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22 13:14

Consilience; Real meanings Evolutionary theory

trackback ; 통섭보다는 Conslience를
External link ;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2697183 

  Trackback해 온
evopsy님의 의도는 아래 문단에 근접하리라 봅니다.  (evopsy님 맞는가요?)

  "... 만약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는 역사학,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그리고 정치학 연구
   에 분명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러한 각각의 학문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만약 인
   간 행동의 저변에 깔려 있는 보편성이 진화의 결과라면 진화의 압력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매
   무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나는 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가 마치 '종의 기원'이 출간된 1859년이
   결코 존재한 적이 없는 것처럼 나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런 일은 아주 의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인간의 문화가 바로 인간의 자유의지와 발명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
   다.  사회가 인간 심리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심리가 바로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Matt Ridley,
   'The Red Queen', 1장에서.  글자색은 제가 삽입..)

  External link에서 한 문단 인용하죠.  이것이야말로 evopsy님이 말씀하신 '제대로 된 반응'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그러나 사회생물학으로 모든 것을 흡수통일하겠다는 망상에 근거한 통섭론은 거부한다. 개미나
    침팬지를 연구해 나온 결과가 인간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발상은 논리 비약이고 자연주의적
    오류다. 그들의 통섭 시나리오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연상케 한다. 윤리를 '유전자가
    우리를 기만하는 환상'으로 보는 윌슨의 통섭론에서 생명윤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이보그, 로봇
    인간, 키메라 등 무엇이건 포스트 휴먼을 추구하면 그냥 맹종할 뿐이다.  이런 위험천만한 통섭론을
    학문 통합의 대안으로 등극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런 반응은 Wilson의 사회생물학 관계 책이 처음 왔을 때 나온 반응을 연상시킵니다.  Helen Fisher의 '성의 계약' 6장에서 1976년 12월 워싱턴의 인류학회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 사회생물학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학자들이 비난 발언을 하고, 턱수염을 늘어뜨린 한 학자는 중앙
  통로에 서서 마이크를 향해 고함을 치고 있었다.  "애초부터 사회생물학은 인간 사회에 있는 남녀차별주
  의자나 인종차별론주의자, 엘리트주의자들의 지위를 유전학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입니다.(중략) 사
  회생물학은 우리 아이들을 파멸로 이끌 것입니다.  그것은 운명결정론의 한 유형이며 정치적인 음모이자
  치명적인 병입니다."
(중략) 그의 뒤에서 발언을 청하는 여자의 손에 마이크가 넘겨졌다.  "나는 모든 주
  립대학의 수업에서 사회생물학 교재를 금지하는 일에 찬성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
  책은 금지해 주시길... "
    책을 금지시키다니?  이게 과학자들의 모임인가, 아니면 분서갱유를 즐기는 자들의 모임인가.  나는
  문득 그 악명 높은 '스코프스 씨의 원숭이 재판'을 떠올렸다.  (중략) 사회생물학 출판물들이 클라렌스
  대로우
를 다시 법정에 세우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큰 발자국 소리가 났다. 
  가렛 미드
였다.  (중략) 미드 박사는 사회생물학의 지지자는 아니지만, 이 새로운 학문도 과학의 세계에
  서 논의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자 했다. (중략)
    금서 결의안은 178명이 찬성하여 53표 차로 부결되었다.  이렇게 몇몇 저명인사들에게 증오의 대상이
  었던 사회생물학은 살아남았다.  물론 그 앞길은 매우 험난하다.  사회생물학을 둘러싼 논의는 학술회의
  장에서, 캠퍼스의 분수대에서, 연구실 문 뒤에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 학문은 아직도 오해되고
  있으며, 때로는 잘못 사용되고 있다


  유명한 문장; 나는 동물학자이며 털없는 원숭이는 동물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행동에 - 요즘은 행동을 해부학적 기관과 동등하게 (진화의 대상으로) 취급하더군요.  해부학적 기관이나 특정 행동이나 모두 (유전자의) 생존에 동등하게 핵심적으로 중요함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진화론적 근거가 작용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사람의 학습 능력이 다른 동물과 비할 바 없이 훌륭하지만 결국은 학습 잠재력도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획득한 부산물입니다.  진짜 좀 '제대로 된 이해'가 자리잡기만 바랄 뿐입니다.

漁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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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arwinist 2007/04/22 14:16 # 답글

    어부님 덕분에 통섭에 반대하는 흥미로운(?) 글을 알게 되었네요. 고맙습니다. ^^
  • 어부 2007/04/22 14:52 # 답글

    감사합니다 ^^ 저도 최근에야 제대로 독서하기 시작한 분야라...
    국제정치학 측면은 그래도 현실주의가 자리잡은 분야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연구와 통하는 점이 많습니다만, 철학과 사회학 쪽은 논란이 많으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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