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16일
Force, and how to use it
See http://en.wikipedia.org/wiki/Force -> defined as an influence that may cause a body to accelerate.
trackback ; http://fischer.egloos.com/2889133(Donald Kagan's "On the origins of war")
link ; http://sonnet.egloos.com/2939721 [ 주인 白; trackback을 걸 경우 본의 아니게 이 재미없는 블로그를 들어오시고 실망하실 분이 늘어나는 관계로 링크만 시킵니다 ]
물리학에서는 '물체를 가속시키는 영향'이라고 정의하지만(F=ma의 기본식에서 명백함), 사회에서 '힘'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것'으로 많이 쓰인다. [ 사실상 두 정의는 같다. 물체는 관성이 있어서 정지해 있으려 하기 때문이다. ] 국제 정치에서도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인다.
sonnet님의 원글에 있지만, 옮겨오기로 하면
sonnet님께서는 '게임의 룰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고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끌어낸 미국과 북한의 협상에 대해 설명하셨다. 무력의 사용 가능성을 열어 둔 협상 말이다. 이것은 성공한 예지만, 무력의 사용 가능성을 배제(또는 심하게 제약)하고 협상하다가 실패하거나 거의 실패 직전까지 갔던 사례가 있을까?
물론 있다. '매파'의 말이라고 비판받을 소지도 있지만, Donald Kagan의 '전쟁의 기원에 대해서'를 읽어보자(sonnet님 정도 되는 분이 이 책을 안 읽으셨을 리가 없어 보이니, 이 글은 사실상 사족인 셈이다).
1) 펠로폰네소스 전쟁 ; 아테네가 코린토스와 코르키라 사이의 함대 분쟁에 끼어든 순간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테네 함대 사령관은 (사용 가능한 수백 척 중) 단지 20~30척만 사용 가능했으며
"코린토스 함대가 코르키라 본토에 대항하거나 착륙할 의도로 코르키라 영토를 향해 항해하지
않는 한 전투에 개입하지 마라"는, 그야말로 행동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약하는 명령을 받았다.
코린토스 함대는 이 해전에서 대부분 손상을 입지 않았으며, 귀국하는 길에 코르키라와 분쟁
대상이던 식민지를 공격하여 점령했다. 이것은 중대한 도발이었으며 전쟁의 도화선이었다.
애초에 아테네가 100척 정도로 무력 시위만 했어도 코린토스가 이런 도발적 행동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이 거의 틀림없다.
2) 1차 세계 대전
영국은 상비군(육군) 및 훈련된 예비군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했는데, 이 덕에 독일은 유럽의
안정에 대한 무모하고 불필요한 도전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랬으면 독일과 전세계에 이익이
었을 것이다... 영국은 금전적인 면에서나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서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
억제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자신의 정책
에 맞게 전략적 능력을 조절하기를 거부하여 자신의 정책 수행 능력을 약화시켰다...
3) 2차 포에니 전쟁 ; 이것만 '로마인 이야기'에서 인용하자.
이미 전쟁이 일어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약간 의미는 다르지만, 로마는 사군툼이 공격받고 있을
때에 적극적인 병력 파견을 망설이는 바람에 큰 손해를 입었다. 전쟁 종료 후 그리스 파병을 주
저하는 시민들을 consul 갈바가 설득한 연설에서;
"한니발이 사군툼을 공격했을 때 바로 도우려 달려갔다면, 전쟁터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에스파
냐가 됐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이것을 한니발과의 대화로 해결하려 하는 바람에 때를 놓쳐
이탈리아를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 우리가 맛본 길고도 괴로운 17년은 죽을 때까지
아무도 잊지 못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날 것 같거나, 아니면 일어난 초기에 적극적인 대응을 망설일 경우 이런 일이 벌어
질 수 있다.
4) 2차 세계 대전
참고할 만한 도서는 많다. '제 3제국의 흥망' 기타...
히틀러가 라인란트 진주를 했을 때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군사를 파견했으면?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 위기 때 영국이 양보하지 않고 군사 대결도 불사했으면?
히틀러의 폴란드 공격 때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서부 전선에서 공세를 폈으면?
아마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프랑스 전국 점령이란 끔직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
으리라.
5) 쿠바 미사일 위기
... 1961년, 미국의 핵미사일 기술은 소련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며 미국 소련 모두 잘 알
고 있었다. 이런데도 '양국간 군사력이 균형을 이룬다'고 말한 케네디를 흐루시초프는 어떻
게 보았을까?... 케네디는 라오스 문제에 대해 미국의 정책에 오류가 있었다면서 양보를 보
였으나 이것이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흐루시초프가 물러선 것은 쿠바 등에서 전면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감지한 다음이었다.
저자의 논평을 되새겨 보자.
... 미사일 위기는 미국의 우위에 대해 미국 소련 양방이 동의했는데도 일어났다. 흐루시초
프는 케네디가 도전을 받았을 때도 미국의 군사적인 우세를 이용할 의지가 없음을 확신한
데다가 상대의 연약한 성격을 이용하여 힘의 균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험을 감행했다.... 케네디도 종종 인식했듯이 더 강경한 태도야말로 위기를 피하는 방법
이다. 국제 경쟁에서는 신중한 소극성이 강경한 적극성보다 더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
다.... 그 위기는 더 강력한 국가였지만 힘을 사용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납득시키지 못한 지도자 때문에 발생했다.
이런 전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문제의 싹이 보일 때 적극적이고 강력한 대응을 할 경우 나중의 심각한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책에서, 1950년 윈스턴 처칠의 말을 들어 보자. "힘이 없는 나라의 유화정책은 무익하고 해롭지만, 강자의 유화책은 가장 좋은 정책입니다." 이 말을 조금 바꾸면 '힘을 사용할 의지로 뒷받침되지 않은 유화책은 쓸데없다'가 된다. '필요하면 군사적 대응도 가능하다'란 각오와 담력 없이, 모든 선택의 가능성을 꽁꽁 묶어 놓은 채로, 햇볕 정책이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을까?
스테이크와 쇠망치로는 물론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뽀글씨는, 프랑스산 꼬냑과 미사일을 갖고도 힘든 상대란 말이다.
漁夫
trackback ; http://fischer.egloos.com/2889133(Donald Kagan's "On the origins of war")
link ; http://sonnet.egloos.com/2939721 [ 주인 白; trackback을 걸 경우 본의 아니게 이 재미없는 블로그를 들어오시고 실망하실 분이 늘어나는 관계로 링크만 시킵니다 ]
물리학에서는 '물체를 가속시키는 영향'이라고 정의하지만(F=ma의 기본식에서 명백함), 사회에서 '힘'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것'으로 많이 쓰인다. [ 사실상 두 정의는 같다. 물체는 관성이 있어서 정지해 있으려 하기 때문이다. ] 국제 정치에서도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인다.
sonnet님의 원글에 있지만, 옮겨오기로 하면
경제규모라든가 인구 같은 객관적 기준에서 우리는 북한보다 상당히 앞서 있다. 동맹국의 지원을 감안한다면 군사력도 그들을 압도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우월한 기초체력을 갖고 얻은 것이 별로 없다. 왜 그러한 월등한 능력들이 협상에서 우리의 우월한 지위와 상대의 양보를 가져다주지 못할까? (sonnet)
sonnet님께서는 '게임의 룰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고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끌어낸 미국과 북한의 협상에 대해 설명하셨다. 무력의 사용 가능성을 열어 둔 협상 말이다. 이것은 성공한 예지만, 무력의 사용 가능성을 배제(또는 심하게 제약)하고 협상하다가 실패하거나 거의 실패 직전까지 갔던 사례가 있을까?
물론 있다. '매파'의 말이라고 비판받을 소지도 있지만, Donald Kagan의 '전쟁의 기원에 대해서'를 읽어보자(sonnet님 정도 되는 분이 이 책을 안 읽으셨을 리가 없어 보이니, 이 글은 사실상 사족인 셈이다).
1) 펠로폰네소스 전쟁 ; 아테네가 코린토스와 코르키라 사이의 함대 분쟁에 끼어든 순간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테네 함대 사령관은 (사용 가능한 수백 척 중) 단지 20~30척만 사용 가능했으며
"코린토스 함대가 코르키라 본토에 대항하거나 착륙할 의도로 코르키라 영토를 향해 항해하지
않는 한 전투에 개입하지 마라"는, 그야말로 행동의 자유를 중대하게 제약하는 명령을 받았다.
코린토스 함대는 이 해전에서 대부분 손상을 입지 않았으며, 귀국하는 길에 코르키라와 분쟁
대상이던 식민지를 공격하여 점령했다. 이것은 중대한 도발이었으며 전쟁의 도화선이었다.
애초에 아테네가 100척 정도로 무력 시위만 했어도 코린토스가 이런 도발적 행동까지는 하지
못했을 것이 거의 틀림없다.
2) 1차 세계 대전
영국은 상비군(육군) 및 훈련된 예비군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했는데, 이 덕에 독일은 유럽의
안정에 대한 무모하고 불필요한 도전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랬으면 독일과 전세계에 이익이
었을 것이다... 영국은 금전적인 면에서나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서 큰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
억제를 통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를 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자신의 정책
에 맞게 전략적 능력을 조절하기를 거부하여 자신의 정책 수행 능력을 약화시켰다...
3) 2차 포에니 전쟁 ; 이것만 '로마인 이야기'에서 인용하자.
이미 전쟁이 일어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약간 의미는 다르지만, 로마는 사군툼이 공격받고 있을
때에 적극적인 병력 파견을 망설이는 바람에 큰 손해를 입었다. 전쟁 종료 후 그리스 파병을 주
저하는 시민들을 consul 갈바가 설득한 연설에서;
"한니발이 사군툼을 공격했을 때 바로 도우려 달려갔다면, 전쟁터는 이탈리아가 아니라 에스파
냐가 됐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이것을 한니발과의 대화로 해결하려 하는 바람에 때를 놓쳐
이탈리아를 전쟁터로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 우리가 맛본 길고도 괴로운 17년은 죽을 때까지
아무도 잊지 못할 것이다...."
전쟁이 일어날 것 같거나, 아니면 일어난 초기에 적극적인 대응을 망설일 경우 이런 일이 벌어
질 수 있다.
4) 2차 세계 대전
참고할 만한 도서는 많다. '제 3제국의 흥망' 기타...
히틀러가 라인란트 진주를 했을 때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군사를 파견했으면?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 위기 때 영국이 양보하지 않고 군사 대결도 불사했으면?
히틀러의 폴란드 공격 때 프랑스가 적극적으로 서부 전선에서 공세를 폈으면?
아마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프랑스 전국 점령이란 끔직한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
으리라.
5) 쿠바 미사일 위기
... 1961년, 미국의 핵미사일 기술은 소련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했으며 미국 소련 모두 잘 알
고 있었다. 이런데도 '양국간 군사력이 균형을 이룬다'고 말한 케네디를 흐루시초프는 어떻
게 보았을까?... 케네디는 라오스 문제에 대해 미국의 정책에 오류가 있었다면서 양보를 보
였으나 이것이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흐루시초프가 물러선 것은 쿠바 등에서 전면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감지한 다음이었다.
저자의 논평을 되새겨 보자.
... 미사일 위기는 미국의 우위에 대해 미국 소련 양방이 동의했는데도 일어났다. 흐루시초
프는 케네디가 도전을 받았을 때도 미국의 군사적인 우세를 이용할 의지가 없음을 확신한
데다가 상대의 연약한 성격을 이용하여 힘의 균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험을 감행했다.... 케네디도 종종 인식했듯이 더 강경한 태도야말로 위기를 피하는 방법
이다. 국제 경쟁에서는 신중한 소극성이 강경한 적극성보다 더 안전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
다.... 그 위기는 더 강력한 국가였지만 힘을 사용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상대방에게
납득시키지 못한 지도자 때문에 발생했다.
이런 전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문제의 싹이 보일 때 적극적이고 강력한 대응을 할 경우 나중의 심각한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책에서, 1950년 윈스턴 처칠의 말을 들어 보자. "힘이 없는 나라의 유화정책은 무익하고 해롭지만, 강자의 유화책은 가장 좋은 정책입니다." 이 말을 조금 바꾸면 '힘을 사용할 의지로 뒷받침되지 않은 유화책은 쓸데없다'가 된다. '필요하면 군사적 대응도 가능하다'란 각오와 담력 없이, 모든 선택의 가능성을 꽁꽁 묶어 놓은 채로, 햇볕 정책이 제 역할을 발휘할 수 있을까?
스테이크와 쇠망치로는 물론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뽀글씨는, 프랑스산 꼬냑과 미사일을 갖고도 힘든 상대란 말이다.
漁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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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7/01/16 22:02 | Views by Engineer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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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대가 없이 평화를 살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ㅡㅜ
한국 국민들은 63년 동안의 평화에 안주하게 돼서(국제 관계에서 이게 얼마나 긴 평화인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별 노력 없이도 평화를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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