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15일
원자폭탄; 사용하지 않았으면?
태평양 전쟁; 원자탄과 전범 재판의 시리즈물입니다.
규마 후미오 일본 방위상이 사임했군요를 보면서, 혼네와 다테마에가 엄격한(요즘엔 안 그렇습니까?) 일본의 정치인답지 않게 정말 솔직한 발언이라는 느낌이. 물론 일본 정치인으로서는 금단의 열매를 건드렸다고밖에는 말 못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갑니다.
제가 좀 먼저 다루고 싶었습니다만 큰기차님과 후미오 방위상이 운을 떼는 바람에...
종전 당시의 상황을 원자폭탄 만들기(The Making of Atomic Bomb, by Richard Rhodes)와 기타 도서에 의존하여 살짝 재현하면 이렇습니다.
... 포츠담 선언 때 트루먼은 스탈린에게 살짝 트리니티의 성공에 대해 언급합니다. "우리는 파괴력이 큰 새로운 무기를 갖고 있소" 스탈린은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일본에게 잘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실제는 캔디 작전의 성공 덕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상세한 내용을 스탈린은 대부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세르게이 안토노프 장군은 만주 침공 준비는 다 됐으며 8월 15일 경 예정이라고 답했습니다. 미국은 원자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실험 성공 전과는 반대로 '그들이 그들답지 않게 시간을 지킬까 염려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차피 원자탄이 없었다 해도 그 정도에 소련군은 만주를 침공했을 겁니다. 하지만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단 한 개의 폭탄이 도시 전체를 파괴했다는 소리를 듣자, 스탈린은 상당히 놀랐고 전쟁 계획을 가속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8월 8일에 (예정보다 7일 앞서서) 관동군을 소련군이 공격합니다.
단 한 주일 동안 소련군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서 얻은 것은 이렇습니다;
1. 러일 전쟁 후 일본의 영토였던 남 사할린 및 북방 4도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할린은 물론
얄타 회담에서 소련에 넘어가기로 합의됐다고는 합니다만, 독일전 종료 후 90일 이내 참전하기로 했
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2. 사실상 한반도 38도선 이북 지배; 러시아 제국 시대부터 부동항을 목표로 남진 정책을 펴 온 만큼, 이
것은 의미가 꽤 큽니다.
3. 제가 잘 모르는 점 하나; 만주의 상황입니다. 사실상 만주를 소련이 지배했다면 국민당과 중국 공산
당의 대립에 어떤 역할을 분명히 했을 텐데, 이 분야에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에 2'라는 책
에서는 국민당군이 만주 원정을 하지 않았으면 대만으로 쫓겨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정말 사실이라면 그 7일 덕에 중국 본토도 공산주의에게 넘어갔다는 추론이 가능할지요.
막판에 끼어들어서 얻은 거 상당히 많군요. 더글러스 맥아더가 "소련은 단지 며칠 참전해서 한반도의 상당 부분을 챙겨갔다"고 불만을 토했다는데(직업 군인의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원자 폭탄이 1945년 7월 12일 트리니티 테스트 때가 아니라 더 늦게 완성되었거나, 미국이 원자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거나, 일본이 원자탄을 맞고도 항복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1. 일본 ; 정말 남 사할린과 쿠릴 4도만 점령당하고 끝났을까요? 트루먼이 소련군에게 그 이상 남진
하지 말라고 경고를 보냈다는데, 올림픽 작전이나 코로넷 작전으로 엄청난 미군 희생자를 내고 있
다면 경고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더 치고 내려와라'고 했을 가능성이 99%였을 겁니다.
2. 한국 ;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하고 나서 미군과 소련군 점령 경계를 정할 때도 미군 측의 당사자
들은 38도선에서 과연 소련군이 멈출까 의심스러워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소련이 멈추기는 했지
만, 제가 아주 오래 전에 본 책(뭔지 기억이)에서는 소련은 39도선도 기꺼이 받아들일 의향이 있었
다고 하며, 30대 중반이던 딘 러스크(Dean Rusk)와 찰스 본스틸 3세(Charles H. Bonesteel III)
가 38선을 정할 때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from Wikipedia, division of Korea)
On August 10, 1945 two young officers – Dean Rusk and Charles Bonesteel – were assigned the task of creating an American occupation zone. Working on extremely short notice and completely unprepared for the task, they used a National Geographic map to decide on the 38th parallel; they chose it because it divided the country approximately in half but would leave the capital Seoul under American control. No experts on Korea were consulted and the two men were unaware that forty years previous, Japan and Russiahad discussed sharing Korea along the same parallel; Rusk later said that had he known, he would have chosen a different line.
일본에서 소모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가 분단되건 말건 미국이 신경을 썼을까요? 미국에
게는 예나 지금이나 태평양을 면하고 있는 일본이 한반도보다는 훨씬 더 전략적 값어치가 크다는 점
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이 때인지 전인지, 자리에 배석했던 어느 젊은 사람이 한국은 역사나 문화적으로 분단 불가능
하다고 발언했다는데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기억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 역시 거스름돈 신세는 처량하죠.. ]
3. 중국 ; 어차피 나중에 장개석의 만주 원정 실패로 인한 부산물로 본토 전체가 공산화했으니 큰 차이
는 없겠지만, 그런 실수가 없었을 경우를 생각하면 국민당의 지배 영역이 크게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죠. 국민당에게는 어쨌거나 더 고달팠을 겁니다.
'만약에 2'에서 전개한 논리는 큰기차님께서 이 포스팅에서 쓰신 논지와 사실상 동일합니다. 단 끝 문단은 "원자폭탄이 없었다면 한국의 분단과 6.25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 국민은 혼슈의 분단과 오랜 동안의 빈곤을 감수해야 해을 것이다.."는 식으로 시작합니다.
진짜 위 문장이 다 옳을까요? 뒷 문장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 첫 문장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가정이군요. 우리 모두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녀야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漁夫
ps. 초안 쓴 지 2주만에. 요즘 바빠서 정신이 없습니다....
규마 후미오 일본 방위상이 사임했군요를 보면서, 혼네와 다테마에가 엄격한(요즘엔 안 그렇습니까?) 일본의 정치인답지 않게 정말 솔직한 발언이라는 느낌이. 물론 일본 정치인으로서는 금단의 열매를 건드렸다고밖에는 말 못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감이 갑니다.
제가 좀 먼저 다루고 싶었습니다만 큰기차님과 후미오 방위상이 운을 떼는 바람에...
종전 당시의 상황을 원자폭탄 만들기(The Making of Atomic Bomb, by Richard Rhodes)와 기타 도서에 의존하여 살짝 재현하면 이렇습니다.
... 포츠담 선언 때 트루먼은 스탈린에게 살짝 트리니티의 성공에 대해 언급합니다. "우리는 파괴력이 큰 새로운 무기를 갖고 있소" 스탈린은 별 관심 없다는 듯이 일본에게 잘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실제는 캔디 작전의 성공 덕에 맨해튼 프로젝트의 상세한 내용을 스탈린은 대부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세르게이 안토노프 장군은 만주 침공 준비는 다 됐으며 8월 15일 경 예정이라고 답했습니다. 미국은 원자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실험 성공 전과는 반대로 '그들이 그들답지 않게 시간을 지킬까 염려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어차피 원자탄이 없었다 해도 그 정도에 소련군은 만주를 침공했을 겁니다. 하지만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단 한 개의 폭탄이 도시 전체를 파괴했다는 소리를 듣자, 스탈린은 상당히 놀랐고 전쟁 계획을 가속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8월 8일에 (예정보다 7일 앞서서) 관동군을 소련군이 공격합니다.
단 한 주일 동안 소련군이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서 얻은 것은 이렇습니다;
1. 러일 전쟁 후 일본의 영토였던 남 사할린 및 북방 4도 (여기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할린은 물론
얄타 회담에서 소련에 넘어가기로 합의됐다고는 합니다만, 독일전 종료 후 90일 이내 참전하기로 했
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2. 사실상 한반도 38도선 이북 지배; 러시아 제국 시대부터 부동항을 목표로 남진 정책을 펴 온 만큼, 이
것은 의미가 꽤 큽니다.
3. 제가 잘 모르는 점 하나; 만주의 상황입니다. 사실상 만주를 소련이 지배했다면 국민당과 중국 공산
당의 대립에 어떤 역할을 분명히 했을 텐데, 이 분야에 아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만약에 2'라는 책
에서는 국민당군이 만주 원정을 하지 않았으면 대만으로 쫓겨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정말 사실이라면 그 7일 덕에 중국 본토도 공산주의에게 넘어갔다는 추론이 가능할지요.
막판에 끼어들어서 얻은 거 상당히 많군요. 더글러스 맥아더가 "소련은 단지 며칠 참전해서 한반도의 상당 부분을 챙겨갔다"고 불만을 토했다는데(직업 군인의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원자 폭탄이 1945년 7월 12일 트리니티 테스트 때가 아니라 더 늦게 완성되었거나, 미국이 원자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거나, 일본이 원자탄을 맞고도 항복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1. 일본 ; 정말 남 사할린과 쿠릴 4도만 점령당하고 끝났을까요? 트루먼이 소련군에게 그 이상 남진
하지 말라고 경고를 보냈다는데, 올림픽 작전이나 코로넷 작전으로 엄청난 미군 희생자를 내고 있
다면 경고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더 치고 내려와라'고 했을 가능성이 99%였을 겁니다.
2. 한국 ; 8월 15일에 일본이 항복하고 나서 미군과 소련군 점령 경계를 정할 때도 미군 측의 당사자
들은 38도선에서 과연 소련군이 멈출까 의심스러워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소련이 멈추기는 했지
만, 제가 아주 오래 전에 본 책(뭔지 기억이)에서는 소련은 39도선도 기꺼이 받아들일 의향이 있었
다고 하며, 30대 중반이던 딘 러스크(Dean Rusk)와 찰스 본스틸 3세(Charles H. Bonesteel III)
가 38선을 정할 때의 상황은 이랬습니다; (from Wikipedia, division of Korea)
On August 10, 1945 two young officers – Dean Rusk and Charles Bonesteel – were assigned the task of creating an American occupation zone. Working on extremely short notice and completely unprepared for the task, they used a National Geographic map to decide on the 38th parallel; they chose it because it divided the country approximately in half but would leave the capital Seoul under American control. No experts on Korea were consulted and the two men were unaware that forty years previous, Japan and Russiahad discussed sharing Korea along the same parallel; Rusk later said that had he known, he would have chosen a different line.
일본에서 소모전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가 분단되건 말건 미국이 신경을 썼을까요? 미국에
게는 예나 지금이나 태평양을 면하고 있는 일본이 한반도보다는 훨씬 더 전략적 값어치가 크다는 점
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이 때인지 전인지, 자리에 배석했던 어느 젊은 사람이 한국은 역사나 문화적으로 분단 불가능
하다고 발언했다는데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기억이 옳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 역시 거스름돈 신세는 처량하죠.. ]
3. 중국 ; 어차피 나중에 장개석의 만주 원정 실패로 인한 부산물로 본토 전체가 공산화했으니 큰 차이
는 없겠지만, 그런 실수가 없었을 경우를 생각하면 국민당의 지배 영역이 크게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죠. 국민당에게는 어쨌거나 더 고달팠을 겁니다.
'만약에 2'에서 전개한 논리는 큰기차님께서 이 포스팅에서 쓰신 논지와 사실상 동일합니다. 단 끝 문단은 "원자폭탄이 없었다면 한국의 분단과 6.25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본 국민은 혼슈의 분단과 오랜 동안의 빈곤을 감수해야 해을 것이다.."는 식으로 시작합니다.
진짜 위 문장이 다 옳을까요? 뒷 문장은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 첫 문장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가정이군요. 우리 모두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녀야 했을지도 모르니까요.
漁夫
ps. 초안 쓴 지 2주만에. 요즘 바빠서 정신이 없습니다....
# by | 2007/07/15 14:40 | 책-역사 | 트랙백(1) | 핑백(1) | 덧글(2)




![[수입] 바흐 :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2982436736_1.jpg)
![[수입] 바흐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2342436152_1.jpg)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A-bomb; 미국의 선택
원자폭탄; 사용하지 않았으면? 에서 저는 원자폭탄의 사용에 대해 이런 순서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면, 원자 폭탄이 1945년 7월 12일 트리니티 테스트 때가 아니라 더 늦게 완성되었거나, 미국이 원자탄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거나, 일본이 원자탄을 맞고도 항복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지금 적으려는 것은 미국이 원자탄을 쓰지 않기로 결심할 수 있었는가, 쓰기로 한 결정이 과연 합리적이었......more
... 원자폭탄; 사용하지 않았으면? 에서 저는 원자폭탄의 사용에 대해 이런 순서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면, 원자 폭탄이 1945년 7월 12일 트리니티 테스트 때가 ... more
마지막 문단... 좀 거시기하죠. 저 북 체제에서 구르고 있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