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2월 08일
J. G. C. (3) ; 통치자로서 보여 준 안목
J. G. C. (2) ; Commentarii de Bello Gallico
"갈리아는 그 전체가 셋으로 나뉘는데, 첫번째에는 벨가이(Belgae), 두번째에는 아퀴타니(Aquitani), 세번째에는 그들 말로는 켈타이(Celtae), 우리 말로는 갈리(Galli)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갈리아 전쟁기' 첫 부분)
"벨가이는 개발되고 인간적인 남쪽의 프로빈키아(Provincia)에서 어느 민족보다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상인들도 그곳까지는 가지 않으며,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연약하게 만들기 쉬운 사치품에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갈리아 전쟁기 2편에서)
주 ]
1. Belgae ; Belgium의 근원. 라인 강의 인접 지역으로, 대략 현대의 벨기에,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남부, 독일의 라인 강 서쪽 일부 지역.
2. Aquitani ; 프랑스 남서부의 아키텐(Aquitaine)지방.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보르도 지역과 그 부근.
3. Galli ; Gallia. 요즘에도 Gaule이라는 말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벨가이와 아퀴타니 사이의, 중부 프랑스에서 서부 스위스를 포괄하는 지방.
4. Provincia ; Province의 어원. 요즘도 '주'나 '지방'의 명칭으로 쓰이죠. 여기서는 이미 로마에 속하던, 마르세유(Marseilli)와 그 주변의 프랑스 남부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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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하고 한 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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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미국 대학생의 반 이상이 파나마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말은 아마 우스갯거리가 되겠지만, 정치가가 지리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가의 지리에 대한 무지가 큰 문제를 야기한 경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유럽 열강들에 의해 1차 대전~2차 대전 이후에 아프리카에 설정된 부자연스러운 국경선으로(주; 아프리카 지도 한 번 보시죠. 일직선으로 죽죽 그어진 국경이 눈에 들어오실 겁니다), 이것을 물려받은 현대 아프리카 국가들의 토대는 약화되어 왔다....
둘째, 1차 대전 이후 그 지방에 대해 무지한 정치가들에 의해 그어진 동유럽의 국경선으로, 이것이 큰 원인이 되어 제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 지구상에 퍼진 전화와 팩스로는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사이의 이질감을 제거하지 못한다.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는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느냐가 결정한다. ('제 3의 침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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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후의 보통 정치가와 비교하여, 사람을 보는 '그릇'의 크기 자체가 달랐음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 자세히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다시 존재할 수 있을지요. 정치, 군사, 인간에 대한 통찰력.... 아, 여자 문제도 그렇고요.
漁夫
"갈리아는 그 전체가 셋으로 나뉘는데, 첫번째에는 벨가이(Belgae), 두번째에는 아퀴타니(Aquitani), 세번째에는 그들 말로는 켈타이(Celtae), 우리 말로는 갈리(Galli)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갈리아 전쟁기' 첫 부분)
"벨가이는 개발되고 인간적인 남쪽의 프로빈키아(Provincia)에서 어느 민족보다도 멀리 떨어져 살고 있고, 상인들도 그곳까지는 가지 않으며, 따라서 사람의 마음을 연약하게 만들기 쉬운 사치품에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갈리아 전쟁기 2편에서)
주 ]
1. Belgae ; Belgium의 근원. 라인 강의 인접 지역으로, 대략 현대의 벨기에, 프랑스 북부, 네덜란드 남부, 독일의 라인 강 서쪽 일부 지역.
2. Aquitani ; 프랑스 남서부의 아키텐(Aquitaine)지방.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보르도 지역과 그 부근.
3. Galli ; Gallia. 요즘에도 Gaule이라는 말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벨가이와 아퀴타니 사이의, 중부 프랑스에서 서부 스위스를 포괄하는 지방.
4. Provincia ; Province의 어원. 요즘도 '주'나 '지방'의 명칭으로 쓰이죠. 여기서는 이미 로마에 속하던, 마르세유(Marseilli)와 그 주변의 프랑스 남부를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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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하고 한 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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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미국 대학생의 반 이상이 파나마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말은 아마 우스갯거리가 되겠지만, 정치가가 지리에 대해 무관심한 경우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가의 지리에 대한 무지가 큰 문제를 야기한 경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유럽 열강들에 의해 1차 대전~2차 대전 이후에 아프리카에 설정된 부자연스러운 국경선으로(주; 아프리카 지도 한 번 보시죠. 일직선으로 죽죽 그어진 국경이 눈에 들어오실 겁니다), 이것을 물려받은 현대 아프리카 국가들의 토대는 약화되어 왔다....
둘째, 1차 대전 이후 그 지방에 대해 무지한 정치가들에 의해 그어진 동유럽의 국경선으로, 이것이 큰 원인이 되어 제 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 지구상에 퍼진 전화와 팩스로는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 사이의 이질감을 제거하지 못한다. 결국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는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느냐가 결정한다. ('제 3의 침팬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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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후의 보통 정치가와 비교하여, 사람을 보는 '그릇'의 크기 자체가 달랐음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 자세히 보면 볼수록 감탄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다시 존재할 수 있을지요. 정치, 군사, 인간에 대한 통찰력.... 아, 여자 문제도 그렇고요.
漁夫
# by | 2007/02/08 09:53 | 私談 | 트랙백 | 덧글(13)




![[수입] 바흐 :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http://image.aladdin.co.kr/coveretc/music/coveroff/2982436736_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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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하늘이 내린 희대의 천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100년 전의 대영제국이나 지금의 미국이 당시의 로마제국만큼 권위를 인정 받았을까요?
물론 대영제국이나 미국은 그렇지 못했고, 작금의 대한 민국은 (of course) 대영제국이나 미국만 못하죠.
그간 따로 발전해온 게 있기에 그렇다고는 생각되지만 역시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기보다는 대영제국이나 미국이 더 낫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시저는 혹시 미래에서 왔거나 외계인이 아니었을까요? -_-a
to 알렙님; 저도 대한민국 국민이라 좀 점잖게 써 줬죠. 원래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단칼에 잘라야 했겠지만... 시저는 7월에 이름 붙여서 기념해 줘도 그 정도로는 불충분할 듯한 이름입니다. 더 해도 충분하겠죠.
단순히 정치적인 이유만으로 멀쩡한 도시에 그리스화약을 퍼붓고 피난민들을 전부 처형하는 방식이었죠. 어떤 복수라든가 감정적인 동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타겟이 되었기에 박살낸 사례가 '용어로 정착해버릴만큼' 지독하게 많았습니다. 단순히 식민정책을 윤리적으로 판단한다고 했을때 일제가 한반도에 저지른 만행은 지극히 우스워 보일 정도랍니다.
(중세시대에 사용된 것은 2차 십자군 파견당시 십자군 지도자들이 일반적인 전쟁이었던 벨룸 호스틸레 대신에 벨룸 로마눔을 치를 것이라고 결정한게 유명하죠. 말그대로 있는대로 씨를 말리겠다는 뜻에 가까웠으며 이는 예루살렘 점령에 매우 강력히 반영됩니다[..])
또한 로마가 그 커다란 덩치를 '다른 제국과 비교해서도 효율적이고 비용이 덜 들어가며 로마인의 희생이 적었는가'에 대해서도 매우 큰 의문을 품고 있는데, 아직 내공이 후달려서 공부부터 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사소한 점이긴 합니다만, 로마 시대 당시에는 화약이 전쟁용으로는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최소한 도시나 성을 공격하는 주된 병기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중세나 르네상스 때부터 아닌가요? [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마 메메드 2세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할 때 사용한 공성포겠죠. 이 때문에 그 이후 성의 구조가 포격에 견디도록 대대적으로 다시 바뀌었다고 압니다. ]
(거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대 이전부터 쓰여온 것으로 알려져 있고 지중해세계에서는 매우 보편적인 무기입니다. 살라딘의 전기에서도 이를 이용해 알레포에서 배를 태웠다고 언급될 정도이고 '방화용무기'로선 거의 19세기까지도 쓰인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저도 워낙 내공이 부족해서 일일이 사례를 들어가면서 언급하긴 어렵지만 중세시대의 전쟁개념이 기본적으로 '전멸전'과는 차이가 컸다는 점.에서 그만큼 로마인 방식의 전쟁을 충격적인 사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차대전이 종결된 이후에 영국학자들이 '세계적 지배력을 가졌던 유럽의 몰락'을 자기들끼리 로마인 방식의 전쟁을 한 까닭으로 이야기한 적도 있었죠.
제가 근본적으로 실력이 없어서 이런 식의 말씀을 드려도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경험상 로마인 이야기만를 통해 본 로마는 말그대로 파라다이스 그 자체입니다만. 그들이 신이 아닌 이상 그런 로마인의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측면만이 그들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로마도 빈민가와 중범죄, 경제적타락, 전투기본단위인 백인대의 훈련도가 점차 하락하는 등 다양한 내부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고 제국의 멸망과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니까요.
(문화적 연결성이나 딱히 정책을 효과적으로 선전할 도구도 없는 상황인 고대에 언어도 다른 말그대로 '야만인'들이 손쉽게 로마에 동화되었다고 보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유화적으로 나왔다면 오히려 두들겨 맞았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복'자체를 목적으로 할경우엔 저라도 시오노씨 스타일로 찬양까진 하지 않더라도 전멸전을 선호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http://cafe310.daum.net/_c21_/bbs_nsread?grpid=SWL&mgrpid=&fldid=9xm&contentval=000sS000sXzzzzzzzzzzzzzzzzzzzz&datanum=3381&page=3&query=KWEASSA&item=writer&jobcode=1&dataidlist=3393,3387,3386,3381,3369,3362,3350,3327,3293,3290,3285,3280,3207,3202,3195,3190,3185,3081,3082,2933,&fldidlist=9xm,9xm,9xm,9xm,9xm,9xm,9xm,9xm,9xm,9xm,9xm,9xm,9xm,9xm,9xm,9xm,9xm,9xm,9xm,9xm,&cpage=1&totcnt=157
이 글을 오래전에 읽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쓴것 같은데, http://cafe.daum.net/shogun에서 왕마귀님이나 KWEASSA님 같은 분의 글을 검색해보면 상당히 읽을만한게 많답니다. 제 덧글은 이정도쯤에서 마치겠습니다. 많은 오류와 베껴 쓰는 내용임에도 온통 틀려먹는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말씀하신 대로라면 'bellum romanum'은 '고대 당시의 전쟁 방식'이군요. (이건 단지 로마가 당시의 국가 중 가장 유명해서 그런 것 뿐이지 로마만 그랬다는 소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
말씀대로 로마도 부정적인 요소가 없었을 리가 없고,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언급을 간간이 합니다. 사실 '부정적인 요소를 너무 간략하게 언급만 했다'가 그 책에 대해 가장 자주 나오는 비판이죠. 저도 로마가 파라다이스였다고 볼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만, 역시 '국가 경영'과 이민족에 대한 사고 방식(갈리아 총독을 제정 시대에는 갈리아 사람들이 맡았고, 속주인 스페인이나 아프리카 출신들이 집정관 및 황제가 된 사례는 부지기수죠)에 대해서는, 현대인들이 본받을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귀화 국민은 미국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고 하니까요.
그 글을 읽고 나면 일상적으로 그렇게 폭력적으로 치고 받는 세상이 합당한지, 로마 통치하의 속주처럼 폭력을 행사하면 (명목적으로든 아니든) 법으로 처벌하는 쪽이 합당한지 제가 좀 헷갈릴 지경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총, 균, 쇠'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리 사회와 부족 사회에 대해 훨씬 더 장기간에 걸쳐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살인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사망 원인 중 하나이다... 그 점잖다던 부족 사회의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폭력, 살상의) 일대기가 수두록하고, 그것은 곧 부족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차츰 중앙 집권적인 권위체를 도입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제 개인 취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맨날 치고 받는 갈리아나 게르만 부족 사회에서 살고 싶지는 않군요. 겁나서 살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