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언어 관계(2); 조금만 더 추측해 봅시다.

  한국어와 일본어에 달린 김미상 님의 리플에 답합니다.



  1. "고대 한국 '원어'와 일본 '원어'는, 삼국 시대 이전에 완전히 언어학적인 상호 관계를 상실했다."는 가설에 대해

  삼국 시대의 한반도인이 일본으로 많이 건너갔다는 기록만으로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수없이 왕래를 한 우리 나라와 중국 사이도 언어의 연계는 한자어 외에는 별로 없으니까요.  제가 말한 것은 삼국 시대 이전의 얘기입니다.  다시 왕래가 트이기 이전에 이미 언어 연계가 끊겼다면(BC 11000년 정도인 빙하 시대 말기까지는 대한 해협이 양국 사이의 교통에 큰 장애가 안 됐겠지만, 빙하기가 끝난 후 해면이 상승했다면 당시의 빈약한 배 수준으로 볼 때 상당한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삼국 시대에 얼마나 많이 교류를 했는가는 양 언어의 기본적인 관계에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삼국 시대에 분명히 삼국과 일본의 교류가 꽤 활발했었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그 점이 당시 일본과 한국이 어떤 말을 사용하고 있었느냐에 대해서는 분명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이 점에 대해서 참고할 만한 짧은 글; 확인사살.  이 페이지 정말 인상적이네요. ]

  ( 글 쓰던 도중 잠깐 외출했다가 생각난 것인데, 삼국 시대 전에 양쪽 언어가 기초 단어의 연계도 상실했지만 문법 요소는 아직 공통점을 유지하고 있었을 수 있을까요 이 가설에서 해결해야 할 점은, 언어가 상당 기간 갈라져 있을 때 공통점을 무엇부터 잃어버리는지 일반적인 경우를 알아야 하는데 제 언어학 지식이 그 정도는 안 됩니다.  얼치기가 하는 일은 역시 한계가 있군요 -.-
  찾아보니까 고구려어와 고대 일본어의 기본 단어가 유사하다는 페이지도 나옵니다.  이게 정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2. 백제 지도층이 일본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진짜인지 모르지만 백제 왕족 중 일부가 일본의
    지도층이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신뢰도가 얼마인지) 한자 외에 언어의 문법도 일본어에 영향을 주
    었다.
      이 때 백제 지도층이 사용한 언어의 단어 자체는 일본 토착어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문법 요소들
    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한자 발음은 백제 지도층을 통해 전해졌기 때문에 약간만 바뀐 채 현존.

  '한자 외에 언어의 문법도 영향을 주었다' 입니다. ^^  단어에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한자어 같은 '고급' 단어지 '기본 단어'가 아니죠.  이런 사례는 일반적으로 '지배층의 영향력이 자신의 언어를 피지배층에게 다 강요하지 않거나 그럴 수 없을 때' 잘 보입니다.  
  언어간 영향에 대해 제가 아는 한의 몇 가지로 나눠 보겠습니다;

   1) 소규모 교류 ; 언어 영역의 경계에서만 언중(言衆)들이 접할 때
      교역 등의 공통 관심사에 대해서만 공통 단어가 쓰일 수 있습니다.  교류 빈도가 낮을 때는 물
    건 등의 고유 명사에 대해서는 단어가 침투해 들어갈 수 있지만, 아무래도 '지방 사투리' 수준으
    로 끝날 가능성이 높죠.

   2) 대규모 교류; 지배층의 역할이 중요함

     * genocide식 해결; 당연히 말이 바뀝니다. -.-
          Tochara 어가 현재 死語인 이유죠.  칭기즈칸 덕에...  그리고 미국의 인디언들이 질병과 
          학살 때문에 인구가 전부 없어지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영어를 쓰죠.

     * 지배층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 사람이 거의 그대로더라도 말이 전면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역시 사례는 많습니다.  Caesar의 통치 방식으로 보아 라틴어를 강요했다는 생각은 안 듭니
          다만, 결국 Gallia는 전부 라틴어를 쓰게 됐죠.  그리고 비 인도유럽어계 언어들을 로마 치하
          에서도 사용하던 이집트-북아프리카 권역이 전부 아랍어를 쓰게 되는 등...  이들은 genocide
          식 해결을 하지 않았지만 역시 말이 전부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원주민 그대로기 때
          문에 언어 또는 문자 기록에서만 과거의 영향을 알 수 있습니다.

     * 지배층이 적극적이 아니거나, 시간이 짧았거나, 직접 강요할 힘이 없었을 경우
          영향이 완전하지 않게 되는데, 사례별로 차근히-----

        $ 지배층이 쓰는 고급 단어만 차용하는 경우; 가장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 자발적 결정; 서구 언어의 고급 단어들이 대부분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 유래했죠.
              한국어에 한자 기원 단어가 매우 많은 것도 이 사례로 볼 수 있을까요?

          - 지배층의 수가 적은 경우; 영어에 정복왕 윌리엄 때문에 프랑스어의 영향이 대규모로 침투.
              이 경우 그래도 문법까지는 별로 못 들어갔습니다.  후진식 수식 어구가 일반적인 영어와
              반대로 전진식 수식 어구가 99%인 프랑스어를 비교하면 명백하죠.  

        $ 주변이 다른 언어로 포위된 경우; 헝가리어의 어순이 인도유럽어의 SVO(주어-동사-목적어)
             로 바뀐 경우가 가장 많이 인용되죠.  하지만 기초 단어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
             헝가리어가 비 인도유럽어라는 것을 파악할 수는 있습니다.

        $ 크레올(
creole)化
            간단히 말해서 아예 새로운 말을 만들어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의외로 자주 등장하는데,
          
파푸아 뉴기니의 공용어 중 하나로 큰 언어도 있죠(Tok Pisin 또는 Neomelanesian).
             새로 말을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아예 잡다한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이 섞여 있을 때
           는 차라리 이 방법이 제일 간단합니다.  하와이에서 19세기경에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서 일하도록 데려온 포르투갈어 사용자, 하와이 토박이, 중국인, 일본
           인, 필리핀인, 한국인들이 섞여 있는 와중에서 이들의 2세들이 만들어낸 언어가
Hawaiian
           pidgin
입니다.  왜냐 하면, 2세들은 집에서 들을 수 있는 말도 잡다한 여러 언어들 사이에
           통하던 '미숙한 짧은 의사 소통 어구들' 이었기 때문에 완전한 문장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입
           니다.
             위에 언급한 Tok Pisin의 단어 구성을 보면 암시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언어는 사실 뉴
           기니의 여러 부족들 사이에서 공통된 의사 소통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퍼졌는데, 단어의
           80%는 영어
, 그리고 15%는 톨라이 어(그 부근 지방어)며, 나머지 5%는 말레이어, 독일
           어(1914년까지 태평양 여러 섬을 지배했습니다), 기타 지방어에서 왔다고 합니다.

  ============================================================

  한국어와 일본어 사이의 관계는 이 중 무엇이 제일 타당할까요?

  백제와 고대 일본 사이의 관계로 보아 소규모 교류는 아닐 겁니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 현재 쓰는 언어로 보아 genocide 식이나 적극적 영향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일본어가 크레올이냐?  당연히 아니죠.  크레올에는 상당수의 문법 요소가 결여될 뿐 아니라(격변화 등이 주로 없어집니다), 영향을 준 언어가 무엇이건 간에 어순이 대체로 SVO로 정착한댑니다(신기하죠). 
  그렇다면, [백제 주민을 위시한] 지배층의 고급 단어를 차용했을까요?  그럴듯 합니다.  수많은 공통적 한자 단어의 존재가 이를 입증하며, 백제에서 한자를 전해 주었다는 역사적 기록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별 異論이 없을 줄 생각하며, 한국어와 일본어가 애초에(한국의 삼국 시대 이전에) 아무 언어적 연계가 없었어도 성립하는 추측입니다.

  지금 설명해야 할 문제는, 문법 요소의 공통점이 어디서 왔냐입니다.  차라리 공통점이 없었다면 설명이 깔끔한데 그렇지 않습니다.

  === to be continued ===

 ( 지금 시간이 너무 늦어서 부득이 작성 중단.... )

by 어부 | 2007/09/22 21:13 | 고고학 | 트랙백(1) | 핑백(1) | 덧글(3)

트랙백 주소 : http://fischer.egloos.com/tb/3401740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뭔가를 공부하는 사람 at 2007/09/30 22:30

제목 : 고대 일본의 인구변화
어부님의 글을 (뒷북) 백함한-일 언어 관계(2); 조금만 더 추측해 봅시다.다음은 [삼국사기 사서비교를 통한 삼한사의 재조명](북스힐, 2004) 21쪽~23쪽을 내 맘대로 요약정리한 것이다. 일본학자들에 따르면 야요이시대에서 고분시대에 이르는 약 1000년 동안 일본열도의 인구증가는 연 0.4%를 넘었다고 한다. 반면에 1세기에서 10세기까지 1000년 동안의 세계 인구 증가율은 0.1%에도 미치지 못하였다고 한다. 학자들은 조몽 ......more

Linked at 어부의 이것저것; Juveni.. at 2007/09/23 23:57

... 한-일 언어 관계(2); 조금만 더 추측해 봅시다의 완결편. 이 페이지의 내용은 상당히 흥미가 깊습니다; http://www.koreandb.net/dictionarie ... more

Commented by 김미상 at 2007/09/23 12:21
아..... 저도 뭐라고 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당장 답이 떠오르지 않네요. -_-
Commented by 어부 at 2007/09/23 20:49
조금 더 추가하기로 하죠 ^^
Commented by 김미상 at 2007/09/30 22:31
엄청난 뒷북 트랙백을 저질렀습니다. -_-;;;;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