당 한마리 간신히 넘던가 좀 못미치던가 그렇게 된다죠(수치가 생각이 안나 얼버무립니다. 정확할리 없겠죠? -_-;;).
그러니 선조들과 같은 기병전술의 구사가 불가능해지면서, 한족에 대해 가지고 있던 우위가 말그대로 사라져 버린 거죠. 불리할땐 쫓지도 못하게 사라져 버리고, 유리할땐 바람처럼 달려와 휩쓸고 가버리던게 안되면서 그들의 운명은 결정되었다고 봐야겠죠.
또한 그런 상황에서는 말위에서 태어나고 말위에서 죽는다던 선조들만큼 기사에 능숙할 수도 없겠죠.
저도 잘 모릅니다만, 여말에 나하추 등이 쳐들어 올 때도, 그 위세가 전과는 비교가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엔 아마 이러한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러고 보면 제국으로 되고 나서도 그리 길게 갔던 로마는 참 대단하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