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14 08:38

호박벌을 사육하는 사람은 왜 없는가 Evolutionary theory

[ 논리 ; from '이타적 유전자(The origin of virtue)' by Matt Ridley ]

  호박벌도 꿀벌처럼 꿀을 모으지만, 인간은 꿀벌을 선택하여 현재처럼 '가축'으로 만들었습니다.  호박벌도 집단으로 살며 꿀을 모은다는 점에서는 일벌과 같으나, 호박벌의 사회는 매해 해체되고 여왕벌만 겨울을 난 후 봄에 '처음부터 다시 시작(computer reset 생각하시면)' 합니다.  이 때문에 호박벌은 꿀벌처럼 꿀을 많이 모을 수 없습니다.

  이 근본적인 차이는, 호박벌의 여왕벌은 일부일처제인데 반해 꿀벌의 여왕벌은 일처다부제라는 점을 주목하면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漁夫

  ps. 사람은 '대체로 일부일처제'인데도 이런 큰 사회를 만들고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약간 다른 데 있더군요.  사람은 번식 생물학 측면에서는 다른
    친척인 유인원들보다 집단 생활을 하는 새(해변의 갈매기나, 백로 등)와
    훨씬 가깝습니다.


  벌(과 개미; 통상 막시류라고 부르죠)의 생식 방식은 조금 독특해서, 암컷의 유전자 수는 2n이나 수컷의 유전자 수는 n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냐 하면, 사람처럼 아버지 어머니 모두의 유전자 수가 2n인 경우에는 자식은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에서 n씩 받아서 유전자 2n을 만들죠.  즉,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식에게 자신이 가진 유전자의 50%씩만 물려주게 됩니다.  이 경우 평균적으로 자식들 사이의 유전자는 절반씩 같습니다.  ('유전자 교차'란 현상 때문에, 극단적으로는 0에서 100%까지 모두 존재합니다만, 확률상 평균적으로 절반이죠)

  하지만 벌의 경우에는 계산이 좀 달라집니다.  벌은 위에서 말했듯이 수컷의 유전자를 그대로 100% 다 물려받으므로(사람의 경우는 50%죠), 암컷인 일벌끼리는 여왕벌에게서 받은 유전자 절반씩만이 달라집니다.  즉, 일벌끼리는 평균적으로 75%의 유전자가 동일합니다.  50%가 아니라.
  그러면, 여왕벌이 수펄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여왕벌 2n → 수펄 n으로 유전자의 1/2만 전달되므로, 일벌의 입장에서는 어미인 여왕벌의 수펄과는 1/4의 유전자를 공유합니다.  재미있는 점이, 형제 일벌이 수펄을 낳을 경우 이 수펄과 일벌의 유전자 공유 비율은 75% * 1/2 = 37.5%가 되므로, 유전자 측면에서는 '일벌은, 여왕벌이 낳은 수펄보다 동료 일벌이 낳을 수펄과 더 가까운 친척이다'가 맞습니다.  이 경우 일벌의 유전자 측면에서는, 동료 일벌이 수펄을 낳아 주는 편이 더 이득입니다.
  바로 이것이 호박벌의 집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호박벌의 여왕벌이 수펄을 낳는 순간부터 호박벌 사회는 해체됩니다.  즉 여왕벌은 집을 버리고 날아가서 혼자 동면합니다.

  하지만 꿀벌 사회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여왕벌은 결혼 비행에서 수컷과 교미한 후 벌집을 짓기 시작합니다.  이 때 여왕벌은 평균적으로 10마리 이상의 수펄과 교미하는데, 이게 한 마리만을 상대하는 호박벌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꿀벌 여왕벌이 일처다부란 사실은 동료 일벌들 사이의 혈연도를 위에서 계산한 75%보다 훨씬 떨어뜨립니다.  즉, 아버지 쪽에서 물려받은 유전자의 공유 비율을 50%가 아니라 대략 10% 이하까지 떨어뜨리기 때문에, 자매 일벌 사이의 비율은 평균적으로 35% 이하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 경우 여왕벌이 낳은 수펄과 일벌의 혈연도 25%에 비해, 일벌과 그 자매 일벌이 낳은 수펄의 혈연도는 35*1/2=17.5% 이하가 됩니다.  이러면, 자매 일벌이 수펄을 낳는 경우보다는 여왕벌이 수펄을 낳는 편이 일벌들에게 유전자 면에서 더 이익이 되죠.  따라서, 꿀벌 여왕벌이 수펄을 낳더라도 꿀벌의 사회는 해체되지 않습니다. (즉 꿀도 계속 모은다는 말이죠)

  이것도 벌집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여왕벌이 낳은 알에는 여왕벌의 페로몬이 묻어 있는데, 이 페로몬이 없는 알(즉 동료 일벌이 낳은 알)은 다른 일벌에게 잡아먹힙니다.  무서운 유전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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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ㅇㅅㅇ 2010/11/14 22:03 # 삭제 답글

    재밌는 관점이네요.^^
  • 漁夫 2010/11/15 00:47 #

    저런 행동의 차까지 유전자 공유의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 이론이 완전히 성공한 사례 중 하나이지요.
  • kuks 2012/04/08 22:24 # 답글

    이야... 자연의 신비이자 과학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d^^b
  • 漁夫 2012/04/08 22:36 #

    바로 이 유전자 중심 관점(gene-centrism view)을 확립한 사람들이 제 포스팅에 자주 등장하는 William Hamilton, George Williams입니다. 20세기 중반의 가장 중요한 생물학 이론가들이란 평가를 받지요. 이것을 결정적으로 대중화한 사람이 Richard Dawkins고요.
  • O 2015/11/19 08:13 # 삭제 답글

    별로 쓸데없는 사족을 붙이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박벌(뒤영벌)을 사육하는 사람은 제법있는 모양입니다.

    http://blog.naver.com/vespa777/220010499854
    http://blog.daum.net/rda2448/6977147
  • 漁夫 2015/11/20 21:19 #

    하하 정말 할 줄은 몰랐네요. 단지 '수분 곤충'으로서만은 모를까, output(꿀)까지 생각하면 그렇게 큰 merit이 있을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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