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8월 08일
A-bomb; 미국의 선택
태평양 전쟁; 원자탄과 전범 재판의 시리즈물입니다.
원자폭탄; 사용하지 않았으면? 에서 저는 원자폭탄의 사용에 대해 이런 순서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면, 원자 폭탄이 1945년 7월 12일 트리니티 테스트 때가 아니라 더 늦게 완성되었거나, 미국이 원자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거나, 일본이 원자탄을 맞고도 항복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지금 적으려는 것은 미국이 원자탄을 쓰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었는가, 쓰기로 한 의사 결정 방식이 과연 합리적이었을까에 대한 얘기입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원자탄 개발의 최초 주역 중 하나며, 연쇄 반응에 대한 특허를 세계 최초로 영국에 제출한 레오 실라르트(Leo Szilard)는 폭탄이 완성된 1945년 여름 도덕적 근거로 폭탄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다 됐으니 쓰고 싶어했던' 사람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투하 방식을 선택할 때 충분한 이성적인 토론을 거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비판이 쉽지만, 당시에 불충분한 정보만 갖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좀 더 공정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내가 가장 추구하였던 것은 가능한 한 미군의 희생을 최소화시키고 전쟁을 승리로 끝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국민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는 없을 것이다.(육군성 장관 Henry Stimson, 1947)
전쟁을 하고 있으며, 국민이 계속 전장에서 죽는 마당에 누가 이 말을 쉽게 욕할 수 있겠습니까. 이오지마와 오키나와의 혈전에 대해서는 큰기차님께서 이 포스팅(http://wjm1981.egloos.com/3552306)에서 상세히 적어 주셨으니 생략하기로 하죠.
일본 민간인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일본인에게 경고하거나 원폭을 시범적으로 보여 주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가 꽤 활발했습니다. 원자폭탄을 사용할 권한이 있던 정치가들인 국무장관 내정자 제임즈 번즈(James Burns),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장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이 1945년 5월 31일 회의를 갖고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정말 이들에게 무엇이 쟁점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말;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어져 있는 일본 정부가 매우 높은 고도에서 거대한 핵 불꽃이 터지고 피해는 매우 적다면 어떤 영향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대답이 내 답과 똑같을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
번즈의 회고; 우리는 만일 일본인들에게 원자폭탄이 투하될 장소를 알려준다면, 그들은 전쟁 포로로 잡혀 있는 우리 아이들을 그곳에 데려다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뉴멕시코에서 실시할 실험(트리니티, 7/12일 성공)에서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폭탄이 항공기에서 투하될 때 반드시 터진다는 보장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만일 우리가 새로운 고도의 파괴 무기에 대해 경고하고 난 뒤에 그것이 터지지 않는다면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 후 항복을 이끌어내기 위한 희망으로 우리가 발표하는 어떤 이야기도 일본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1947년)
솔직이, 저는 이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없으며 다른 대안도 찾을 수 없습니다. (스팀슨은 다른 대안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현재 논의하는 것과는 초점이 약간 다른 문제입니다. 나중에 기회 닿으면 적죠)
스팀슨과 번즈는 이 회의 후에 결국 사전경고 없이 '일본의 일반인에게 가장 큰 인상을 줄 수 있는 곳'에 투하하기로 동의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염려가 타당했음은, 나중에 히로히토가 육성으로 발표한 항복 선언에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적은 새롭고도 가장 잔인한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손실을 입히는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 폭탄 단 한두 발로 이런 피해를 입은 다음에야 일본 정부는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이런 자료들을 보면, 원폭 사용 결정이 비이성적이며 성급했다는 비판을 저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게 한국인에게 장기적으로 편한가 아닌가 하는 입장을 떠나서 말이죠.
[ Richard Rhodes의 'The making of Atomic Bomb'에서. 저자는 원자폭탄에 뚜렷이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그 덕에 그가 제시한 논거는 저처럼 저자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객관적 근거로 인용할 수 있죠. ]
漁夫
원자폭탄; 사용하지 않았으면? 에서 저는 원자폭탄의 사용에 대해 이런 순서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면, 원자 폭탄이 1945년 7월 12일 트리니티 테스트 때가 아니라 더 늦게 완성되었거나, 미국이 원자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거나, 일본이 원자탄을 맞고도 항복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지금 적으려는 것은 미국이 원자탄을 쓰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었는가, 쓰기로 한 의사 결정 방식이 과연 합리적이었을까에 대한 얘기입니다.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원자탄 개발의 최초 주역 중 하나며, 연쇄 반응에 대한 특허를 세계 최초로 영국에 제출한 레오 실라르트(Leo Szilard)는 폭탄이 완성된 1945년 여름 도덕적 근거로 폭탄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다 됐으니 쓰고 싶어했던' 사람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투하 방식을 선택할 때 충분한 이성적인 토론을 거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거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는 비판이 쉽지만, 당시에 불충분한 정보만 갖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좀 더 공정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내가 가장 추구하였던 것은 가능한 한 미군의 희생을 최소화시키고 전쟁을 승리로 끝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국민들의 얼굴을 쳐다볼 수는 없을 것이다.(육군성 장관 Henry Stimson, 1947)
전쟁을 하고 있으며, 국민이 계속 전장에서 죽는 마당에 누가 이 말을 쉽게 욕할 수 있겠습니까. 이오지마와 오키나와의 혈전에 대해서는 큰기차님께서 이 포스팅(http://wjm1981.egloos.com/3552306)에서 상세히 적어 주셨으니 생략하기로 하죠.
일본 민간인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일본인에게 경고하거나 원폭을 시범적으로 보여 주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논의가 꽤 활발했습니다. 원자폭탄을 사용할 권한이 있던 정치가들인 국무장관 내정자 제임즈 번즈(James Burns),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장 로버트 오펜하이머 등이 1945년 5월 31일 회의를 갖고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겼는데, 정말 이들에게 무엇이 쟁점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말; 온건파와 강경파로 나뉘어져 있는 일본 정부가 매우 높은 고도에서 거대한 핵 불꽃이 터지고 피해는 매우 적다면 어떤 영향을 받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대답이 내 답과 똑같을 것이다. 나는 모르겠다.
번즈의 회고; 우리는 만일 일본인들에게 원자폭탄이 투하될 장소를 알려준다면, 그들은 전쟁 포로로 잡혀 있는 우리 아이들을 그곳에 데려다 놓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뉴멕시코에서 실시할 실험(트리니티, 7/12일 성공)에서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폭탄이 항공기에서 투하될 때 반드시 터진다는 보장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만일 우리가 새로운 고도의 파괴 무기에 대해 경고하고 난 뒤에 그것이 터지지 않는다면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도와주는 꼴이 될 것이다. 그 후 항복을 이끌어내기 위한 희망으로 우리가 발표하는 어떤 이야기도 일본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1947년)
솔직이, 저는 이 논리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없으며 다른 대안도 찾을 수 없습니다. (스팀슨은 다른 대안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현재 논의하는 것과는 초점이 약간 다른 문제입니다. 나중에 기회 닿으면 적죠)
스팀슨과 번즈는 이 회의 후에 결국 사전경고 없이 '일본의 일반인에게 가장 큰 인상을 줄 수 있는 곳'에 투하하기로 동의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염려가 타당했음은, 나중에 히로히토가 육성으로 발표한 항복 선언에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적은 새롭고도 가장 잔인한 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손실을 입히는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 폭탄 단 한두 발로 이런 피해를 입은 다음에야 일본 정부는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이런 자료들을 보면, 원폭 사용 결정이 비이성적이며 성급했다는 비판을 저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게 한국인에게 장기적으로 편한가 아닌가 하는 입장을 떠나서 말이죠.
[ Richard Rhodes의 'The making of Atomic Bomb'에서. 저자는 원자폭탄에 뚜렷이 비판적인 입장이지만, 그 덕에 그가 제시한 논거는 저처럼 저자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객관적 근거로 인용할 수 있죠. ]
漁夫
# by | 2007/08/08 00:15 | 책-역사 | 트랙백 | 핑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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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원폭이 잔인한 무기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우리가 아닌 그 당시 사람들의 입장으로 봐서는 원폭 투하를 잘못된 것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원자탄 사용의 맞고 틀림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국의 측면에서 원자탄의
사용은 맞았습니다. 전쟁전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태평양 전선의 고착을 뒤집어야 했습니다. 일본군이 항전했더라면
소련에 의해 한반도 먹히고, 미군의 희생도 많았을 겁니다. 사실 미국은
소련이 '한반도'를 먹는 것보다, 소련이 무언가를 먹는다는 행위
자체를 싫어했지요.
2. 한편 일본은 항복하고 싶었지만, 다소 무리한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정신나갔죠. 미국으로서는 마음이 급했습니다.
T-34 시즈탱크가 벌쳐 속력으로 내리박고 있어서...
3. 그래서 원폭. 거기서 전쟁이 종결되고 양군은 38도선에서 만나지요.
4. 최종 합산, 유럽 동부전선에서 소련은 10만명 지불,
태평양전선에서는 미국은 핵폭탄 2발 지불,
저는 핵폭탄 투하를 둔 논란에서, 핵폭탄이 떨어지면 안되었다를 지지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마 저라고 해도 핵폭탄투하를 결정했을 겁니다.
단지 투하의 주된 이유의 순서가
1. 냉전체제를 예견한 미국의 소련에 대한 견제
2. 태평양 전선의 고착해결. (미군의 피해 최소화)
3. 핵무기의 전술적 위력(탄도탄이 만들어지면서 전략적 위치를 가지죠^^)
4. 기타등등. (세 가지 정도가 더 있었는데 뺐습니다.)
일 뿐이죠.
저는 단지 어부님께서 그 주된 이유의 1순위가 미군의 피해라고 보신 듯 싶어, 모자르나마 뒷말을 단 것 뿐입니다.
다시 투하전 상황입니다.
미국은 전쟁 종결후, 얻을 이득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소련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개떼처럼 튀어 나오는 병력과 탱크들의 존재가 정말 두려웠거든요.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전투 이후, 세계에서 전쟁수행능력을 가진 나라는 소련과 미국뿐이었습니다. 미국은 눈앞의 적은 독일과 일본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소련이 될 것을 감지합니다.
하지만 2차대전의 명분은 소련이 아니었습니다. 미군일각에서는 소련과도 한판 치루자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병사들은 국민들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 소련은 대군이 육로로 이동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몇만씩 일일히 수송선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이건 전략적으로 굉장한 부담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단 한번도 진정한 적수와는 싸워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들도 내심 소련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래서 땅따먹기 경쟁에 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붉은 군대 10만명의 희생, 두 발의 핵폭탄이 있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소련이 핵폭탄 가지기 전, 어떻게든 미국의 핵폭탄은 폭발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만일 핵폭탄이 안 떨어졌다면? 하하.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봅니다. 역사에는 가정법이 없다고 하죠.
그러나 무리하게 상상의 유희를 즐겨본다면 미국의 예상처럼 수만에서 수십만명이 희생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다만 희생자의 수는 지금보다는 많았을 거고, 시간도 더 많이 소비했겠죠. 시간을 미친듯이 달리는 소련육군에 의해 한반도는 점령당했고, 그건 우리들에게 불행 이상의 불행이 되었을 겁니다. 그러면 625가 터지지 않았을테니 일본은 농업국가가 되어 빌빌대다가, 세계경기호황과 월남군 파병으로 크게 성장하겠지만, 지금 수준은 되기 어려웠겠지요.
전쟁은 사람들에게 여러가지를 시사하게 해줍니다. 일어나서는 안될 것이지만, 일어나게 되죠. 그때마다 누구는 후회를 하지만, 누구는 기뻐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흔적이라면 흔적이겠죠.
1차적으로는 '일본을 어떻게 꿇릴까'가 우선이었다는 데는 제가 아는 한에서 별로 의심을 가져 본 일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