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2월 22일
이 글은 다산 연구소 홈페이지(http://www.edasan.org)에서 필자들이 칼럼 형식으로 연재하는 글의 전문 전재입니다. 언론인 김정남 님께서 쓰셨습니다. (약력은 前 평화신문 편집국장, 前 민주일보 논설위원, 前 대통령비서실 교문사회수석비서관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서로 <진실, 광장에 서다- 민주화운동 30년의 역정>이 있다고 합니다만, 물론 못 읽어 보았습니다 -.-) [ 물론 무단전재니 가차없이 언제 삭제할지 모릅니다. ] 매일 회사에서 뉴스레터 식으로 받아보는 다산 연구소의 칼럼입니다만, 어제 것은 좀 생각을 많이 해 보게 만드네요. 漁夫 ps. 길어서 more로 접습니다. |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
내가 어릴 적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사람죽고 소·대상 3년을 불문하면 그 집안과는 의절하는 것이 법도 있는 집안의 예법이라고. 그래서 설사 경사(慶事)를 결례하더라도 애사(哀事)에 문상을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이렇듯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고, 성심을 다하여 그 유가족을 위문하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인간의 도리이자 예절로 예부터 전해져 내려왔다.
인혁당 사건 무죄선고와 박근혜 얼마 전, 32년 만에 1974년 인혁당재건위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 여덟 사람에 대한 재심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되었다. 목욕탕에 간다고 나간 사람이 중앙정보부로 끌려간 때로부터 치면 33년만의 일이다. 그들 가족에게는 세상천지에 그런 날벼락이 없었다. 그들 가족이 33년 동안 겪었던 시련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식은 빨갱이 아들이라고 동네아이들에 의하여 나무에 묶여지기 일쑤였다. 중앙정보부는 그 가족들까지 연행, 남편이 빨갱이라는 진술서를 강요하는가하면, 최음제까지 먹여놓고, 그것을 즐기기까지 했다. 확정판결이랍시고 대법원의 결정이 있기가 무섭게 18시간 만에 그들 8명은 처형되었다. 나는 그때 그 가족들의 울부짖는 모습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들은 신부들을 붙들고 “그렇게 쉽게 죽이진 못할 거라더니, 이렇게 죽었잖아요?”하면서 몸부림쳤다. 그 광경은 차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처참함이었다. 그 가족들의 32년의 삶은 글자 그대로 ‘눈물과 한’으로 점철된 그것이었다. 32년 만에 독재권력에 의한 억울하고도 한 많은 죽음이 신원된 것이다. 민청학련도 무죄로 판시되었다. 그리고 박정희 1인을 위한 긴급조치로 학생과 시민들을 감옥으로 보낸 판사명단이 공개되었다. 그것을 보고 유력한 대통령후보의 한사람인 박근혜씨는 “죽은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것은 나에 대한 정치공세”라고 받았다고 한다. 나는 그 보도를 보고 인간에 대한 절망 같은 것을 느꼈다. 이걸 보고 ‘과연 그 아버지 그 딸’이라고 하는 것인지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나는 “아버지의 죄를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면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빌고 싶습니다”라는 정도의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 그 가족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지는 못할지언정 그것이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박종철이 죽음으로 지켜낸 박종운의 최근 발언 1987년 1월 14일 11시 20분경,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박종철은 남영동의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당하다가 숨졌다. 그는 당시 지명수배 중이던 선배 박종운의 소재를 알아내려는 대공요원에 의해 강제로 그날 새벽 연행되었던 것이다. 그들 고문경관들은 박종철에게 박종운의 소재를 집요하게 추궁하였다. 그러나 박종철은 그 어떤 빌미나 단서가 될 만한 얘기를 끝까지 하지 않았다. 죽음으로써 박종운을 지켜낸 것이다.
박종철이 죽기 며칠 전인 1월 8일, 박종운은 당시 ‘제헌의회그룹’ 관련자들이 안기부에 연행된 것을 알고, 조직을 재건하고자 연락이 끊긴 사람들과의 연결을 박종철에게 부탁하기 위해 찾아왔던 것이다. 박종철은 물론 박종운의 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겨울날 떠나가는 수배자 박종운의 손에 돈1만원을 쥐어주었고, 누나 은숙이가 털실로 짜준 목도리를 목에 둘러주었다. 박종운의 말대로 “찾아달라고 했던 그 사람의 이름만 댔어도” 박종철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상당한 기간 동안 나는 박종철이 죽음으로써 지켜내려 했던 그 박종운이 어떠한 사람인가 내내 궁금했다. 그럴 만큼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이거니 생각했다. 박종철의 죽음이 그렇게 세상에 떠들썩했을 때도 그가 끝내 나타나지 않는 걸 보고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애써 믿었다. 가장 최근에 알려진 바로, 그는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이요,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이라고 한다.
민주화 20주년에, 박종철 20주기가 되는 올해 초, 박종운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장경제를 지키고 북한 민주화를 이루는 것이 박종철의 정신을 올바르게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걸 놓고는 어느 학생운동출신과 이념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나는 그저 그가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는 데 대한 자격지심이 그런 말을 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뿐, 그 논쟁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그의 발언을 보고, ‘이건 아닌데’ 싶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무엇이 박종철 정신이라고 아전인수격인 주장을 펴기 이전에 “못난 저 때문에 박종철이 죽었습니다”고 세상에 고백하고, “박종철의 의로운 죽음에 부끄럽지 않게 자신을 다듬으며 일생을 살아가겠습니다”는 다짐을 박종철의 영혼과 국민 앞에 바치는 것이 순서가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것이다. 적어도 박종철의 죽음이 다른 사람의 눈에 허망하게 느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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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어부 | 2007/02/22 09:01 | Critics about news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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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박옹이 '할 말 없다'고 발언한 모양인데, 그 기사를 꼼꼼히 읽기가 짜증나서 세부까지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해명 안 한다는 작전으로 간 모양인데, 그것도 당연히 악수죠. 거기도 정말 웃기는 동네는 맞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